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20화 (19/122)

# 20

7. 소문(1)

지금까지 뚫은 것으로는 배영옥이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눕고 싶었다. 한데 몸에 이상이 생긴 건지 움쩍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큭큭큭! 고작 과거에 최선을 다했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려고 몸을 망치다니. 어리석은 두삼아, 할아버지의 장갑은 너에게 너무 과분한 것이었어.’

모든 힘을 다 쓰고 나니 한편으론 후련하면서도 끝내 고치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함, 어리석음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사, 사람을 불러야겠어요.”

은희경과 정소라를 마사지하면서 그녀들이 신음 소리를 내어도 딱히 이성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었다.

한데 우하란이 상기된 얼굴로 걱정스럽게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아··· 이런 순간에······.’

어이없음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몸은 본능에 따라 빠르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잠재되어 있던 양기가 폭발했다.

두삼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가 배영옥의 백회를 뚫기 위해 노력할 때 머릿속으로 임맥과 독맥을 그렸고 일부의 기운이 그의 몸에서도 똑같이 임맥과 독맥을 뚫고 있었다.

즉 백회를 뚫을 때 일어난 고통은 배영옥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반탄력이 아닌 그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반탄력이었다.

무섭게 일어난 양기는 음기를 원했고 순수하면서도 강한 하란의 음기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부족하다고 생각하자 멋대로 하란의 혈을 자극해 음기를 촉발시켰다.

‘···뜨거워!’

서로에게서 촉발된 기운이 합쳐지자 지금까지완 달리 뜨거운 열기가 온몸에 지배했다. 그리고 기운은 세 갈래로 나뉘어서 하나는 두삼의 독맥으로, 또 다른 하나는 우하란의 독맥으로, 마지막 하나는 배영옥의 단전독맥으로 올라갔다.

‘아! 아, 안 돼!’

뜨겁다고 해도 증발시킬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상당한 양의 기운이 좀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았다.

이대로 부딪힌다면 셋 다 잘못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이미 속도를 올린 기운은 두삼의 의지완 상관없이 백회에 부딪혔다.

펑!

아까와는 다른 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아니, 머리를 때렸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두삼은 다른 사람을 걱정할 틈도 없이 머리가 터져 나가는 느낌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

여명도 뜨지 않은 으뜸 마사지 숍에 가장 먼저 불이 켜지는 곳은 하란의 방이었다.

불이 켜지고 20분 정도 지나면 간단히 씻고 머리를 질끈 묶은 채 하란이 밖으로 나왔다.

마당의 적당한 곳에 자리한 그녀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후 요가를 시작했다.

비행기를 타고 있을 때와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날씨가 어떠하든 매일처럼 하는 운동이었다.

‘오늘 영하 4도까지 떨어지고 체감온도는 영하 10도가 넘을 거라고 했는데 약간 추운 정도로만 느껴지다니······. 역시 그날 일 때문인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시작할 때 추위를 참으며 요가를 하느라 힘들었었다. 한데 사흘 전부터 추위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어제, 그제는 그저 기분 탓이겠거니 했는데 오늘 확실히 몸에 변화가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정 간호사가 왜 마사지를 받으며 신음 소리를 냈는지 이해하게 된 사흘 전, 두삼의 손에서 뜨거운 뭔가가 몸으로 들어왔었다.

또다시 쾌락이 시작되나 싶어 긴장하는데 뜨거운 기운은 조금 달랐다.

짜릿한 쾌감 대신 시원하고 상쾌하게 만들어주었는데 온몸을 돌고 난 후엔 다시 잡은 손을 통해 빠져나가 버렸다.

‘내게 일어난 증상이 뭔지 궁금하긴 한데 물어볼 사람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그나저나 몸에는 이상이 없다는데 오늘도 깨지 못하는 건가?’

하란은 요가를 하면서 두삼의 방을 흘낏거렸다.

두삼은 배영옥을 치료한 날부터 지난 사흘 동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치료 도중에 코피를 쏟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잃고 있는 것을 본 그녀는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서 정밀 검사를 받게 했다.

다행히 그저 잠들어 있는 상태라는 말에 일단 데려오긴 했지만 하루이틀 더 지켜보다가 계속 깨지 못한다면 다시 병원으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운동을 마치고 씻으러 방에 가려 하는데 치료실 옆 배영옥의 방에 불이 켜지는 게 보였다.

발걸음을 돌려 노크를 한 후에 문을 열었다.

“깨셨어요?”

“으, 응. 자, 잤니?”

배영옥은 이불 홑청을 벗기다가 하란이 들어오자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치료가 성공했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배영옥은 깨어났다. 두삼을 검사하면서 배영옥도 검사를 했지만 치료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다만 특이한 점은 똥, 오줌, 땀 따위의 배설물에서 독한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한데 오늘 유독 심하게 냄새가 나서일까, 배영옥은 정 간호사가 깨기 전에 흔적을 최소화하려 한 모양이었다.

“제가 할게요.”

“돼, 됐어! 넌 나가 있으렴.”

하란은 배영옥이 싫다는데도 안으로 들어가 그녀가 들고 있던 이불과 베개를 뺐었다.

거무칙칙한 얼룩이 져 있었고 시궁창 냄새가 났지만 하란은 인상도 찌푸리지 않고 홑청을 벗겼다.

“이 이불은 못쓰겠네요. 그냥 버려야겠어요. 옷 벗으시고 얼른 샤워하세요.”

하란이 워낙 강력하게 말하니 배영옥은 어쩔 수 없이 욕실로 향했고 그동안 하란은 이불과 옷을 밖에 내놓고 환기를 시켰다.

“엄마가 이 정도라면 한 선생님도 비슷하겠는데······.”

배영옥만큼은 아니더라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두삼에게도 지난 사흘 동안 냄새가 많이 났었다.

배영옥이 갈아입을 옷을 욕실 앞에 갖다놓고 두삼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똑!

노크를 하고 잠깐 기다려보지만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에 하란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큭!”

아니나 다를까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배영옥의 방보다는 덜했지만 엄마와 외간 남자의 냄새가 같을 수 없었다.

잠시 환기를 시키고 기다리던 그녀는 냄새가 완전히 가실 때까지 기다렸다간 두삼이 얼어 죽겠다 싶어 적당히 가시자 안으로 들어갔다.

‘정 간호사를 부를까?’

이불을 바꾸고 옷을 갈아입히려고 왔지만 막상하려니 막막했다. 그러나 곧 덮고 있는 이불을 들추는 것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용을 했다지만 곤히 자는 이를 깨울 만큼 막돼먹은 고용주는 아니었다.

***

두삼은 하수구에 빠져 허우적대는 꿈을 꾸고 있었다.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하수에 흠뻑 젖어서인지 으슬으슬 떨렸다.

‘이건 꿈이 분명해. 일어나자.’

맥락이 전혀 없는 상황이기에 꿈임을 확신한 그는 잠에서 깨어나길 원했다.

“······.”

눈을 뜨자 가장 먼저 휑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내리니 웃통을 벗고 있었는데 하란이 물티슈로 몸을 열심히 닦고 있었다.

무슨 상황인가 싶어 잠시 지켜보던 그는 자신이 입은 기억이 없는 체육복 바지를 내릴까말까 고민하는 하란의 모습에 입을 열어야 했다.

“···뭐 하세요?”

“······! 아! 깨, 깨어났어요?”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두삼은 자신이 왜 누워 있고 하란이 왜 수발을 들고 있는지 현 상황이 궁금했다.

“그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요.”

간결한 설명이 이어졌다.

“에? 사흘이 넘게 누워 있었다는 겁니까? 배영옥 씨는 어떻게 됐습니까?”

“엄만 깨어났어요. 가끔 고통을 호소하셔서 진통제를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걸 제외하곤 괜찮으신 것 같아요. 분비물에서 심한 악취가 나지만요.”

분비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건 몸의 자정 능력이 살아났다는 얘기였다.

‘마지막으로 올라갔던 기운이 백회를 뚫어서 소주천을 이루었구나!’

배영옥은 목숨을 잃고 자신과 우하란은 몸에 이상이 생겼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들 무사하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아! 하란 씨는 몸에는 이상 없어요?”

“없어요. 오히려 더 건강해진 것 같아요. 그날 온몸에 시원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냄새가 난다거나 하진 않고요?”

“전 괜찮아요.”

우하란의 경우는 독맥이 막혀 있자 세맥들을 타고 온몸으로 퍼진 모양이다.

“오히려 한 선생님이 엄마랑 같은 증상이 일어나고 있어요.”

“저한테 여사님이랑 같은 증상이요?”

“땀에서 심한 냄새가 나는 거요.”

“아!”

손등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던 두삼은 하수구 꿈과 그녀가 자신에게 뭘 하고 있었는지 알게 됐다.

두삼은 처음으로 자신의 내부를 살펴본다는 생각을 했다.

양손에서 시작된 기의 흐름이 팔로 몸으로 다리로 흐르며 몸 전체의 기의 흐름이 그려졌다.

‘아! 임맥과 독맥이 이어졌어. 설마 그때 일어났던 현상이 내 백회를 뚫으면서 일어난 현상이었나?’

상황을 이해한 두삼은 옷을 추스르며 일어났다.

“어머님은요?”

“깨셔서 씻고 계세요.”

“그럼, 씻고 치료실에서 봤으면 하는데요.”

“말씀드릴게요.”

“아! 그리고 하란 씨.”

두삼은 나가는 하란을 불렀다.

“네?”

“돌봐주신 거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희 엄마를 치료하다가 그러신 건데요. 그리고 그동안은 정 간호사가 했어요. 제가 한 건 오늘이 처음이었어요.”

별일 아니라고 말하는 모습에 더 고맙게 느껴졌다.

능력만 된다면 한번 대시해 보고 싶을 정도로 참 괜찮은 여자였지만 언감생심이었다.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쓴 입맛을 다신 두삼은 옷과 이불을 들고 욕실로 향했다.

‘임독양맥 타동에 대해서 많은 말들을 들었지만 이정도로 활력이 넘칠 줄이야.’

샤워를 하며 다시 내부를 살피자 두삼은 넘치는 활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며칠 전 치료를 하면서 가지고 있던 기의 양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순수한 기운이 넘치는 것은 물론이고, 한동안 치료를 하느라 무거웠던 몸이 한참 산을 탈 때보다 더 가벼웠다.

‘운이 좋아 기연을 얻었지만 이젠 두 번 다시 과거에 연연해 모험 따윈 하지 않을 거야.’

이번 일로 이젠 과거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샤워를 마친 후 치료실로 갔다.

“다시 뵙게 되어서 반가워요, 한 선생님.”

배영옥이 제법 건강한 모습으로 반겨줬다.

“건강한 모습을 보니 저 역시 기쁘네요.”

“선생님 덕분에 아무래도 건강해진 것 같아요.”

“그건 일단 맥부터 살펴보고 얘기를 할까요?”

일시적인 건지 치료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건지는 일단 살펴봐야 했다.

배영옥의 팔목 맥을 잡고 기운을 들여보냈다.

팔목에서 임맥까지 큰 맥이 막혀 있는 건 변함이 없었는데 날뛰던 기운은 사라져 있었다.

‘사라진 기운이 여기 있었군.’

마구잡이로 먹어 겉돌던 한약재의 기운은 잘 뚫린 임맥과 독맥에 자리해 있었다. 그리고 양맥을 돌며 막혀 있는 다른 경락에서 흘러나오는 나쁜 기운들을 제거하고 있었다.

배설물에서 냄새가 나는 것도 제거된 나쁜 기운이 몸 밖으로 배출되는 현상이었다.

‘암의 기운이 약화되기 시작했어!’

할아버지의 치료법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종양이 작아지거나 하는 눈에 확 띄게 효과는 없었지만 기운이 줄어든 것은 알 수 있었다.

“고비는 넘긴 것 같습니다.”

두삼은 손을 떼면서 말했다.

“정말인가요!”

모녀는 동시에 놀라면서 물었다.

“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조금 지나면 병원에서 검사를 해도 호전된 결과가 나타날 정도로 차도를 보일지도 모겠네요.”

“아! 고마워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엄마!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그래!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줘서 고맙구나.”

“아직까진 추측일 뿐입니다. 치료는 아침 먹고 시작하겠습니다.”

두삼은 모녀가 기뻐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조용히 치료실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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