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3화 (3/122)

# 3

1. 귀향(2)

***

아침 6시, 서울에서 출근을 하기 위해 겨우 일어나던 것과 달리 고향집에선 절로 눈이 떠졌다.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린 후 TV도 없고, 인터넷도 안 되는 상황이라 일찍 잠든 것이 결정적이긴 했지만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에 대한 설렘도 한몫했다.

“간만에 산이나 올라가 볼까?”

아직까지 딱히 계획된 것이 없기에 오랜만에 뒷산인 수리봉을 올라가 보기로 했다.

뒷산이라고 표현을 했지만 800미터가 훌쩍 넘는 봉우리였다.

동네 사람들이 산에 오르는 길이 있었지만 크게 따지지 않고 그저 발 닿는 대로 산을 올랐다.

한언수가 의원에서 쓰이는 약재를 주로 약초꾼에게 받아다 썼지만 날이 좋을 땐 집에서 일하던 일꾼들과 산을 오르곤 했었다. 그때 두삼도 자주 다녀서 정말 뒷산이라고 부를 만큼 훤했다.

“흐음~ 더덕 냄새.”

더덕 향은 상당히 짙어 길을 가다가도 금세 발견할 수 있다.

적당한 나뭇가지를 이용해 더덕을 캤다. 아직 1년이 되지 않아 크지 않았다.

혹시 몰라 챙겨온 소도로 껍질을 벗긴 후 통째로 입에 넣고 씹었다.

으적으적!

즙을 잔뜩 머금은 더덕은 다소 쓰다는 것만 빼면 마치 아삭아삭한 과일을 먹는 듯한 식감이었고, 입안 가득 퍼지는 더덕 향은 어떤 과일도 견주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이야! 이 다래나무는 예전보다 더 큰 것 같은데. 올 여름에 따서 술이나 담가야겠다.”

어린애였던 두삼은 장성을 했지만 산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거의 없었다.

“어! 저건 능이버섯이네. 잘됐다. 고기 먹을 때 같이 구워 먹으면 맛있겠다.”

지천이 먹을거리였고 그중에 값나가는 것들도 꽤 있었다.

빈 가방이 반쯤 올라왔을 때 가득 찼다. 더 욕심부려 봐야 들고 갈 수도 없었기에 등산로로 나와 수리봉으로 올라갔다.

“하아아아~ 후우우우우~ 좋다.”

수리봉에 오르자 시원한 공기는 물론이고 악양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적당한 곳에 앉은 두삼은 아까 채집한 것 중에 씹을 만한 것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해가 뜨면서 활기차게 살아 움직이는 악양을 바라보았다.

서울과는 뭔가 달라보였다.

서울이나 악양이나 환경이 다를 뿐이지 살아가는 것이 다를 리는 없을 것이다. 단지 두삼의 마음가짐이 달라져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리라.

10분 쯤 앉아 있던 그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이젠 내려가야 할 시간이었다.

집 뒤에 있는 대나무 숲에서 나와 마당으로 가자 긴 장화와 작업복을 입은 이봉래가 기다리고 있었다.

“산에 갔다 오냐?”

“예, 아저씨. 일 나가시려고요?”

“그래야지. 네 방에 아침밥 챙겨놨다고 말해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저씨도 참! 절대 그러지 마세요. 밥이야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먹던 거에 숟가락 하나 더 올리는 건데 부담 갖지 마라. 아들 같은 너한테 밥 챙겨주는 게 무에 대단한 일이라고.”

이봉래는 두삼의 할아버지인 한언수 때문에 살아났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할아버지가 살아 있을 땐 사랑채에 머물며 잡일을 도왔고 죽고 나선 묘와 집을 돌보고 있었는데 두삼은 그를 보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낯이 뜨거웠다.

“감사합니다.”

더 거부를 하면 오히려 그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 것 같았기에 두삼은 순순히 그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점심은 1시쯤, 저녁은 7시쯤 먹는단다. 밖에서 먹을 것 같으면 메시지라도 남겨두려무나.”

“예, 아저씨. 그런데 일손이 필요하면 도울게요.”

“됐다. 도움이 필요하면 말할 테니 넌 일단 쉬어라. 푹 쉬면서 뭘 할지 생각해 봐. 밥 먹어라.”

이봉래는 두삼이 왜 내려왔는지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는 무심한 듯 돌아서 일하러 갔다.

그런 그를 보며 머리를 긁적이던 두삼은 자신의 방으로 갔다.

[식었으면 귀찮더라도 데워 먹어라.]

밥상 덮개 위에 쪽지가 있었다.

삐뚤삐뚤한 글씨체로 써진 짧은 글이었지만 따뜻함이 묻어 있었다.

덮개를 치우자 갖다 둔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밥이며 국이며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아저씨도 참······. 숟가락 하나 올렸다더니 아껴 드시던 굴비도 구우셨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연을 끊으면서 느끼기 힘들었던 가족 지간의 정이 느껴져 두삼은 순간 목이 메어와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그도 잠시, 곧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설거지를 하고 밥상을 사랑채 부엌에 갖다놓고 나니 무얼 해야 할지 고민됐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16일이지. 5일장이나 보러 가야겠다.”

두삼은 약초꾼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니 이 기회에 대충이나마 약초 가격을 알아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생각과 동시에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정해진 일이 없는 백수의 장점이었다.

두삼의 집에서 50미터 떨어진 곳에 포장도로-버스가 다니진 않지만-가 있어 느끼기 힘들지만 사실 두삼의 집은 완만한 산의 중턱에 있었다. 그래서 버스를 타기 위해선 10분쯤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그는 아침에 충분히 걸었기에 버스를 타고 악양면으로 나갈 생각으로 마을의 버스정류장이 있는 매계리 마을 입구로 내려갔다.

버스정류장이라고 해봐야 도로 옆 커다란 나무 밑에 간단한 식료품을 파는 구멍가게가 있는 것이 다였다.

두삼은 구멍가게 앞에 붙어 있는 버스 시간표를 확인했다. 버스가 오기까지 10분 남았다.

“혹시나 했는데 버스 시간은 여전하구나. 그나저나 어디 가신 건가?”

두삼은 불 꺼진 가게를 기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구멍가게 할머니가 몇 해 전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친구 분이 지금 운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인사나 드릴까 했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나중에 인사드려야겠네.”

매계리 윗마을이라고 할 수 있는 동매리에서 버스가 내려오고 있었다.

버스에 오르자 5일장에 나가 팔 물건을 담은 보따리들이 걸음걸음 놓여 있었다. 그에 비해 자리는 넉넉했기에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걸어서는 40분 거리지만 차로는 정류장에 서서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쳐도 15분이 넘지 않았다.

“할머니, 제가 내려 드릴게요.”

“아이고! 총각, 고마워.”

어느 시골이나 비슷하게 버스에 탄 이들은 대부분이 노인 분들이었는데 자신의 몸집만 한 짐을 드는 모습에 두삼은 팔을 걷어붙였다.

짐을 머리에 얹어주거나 짐이 잔뜩 실린 손수레를 내려 주기를 십여 차례 하고 나서야 5일장이 열리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아직 9시 30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시장은 좋은 자리를 먼저 선점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좌판에서 파는 물건 중 가장 많은 것이 직접 캐거나 재배한 갖가지 봄나물과 농산물, 산에서 캐온 각종 약재였다.

두삼은 부채만 한 상황버섯을 파는 할머니께 물었다.

“그 상황버섯은 얼마예요?”

“이거? 400그람 조금 넘는데 16만 원만 줘.”

“좀 더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가격을 알아보려는 것이었기에 미안함에 살짝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옮겼다.

두삼은 계속해서 눈에 띄는 약재들의 가격들을 물어보며 시장을 돌아다녔다.

‘생각보다 가격이 비싼 편이네.’

서울에 비한다면 싸긴 했다. 그러나 이곳까지 와서 차비를 건질 정도로 싸진 않았다.

물론 대부분이 자연산이고 운이 좋다면 정말 싸게 파는 좋은 물건을 살 수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묻는 와중에도 순식간에 팔려 버렸다.

전체적으로 가격이 비싼 이유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외지인 때문이었는데 그들은 시장을 돌면서 괜찮다 싶으면 바로 구매를 했다.

‘잘하면 괜찮겠는걸.’

가격만 적당하게 책정한다면 굳이 판매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으니 약초꾼을 염두에 두고 있는 그에겐 좋은 일이었다.

‘한번 팔아봐?’

아침에 채취했던 것이 가방에 있음을 상기했다.

부끄럽다는 생각도 잠시 곧 앉을 곳을 물색했다. 그리고 시장의 맨 끝, 사람들도 거의 오지 않는 곳에 박스를 펴고 앉았다.

‘버섯은 요건 이만 원, 요건 만오천 원, 요건 오천 원······.’

두삼은 박스의 일부분을 찢어 물건 앞에 가격을 적어뒀다.

‘자리가 안 좋아서 안 팔리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젊은 사람이 팔아서 못 미더워 그러나? 아님, 가격이 너무 어정쩡한가?’

간간히 오는 손님들은 두삼의 물건은 잠깐 구경만 할 뿐이었고 옆에 계신 할머니의 나물만 사서 갔다.

1시간이 지나도 2시간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두삼은 물건이 너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다음 장날까지 많은 약초를 채집해서 오기로 하고 장사를 접기로 했다.

그때 옆에 계신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총각.”

“네, 할머니.”

“여기서 약초를 팔아봐야 잘 안 팔릴 거야. 이쪽으로는 나물 위주로 파는 곳이거든. 약초를 팔려면 저쪽에 약초 파는 곳이 따로 있어.”

“아! 그렇군요. 감사해요, 할머니.”

“감사는 무슨······.”

할머니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막 물건을 챙기려 할 때 눈에 확 띄는 미모의 여성이 다가오며 물었다.

살짝 올라간 눈이 차갑게 보이게 만들었지만 그마저도 매력적이었다.

“파는 건가요?”

“아··· 네네!”

두삼은 잠깐 여자의 얼굴에 넋을 잃었다는 걸 깨닫곤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국내산인가요?”

“네. 오늘 아침에 산에서 채취한 겁니다.”

여자는 뒤에 있는 남자를 흘낏 쳐다봤고 남자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약초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다 주세요.”

“그럼 8만 원만 주세요. 비닐이······.”

생각해 보니 포장해 줄 비닐이 없었다.

“···괜찮아요. 알아서 챙겨 가죠. 여기 있어요.”

여자가 중년 남자에게 눈짓을 하자 물건들을 들고 있던 쇼핑백에 담았다. 그리고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쌩하니 사라졌다.

“그 여자 정말 숨 막히게 예쁘네. 뭐 그래봐야 그림에 떡이지만··· 아! 잔돈.”

여자는 오만 원 권 두 장을 줬는데 거스름돈을 주지 않았다.

두삼은 박스를 치우고 서둘러 여자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나 장을 다보고 가버린 건지 시장 구석구석까지 찾아봤지만 없었다.

“에휴~ 포기다. 언젠간 만나면 그때 주자. 못 만나면 어쩔 수 없고.”

두삼은 여자 찾기를 포기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점심때네. 오랜만에 팥 칼국수 먹을까?

어린 시절 팥을 좋아하던 할아버지와 자주 다녔던 곳으로 아까 시장을 둘러볼 때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팥 칼국수 두 그릇 주세요. 그릇은 먹고 갖다드리겠습니다.”

5일장 땐 펼쳐둔 좌판 때문에 그처럼 테이크아웃을 해서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주인은 두 말없이 팥 칼국수를 만들어 쟁반에 담아줬다.

두삼은 쟁반을 든 채 아까 장사를 하던 그 자리로 가 옆에 계셨던 할머니에게 한 그릇을 드렸다.

“아휴, 나도 돈 있는데 뭐 한다고······.”

“혼자 먹는 것에 익숙지 않아서요. 부담 갖지 말고 드세요.”

두삼은 오랜만에 받은 친절에 대한 보답을 팥 칼국수로 대신했다.

“음, 아무래도 이동 수단을 사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버스를 타고 면내를 왔다 갔다 하는 건 아무래도 시간적 제약이 많았다.

자주 나오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현재로써는 매일같이 나와야 할 것 같았다.

현재 그가 가진 돈은 대략 500만 원.

차를 사기엔 부족했고 할부로 사자니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생각해야 했다. 그렇다고 자전거를 사자니 그도 적합하지 않았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오토바이였다.

언젠가 시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오토바이 가게를 본 걸 기억하곤 그곳으로 향했다.

‘악양 오토바이’이라는 평범한 이름의 오토바이 가게 앞엔 여러 종류의 오토바이가 놓여 있었다.

“실례합니다!”

기름 냄새가 풍기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어? 넌!”

기름 때 잔뜩 묻은 장갑을 낀 채 오토바이를 고치던 사장은 두삼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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