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2화 (2/122)

# 2

1. 귀향(1)

오전 11시가 되기 전에 떠날 준비를 마쳤다.

재산이라고 불릴 만한 것은 노트북과 취미 생활용으로 모아둔 하드디스크, 계절별 옷가지가 전부였다.

세 박스로도 떠날 준비가 된다는 것에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나 싶으면서도 이사하기 편하다는 점에선 나쁘지 않았다.

“다 된 건가? 휴우~ 이 좁은 독서실 방을 떠나는 게 아쉬울 날이 올 줄이야.”

두삼은 편의점에 박스를 맡기고 덩그러니 남은 침대와 선반 위에 뱀처럼 놓여 있는 인터넷 선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때 두삼의 어깨에 누군가가 팔을 올리며 말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독서실 일하는 총무 노대우였다.

전임 대통령의 이름과 비슷해 독서실 사람들에겐 총통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축하할 일이지 전혀 아쉬워할 일이 아니다. 두 번 다시 이딴 곳에서 살지 마라.”

“총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형으로서 하는 말이다.”

3년 동안 같이 독서실에서 생활한 사이라 그런지 총무의 말엔 끈끈함이 묻어 있었다.

“옥상에 담배나 피우러 갈까요, 총통 형?”

두삼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노대우와 잠깐이라도 더 있고 싶은 마음에 말했다.

“어젯밤에 술 마시면서 나눈 석별의 정으로 충분하다. 너 떠나고 나면··· 어차피 올라갈 건데 뭐.”

노대우는 정이 많았다. 독서실을 떠나는 사람이 있는 날이면 옥상에 올라가 떠나는 이를 보며 담배를 피우는 것이 그 자신만의 이별법이었다.

두삼은 그걸 알기에 더 권하지 않았다.

“시험 합격 하면 놀러 와요. 주변에 볼거리도 많아요.”

“오지 말라는 소리처럼 들린다. 휴가 때 시간되면 들를게. 근데 경남이라고 했었나?”

“네. 경남 하동군 악양면 매계리예요.”

“이름만 들어도 엄청 먼 곳 같네. ···조심히 내려가고 잘 살아라.”

“형도요.”

가볍게 악수를 하는 것으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하고 독서실을 나섰다.

뒤돌아 옥상을 보면 분명 담배를 물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노대우가 보일 게 분명했다. 그러나 돌아보지 않았다.

이별은 짧을수록 좋았다.

전철을 타고 남부버스터미널에 도착한 두삼은 하동행 티켓을 끊었다.

악양으로 바로 가는 버스 편이었지만 하동에 잠깐 들러야 했다.

두삼은 출발 시간까지 30분 정도 남았기에 간단히 우동으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며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렸다.

주소록 위 ‘엄마’라고 적힌 곳에 손가락을 올리고 잠시 고민을 하던 그는 결국 꾹 눌렀다.

-아들?

“네, 엄마. 잘 지내셨어요?”

-항상 잘 지낸다. 넌 돈 버느라 고생 많지?

대부분의 어머니는 언제나 당신이 고생하는 것보다 자식이 고생하는 것을 안타까워했고, 두삼의 어머니 박선덕 또한 그 대부분에 속했다.

“햇볕 쨍쨍한 밭에서 일하는 엄마가 힘들지 실내에서 편하게 일하는 제가 힘들겠어요?”

-나나 네 아버지는 내 땅 일구고 살지만 넌 남의 밑에서 일하잖니. 여기 일이 잘돼서 우리 아들 돈 얼른 갚아줘야 하는데······.

“또, 또! 그 소리. 제 일은 제가 할게요.”

두삼이 전화를 할 때마다 박선덕은 4년 전의 일을 들먹였다. 그는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 큰소리로 말을 끊었다.

일대에서 유명한 의원이었던 두삼의 할아버지 한언수는 꽤 많은 돈을 유산으로 남겼다.

그러나 버는 사람 따로, 쓰는 사람 따로 있다고 두삼의 아버지가 사업을 한다고 두삼 몫의 유산까지 홀라당 날려 버린 것이다.

순간 언성을 높인 것이 미안했던 두삼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이번 달에 보너스가 들어와서 좀 보냈으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사서 쓰세요.”

-네 쓸 것도 없을 텐데 뭐 한다고 보냈어. 여기서 돈 쓸 일이 뭐가 있다고······.

“절대 아버지한테는 말하지도, 드리지도 마세요. 엄마 쓰라고 보내는 거지 아버지 술 먹으라고 보내는 거 아니에요.”

두삼과 그의 아버지 한윤호 사이는 극도로 나빴다.

자신 몫의 유산을 잃은 것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 그가 가려 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손때 묻은 집을 사업 자금을 위해 팔자고 했을 때 결사적으로 반대한 것 때문에 둘 사이가 틀어진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집과 주변 땅까지 합쳐봐야 고작 삼, 사천만 원. 만일 그 돈으로 사업이 정상화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면 두삼도 기꺼이 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십억의 유산을 깡그리 날려놓고도 땅만 팔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 한윤호의 말을 두삼은 믿을 수가 없었다.

-···네 아버지 너무 미워하지 마라. 요즘은 술도 끊고 많이 유해지셨다.

“행여나요! 아무튼 절대······.”

-니 아버지 오셨다. 또 연락하자.

박선덕은 낮은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을 하곤 전화를 끊었다.

“유해지긴 개뿔······.”

유해진 사람이 왔는데 다급하게 전화를 끊겠는가.

두삼은 씁쓸한 듯 중얼거리곤 출발 5분 전인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곧 출발했고 두삼은 창밖을 보며 고향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창에 머리를 얼마나 찧으며 잤는지 머리가 아파 눈을 떴다.

세상을 오렌지 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석양을 품은 섬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아! 섬진강.’

섬진강은 떠날 때 고향이 멀어졌음을 알려주고, 돌아올 때 고향이 가까워졌음을 알려주는 지표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떠났던 고향에 이제야 돌아왔음이 조금씩 실감나기 시작했다.

물론 할아버지 제사 때와 명절 때 내려와서 머물다가 가곤했지만 그때완 느낌이 사뭇 달랐다.

어떤 일을 계기로 꿈을 포기한 후,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일을 시작하면서 포기하고 있었던 꿈이 다시 꿈틀댔고 내려오기 전까지 완전히 상실했던 삶에 대한 자신감이 고향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살아났다.

‘어떻게 살아도 서울보다 이곳이 더 나을지도.’

꿈이 꿈으로 끝날지라도··· 약초를 캐어 근근이 살아갈지라도 최소한 이곳에서라면 자책하면서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죽어 있던 두삼의 눈빛에 생기가 돌 때쯤 버스는 목적지인 하동에 도착했다.

시내버스터미널에서 나온 두삼은 읍내와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동 기차역을 지나 우측 섬진강을 따라 20분 정도 걷다 보면 재첩국으로 유명한 음식점이 나왔다.

식당이 외딴 곳에 있음에도 저녁을 먹으러 온 하동사람들과 관광객으로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재첩국 주시고 10리터짜리로 하나 포장해 주세요.”

10리터짜리 물통에 판매하는 재첩국의 가격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두삼은 할아버지 댁에 들를 때면 언제나 이곳 음식점에 들러 사갔다.

줄 사람이 있어서였다.

재첩국 한 그릇을 먹고 재첩국 통을 들고 나오는데 때마침 읍내로 가는 사람의 차를 타고 하동 시내버스터미널까지 편하게 올 수 있었다.

그리고 악양면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아까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수고하세요.”

종착지인 악양면에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 내려 습관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난 설날 때 왔었으니 고작 2달밖에 지나지 않아 바뀐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콸콸콸!

매계리까지 가는 버스는 이미 끊겼다. 두삼은 시원하게 흐르는 섬진강의 지천인 악양천을 따라 할아버지 집을 향해 걸었다.

간간히 지나가는 차를 히치하이킹해서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그냥 걷고 싶었다.

어린 시절 야산의 밤을 주워-지금 생각하면 도둑질이긴 했지만-악양면까지 내려와 팔아서 아이스크림을 사먹던 일, 악양천에 떠내려 간 신발을 줍기 위해 냇가를 따라 내려왔던 일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두삼은 어둡고 긴 길을 웃으며 걷고 있었다.

‘저기다!’

좌측으로 지리산 줄기인 짙은 흑색의 수리봉이 솟아 있었고 그 한참 아래 두 개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두 개의 불빛 중 우측이 그의 고향집이었는데 금방 닿을 거리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족히 15분은 더 걸어야 할 거리였다. 그러나 두삼의 발은 목적지가 보이자 더욱 힘차게 움직였다.

“휴우~ 오랜만에 걸어서인가 고작 40분 정도 걸었다고 이렇게 힘들 줄이야.”

운동을 게을리 해본 적이 없었다. 다만 악력을 기르기 위한 근력 운동에 집중을 하다 보니 걷기와 뛰기엔 상대적으로 소홀했었다.

자기엔 이른 시간인지 대문이 열려 있었다.

ㄱ자 형의 본채와 一자 형의 사랑채로 구분이 되어 있었는데 두삼은 본채와 조금 떨어진 사랑채로 갔다.

사랑채엔 할아버지의 일을 돕다가 지금은 집을 관리하고 있는 이들이 살고 있었다.

“아저씨, 아줌마.”

“이 밤에 누구요?”

“봉래 아저씨, 접니다. 두삼이.”

“아니! 네가 명절도 아닌데 웬일이냐? 저녁은 먹었냐? 임자, 두삼이 왔어. 얼른 일어나서 저녁이라도 차려봐.”

“아이고! 주무시면 깨우지 마세요. 그리고 이거 사면서 간단히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살까 해서 왔는데 괜찮겠습니까?”

“당연하지! 네 집인데 네가 산다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냐. 어쩐지 이 사람이 이번 주에 뭐에 홀린 듯이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더니 네가 올 걸 알았나 보다. 근데 뭐 한다고 이걸 또 사왔냐.”

“좋아하시잖아요.”

“이제 너 때문에 질린다. 두 번 다시 사오지 마라.”

“하하! 성의를 봐서라도 드세요. 인사는 내일 다시 드리겠습니다. 쉬세요.”

“그래. 서울서 내려오느라 고생했을 텐데 얼른 자라.”

잠에서 깨 옷을 입고 나오는 아주머니와도 인사를 한 두삼은 본채로 갔다. 그리고 불도 켜지 않고 대청마루에 앉아 마당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는 집까지 걸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옛 추억에 빠져들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열일곱까지 지냈던 곳이라 추억할 것이 많은지 꽤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내 정신 좀 봐. 할아버지께 인사도 드리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었네.”

가방을 내려놓고 마당 한쪽에 있는 수돗가로 물을 틀었다.

“으~ 차가워!”

샤워를 하려던 마음이 사라질 정도로 물은 시원하다 못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러나 두삼은 새로운 각오를 다진 첫날부터 하기로 마음먹은 것을 무르긴 싫었다. 옷을 벗고 바가지로 머리부터 물을 연거푸 부었다.

몸이 의지완 상관없이 오돌오돌 떨렸지만 비누칠을 하곤 몸을 씻었다.

역시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고 찬물 샤워도 곧 견딜 만했다.

“큭큭큭! 잔뜩 오그라들었네. 어제의 나처럼 말이야.”

두삼은 수건으로 몸을 닦다가 하체를 보곤 자신도 모르게 키득거렸다.

옷까지 말끔하게 갈아입은 두삼은 본채의 오른쪽 맨 끝에 있는 사당으로 들어갔다.

정면으로는 단 위에 위패들이 모셔져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두삼의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 사진이 걸려 있었다.

두삼은 위패를 향해 절을 한 후 한언수의 영정사진을 보며 말했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 위에서 다 보고 계실 테니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 아시죠? 할아버지처럼 되고 싶었는데··· 장애물이 참 많네요.”

두삼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핑계 아니에요. 나름 열심히 했어요. 한의사는··· 어쩔 수 없었어요. 그래도 물리치료사와 각종 마사지 자격증, 심지어 피부 마사지 자격증도 땄다니까요. 헤헤헤. 그래서 이제 할아버지처럼 되겠다는 꿈을 접을까 해요. 화내지 마세요. 대신 할아버지 손자라는 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게요.”

한언수는 마치 괜찮다는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두삼도 마치 허락을 받은 것 같아 위안이 되는지 환하게 웃었다. 다만 눈에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유는 몰랐다.

꿈을 접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할아버지의 그림자를 좇아 아등바등 살지 않게 된 것에 대한 안도감인지.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 어리광을 부리던 어린 아이가 된 듯 두삼은 영정을 향해 그동안 쌓여 있던 말을 토해내며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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