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y양의 비밀
2019.01.18.
“우리도, 하나 낳을까?”
“…….”
“당신 같이 예쁜 딸.”
애를 잃어버린 것도 아닌데, 이상하리만큼 심장이 덜컹였다.
“……네?”
일시정지가 눌린 듯 굳은 예원은 그 상태 그대로 또르륵 눈을 굴렸다.
뭐야. 장난이야, 진심이야?
“아이…… 가지고 싶어요?”
“응.”
“…….”
“왜, 의외야?”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아무래도 진심인가 보다.
당황한 예원이 잘게 눈을 깜빡였다.
아이에 관한 거야 그녀도 이미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이모인 은아가 물어보기도 했었고, 그도 호칭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지나가듯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직은 그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질 따름이었다.
제게도 그런데, 하물며 그에겐 어떨까 싶었다.
결혼과는 아예 담을 쌓다시피 했던 남자다.
벌써부터 아이를 생각할 리는 절대 없다고 생각했는데.
모두가 그녀의 오산인 모양이었다.
“……나도 알아.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영 우습고, 적응 안 된다는 거. 근데…….”
“…….”
“자꾸 욕심이 나.”
민혁이 낮게 웃으며 속삭였다.
“당신 하나만 보고 있어도 이렇게 행복한데, 당신을 똑 닮은 생명체가 이 세상에 하나 더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
“요즘은 나도 모르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어.”
귓가를 통해 흘러든 목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힘껏 휘저어댔고, 덕분에 그것은 푸딩처럼 금세 몽글몽글해졌다.
티라곤 하나도 안 내는 것 같더니 혼자서 그런 생각까지 했구나.
문득 쑥스러워지면서도, 이상하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들은, 싫어요?”
“응?”
그렇게 얼마쯤 있었을까.
그녀의 입이 대뜸 열렸다.
“나 닮은 딸 말고, 민혁 씨 닮은 아들이요.”
슬쩍 뒤로 돌아선 예원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쪽은 별로냐고요.”
“나 닮은 아들?”
흐음.
잠시 생각해보던 그가 이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별로일 건 없지. 이러나저러나 우리 자식인데, 별로일 게 어디 있어.”
그냥, 당신이 아까 그 여자앨 너무 좋아하길래 해본 말이야.
아들이건 딸이건 상관없어, 난.
큼지막한 손이 그녀의 볼을 장난스럽게 어루만졌다.
“아. 근데 그러고 보니까, 지난번에 당신이 말해 준 이름은 아들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주혁이. 맞지?”
“…….”
“왜, 당신은 아들이 더 좋아?”
떠보듯 묻는 그를 가만히 보고 있던 예원은 슬슬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나도 어느 쪽이든 좋아요. 난 그냥…….”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거였다.
단지 난.
“민혁 씨한테,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
“민혁 씨와 나의 핏줄을 나눠 가진 진짜 아이. 진짜 가족이요.”
예원이 작게 미소 지었다.
반면 그의 입가에선 서서히 미소가 사라졌다.
“당신 닮은 아들이랑, 나 닮은 딸이랑. 몇 명이든 좋으니까, 그 애들이랑 할 수 있는 모든 걸 같이 하고 싶어요. 우린 둘 다 너무 어릴 때부터 힘든 일을 겪어서…… 그런 가족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잖아요. 추억도 없고요.”
“…….”
“그치만 우린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만큼 가족의 소중함을 잘 아는 사람들이니까. 그쵸?”
그는 잠시 할 말을 잊은 듯 보였지만, 이내 대답했다.
“……그럼, 당연하지.”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방긋 웃은 예원이 그의 허리를 살포시 감싸 안고 매달렸다.
한데, 그는 웬일인지 눈에 띄게 조급해진 얼굴이었다.
“……예원아.”
“네?”
“……다 봤으면 빨리 집에 가자.”
……엥?
“왜, 왜요? 아직 할 거 창창히 남았는데?”
얘기하다 말고 갑자기 웬 집 타령이래, 이 남잔.
잔뜩 의아한 얼굴로 묻는 예원에게, 민혁은 한 자 한 자 가르치듯 대답했다.
“……더 중요한 게 있잖아, 지금 우리한테는.”
“…….”
“당신이나 나나 뜻이 이렇게 확고한데, 기다릴 게 뭐 있어. 계획이 있으면 하루빨리 실천을 해야지.”
잠시만. 실천이라면…….
그 말뜻을 헤아리는 그녀의 표정이 천천히 일그러졌다.
“……어우, 진짜!”
“왜.”
“왜애? 솔직히 말해 봐요. 민혁 씬 지금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밖에 없죠?”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피가 끓는 남잘 두고 어딜 봐서 ‘목석’이라 하겠냐고.
누구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떠벌린 인간이.
그의 가슴팍을 콩 때린 예원이 기막힌 듯 물었다.
“‘그 생각’이라니. 엄연히 우리 2세를 위한 신성한 의식인데. 그런 애매모호한 언사는 좀 불쾌해.”
“……참나.”
게다가 안 그렇게 생겨선 말도 어찌나 잘하는지.
쳇. 그를 밉지 않게 흘기며 입술을 삐죽였다.
그렇게 잠시 방심하고 있던 사이, 픽 웃은 민혁은 그녀의 작은 몸을 품안 가득 끌어안았다.
“다시 한 번 생일 축하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예원아.”
……난생 처음이었다.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는 건.
덕분에 가슴 한 구석이 왠지 모르게 뭉클해져서, 예원은 순순히 그의 너른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나야말로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
“참, 근데 꽃을 못 사서 어쩌지? 지금쯤 꽃집 문 연 데가 있으려나.”
“……꽃이요?”
아, 맞다. 사달라고 했었지.
예원은 그제야 제가 어젯밤 그에게 수줍게 요구했던 사항을 기억해냈다.
하지만 이젠, 꽃 같은 거야 언제 받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의 남자로 인해, 이 세상 어느 꽃과 견주어도 꿀리지 않을 듯한 꽃이 제 마음속에서 활짝 피어났으므로.
“괜찮아요. 오늘만 날인가, 뭐. 나중에 줘도 되니까 부디 잊지만 마요. ……어, 저거 봐요!”
순간, 예원의 손끝이 창밖을 가리켰다.
그곳에선 어느새 어디서부터 쏘아 올렸는지 모를 불꽃이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었다.
“와, 나 불꽃 진짜 오랜만에 봐요! 완전 예쁘다!”
펑, 펑. 불꽃 터지는 소리에 맞춰 박수까지 짝짝.
별반 특별할 것도 없는 불꽃에 마냥 해맑게 좋아하고 있는 여자의 얼굴을, 민혁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유리처럼 하얗고 투명한 그녀의 피부는 다가오는 빛을 그대로 반사했다.
그 덕에, 굳이 바깥을 보지 않아도 무슨 색깔의 불꽃이 튀고 있는지 훤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민혁 씨……?”
그런데 그때, 별안간 그녀가 옆으로 돌아섰다.
물론 민혁이 멋대로 허리를 옭아매 끌어당긴 탓이었다.
“뭐, 뭐해요. 저거 보라니까…….”
“……싫어.”
대답하는 목소리가 쓸데없이 단호했다.
“더 예쁜 거 볼 거야, 난.”
그의 시선은 오로지 예원 한 사람만을 향해 똑바로 뻗어 있을 뿐이었다.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은 그녀의 눈빛이 멍해졌고, 그는 이윽고 담백하게 웃더니 천천히 모자를 벗었다.
주변의 힐끔거리는 시선쯤은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
“…….”
그렇게 잠시, 달빛만큼이나 따스한 눈빛이 오간 뒤.
몇 센티미터 남짓 떨어진 채 주저하던 두 입술은 서서히 하나로 포개어졌다.
하늘 위로 쉴 새 없이 터지는 불꽃처럼, 미치게 짜릿하면서도 한없이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
.
.
.
“……그런데 그 애 말이야. 당신을 참 많이 닮았어.”
“네? 갓난아기였다면서요. 나랑 닮은 줄 어떻게 알아.”
“……그냥, 느낌이. 느낌이 그래. 걜 만나면…… 당신을 많이 닮았을 것 같아.”
“쳇, 그랬으면 좋겠는 게 아니고요?”
“뭐. 글쎄, 그럴지도 모르겠네.”
“아유, 민혁 씨 날 그렇게 좋아해서 어떡해요? 난 우리 지원이가 민혁 씨랑 하나도! 안 닮아서 엄청 엄청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뭐?”
“히히.”
안 그럴 것 같으면서, 은근히 놀리는 재미도 쏠쏠한 남자였다.
“아무튼……. 내 28년 인생 중에, 오늘이 가장 최고의 생일이었던 것 같아요.”
“…….”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할 거 없어.”
“왜요?”
그의 입가에 씩, 미소가 걸렸다.
“……나도, 올해가 가장 최고의 생일이었거든. 내 31년 인생 중에.”
그 말이 끝나자마자, 예고라도 한 듯 다시 한 번 입술이 부딪쳤다.
멍해진 귓가로 폭죽과 불꽃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 * *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명지고등학교 밴드부 연습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우승을 축하합니다!”
빰빠바바밤, 짠!
떠들썩한 단체 축하송에 이어 펑, 펑 파티용 폭죽이 사방에서 일사분란하게 터졌다.
그 축하의 주인공은 단연, ‘드림스타코리아6 우승’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화려하게 금의환향한 지원과 민영이었다.
“야……. 니들 이게 대체……?”
“야, 야. 잔말 말고 빨랑 촛불 꺼. 촛농 떨어져.”
“무슨 생일이냐? 뭐 이런 걸 다…….”
“아, 빨리!”
기껏 준비해준 성의가 있으니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딱 두 개의 초가 꽂힌 미니케이크를 받아든 지원과 민영은 하는 수 없이 후, 촛불을 껐고,
아이들은 기다린 것처럼 열광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예!”
“햐, 우리 동아리에 이런 날도 다 오는구나. 영광스럽다 영광스러워.”
“그러니까. 드림스타코리아 우승이라니! 미친.”
“야, 야. 그만들 해. 뭘 이렇게 유난들을 떨고 그러냐…….”
쑥스럽고 민망해진 민영이 손사래를 쳤지만, 아이들은 요지부동이었다.
“무슨! 그냥 오디션 프로도 아니고 드림스타코리아잖아! 충분히 유난 떨어도 되지. 안 그러냐?”
“당연하지! 게다가 이건 우리 동아리 역사에 길이 남을 빅 이벤튼데. 모르긴 몰라도 내년엔 신입생들이 아마 배로 몰려들 걸?”
“암, 그렇고말고. 참. 근데 그나저나, 니들 상금은 받았냐?”
‘상금’ 얘기가 나오자 아이들의 눈초리는 더더욱 빛이 났다.
사정없이 파바박 꽂히는 레이저들 속에서 지원과 민영은 그저 어색하게 웃었다.
“아니, 아직. 그쪽에서 좀 더 처리할 게 남았다나 봐. 아마 다음 주 중에는 받지 않을까 싶다.”
예선과 본선 1차, 드림위크라 불리는 본선 2차를 거쳐 기어코 탑 텐까지 진출한 지원과 민영은 결국 그리도 염원하던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선보인 모든 무대가 화제가 되었고 그에 따라 호평도 줄을 지어 이어졌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며칠 전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던 결승에서 보여준 모습은 그야말로 백미였다.
결승이니만큼 부담이 많이 될 수밖에 없었던 무대.
하지만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 정면으로 승부수를 띄우기로 한 두 사람은 그 무대에서 오직 두 개의 목소리와 통기타 하나만으로 기가 막힌 선율을 만들어냈다.
의상조차도 심지어 두 사람이 평소 입던 교복 그대로였다.
너무도 잘 어울리는 선남선녀가 단출한 교복을 입은 채 열창을 하던 그 무대는 순간시청률 최고를 찍었고, 포털 사이트 조회수 또한 단숨에 백만을 훌쩍 넘겼다.
소위 ‘악마의 편집’에 따른 영향으로, 방송 초반에는 매형인 ‘현민혁’의 후광을 등에 업은 인기 아니냐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지원 스스로부터가 그에 대한 언급을 하기를 꺼려했고, 실력으로만 따졌을 때 그들보다 나은 팀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기에 논란은 금방 불식될 수 있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건 대망의 상금 수령과, 본격적인 가수로서의 데뷔였다.
“상금이 얼마랬지?”
“5억.”
“헤엑. 그럼 둘이서 2억 5천씩 반띵하는 거야?”
“뭐, 그렇게 되겠지.”
“대박……. 야, 상금 받으면 나 치킨 한 마리만. 어?”
“그렇잖아도 쏠 예정이었거든? 치킨에 버거까지 풀코스로 쏠 테니까, 니들은 잠자코 기다리기나 해.”
“오올!”
잔뜩 업된 아이들의 성화에, 얌전히 있던 민영도 한껏 거들먹거리며 장단을 맞춰주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야, 홍지원.”
“어?”
“근데, ‘y양’이…… 대체 누구냐?”
……곱게 휘어져 있던 민영의 눈초리가 금세 날카롭게 변한 것은.
“맞다! 안 그래도 그거 물어보려고 했는데.”
“야, 누구야. 대체 누구길래 그렇게 방송에서 거창하게 떠들어댄 거냐고. 얼른 바른대로 딱 말해라. 어?”
“…….”
사뭇 심각해진 민영의 눈길이 슬그머니 지원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연습실 한편에 그새 기타 하나를 잡고 앉은 그는 좌중을 둘러보며 피식 웃을 뿐이었다.
“그런 게 있다, 인마. 때 되면 다 알게 될 테니까 기다려.”
“아, 뭐야. 너 설마, 예원이 누나 가지고 y양 어쩌고 한 건 아니지?”
“……예원 누님 이름에 ‘y’가 들어가나?”
“무식한 놈은 상대 안 하니까 저리 빠지시고.”
“에이씨! 순간적으로 헷갈릴 수도 있지!”
녀석들이 뭐라고 떠들어대건 말건, 푸하하 웃은 지원의 얼굴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괜한 데 호기심 허비하지 말고 케익이나 먹어, 자식들아. 고민영! 너도 이리 와서 얼른 먹어.”
“어? 어어…….”
……그래, 나도 맘 같아선 이까짓 호기심 다 없어졌으면 좋겠는데.
휴, 한숨을 내쉰 민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지원의 옆으로 가 냉큼 앉았다.
꽉 낀 셔츠를 입은 것처럼 속이 답답했다.
* * *
“이모! 또 VOD 결제했어?”
방에 있다 거실로 나오던 예원이 무심코 놀라 소리쳤다.
아니나 다를까, 거실 티비 속에선 단정한 교복을 입은 지원과 민영의 무대가 또 한창이었다.
“저게 한 편에 얼만데 자꾸 결제하고 있어! 그럴 거면 내가 다운 받아서 usb에 넣어준다니까 그러네.”
“아, 아니……! 나도 볼 생각 없었는데, 이상하게 자꾸 보고 싶어서…….”
드라마광 티비광인 이모에게 IPTV란,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놓은 것과 다름없는 격이었다.
애초부터 저걸 들여놓질 말았어야 했는데.
다른 회차는 빼놓고 자꾸 결승전 회차만 돌려보는 통에─아마도 자랑스러움, 혹은 흐뭇함 때문이겠지─ 중복결제만도 몇 번인지 셀 수 없었다.
예원은 마뜩잖은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찼다.
“저, 근데 예원아.”
“왜.”
“저 ‘y양’이란 여자애…… 혹시 넌 누군지 아니?”
“……y양?”
그렇게 이모의 옆을 지나쳐 가려던 예원은 문득 멈칫했다.
자꾸만 끊임없이 나오는 문제의 ‘y양’ 이야기.
그와 관련된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MC에 의해 대망의 우승자가 발표된 후, 지원과 민영은 각각 마이크 앞에서 우승소감을 말했다.
민영은 기본적인 소감 뒤에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을 아주 평범하게 표시했다.
하지만 그런 민영과 달리, 지원은 끝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 영광을 사랑하는 y양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y양. 그것이 문제였다.
앞뒤 다 빼고, 고작 y라는 이니셜 하나가 나갔을 뿐인데도 파장은 엄청났다.
y양은 순식간에 ‘고교생 훈남’ 홍지원이 짝사랑하고 있는 인물로 기정사실화 되었고, 그녀의 정체를 두고 언론들은 온갖 추측들을 쏟아냈다.
방송을 본 은아와 예원도 똑같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글쎄. 나도 몰라. 근데 대충 예상되는 인물은 있어.”
“그래? 누군데?”
“있잖아. 쟤, 민영이.”
예원은 마침 티비에 나온 민영의 얼굴을 턱으로 힐끗 가리켰다.
“쟤가 y양이라고?”
“그냥 내 생각엔. 민영. 영. y양. 그럴듯하잖아.”
“……그런가? 근데 그러면 민영이라고 하면 되지 왜 y양이라고 해.”
“뭐 그거야……. 그 속을 대체 누가 알아.”
뭐 어쩌면. 대놓고 말하긴 부끄러웠을 수도 있고, 아직은 그저 짝사랑에 불과해서 공개적으로 말 못한 걸 수도 있고.
문제의 y양이 다른 ‘영’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는 채로, 예원은 그렇게 막연히 추측했다.
“아참. 이모도 올 거지? 축하파티. 우리 집 마당에서 하기로 했는데.”
“글쎄, 시간 보고……. 니들 노는데 괜히 내가 눈치 없이 끼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 끽해봐야 밥 먹고 얘기하는 게 다일 텐데 뭐.”
어쨌거나, 뜬금없이 물음을 던져온 이모 덕분에 졸지에 덩달아 티비로 빠져들려던 그때.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그녀의 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어. 웬일이야, 지영이 네가?”
통화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지영이었다.
[야! 큰일 났어!]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어쩐지 다급했다.
“큰일? 무슨 큰일?”
[일단 설명하기엔 길고. 내가 보내준 링크부터 봐봐!]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호들갑일까.
고개를 갸웃거린 예원은 반신반의하는 느낌으로 메신저를 확인했다.
그런데…….
“……?”
무심코 폰을 들여다보던 그녀의 눈은 순식간에 잔뜩 커졌다.
이, 이건……!
#d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