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좋아질 수 없는 남자-81화 (81/102)

81. 남편? 남자친구?

2019.01.11.

“모야? 엄마 왜 이상한 걸 쓰고 이써?”

아이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잘 빗긴 머리를 양갈래로 가지런히 묶고 있는 아이는 어느새 꼬물거리는 고사리 손으로 예원이 끼고 있는 선글라스와 모자를 척 가리키고 있었다.

가, 갑자기 이게 뭔 시츄에이션이지?

이제 막 유부녀 딱지를 달까 말까 하는 판국에 다짜고짜 ‘엄마’ 소리부터 듣게 되다니.

예원은 밀려드는 황당함을 뒤로하고 일단 아이를 먼저 살폈다.

위장용으로 쓴 선글라스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엘사 풍의 예쁜 원피스를 차려입고 있는 것 같은 아이는 끽해야 다섯, 여섯 살쯤 돼 보였다.

저를 상대로 부른 ‘엄마’라는 호칭도 그렇고, 이 넓고 붐비는 놀이공원 안에서 혼자 있는 것도 그렇고.

충분히 짚이는 점이 있었다.

“어…….”

멈칫하던 예원은 우선 시야를 가리고 있는 선글라스와 모자부터 서둘러 제거했다.

완전히 봉인이 풀린 얼굴로 다가가니 그새 아이의 얼굴은 묘하게 변해있었다.

“……어?”

따로 말로 하지 않았지만, 그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뭐야, 울 엄마 아니네?

“꼬마야. 엄마…… 어디 가셨는지 몰라?”

눈앞에 있는 여자가 제가 찾던 엄마가 아님을 그제야 직감한 아이는 커다란 눈에 잔뜩 두려움을 담았다.

“모, 몰라요…….”

“어……. 그럼, 어쩌다가 여기 혼자 있게 된 거야?”

“…….”

생전 처음 보는 어른에 대한 무서움 탓일까.

아이는 쉽사리 다시 입을 열지 못 했고, 예원은 자연스레 애가 탔다.

“아! 저기, 혹시 이름이 뭐야?”

“…….”

“응?”

“……이소원……이요.”

“이소원?”

이소원……. 이소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예원은 아이의 이름을 곱씹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요즘 애라 그런가. 이름이 세련되고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쨌든 간에.

“그래, 소원아.”

부러 무릎을 구부려 몸을 낮추고, 아이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른 예원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엄마가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셨어?”

“…….”

“금방 올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리래?”

그렇게 인내심을 가지고 여러 번 물은 뒤에야, 아이는 겨우겨우 모기소리처럼 중얼거렸다.

“……네에.”

오케이. 그럼 최소한 부모가 이 근처에는 있다는 거군.

“그래? 그럼…… 언니랑 같이 엄마 찾아볼까?”

“…….”

“자.”

몸을 곧게 펴고 일어난 예원이 미소와 함께 손을 내밀었다.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 손을 이내 꼭 붙잡았다.

예원은 내심 놀랐다.

‘와. 손 진짜 작네.’

그야말로 한 줌이다, 한 줌.

이렇게 작은 아이가 어째서 혼자 있게 되었을까…….

어쨌거나, 상념을 지운 예원은 아이를 대동하고 당장 앞에 있는 화장실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저기…… 저기요?”

그런데, 그녀가 방금 전 막 다녀온 그곳에선 당연히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냐는 듯 힐끔거리는 뭇 여자들의 시선만 느껴질 뿐.

엄마를 찾는 아이의 목소리도 동원해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자화장실까지 기웃거려봤지만 아이의 부모로 추정되는 인물은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흐음…….”

뭐지. 화장실 앞에 있으라고 했다기에 큰일을 보고 있다거나 한 건 줄 알았는데.

결국 방금 전의 자리로 터덜터덜 돌아오고 만 예원은 제 손을 철석같이 잡고 있는 아이를 혼란스러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된 이상 선택해야 한다.

아이의 부모가 정말로 머지않아 돌아올 예정이라면, 그냥 아이를 이 곳에 그대로 내버려두는 게 맞았다.

괜히 섣불리 다른 데로 데려갔다가 길이 엇갈리는 상황이 온다면 큰일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또 이렇게 어린아이를 이 넓은 곳에 덩그러니 놔두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잖아도 흉흉한 세상인데.

‘에이, 설마.’ 하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가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아…… 어쩌지.’

옆에 선 아이가 혹시나 불안해할까, 예원은 어쩌지도 못하는 채 맘속으로만 발을 동동 굴렀다.

한순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갈림길에 놓인 기분이었다.

* * *

“왜 이렇게 안 오지?”

한편, 아까 전 그 벤치에 그대로 앉아있던 민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뜩이나 혼자 모자에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는 통에 원치 않는 존재감을 팍팍 드러내고 있는데, 금방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던 사람까지 감감 무소식.

당연히 답답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곳이 인적이 드문 벤치였길 망정이지, 이런 식이라면 언제 현민혁인 걸 들켜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전화라도 해볼까.’

결국, 기다리다 못한 민혁이 주머니를 뒤져 폰을 꺼내들려던 그때.

마침 멀리서 바쁘게 걸어오고 있는 여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예원아!”

그는 얼른 반가워하며 일어났다.

그런데, 그가 사랑하는 그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얜 누구야?”

한 손으론 예원의 손을 꼭 붙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살살 핥아먹고 있는 발간 눈의 아이.

그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아, 그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어색하게 웃은 예원은 어리둥절해하는 그에게 얼른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렇게 되니까, 도저히 혼자 놔두고 올 수가 없더라고요…….”

결국엔 으아앙 울기 직전까지 가는 바람에, 임시방편으로 아이스크림까지 사 먹인 다음에야 겨우겨우 진정이 되었다고.

“……아.”

그제야 비로소 모든 내막을 알게 된 민혁은 알겠다는 얼굴로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후, 이제 겨우 데이트 좀 하나 했더니.’

웬 이름 모를 꼬마가 핫도그의 소시지처럼 턱 껴버렸다.

사정은 이해되었으나 이 상황을 그리 달갑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었다.

“아저씨는 누구예요?”

그때, 입가에 하얀 아이스크림 자국을 묻힌 아이가 순수한 눈으로 물었다.

“……나?”

질문은 민혁에게 한 것이었으나, 답은 예원에게서 나왔다.

“언니 남자친구야. 어때, 잘생겼지?”

“……남자친구?”

민혁이 살짝 날선 목소리로 되물었다.

“애가 남편이고 뭐고 그런 걸 어떻게 알아요. 그냥 남자친구라고 하면 되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멀쩡한 남편한테 남자친구라니!

세상에 하나뿐인 남편에서, 별 것 아닌 남자친구로 순식간에 신분이 격하된 느낌.

선글라스에 가린 그의 미간이 한껏 좁아졌다.

“어, 옷에 다 묻겠다. 으유. 조심조심 먹으라니까.”

하지만 남자가 발끈하거나 말거나, 예원은 옆에 있는 아이만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게다가 그런 그를 더 열 받게 한 것은.

“소원아, 언니 남자친구 키도 크고 잘생겼지? 그치.”

“……아니이?”

우리 아빠가 더 잘생긴 거 같은데…….

하면서 얄밉게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아 먹는 저 모습!

“하하하……. 아저씨가 지금 얼굴을 전부 가리고 있어서 그래 보이는 거야. 알고 보면 얼마나 잘생겼다고.”

“…….”

괜히 그렇게 변명하지 마. 더 비참해.

에라 모르겠다, 하고 까놓고 보여줄 수도 없고.

애꿎게 주위를 살핀 민혁은 마뜩잖은 심기를 애써 숨기며 팔짱을 꼈다.

“어쨌든 그래서, 얜 어떡하려고?”

그가 묻자, 예원의 얼굴은 금방 곤란하다는 듯 변했다.

“음……. 바로 직원한테 인계할까 했는데, 그래도 미아보호소까지는 같이 가주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일단 가서, 부모님 찾을 때까지만 같이 있어주면 되지 않을까요?”

워낙에 정이 많고 맘이 여린 여자여서일까.

그녀는 우연찮게 혼자 남게 된 아이가 무척이나 안쓰러운 모양이었다.

정식 첫 데이트에는 다소 걸맞지 않은 돌발 상황이긴 하지만, 그녀의 말마따나 그렇게 해주는 편이 맘이 편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민혁은 마지못한 듯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든지 그럼. 얘 이름이 뭐라고?”

“소원이요. 이소원.”

“그래. 이소원, 아저씨랑 언니 손 놓치지 말고 잘 따라와. 알았어?”

“……네에.”

대답 하난 잘해서 좋네.

꽤나 큼지막했던 아이스크림은 이미 다 아이의 뱃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챙겨온 물티슈로 아이의 끈적해진 손을 닦아주고, 예원은 다시금 아이의 한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은 선심 쓰듯 그에게 꼭 쥐어주었다.

“그럼, 가볼까?”

“네. 가자, 소원아.”

피식 웃은 두 사람은 그렇게 아이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비록 민혁이 기대했던 바와는 꽤 동떨어진 그림이지만, 나름대로 무척 단란해 보이는 세 사람의 한때였다.

* * *

그 시각, 태균의 저택에서는 당황 섞인 라희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니, 멀쩡하던 지지율이 갑자기 왜 이 모양이 된 거죠?”

그녀가 툭 던진 태블릿 PC에는 「[6.13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 현태균-백인수 대접전 양상」, 「서울시장 후보 백인수 갑작스런 상승세, 현태균 위협하나」 류의 기사들이 띄워져 있었다.

“왜 갑자기 저쪽이 이렇게 치고 올라오는 거예요? 원래 우리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였잖아요.”

“그게…….”

살짝 곤란해진 표정의 보좌관이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최근에 백인수 씨 쪽에서 젊은 세대를 공략하겠다고 나선 것이 큰 효과를 본 것 같습니다. TV토론회에 나와 여성문제를 중요하게 언급한 것도 젊은 여성들의 표심을 자극했고요.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온갖 미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보니…… 그게 생각보다 영향을 많이 미친 모양입니다.”

“이런…….”

입술을 다무는 태균의 입가에 불만스런 흔적이 패였다.

‘보수’라고 하여 덮어놓고 찍어주던 시대는 이미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는 2030 세대의 표심을 붙잡아야 한다기에, 전부터 그쪽으로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던 그였다.

덕분에 중장년층이라면 몰라도 젊은 쪽 표심으로는 절대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면 아주 큰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까짓 거 별 것도 아니구먼. 나도 그놈이랑 비슷하게 한 번 나가 봐?”

공략하고픈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입 몇 번 털어주는 것쯤이야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TV나 라디오나, 그것도 아니면 일간지 인터뷰나.

당장 연락하면 바로 오케이해줄 곳도 줄을 서 있었다.

하지만 보좌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상대편을 의식한 행동으로 비춰져 전에 없던 아류 이미지만 생길 수 있습니다. 좀 더 현명한 방식을 취하셔야 합니다.”

“허참.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나. 우리 쪽에서 쓸 카드는 이제 거의 다 쓴 것 같은데.”

어느덧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다.

마지막 총력을 다 해야 할 때 하필……. 쯧쯧쯧.

의자 팔걸이 위로 주먹을 말아 쥔 태균이 인상을 찌푸리자, 보좌관이 이어 말했다.

“그래서 말씀인데, 이제부터는 저번에 말씀하신 아드님 건을 이용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민혁이 말인가?”

“예.”

“…….”

“아시다시피 최근 드라마의 모니터링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현재 현민혁 씨 정도의 인지도와 파급력이라면, 의원님께서 젊은 층을 공략하시는 데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거야 사실 태균 자신부터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야 그렇지. 하지만 그 자식이 어떻게 나올지를 도통 가늠할 수가 없지 않은가.”

어렸을 때는 그저 애송이 같기만 하던 놈이, 이제는 몸뚱이를 어찌나 불렸는지 국회의원인 그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한 파워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아무리 아들이라 한들 섣불리 건드리기엔 위험부담이 존재했다.

특히나 그 녀석처럼, 남모르게 마음속에 불길을 심고 있는 놈이라면.

“그래도, 그 계집애 만난 뒤부터는 웬일인지 전보다 기세가 수그러든 것 같던 걸요. 저도 그 부분이 좀 걱정이긴 하지만, 우리 쪽에서 먼저 손 써버리면 걔도 별 수 없지 않겠어요? 일을 더 키워봐야 제 살 깎아먹기란 걸 그 애도 알고 있을 테니까 말이에요.”

“흠…….”

라희가 옆에서 거들어 봐도 태균은 쉬이 긍정하지 않았다.

“일단은, 우리 쪽에서도 필히 뭔갈 쥐고 있어야 돼. 그래야 무슨 일이 벌어져도 그놈이 옴짝달싹 못하지.”

감히 찍 소리도 못하게, 그놈의 앞날을 틀어쥐고 있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게 뭘까.

태균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저, 그런데 말입니다.”

그때, 잠시 조용하던 보좌관이 은근슬쩍 입을 열었다.

“실은, 제가 아드님을 조사하던 중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이상한 점? 그게 뭔데요?”

“……현민혁 씨 내외 말입니다. 그 두 분…….”

잠시의 침묵 뒤, 보좌관의 목소리가 한층 더 은밀해졌다.

“아직, 혼인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더라고요.”

“……네?”

“그게 정말인가?”

생각도 못한 소식에 태균과 라희는 깜짝 놀랐다.

“예. 확실합니다. 현민혁 씨와 홍예원 씨, 호적상으로 두 사람은 아직 남남입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부부 사이에 혼인신고가 무조건적인 요소는 아니라고는 해도, 이 소식은 다소 의외였다.

둘이 식을 올린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도 혼인신고가 안 되어 있단 말인가.

물론 불같은 연애결혼을 했다는 것 치고는 둘 사이에 조금 서먹한 느낌이 항상 있기는 했다.

하지만 따로 무슨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똑같은 생각을 떠올린 태균과 라희는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잠깐.”

그렇게 잠시 뒤.

두 사람의 눈빛은 곧 의미심장하게 변했다.

“……그거, 우리 말고 또 아는 사람 있어요?”

“아뇨, 당연히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모든 일엔 과정이 있고 이유가 있다.

그 일에도 물론 예외는 없을 테고.

두 사람은 그걸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거, 좀 더 자세히 파보세요.”

본능적으로 냄새가 맡아졌다.

“될 수 있는 한 빨리, 최대한으로 깊게.”

“예, 알겠습니다.”

분명,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는 냄새가.

* * *

“방금 공원 내에 있는 직원들에게 아이 사진과 이름, 특징사항이 전달됐습니다. 무전으로 계속 소식 받고 있으니까 곧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저 근데 혹시, 방송이나 그런 건 안 하나요?”

무사히 찾은 미아보호소 안.

TV에서 보았던 광경을 떠올린 예원이 직원에게 물었다.

“예. 시끄러워서 소리가 잘 안 들리기도 하고, 애들이랑 놀러 나온 가족들도 많은데 괜히 혼란만 줄 수 있어서 방송은 가급적 하지 않는 편입니다. 걱정 마시고 기다리십시오. 금방 연락 올 겁니다.”

“아, 네…….”

그래도, 아이를 찾는 것보다야 부모님을 찾는 쪽이 훠얼씬 쉽겠지.

예원은 그제야 안심한 듯 옆에 앉은 아이를 쳐다보았다.

“소원아, 엄마아빠 곧 오실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참고 기다리자. 알았지?”

“응, 언니.”

감정적으로 의지해도 된다는 확신을 받은 걸까.

아이는 어느샌가 이모뻘인 예원을 ‘언니’라 부르며 착실히 따르고 있었다.

서로를 향해 방긋방긋 웃고 있는 두 여자의 모습이 새삼스레 예뻐보여서, 민혁은 여전히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채로 그쪽을 힐끔거렸다.

“민혁 씨. 서 있지 말고 같이 앉아요, 여기. 언제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냐, 됐어.”

그러던 그때, 원피스 자락 아래로 드러난 아이의 무릎이 돌연 현미경을 들이댄 듯 눈에 들어왔다.

“……어.”

“왜요?”

“무릎에, 상처 아냐?”

그의 턱짓을 따라 예원의 시선도 이동했다.

“어, 진짜네? 소원아, 이거 언제 이랬어?”

“……아까…….”

“아까? 언니 보기 전에?”

화장실 앞으로 가기 전, 한창 길을 잃고 헤맬 때 혼자서 넘어졌었던 모양이었다.

다행히 크게 넘어진 건 아닌지,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아 보였다.

‘오, 웬일이야. 저 남자가 이런 걸 다 보고.’

내심 감탄한 그녀가 아이의 무릎을 자세히 살펴보는 사이, 민혁은 옆에 선 직원에게 물었다.

“여기, 혹시 비상약 같은 것도 있습니까?”

“아, 예. 그럼요. 여기 있습니다.”

그의 요청에 직원은 잽싸게 구급상자를 가져다주었다.

“저, 그런데 혹시…….”

“네?”

“……아, 아닙니다.”

말을 하다 마는 직원이 조금 의아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긴 민혁은 그녀가 아이의 응급처치를 해주는 모양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닫혀 있던 문이 별안간 발칵 열렸다.

“소원아! 소원아!”

“……엄마!”

온통 경황이 없어 보이는 여자 한 명이 안으로 뛰어 들어오자, 아이는 순간 반색하며 여자에게 안겨들었다.

여자의 뒤로는 아이 아빠처럼 보이는 남자도 급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엄마……!”

이제 보니 아이의 엄마는 예원과 흡사한 청바지에 상의를 입고 있는 채였다.

게다가 체형도 마른 편으로 비슷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입장에서는 충분히 헷갈릴 수도 있었겠다 싶을 정도였다.

“이소원! 대체 어디 가 있었던 거야. 응? 엄마가 말도 없이 사라지지 말랬지! 너 땜에 엄마가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

어쨌든 너무 놀란 탓인지,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리는 손길이 무척이나 매서웠다.

역시나 아이는 와아앙 울음을 터뜨렸다.

“저, 저기! 안심하세요, 어머님.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제가 잘 데리고 있었어요.”

안 되겠다. 뒤편에 물러서 있던 예원은 결국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정신없이 아이만 좇던 여자의 눈길이 스르르 예원에게로 향했다.

“……우리 소원이, 여기로 데려와 주신 분이세요?”

“……아, 네.”

“아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기껏해야 예원보다 너댓 살 많아 보이는 아이 엄마는 예원을 향해 연신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여기까지 오셔서 번거롭게…… 이거, 어찌 감사를 드려야 할지…….”

“……괜찮습니다.”

보는 사람이 다 뭉클해지는 광경에, 마찬가지로 뒤에 서 있던 민혁이 예원의 어깨를 감싸며 다가섰다.

“아이만 무사히 찾으셨으면 된 거죠. 그거면 저흰 됐습니다.”

부러 예원을 힐끗 내려다본 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리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들에게로 옮겨지고.

그 순간, 맞은편에 선 여자의 얼굴엔 불현 듯 이채가 띠었다.

“……저, 혹시…….”

“네?”

여자는 입술만 달싹달싹할 뿐,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혹시, 배우 현민혁 씨…… 아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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