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고백의 여파
2018.10.26.
순간,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았다.
공기도. 주변의 소음도. 그녀의 눈 깜박거림조차도.
물론 그 속에서 민혁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벼락을 맞은 듯 잠시 움직이지 못하던 그는, 앞에 선 여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
“날…… 좋아한다고요?”
흡, 그녀가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마치 못 들을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대담하게 눈물 젖은 고백을 할 때는 언제고, 여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당황한 듯한 모양새였다.
둥그렇게 쌍꺼풀 진 눈이 황급히 그의 시선을 피해 아래를 보았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가만 두고 볼 리 없었다.
“홍예원 씨.”
“…….”
“홍예원 씨?”
온몸으로 뻗쳐있던 화는 어느 새 봄날 눈 녹듯 사라져 있었다.
전민혁에 관한 생각도 마찬가지.
다만, 넋을 잃은 듯 굳은 얼굴만은 그대로였다.
무턱대고 기뻐하기에는 이 상황이 너무도 믿기지 않았으므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지.
당신이 날 정말로 좋아하는 게 맞는지.
그렇다면……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도 되는 건지.
“……예원아.”
별안간 달라진 말꼬리에, 여자는 그제야 다시금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린 눈이, 마침내 긴장과 당황으로 굳어진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담았다.
“…….”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여자는 웬일인지, 일순 예의 냉랭한 얼굴로 변했다.
슥, 슥. 그녀가 신은 운동화가 아스팔트 바닥에 끌려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슬금슬금 몇 발자국 뒷걸음질 치던 그녀는, 이내 그를 뒤로하고 지체 없이 달아났다.
“……예원 씨!”
그의 얼굴이 곧장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갑작스런 고백에, 갑작스런 줄행랑.
한껏 들떴던 마음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마치 한여름의 신기루를 본 것처럼,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이 온통 혼미했다.
“…….”
그러다 문득, 전민혁을 쳤던 오른손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꽉 쥔 나머지, 피가 안 통해 하얘져 있는 주먹.
그 마디마디가 아릿하게 지끈거리고 있었다.
마치 지금 그의 심장만큼이나.
졸지에 그 자리 그대로 장승처럼 서 있게 된 민혁은, 그녀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만 모퉁이를 멍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 * *
철컥,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센서 등에 조명이 켜졌다.
이윽고 중문이 드르륵 열리고, 커다란 남자의 인영이 어두운 1층에 드러났다.
그는 제일 먼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이 온통 캄캄하고 조용한 걸로 보아, 집에는 아직 아무도 없는 것이 분명했다.
‘아직…… 안 왔구나.’
혹시나 했는데.
뭐, 그래봤자 멀리는 안 갔을 테니 곧 오겠지.
다소 실망스럽게 눈을 내리깐 그는 불을 켤 생각도 없이 곧장 2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바로 제 방으로 들어가, 지친 몸을 침대 위로 털썩 뉘였다.
“…….”
새까만 천장을 잠시간 조용히 올려다보던 그가 이내 제 팔을 괴며 옆으로 누웠다.
집으로 오는 새, 몰라보게 깨끗해진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이라곤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그 여자가…….’
날 좋아한다.
날 좋아해.
피부로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으면서도, 여자를 통해 직접적으로 건네 들은 말은 아무래도 그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문득 아까 전,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
나를 좋아하냐는 물음에 흡, 숨을 삼켜내던 여자.
잔뜩 발개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선,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려대던 그 모습이 사진처럼 박혀 있었다.
부끄러웠겠지. 쑥스럽기도 했을 테고.
처음엔 좀 황당했으나, 그들의 상황과 관계를 감안할 때 여자가 그렇게 도망가 버린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또한 이제껏 그녀 앞에서 내내 망설이고 초조해했었으니까.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고도 남았다.
“……후우.”
민혁은 내내 참고 있었던 한숨을 터뜨렸다.
고백을 해도 제가 먼저 할 거라고 생각했건만, 이런 식으로 그녀에게 선수를 빼앗길 줄이야.
마냥 기쁘고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살짝 허무함이 밀려들었다.
어쨌거나, 이로써 그녀와의 계약은 결국 자연스럽게 없었던 일이 될 것이다.
그럼, 앞으로도 그 여자와 영원히 함께할 수 있겠지.
고작 1년의 시한부 결혼이 아니라,
언제까지고 함께…… 평생 같이…….
“…….”
그 생각에 이르자, 그의 입가엔 뒤늦은 미소가 사르르 번졌다.
‘……보고 싶네.’
어느샌가 온통 홍예원으로 가득 차버린 머릿속을 좀처럼 주체할 수가 없다.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누운 그는 괜스레 허공을 올려다보며 짐짓 웃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녀가 다시 돌아오면, 아까와는 달리 반드시 웃는 얼굴로 맞이해 주어야겠다고.
물론 무지막지하게 설레고 떨릴 테니, 그게 미처 가능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
그나저나…… 시간이 꽤 늦었는데.
언제쯤 오려나, 그 여자는.
* * *
그 시각.
“……뭐? 진짜?”
지영의 눈은 접시만큼 휘둥그레져 있었다.
“아, 아니. 무슨 고백을 그렇게 예고도 없이 해? 뭐야, 대체 어떻게 된 건데?”
“…….”
그의 앞을 떠난 예원의 발걸음이 가쁘게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친구 지영의 집이었다.
침대 위에 무릎을 세우고 앉은 채, 참담한 표정으로 있던 예원이 일시적으로 멈칫했다.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결국 잠시의 망설임 끝에, 그녀는 에덴에서 전민혁과 얘기를 나누었던 부분부터, 또 그 남자에게 고백을 하게 된 경위까지 낱낱이 털어놓았다.
“허, 전민혁 그 자식은 하여튼 끝까지 도움이 안 되네! 하필이면 거기서 마주칠 게 뭐냐? 어유.”
비로소 모든 전말을 알게 된 지영은 기가 막힌 듯 헛웃음을 뱉었지만, 이내 스읍 입맛을 다셨다.
“……아니지. 뭐 어쨌든 그 덕분에 고백했으니까, 이번 건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되나?”
“…….”
“암튼 그래서. 그래서 민혁 씬 뭐래?”
순간, 예원의 고개는 다시 한 번 푹 꺾였다.
낮은 읊조림이 무릎 안쪽으로 기어들어갔다.
“아무 말도…… 안 했어.”
“……엥? 진짜?”
“……응. 그냥, 엄청 놀란 거 같더라.”
물론 지레 두려운 마음에, 그가 뭐라고 말할 틈 자체를 주지 않았지만.
허나 어쩔 수가 없었다.
일순 하얗게 질린 채 저를 바라보던, 그 눈빛에 내포돼 있던 감정은 너무도 분명했으니까.
‘이 여자가 지금…… 무슨 소릴?’
그 딱딱하게 굳어 있던 얼굴을 다시금 떠올린 예원은 그만 죽고 싶어졌다.
……대체 어쩌자고 그런 말을 한 걸까.
아까 전의 그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다분히 충동적인 고백이었다.
처음 그에 의해 밖으로 끌려나올 때까지만 해도,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그런데…….
‘당신, 나 좋아해?’
그 물음에, 저도 모르게 정신이 확 나가버린 게 실수였다.
갑자기 뭔 소릴 하나 싶었겠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추궁 앞에 주책없이 요동치던 마음이, 결국은 이런 사달을 내버리고 만 것이었다.
“당연히 놀라지 그럼. 갑자기 좋아한다고 하는데 안 놀랄 사람이 어디 있어.”
“…….”
“어쨌든 잘했네. 어떻게 말할지 고민이었잖아.”
제 속도 모르고 내뱉는 지영의 태평한 말에, 예원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어? 뭐가 아닌데?”
그녀의 말끝에 금세 울먹임이 섞여들었다.
“……후회돼.”
“…….”
“후회돼 죽겠어.”
그동안 안간힘을 쓴 것이 무색하게, 한순간에 그를 향한 진심을 냅다 고백한 꼴이 되어버렸지 않은가.
하다못해 수습이라도 하고 왔으면 일이 이 지경까진 되지 않았을 터였다.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당신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거라고 둘러댔으면 될 일인데.
뒷일은 생각지도 않고 겁 없이 일을 저질러버린 자신이, 예원은 너무나도 우스웠다.
아니, 죽을 만큼 한심했다.
“……지영아. 난……. 난 정말, 왜 이럴까?”
픽 웃은 그녀가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한 번도 아니고 무려 두 번씩이나……. 나처럼 게이한테 고백 많이 한 여자는, 아마 이 세상에 나 하나밖에 없을 거야. 그치?”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나 같은 바보가, 이 세상에 또 하나 더 존재할 리가 없으니까.
“전민혁한테 그렇게 당하고, ‘남자’라면 아주 학을 떼놓고는……. 또 이렇게 금방, 다른 게이한테 홀랑 넘어가서 고백이나 하고 앉아 있고.”
“…….”
“웃긴다, 진짜. 끔찍해.”
이러고 있는 내 자신이.
다시는 상처받지 않으리라, 누구도 좋아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되뇌던 시간들도 죄다 옛날 일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홍예원…….”
철저히 스스로만을 탓하는 예원을 보며, 지영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하나뿐인 제 친구의 상태는, 아무래도 그녀의 생각 이상으로 심각해보였다.
“야, 뭐가 그렇게 웃기고 끔찍해. 사람 좋아하는 게 뭐 죄냐? 좋아할 수도 있지!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
“아니 솔직히 말해서, 네가 뭐 전민혁이 게이란 거 알고 좋아했냐? 속인 건 그 개자식이지, 넌 단지 피해자잖아!”
“……알아, 나도.”
예원이 수긍하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근데…….”
“…….”
“민혁 씬 그런 게 아니잖아. 정확히 말해주지 않았다 뿐이지, 나한테 속인 건 하나도 없잖아.”
그녀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다 알고도 좋아하게 돼 버렸어. 좋아하면 안 되는 사람인데, ‘절대 좋아질 수 없는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또 좋아져 버렸어. 바보같이.”
“…….”
“다 나 혼자서 그런 건데, 그 남자한테 무슨 잘못이 있어.”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 계약결혼의 상대로 자신을 고른 것.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절대 그의 신부가 되지 않는 건데.
예원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힘껏 마른세수를 했다.
그런 그녀를 한숨과 함께 바라보던 지영은 그녀에게로 더욱더 가까이 옮겨 앉았다.
“야. 그러지 말고 얼굴 좀 봐봐, 응? 빨리.”
지영이 예원의 손을 억지로 잡고 떼어냈다.
다시 드러난 얼굴엔 다행히 눈물자국이 번져 있지는 않았지만, 숨길 수 없는 비통함이 어려 있었다.
‘에휴, 이 불쌍한 걸 어떡하면 좋냐.’
어쩌다 그런 힘든 사랑을 해서는…….
이쯤 되면 신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찢어질 듯 아픈 마음을 애써 누르며, 지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홍예원. 솔직히 난…… 요즘, 네가 좀 낯설다?”
“…….”
“너, 내가 본 애들 중에 제일로 씩씩하고 당당했었어. 웬만해선 우는 일도 없고, 항상 밝고 활기차서 주위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주고. 오죽하면 네 별명이 ‘인간 비타민’이었겠어. 기억 안 나?”
“…….”
“그랬던 애가, 어떻게 요즘은 틈만 나면 눈물바람이냐……. 어?”
네가 이러는데 내가 속이 안 상하려야 안 상할 수가 있겠냐고.
지영은 안타까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홍예원은 예전에도 이랬던 것 같다.
매사에 당당하고 똑부러지다가도, 제 남자친구였던 전민혁에게 있어서만큼은 말도 못하게 약해지던 홍예원.
다만 그때는 그 애가 게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에 울지 않았을 뿐, 지금의 홍예원은 그때 전민혁에게 목매던 홍예원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대체 ‘사랑’이란 게 뭐기에, 애를 이렇게 맹목적이고 나약하게 만들어버리는 걸까.
“……미안해. 미안해, 지영아…….”
“미안하면, 좀 울지나 말든지.”
울음기로 인해 부어오른 예원의 얼굴을 괜히 살짝 꼬집은 지영은 부러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씨, 이게 다 전민혁 그 놈 때문이야. 유학은 무슨 유학. 내가 진작에 그 자식 다리몽둥이를 확! 부러뜨려 놨어야 되는데! ……아오.”
“……치.”
그제야 친구의 입가에 살풋 피어나는 미소에, 지영은 조금이나마 안심했다.
그래, 넌 이렇게 웃는 모습이 훨씬 예쁜데.
“……홍예원.”
“응?”
“실은, 나도 혼자서 생각해 봤는데…….”
그렇게 잠시, 주춤하던 지영이 넌지시 물었다.
“너 그 계약…… 그만두면 안 돼?”
“……어?”
갑자기…… 무슨?
흠칫 놀란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도 이미 알겠지만, 네가 민혁 씨랑 결혼한다고 했을 때…… 나 정말 진심으로 기뻤었어. 근데 그건 뭘 몰랐을 때 얘기고. 나, 네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 솔직히 더 이상은 못 보겠다.”
“…….”
“그 계약에 많은 게 걸려있다는 거 알아. 그치만, 네가 그런 마음으로 민혁 씨 옆에 계속 머무르면…… 힘들어지는 건 너뿐이야. 그렇게 계속 계약에 얽매여 있다가는…… 자칫 네 자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지영은 전에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한 번 잘 생각해 봐. 지금 너한테, 과연 어떤 선택이 가장 현명할지.”
“…….”
“그리고 걱정 마. 난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언제나 네 편일 거니까.”
늘 장난스러운 듯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누구보다도 그녀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친구의 진심어린 충고.
꾹꾹 눌러 말한 지영이 활짝 웃어보이자, 눈물을 글썽거리던 예원 또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그럴게.
* * *
다음 날 아침.
간만에 개운한 잠을 청한 민혁은 촬영을 가기 전 이른 시간부터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맘에 방을 확인해보니, 그녀는 아마도 어젯밤 집에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참, 그 여자도. 그게 그렇게 부끄러웠나.’
이전에도 이따금씩 이모님 댁이나 친구 지영의 집에서 자고 오던 그녀였기에, 외박을 했다고 해서 그다지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물론, 오늘 안으로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먼저 그녀를 찾아 나설 생각이었지만.
“……흐음.”
그녀도 집에 없으니, 오늘의 아침은 간단하게 토스트로 정했다.
적당히 잘 구워진 식빵에 딸기잼과 땅콩버터를 발라 입으로 넣은 그는 새삼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빵의 맛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어젯밤 그녀에 관한 기억 때문이었다.
‘내가, 현민혁 씨를…… 좋아해요.’
얼마나 그 기억이 강렬했으면, 급기야 그녀는 간밤에 그의 꿈에까지 등장했다.
그 덕분일까.
엄청난 단잠을 잔 그의 컨디션은 평소보다도 무척 좋은 편이었다.
기분 또한 어찌나 좋은지. 첫방을 앞두고 바로 내일로 예정돼 있는 지방촬영조차도, 한 치의 불평 없이 기쁘게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그는,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을 오래도록 유지하고 있었다.
……딱, 그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드르륵.
바로 그때, 그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인기척이 마침내 들려왔다.
그는 얼른 튕기듯 일어나 그녀를 반겼다.
“예원 씨!”
별안간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 여자의 몸이 움찔 떠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들어옵니까?”
“아, 네……. 아침…… 드시고 계셨어요?”
“네. 어젠, 어디서 잤어요?”
“……지영이네 집에서요.”
역시, 그럴 줄 알았다.
반가운 맘에 그는 얼른 그녀의 얼굴부터 살폈다.
그런데, 아침이라 그런 걸까.
여자의 얼굴은 어째…… 평소보다 팅팅 부어 있는 느낌이었다.
“근데…… 얼굴이 왜 그렇게 부었어요?”
“네?”
“…….”
“아, 아. 그게…….”
잠깐 당황하는 듯하던 여자는 이내 얼른 대답했다.
“어젯밤에, 지영이랑 라면 먹고 잤는데…… 그래서, 그런가 봐요.”
“……아.”
그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난 또, 울기라도 한 줄 알았네.’
하긴, 그럴 리가 없지. 뭐 별 일이야 있었으려고.
어젯밤, 제가 여자에게 잔뜩 화를 냈었단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민혁은 그녀를 식탁 쪽으로 잡아끌었다.
“얼른 이리 와요. 혹시나 해서 예원 씨 것까지 해놨어요.”
“아, 전 괜찮은데…….”
“그러지 말고 앉아요.”
싫다는 여자를 억지로 제 앞에 끌어다 앉힌 그는 들뜬 기분을 애써 숨기며, 그녀에게 버터나이프를 내밀었다.
“자, 이거.”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중증이기는 하다.
저리 팅팅 부은 모습마저도 이렇게 사랑스러운 걸 보면.
잘 구워진 식빵에 딸기잼을 천천히 바르고 있는 여자를 흐뭇하게 보며, 민혁은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홍예원 씨.”
“네?”
“저, 어제 일은…….”
그런데 그때, 그의 말허리를 자른 여자가 돌연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어젠…… 제가 좀 웃겼죠?”
……웃겼다니? 이게 무슨 소리일까.
그는 순간, 어리둥절해져 반문했다.
“……예?”
“어젠, 제가 실수했어요.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닌데…… 죄송해요.”
“그게…… 무슨?”
……설마.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제처럼 딱딱하게 변했다.
아닐 거야, 아니겠지.
그럴 리가.
하지만 잠시 뒤.
여자에게서 돌아온 말은, 그에게 퍽이나 잔인한 말이었다.
“제가, 사장님 좋아한다고 했던 말이요.”
“…….”
“그거…… 실언이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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