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화이트 크리스마스
2018.07.20.
“……뭡니까.”
“…….”
“자는 새에 덮치기라도 하려고요?”
“……네?”
어딘가 홀린 것처럼 멍해진 예원을 올려다보던 그는 낮게 웃었다.
“그것도 그리 나쁘진 않은데…….”
“…….”
“계속 이러고 있을 겁니까?”
딱 봐도 놀리는 것이 다분한, 장난기 어린 말투였다.
덮치다니, 그게 무슨……?
‘……헐!’
그의 말에 순간 정신이 든 예원은 파드득 일어섰다.
어둠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남자는 분명 웃고 있었다.
낮게 숨죽인 웃음소리가 그녀의 고막을 은근히 자극해왔고, 예원은 당황스러움으로 인해 온몸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죄, 죄송합니다. 방이 너무…… 조, 좁아서……. 하하.”
“…….”
“어, 얼른 갔다 올게요. 주무세요.”
이 사고를 어떻게든 무마해야 한다.
그 생각으로 부산해진 예원의 손이 문고리에 닿은 순간이었다.
“홍예원 씨.”
“……네, 네?”
너무 다급하게 대답한 나머지, 지레 더듬는 목소리가 나왔다.
‘휴, 하마터면 삑사리 나는 줄 알았네.’
하지만 그런 건 안중에도 없는 듯, 남자의 목소리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혹시, 다음 주에는 시간 있습니까.”
“……왜요?”
그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음 주에 친구 결혼식이 있는데, 다들 예원 씨 궁금하다고 난리라서.”
“…….”
“얼굴만 살짝 비추고 가면 되는 건데…… 싫습니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제안.
예원의 큰 눈 두개가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거렸다.
결혼식이라.
어…… 내가 그런 델 가도 되는 걸까?
“친구 분…… 혹시 연예인이에요?”
“네. 근데 아마 들어도 잘 모를 거예요. 그렇게 인지도가 있는 친구는 아니라서. 혹시 알아요? ‘김상범’이라고.”
“……아니요.”
생전 처음 듣는 연예인인 걸 보니 그리 붐비는 자리는 아닐 듯싶었다.
하긴, 연예인이라고 다 같은 연예인은 아니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생판 남인 그녀에게 ‘결혼식’ 같은 중대사는 불편할 것이 당연했다.
“꼭…… 가야 되는 거예요?”
예원이 조그만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건 아닌데, 내가 열렬히 연애해서 결혼했다는 걸 너무 못 믿는 것 같아서요. 다들 말은 안 하지만 연막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물론, 연막은 맞지만.”
지긋지긋한 놈들.
진심이 듬뿍 담긴 듯한 중얼거림이 우스워서 예원은 피식 웃었다.
“어쨌든, 싫으면 안 가도 됩니다. 나도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
문 앞에 선 예원은 방금 전의 사고도 잊은 채 잠시 머뭇거렸다.
계약대로라면 당연히 가는 게 맞았다.
그러나…… 제가 굳이 그런 개인적인 자리까지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게다가 꽤 많은 친구들에게까지 얼굴을 비춰야 한다니.
그녀로선 좀처럼 내키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난 1년 뒤면 저 남자와 깨끗하게 끝날 사이인데. 괜한 짓을 하는 꼴 아닐까.’
그렇게 잠깐 정적이 흘렀다.
이 상황에서 대답을 않는 것이 긍정을 뜻할 리는 없었다.
금세 그녀의 의중을 짐작한 민혁은 이내 조용히 덧붙였다.
“부담 가지지 마요. 안 가도 별 상관은 없으니까. 그럼, 나 혼자 가는 걸로 하죠.”
“…….”
“화장실 얼른 다녀와요. 난 이제 눈 좀 붙일게요.”
그의 목소리엔 어느 새 잠기가 잔뜩 묻어있었다.
하루 종일 뭔 일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면, 아마도 반주로 마신 알콜의 탓이겠지.
술 앞에선 유독 약해지는 남자였으니까.
“……네.”
멋쩍은 표정이 된 예원은 습관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소심하게 중얼거렸다.
“안녕히 주무세요, 사장님.”
까만 허공에 흩뿌려진 그녀의 말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사장님.”
“…….”
“사장님.”
뭐야, 벌써 자나?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기다린 것처럼 남자의 낯선 숨소리가 그녀의 방을 채우기 시작했다.
예원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예년과 다르게, 오늘은 유난히 포근하게 느껴지는 크리스마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바깥에 눈이 왔기 때문일까.
“잘 자요, 사장님.”
그래, 그런 것 같다. 아마도.
“메리 크리스마스.”
엄마랑 아빠도, 메리 크리스마스.
늦게야 내뱉을 수 있는 인사였다.
* * *
휴대폰 액정 속, 네이버 검색창에 커서가 깜빡거렸다.
가느다란 손이 천천히 글자를 타이핑했다.
[현, 민, 혁]
그 손의 주인공은 바로 예원이었다.
돋보기 아이콘을 누르자마자 그의 인물정보와 함께 온갖 기사들이 일사분란하게 나타났고, 진지한 표정이 된 예원은 그것을 유심히 스크롤했다.
그때였다.
“……뭐하냐?”
“엄마!”
지영의 갑작스런 등장에, 예원은 해선 안 될 일을 들키기라도 한 양 기겁했다.
“어후, 야! 놀랬잖아!”
“나참. 게임하는 것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 집중을……. 어라? 뭐야. 민혁 씨 검색하고 있었어?”
테이블 위로 커피잔을 내려놓던 지영이 웬일이냐는 듯 물었다.
그 짧은 새 저의 휴대폰을 스캔한 모양.
예원은 졸지에 땀이 삐질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아, 어…… 그, 그냥. 어떻게 올라와 있나 궁금해서.”
“어이구. 이젠 반응 모니터링까지 다 하셔? 진짜 톱스타 마누라 다 되셨구만.”
“에이씨, 그런 거 아니거든?”
하필이면 김지영에게 걸릴 게 뭔지. 맹세코 처음으로 검색해보는 것이었는데.
예원은 몇 시간 전, 지영의 가게에 놀러가야겠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결심을 후회했다.
“쳇, 유난 떨기는. 이거나 마셔.”
“……고맙다.”
“근데 갑자기 웬 모카를 달래? 너 원래 아메리카노 아니면 안 마시잖아.”
별 것 아닌 말임에도, 예원은 이상하리만큼 크게 당황했다.
“아……. 그냥, 오늘따라 마시고 싶어서…….”
사실, 처음엔 당연히 아메리카노를 시키려 했다.
그런데 카운터 앞에 서자, 문득 잊혀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맛있어요?’
‘……네.’
본격적인 계약을 맺기로 한 날.
그녀가 만들어준 카페모카를 맛있게 마시던 그의 모습이었다.
“뭐야, 너도 겨울 타냐? 안 하던 짓을 다 하시고.”
“……가끔은 뭐, 이런 것도 나쁘지 않잖아.”
우연히 그를 떠올린 건 사실이지만, 그 때문에 이것을 시킨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냥 맛있을 것 같아서 시킨 거지.’
하얀 휘핑을 듬뿍 얹은 카페모카를 한 입 들이킨 예원은 기분 좋게 웃었다.
제가 만든 것보다야 못하지만 그래도 맛은 있었다.
“근데 진짜 웬일이냐. 휴무날 네가 우리 매장을 다 오고.”
“뭐 그냥. 너 보고 싶어서.”
“윽. 뭐래, 이게?”
인상을 찡그리던 지영은 넌지시 예원의 눈치를 살폈다.
얼굴로 보나, 행동으로 보나. 딱히 별 일은 없는 것 같긴 한데.
“야. 나 오늘 기분도 꿀꿀한데, 저녁에 오랜만에 한 잔 땡길까? 어때?”
“술?”
갑작스런 술 얘기에 예원의 얼굴엔 금세 화색이 돌았다.
그러나 잠시 뒤.
“……아.”
그녀는 금방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안 마시는 게 좋을 거 같다.”
“뭐? 왜.”
“……엄청난 일이 있었거든.”
“엄청난 일? 뭔데?”
휴.
한숨을 내신 예원은 회식 날 있었던 이야기를 지영에게 들려주었다.
“뭐? 진짜야?”
뽀뽀 세례를 날린 대목에 이르자 지영은 숨이 넘어갈 듯한 웃음을 터뜨렸다.
“야! 웃지 마, 이씨. 이게 기껏 말해줬더니.”
“아하하하, 알았어. 알았어. 흑역사 하나 제대로 생성하셨구만.”
애써 웃음을 참은 지영이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희한하네. 네가 술 취해서 주정부리는 일이 다 있고. 너 여태껏 한 번도 그런 적 없었잖아?”
“……그러게.”
나도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 정도는 솔직히 그녀 기준에서 간에 기별도 안 갈 수준이었다.
평소였다면 테이블에 있던 모든 술을 너끈히 초토화시킨 뒤, 무사히 집에 귀가해서 발까지 닦고 숙면을 취했을 텐데.
그 날은 내가 도대체 왜 그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이 들었다.
“암튼, 그 일도 있고. 당분간은 술 좀 자제하려고. 또 그런 일이 생길까봐 무서워진 거 있지.”
“크크, 그게 낫긴 하겠네. 에이, 안 되겠다. 가정주부는 일찍 일찍 집에 들어가셔요.”
“……뭐?”
“흐흐. 그나저나, 민혁 씬 잘 지내지?”
“……어. 그 사람이야 늘 그렇지, 뭐.”
여전히 웃음기를 머금은 지영이 퍼뜩 생각난 듯 말했다.
“맞다. 근데 너 생일날은 어떻게 했어? 데이트라도 했어?”
“생일?”
반문하는 예원의 눈썹이 올라갔다.
맥락도 없이 갑자기 튀어나온 단어가 단번에 이해되지 않은 탓이었다.
“아니? 내 생일 한참 지났잖아. 갑자기 웬 생일?”
멍청한 얼굴로 묻는 예원에게, 지영은 지금 뭔 소릴 하냐는 얼굴로 응수했다.
“아니, 말고. 민혁 씨 생일 말이야. 민혁 씨 생일 12월 25일이잖아. 같이 안 있었어?”
……어라?
“그 사람 생일이…… 크리스마스야?”
“넌 결혼까지 한 사이에 그것도 모르냐? 못 믿겠으면 봐봐, 이거.”
지영은 예원의 손에 들린 폰을 들어 그녀의 눈앞으로 갖다대주었다.
그제야 확실히 보였다.
[‘출생’ 1987년 12월 25일]
이라고 적힌, 프로필의 선명한 글자가.
“…….”
이럴 수가. 예원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완전히 처음 안 사실이었다.
“뭐야. 민혁 씨가 말 안 해주디? ……아, 맞다. 너네 부모님 기일도 크리스마스잖아. 그래서 말 안 한 건가? 괜히 신경쓸까 봐?”
“…….”
“에이, 그래도 생일인데 말 좀 해주지. 너무하네, 남도 아니고.”
지영이 뭐라 뭐라 말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예원의 귀엔 어느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생일이었다. 그 날이, 생일이었다.
‘축하한다고, 한 번만 말해줄래요.’
그게…… 생일이어서 그런 거였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네가 독심술사도 아닌데 왜 말을 안 해줘? 나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냐. 까맣게 모를 뻔했네, 너.”
“…….”
“근데, 진짜 그것 때문에 말 안 한 거면…… 좀 멋있긴 하다.”
예원의 반응은 안중에도 없이, 지영은 새삼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너 배려해준답시고 그랬단 거 아니야. 역시, 내가 옛날부터 사람 보는 눈은 좀 있어. 내 청춘 다 바쳐 좋아한 보람이 있네.”
“…….”
“……야. 왜 말이 없어?”
잠시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예원은 일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지영아.”
“응.”
“너 이번 주 토요일날 몇 시에 끝나?”
“토요일? 나 이번 주 휴문데. 왜?”
예원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비장했다.
“나, 그 날 너네 집 좀 가자.”
“뭐?”
얼떨떨해진 지영이 눈을 소처럼 끔뻑였다.
* * *
상범의 결혼식장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민혁은 신랑신부와 인사를 마치고 홀로 나오는 중이었다.
“현민혁!”
민혁이 퍼뜩 뒤를 돌아보았다.
그를 불러 세운 이가 멀리서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잘 지냈냐?”
멀대처럼 쭉 뻗은 키의 주인공은 바로 박해준이었다. 바로 그 옆엔 김주성도 있었다.
은아의 말을 빌리자면 ‘은혜로운 쓰리샷’이라고도 하는, 비주얼 삼총사의 만남.
“진짜 오랜만이다, 형.”
“어, 왔냐.”
민혁은 두 살 어린 동생 주성에게 두었던 시선을 다시 해준에게 두며 말했다.
“오랜만이네, 형.”
앞머리를 말끔히 뒤로 넘긴 모습의 해준이 씨익 웃었다.
“잘 지냈냐? 넌 여전하지? 요즘 한창 좋겠다.”
저 능글대는 목소린 언제 들어도 들어주기가 힘들다.
저런 놈을 여자들은 대체 왜 좋아하는 걸까.
민혁은 가까스로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하하, 내가 뭘.”
그런데 해준은 대화를 이어나가려 하기보단, 민혁의 주변을 먼저 살피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네 부인은 같이 안 왔냐?”
“……어, 일이 좀 있대서. 그렇게 됐네.”
“그래?”
해준의 얼굴에 곧바로 눈에 띄는 아쉬움이 어렸다.
“아, 아쉽네. 결혼식 못 가서 궁금했는데. 예원 씨라고 했나? 언제 한 번 얼굴 좀 보여줘, 구경하게. 대체 어떤 여자 분이 너 같은 선비를 꼬신 건지 궁금해 돌아가시겠다. 어?”
……그 여자가 무슨 동물원 원숭이도 아니고.
민혁은 속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럴 줄 알았다. 차라리 안 데려오길 잘한 건가.
“형은, 만나는 사람 없어?”
짜증이 난 민혁은 매우 능숙한 솜씨로 그에게 화살을 돌렸다.
늘 그렇듯 해준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글쎄다. 맘에 차는 여자가 잘 없네. 이젠 여자 만나는 게 좀 귀찮기도 하고.”
“어, 형 저번에 만나는 여자애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이돌이라고 하지 않았나?”
옆에 있던 주성이 끼어들자, 해준은 코웃음을 쳤다.
“아 걔야 그냥 심심풀이지. 명색이 박해준 여자친군데, 그런 앨 어디다 갖다 대냐. 짜식이 감이 없어.”
남들에게 들릴까, 한껏 낮춰 말하는 속삭임이 더 더럽다.
민혁은 보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와.”
그런데 그때, 뭘 봤는지 무척 감탄하고 있는 해준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로 흘려들었다.
“왜요?”
“야, 저기 좀 봐봐.”
“저기요?”
옆에 있던 주성 또한 멀리를 힐끔거렸다.
“죽이는데. 상범이가 저런 여자도 다 알아? 신인인가.”
“글쎄요. 처음 보는데.”
그렇지. 참새가 먹이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또 맘에 드는 여자를 발견한 모양이군.
그래도, 이대로 그냥 조용히 넘어가면 다행인데.
“내 애인이면 못해도 저 정돈 되어야지. 안 그러냐? 가서 말이나 함 걸어볼까.”
놈은 꼭 장소도 못 가리고 허튼 짓을 하려 드니 문제였다.
“……무슨 소리야, 또.”
애써 무시하려던 민혁은 결국 뒤를 돌아보았다.
세 사람의 눈길이 향한 곳에 누군가 서 있었다.
그 사람이 누군지를 깨달은 순간, 민혁의 눈은 곧바로 휘둥그레졌다.
“어, 민혁 씨!”
……바로 그의 가짜 부인. 홍예원이었다.
“……!”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얼굴.
하지만 민혁은 제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여자는 평소와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얼굴은 분명 홍예원이 맞는데, 그 얼굴 전체가 마치 꽃처럼 화사했다.
게다가 웬일인지 근사한 원피스를 차려입고 곱게 화장까지 한 채였다.
화려한 귀걸이에 웨이브 진 머리.
커피가루가 묻은 유니폼에, 머리망으로 야무지게 묶은 머리, 민낯에 가까울 정도로 엷은 화장으로 일관하던 것과는 완전히 천지 차이인 모습.
특유의 쭉 뻗은 다리로,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예원에게선 청순하면서도 묘하게 섹시한 분위기가 풍겼다.
박해준이 ‘죽인다’고 표현한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비록 속된 말이긴 하지만, 그 말 말고는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딱히 없어 보일 정도니까.
……근데 그건 그렇고.
‘저 여자가, 어떻게 여기에?’
분명 오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민혁 씨’? 뭐야, 아는 사이야?”
옆에 선 해준이 관심을 가지고 물어오는데도, 민혁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그 상태 그대로 여자를 빤히 쳐다보는 것뿐이었다.
“…….”
또각또각.
경쾌한 구두소리와 함께, 마침내 예원이 그의 앞으로 당도했다.
“미안해요, 민혁 씨. 내가 너무 늦었죠.”
“…….”
“사실 도착한 지는 좀 됐는데, 입구에서 이 분이…… 자꾸 잡으시는 바람에.”
그러고 보니 그녀는 옆에 웬 남자를 함께 대동하고 온 채였다.
예원은 남자를 향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자, 확인하신 거 맞죠?”
“…….”
“거짓말 아니에요. 저, 진짜…….”
민혁의 옆구리로 파고든 예원의 손이, 그의 팔뚝을 부드럽게 폭 감싸 안았다.
“현민혁 씨 ‘아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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