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서장 (1/75)



〈 1화 〉서장

“감사합니다, 또 와주세요!”

“그려 그려~ 내일  보자고.”

마지막 손님을 내보낸 후 나는 영업 중 표지판을 뒤집고 문을 잠그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5년 전 내가 바둑을 그만둔다고 할 때 한참을 침묵하시던 스승님이 이걸로 밥이나 빌어먹으라며 내게 맡긴 이 기원은 바둑의  부흥기인 요즘 점점 손님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신생 한국바둑연맹의 출범 이후로 여러 가지 이슈가 생기면서 유입되는 팬들이 많아졌고 특정 기원에 가면 가끔 프로기사들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아 바둑 팬들이 몰리는 곳들이 있는데.

유명한 프로기사였던 스승님이 운영하던 이 기원은 당연히 팬들의 레이더에 걸릴 수밖에 없던 것이다.

덕분에 기원은 연일 문전성시, 나는 과로에 시달려야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하루에 한   오면 다행일 정도로 손님이 없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때보다 벌이는 좋아졌지만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지 않는가.

한쪽에서는 시간 정산을 부탁하고, 한쪽에서는 비슷한 수준의 상대와의 대국을 부탁하고, 한쪽에서는 지도 바둑 대국을 신청하고.

제사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일부 팬들은 좌석만 차지하고 계속 출입문과 카운터만을 기웃기웃 쳐다보다 나에게 무언의 압력을 동반한 시선을 보내고는 했다.

물론 나는 억울했다.

나는 단 한 번도이곳에 누군가 방문한다는 것으로 홍보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면 프로바둑기사를 만날 수도 있다는 소문은 대체 누가 퍼트린 거야?

이 곳에 방문하는 프로기사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그 사람들이 바쁜 스케줄에 이 곳에 올 여유 따위는 없고 와도 팬들의 시선이 없는 영업시간 후에나 오기 때문에 두 배로 억울하다.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팬들이 바글바글할게 뻔한데 바둑 한 판 두려고 여길 오겠냐고.

나는 대충 뒷정리를 마치고 2층의 거주 공간으로 올라가 컴퓨터를 켰다.

요즘 바둑 두는 사람들은 집에 AI스승을 하나씩 모신다고 하던가.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에 오픈소스로 공개된 바둑 AI ‘랄라제로’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고가의 컴퓨터를 구매했다.

컴퓨터는 문외한이었기에 일단 비싼 거면 좋은 거겠지 라는 생각으로 구매하려다가 스승님의 딸에게 몇 시간에 걸친 잔소리를 들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던 녀석이었다.

말이 좋아 합리적인 가격이지 수백만 원이 들어갈 정도로 고가의 컴퓨터였기 때문에 구매 직전까지 망설였지만 뭐 어때 내가 만족하면 그만이지.

어려서부터 바둑만을 보고 살아왔기에 소위 말하는 컴맹 에 속하는 나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몇  사용하다 보니 이제 조금은 컴퓨터에 익숙해져 나름 자연스럽게 소프트를 실행시킬 수 있었다.

오늘 자 대국  개의 분석을 돌려놓은 나는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스승님 – 메시지 확인하면 연락해라.

스승님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놀랄만한 일이었다.

내가 프로가 되는 것을 포기한 후 스승님은 나에게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연락이 없던 양반이 연락을 하니 괜히 걱정됐다.
나는 마지막으로 연락한 지 기억도 나지 않는 스승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스승님, 저예요.”

“이놈아, 연락하라고 한 지가 언젠데 이제야 연락을 해?”

“메시지 보자마자 연락한 건데요?”

나는 잠시 핸드폰의 화면을 켜 언제 메시지가  것인지 확인했다.

메시지가 온 시간은 10시 30분.

지금은 10시 35분이었다.

“아니 5분 만에 전화드린 거잖아요!”

“스승이 연락을 했으면 바로바로 답신을 해야지 에잉 요즘 것들은.”

 양반이 드디어 노망이 들었나.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괜히 역정을 내는  보니 무언가 부탁할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무슨 일이에요?”

“이놈아, 스승이 제자한테 연락하는데 이유가 있어야 하냐?”

“건강하신 것 같네요. 끊을게요.”

“야!!!!”

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네.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요즘은 괜찮니?”

그 어떤 수사도 없는 말이었지만 알아듣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아직 좀 그러네요.”

스승님은 잠시 침묵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니까, 정말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양반이다.

“소개해줄 아이가 있다.”

“예뻐요?”

“누굴 중매쟁이로 아나, 그런 거 아니다.”

“하긴 스승님 주변에 젊은 여자가 있을 리가 없죠.”

“물푸레나무 몽둥이 좀 볼래?”

“죄송합니다……”

물푸레나무 몽둥이는 신창연 바둑도장의 전설과도 같은 물건이다.

아무리 인성이 개차반이더라도 한 대 맞으면 하루 동안 정신 차리고,  대 맞으면 일주일간 정신 차리고, 세 대를 맞으면 새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소문을 가진 물건.

소문만 무성하지 직접 본 사람은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여러 소문을 듣고 자란지라 나 역시 무의식적인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애초에  양반이 사람을 때리거나 할 성격은 아닌데, 어쩌다가 그런 소문들이 돌게 된 걸까.

예나 지금이나 의문이다.

“그래서 누구인데요?”

“열살짜리 꼬맹이인데 재능이 심상치가 않아.”

“사범이 필요한거면 도장에도 사람 많잖아요.”

“세연이가 사흘 데리고 있다가 포기했다.”

신세연, 스승님의 딸이자 협회 6단의 실력자이다.
지 말로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대에도 재능이 있어 도장 내에서도 좋은 사범으로 평가받고 있다는데. 다 구라였나 보다.

다음에 연락 오면 놀려야지.

“재영이도 있고, 휘운이도 있는데  저한테 보내려는 거예요?”

“그 놈들도 다 포기했으니까.”

이재영 협회 6단, 정휘운 협회 7단.

 다 슈퍼리그급 실력자는 아니지만 장래가 뛰어난 프로기사로 유명했다.

그 둘까지 포기할 정도면 보통 재능이 아닌 것이다.

기본적으로 프로바둑기사라는 사람들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을 보면 자기가 가르치고 싶어 안달이 나는 사람들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자신의 접근법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어서

유명한 기사의 스승으로 이름을 날리고 싶어서

그저 제자들의 실력이 느는 것을 보는  자체가 좋아서. 등등.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줄줄이 포기했다면 이유는 하나다.

재능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것이다.

띵동-

갑자기 기원 정문의 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연락도 없이 올 사람은 없는데 누구지?

오늘 분실물은 없었는데.

순간 이유 모를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저도 포기할게요. 손님이 온 것 같으니까 끊겠습니다.”

"그럴 줄 알고 벌써 보냈다. 벌써 도착했나 보구나, 네놈 어렸을 적이랑 판박이니까 잘 가르쳐봐."

"네?"

그렇게 말한스승님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망할 늙은이, 안 그래도 요즘 바쁜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잘 타일러서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1층으로 내려갔다.

애초에 나는 누군가를 가르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바둑만 보고 살아온 인생이긴 하지만 프로도 아니고, 누구를 가르쳐 본 적도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사람이다.

오랜 시간바둑을 배워온 사람도, 나랑 비슷한 실력의 사람도, 어렸을  바둑을 배워 규칙만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막 바둑을 배우기 시작한 사람도.

나는 누구 하나 이길 수 없다.

이런 내가 누군가를 가르치다니,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1층에 내려와 기원의 문을 열자 익숙한 얼굴이 나를 반겼다.

남자의 로망이라고 불리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 모르는 사람이 보면 렌즈를 꼈다고 오해할만한 붉은빛이 감도는 눈.

스승님의 딸이자 내가 컴퓨터를 구매할 때 ‘용산’ 당하지 않도록 도와준 은인 신세연 협회 6단이었다.

“이야~ 이게 누구야 바둑 여신 신세연 협회 6단 아니야?”

“한 번만 더 그렇게 부르면 뒤진다고 했지? 터지고 싶어?”

“죄송…… 압도적 죄송……”

뭘 터트린다는 건지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기에 각자의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다.

참고로 세연이는 자기를 성희롱하던 인간의 낭심을 발차기로 쌔게 후려버린 전적이 있다.

상상하는데 참고만 하라고 참고만……

이 애도 오랜만에 보는 건데 바뀐 게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왈가닥인데 어떻게 밖에서는 얌전한 척을 하고 다닐 수 있는 걸까.

이 애한테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인간의 본성을 알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오히려 좋아…… 라면서  좋아할 인간들도 있을 것 같아서 무섭긴 하지만.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나야 뭐, 요즘 바둑계가 호황이니 손님도 많고 바쁘게 지냈지.”

“하긴, 나도 그래서 요즘바빠 죽을  같더라.”

“아니 넌 바둑계가 다 죽어가는 상황이어도 바빴을걸?”

내가 장담하건대세연이는 바둑계가 다 죽어가는 상황이어도  인기를 끌었을 것이다.

실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바둑기사는 귀하니까.

그녀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지만,아니 때때로는 짐이라고 여기는 것 같지만, 그녀의 외모는 분명 그녀의 큰 장점이다.

또한 그녀의 아버지인 신창연 협회 9단은 바둑계 인사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전성기 때에는 바둑 리그는 서로 투닥거리다가 결국 신창연이 있는 팀이 우승하는 리그라는 소리까지 나왔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다.

유명한 프로기사 아버지, 미래가 기대되는 뛰어난 실력, 그보다 뛰어난 외모.

말 그대로 신이 내린 바둑계의 스타인 샘이다.

아마 이 기원에 오는 사람의 2할 정도는 혹시 어쩌면 운이 정말 좋다면 신세연을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 오는 사람들 아닐까 싶을정도니까.

유일한 단점은 성격인데, 지가 잘 숨기고 있는 듯하니까 내가 신경 쓸건 아니고.

“또  헛소리 한다. 어쨌든 아버지한테 이야기는 들었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야 하나 통보를 당했다고 해야 하나. 잘 가르쳐보라고 말하고 끊은 게 이야기를 들은 거면 들은 거겠지.”

“잘 들었네.”

뭐라는 거야 진짜.

그나저나 아이를 소개해준다고 했는데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차 안에서 자고 있는 걸까?

“소개해줄 애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디 있어?”

“아 그건……”

 순간 세연의 등 뒤에서 자그마한 얼굴이 쏙 튀어나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흑백의 바둑알과 같은 장식이 달려있는 머리핀으로 포인트를 준 단발.

나이는…… 열 살 전후일까?

이 아이를 만난  오늘이 처음이지만.

어째서인지 이 아이로 인해  인생이 크게 바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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