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정통파 습격 -->
말끔하게 차려입은 프레이는 곧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길게 늘여진 탁자 위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이게 다 뭐야...?’
프레이는 처음 보는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종의 안내에 따라 자리를 잡았다.
그녀가 살짝 윙크를 하며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에 글란이 도착했다.
“아, 먼저 도착했는가.”
“예.”
글란은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훑고는 프레이에게 물었다.
“저하께서 나에 대해 뭔가 말한 건 없나?”
“예? 아... 아뇨, 없습니다.”
“정말인가? 그렇다면 다행이군...”
글란은 말과는 달리 불안한 모습이었다. 프레이에 대한 관심은 거기까지였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돌기를 잠시, 문이 열리며 데일이 들어왔다.
“저하, 오셨습니까.”
금방 표정을 바꾸고 일어서며 글란이 인사를 했다. 프레이도 덩달아 일어나 인사를 했다.
“아, 프레이. 잘 씻었나?”
“예? 아... 예.”
데일은 짓궂은 얼굴로 프레이를 바라보며 웃었다. 프레이는 마치 황태자 앞에서 벌거벗은 꼴이 된 기분이었다.
“흠흠, 뭐 아무튼 식사부터 하세.”
제트람은 데일의 뒤에 서 있었다. 프레이의 눈길이 그를 향하자 데일이 말했다.
“아, 제트람은 신경 쓰지 마. 나중에 따로 먹을 거니까.”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가 시작되자 프레이는 속으로 감탄을 연발했다.
‘이렇게 맛있다니...?’
역시 귀족, 그것도 레스톤을 다스리는 영주가 준비한 만찬은 확실히 달랐다. 입으로 들어간 것 중에 만족스럽지 않은 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먹으니 글란이 눈살을 찌푸렸다.
“흠, 이런, 이런... 유저라고 해도 식사 예절은 지켜야 하지 않는가.”
유저라고 해도 황태자 앞이었다. 프레이는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데일이 프레이가 하는 것처럼 음식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저, 저하?”
“이런... 내가 식사예절을 지키지 않았군.”
“아, 아니...”
“내가 만찬 분위기를 망쳤네. 아주 큰 잘못을 했어?”
데일의 시선은 글란에게 꽂혀있었다. 그는 식은땀을 흘렸다.
“아니, 그것이 아니라...”
“글란 경.”
“예.”
“내일 시민들 앞에서 연설하는 것 외에 다른 계획이 있나?”
“어, 없습니다.”
글란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자칫 잘못하면 성주의 자리가 날아간다.
“그러면... 할 이야기는 많이 없겠지?”
“그... 그렇습니다.”
“그러면 프레이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게 좀 비켜주겠나?”
글란은 고개를 들어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황태자의 관심은 이 유저에게 쏠려 있는 것 같았다.
정작 식사예절을 지키느라 배를 반도 채우지 못했지만, 글란은 주저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그럼 즐거운 저녁이 되시길...”
그는 황급히 주변의 시종들을 향해 손짓했다. 시종들이 빠르게 빠져나갔다.
프레이는 순식간에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당황했다. 그러나 데일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여유롭게 식사를 했다.
“이제 좀 편해?”
“예? 아... 네, 감사합니다.”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먹자고.”
데일이 웃으며 말하자 프레이도 바삐 손을 놀렸다.
“그래서 어디서 뭘 하다가 레스톤에 왔어?”
데일은 프레이의 행적이 궁금했다. 도대체 뭘 했기에 제트람과 맞설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프레이는 음식을 씹어 넘기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모두 알려줄 필요는 없겠지.’
그는 베긴네르에서 오크와 싸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붉은 바위 부족이라고?”
“예, 덕분에 토템까지 얻었습니다.”
프레이가 토템을 보여주자 데일이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토템이라... 신기하군. 확실히 실력이 있어.”
데일이 제트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제트람은 대답하지 않고 표정을 유지했다.
이어서 고블린에게 여자들을 구출했을 때의 이야기를 하니 데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런... 하여간 아인종은 상종 못 할 놈들이야. 특히 고블린은 더욱 그렇지.”
“예, 아주 악랄한 놈들이었습니다.”
“상인들까지 공격하다니... 칼카락이라고? 현상금을 걸어야겠어.”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데일은 식사를 마쳤는지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상인들의 물건은 모두 돌려줬다고?”
“제가 듣기로는 그랬습니다.”
“그건 다행이군. 그래도 이해해줘. 나를 위해서 한 일이니, 글란 경을 처벌할 수는 없지.”
데일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글란이 오크를 쫓아낸 것 때문에 고블린이 기승을 부렸다. 하지만 자신을 위한 일이니 처벌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프레이도 배가 불러 더는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다.
“벌써 다 먹었나?”
“예.”
“프레이.”
데일이 미소를 지었다.
“다시 묻지. 내 친위대에 들어올 생각 없나?”
“쿨럭, 쿨럭.”
막 물을 마시던 프레이는 사레가 걸려 연거푸 기침했다. 간신히 숨을 돌리고 프레이가 되물었다.
“예?”
“친위대가 될 생각이 없느냐 물었어.”
“제가... 말입니까?”
프레이는 힐끔 제트람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데일의 뒤에 서 있었다.
“여기 또 누가 있나?”
“하지만... 왜 저를?”
프레이의 질문에 데일은 웃음기를 거두었다.
“음... 좋아. 자네는 유저니까, 상관없겠지.”
“저하...?”
제트람이 입을 열었다. 데일은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괜찮아. 프레이, 물론 비밀을 지켜주리라 믿어. 그렇지 않으면 꽤 고생을 할 테니까 말이야.”
이게 믿음인가 협박인가. 프레이가 고민하는 사이 데일은 말을 이었다.
“세간, 아니지. 귀족 사이에서 내가 어떻게 불리는지 알아?”
프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게도 그의 일생동안 귀족과 만날 기회는 없었다. 두 번째 삶에서 처음 만난 귀족이 황태자라는 건 더 이상한 일이었다.
“폭군이라고 불러, 내 성질이 워낙 더럽다고 하더군.”
“네? 하지만...”
프레이는 놀라서 되물었다. 황태자에게 누가 성질이 더럽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물론 내 앞에서 그렇게 말하지는 않지. 그랬다가는 입을 꿰매버릴 테니까.”
‘죽이지는 않는 건가...’
폭군답지 않은 면모였다. 프레이는 잠자코 데일의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나는 그 별명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 그게 내가 바라던 바거든.”
“바라던 바라니요?”
“말 그대로야. 나는 귀족들, 그리고 국민들이 나를 폭군으로 알아줬으면 좋겠어.”
데일의 말에 프레이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혹시 나를 시험하는 건가?’
어쩌면 자신을 처벌할 구실을 만드는 게 아닐까. 그러나 황태자가 그런 수고를 들일 필요는 없었다. 그냥 말 한마디면 충분할 테니.
“그래서 이런 시찰을 나갈 때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어떤 때에는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사람들을 심하게 대하지.”
“저하...”
“괜찮아, 제트람. 프레이 황실에 대해 얼마나 알지?”
“예? 어...”
“잘 모르는 모양이군. 유저니까 그럴 수 있겠지.”
데일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 밑으로는 동생이 하나 있어. 정확히 말하면 이복동생이지.”
“아...”
제 2 황태자, 바이런이 얼핏 이야기를 해주었던 기억이 났다.
“마틴 도프람. 비록 제 2왕비의 자식이지만 아버님의 피를 이었으니 황제가 될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해.”
‘황제가 될 자격은 핏줄인 건가?’
데일은 지쳤다는 듯 한숨을 내뱉고 말을 이었다.
“하아... 그런데 적법한 사람은 나란 말이야? 제 1 황태자라는 위치. 제 1 왕비인 어머님은 돌아가셨건만... 삼촌이 가만히 있지를 않아.”
“삼촌이요...?”
“그래, 아무래도 내가 황제가 되어야 권력을 유지할 수 있지 않겠어? 그러니 나를 지지하시는 거지.”
프레이는 데일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근데 나는 황제가 되기 싫단 말이지.”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생각이 옳았다. 데일은 황제의 자리를 원하지 않는데 주변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황태자 노릇을 하는 것이리라.
“저하... 그것까지...”
제트람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지만 데일은 웃으며 손을 저었다.
“제트람, 괜찮아. 어차피 유저들은 제국의 후예 소속도 아니잖아? 이런 이야기를 유저가 아니면 누구에게 하겠어?”
“그러나...”
“그러나는 무슨. 어차피 프레이가 떠들어 봐도 삼촌이 입을 막을걸?”
프레이는 약간 얼굴을 찌푸렸다. 자신을 앞에 두고 하는 이야기치고는 내용이 달갑지 않았으니.
“아무튼 그래서 나는 마틴이 황제가 되었으면 좋겠어. 그런데 마틴은 지금 신성제국에 있으니...”
“황제께 솔직히 말씀드리면 되지 않습니까?”
프레이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그런 걸로 고민을 하는가. 황제가 마틴을 다음 계승자로 지목하면 해결될 문제가 아닐까.
데일과 제트람은 순간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데일은 웃음을 터트렸고 제트람은 정색했다.
“하하! 봤지? 유저는 정치 같은 건 하나도 모른다니까. 제트람, 너무 걱정하지 마.”
“하지만...”
“프레이. 내가 계승을 포기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
“그건...”
프레이는 머리를 긁적였다. 귀족들의 삶에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상상조차 어려웠다.
“순진한 친구야. 아주 순진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더 마음에 들어.”
데일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러다가도 웃음기를 지우는 모습을 보니 프레이는 그 웃음이 가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란.”
“저하!”
제트람이 빠르게 말을 막으려 했지만, 흘러나온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프레이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가 되물었다.
“예...?”
“반란이 일어난다고. 프레이, 권력은 형태가 없지만 그 자체로 아주 무서운 괴물이야.”
데일은 제트람의 걱정 어린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권력은 그 무엇보다 강력한 악마야.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사람들을 현혹하지. 그 악마를 위해서 사람들은 무엇이든 하려고 해. 모함과 폭력, 뇌물 그리고 살인까지. 그것이 설령 자신의 가족을 죽이는 일이라도.”
“뭐라고요...?”
“저하...!”
제트람이 빠르게 말을 끊었다. 데일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듯 제트람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실언이었어. 잊어줘. 아무튼, 내가 계승권을 포기하면 삼촌이 군사를 일으키고 황성을 점거할 거야. 그리고 나는 마틴과 전쟁을 치르겠지.”
“도대체 왜...?”
“프레이. 제국의 후예라는 명분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야. 진짜 제국을 기억하는 이는 모두 땅 밑에 묻혀있어. 남은 건 권력뿐이지. 황족의 정통? 그런 걸 누가 신경 쓰겠어?”
데일은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앉아있는 의자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중요한 건 자리야. 누가 왕좌에 앉는가? 역사는 승자가 기록하는 법이지. 나는... 승자로 끌려가는 거고.”
데일은 씁쓸한 얼굴로 말을 마쳤다. 그러나 다시 예의 미소를 지으며 프레이를 돌아보았다.
“솔직하게 말할게. 자네의 실력을 높이 사겠어. 하지만 실력뿐만은 아니야.”
데일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잠깐의 침묵이 사이에 맴돌았다.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해. 안 그러면 미칠 것만 같아. 제트람이 있지만... 제트람은 내 친구가 될 수 없어.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지키기만 하겠지.”
데일은 제트람을 바라보았다.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데일은 다시 고개를 돌려 프레이의 눈을 마주했다.
“그래서 나는 네가 그 적임자라고 생각해. 제트람과 맞서도 꿀리지 않고, 혹여나 죽더라도 다시 살아나잖아? 게다가 자유롭기까지 하지.”
프레이는 쏟아지는 데일의 말에 눈을 껌뻑였다. 데일은 눈을 돌리지 않았다.
“프레이, 다시 말하지. 내 친위대에 들어와.”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1%)]
[중급 검술 Lv1 (7%)]
[초급 단검술 Lv6 (21%)]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3 (27%)]
[초급 승마 Lv1 (12%)]
[초급 도축 Lv1 (0%)]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