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수에서 타자까지-131화 (131/137)

< 샤베즈 레빈에 떠오른 별 (2) >

131. 샤베즈 레빈에 떠오른 별 (2)

시티 필드에 모습을 드러낸 뉴욕의 캡틴, 이스마엘 콥.

이를 가장 기뻐한 사람은 의외로 뉴욕 메츠의 투수 코치 로건 쉐필드였다.

"됐어!"

대형 전광판에는 여전히 이스마엘과 해준의 모습이 잡혀있었다.

서로를 다분히 의식하는 두 명의 슈퍼스타.

그 광경에 로건 쉐필트는 자신도 모르게 오른 주먹을 불끈 쥐었다.

"뭐가 됐다는 거예요?"

뉴욕 메츠의 영건 웨이드 브록스턴의 말에 로건 쉐필드가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었다.

"정말 모르겠나? 저 상황을 보게."

"지금 상황이요? 이스마엘과.. 강이 서로 노려보고 있잖아요."

"바로 그걸세. 지금 이스마엘의 등장은 강에게 어마어마한 부담감으로 작용하고 있을 거라 이 말이지."

30경기 연속 안타.

아무리 위대한 기록을 쌓아가고 있어도, 결국 그 주체는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신인이다.

그것만으로 이미 부담감이 엄청난 상황.

심지어 이전 4타석은 무안타에 그쳤다.

"본래대로라면 거르는 게 맞아. 강의 득점권 타율은 시즌 타율보다 1할이나 높으니까. 클러치 몬스터라 이 말이지."

말을 이어나가는 로건 쉐필드의 눈빛이 깊어졌다.

'점수 차이가 다소 나긴 하지만..'

다저스 타선은 미세한 빈틈이라도 비집고 들어와 게임마저 뒤집어버리는 독한 놈들이다.

그렇기에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고 게임을 걸어 잠가야 한다는 것이 메츠 측의 판단이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아이브 감독과 로건 쉐필드의 고민이 깊어졌었다.

해준을 거르자니 이 방송을 보고 있을 전 세계에서 쏟아질 팬들의 비난이 두려웠고, 정면으로 승부하자니 그 말도 안 되는 득점권 타율 수치가 두렵다.

하지만 이스마엘이 등장함으로써 이야기가 살짝 달라졌다.

"괴물 같은 페이스를 보이고 있다해도 결국은 루키. 같은 기록을 두고 경쟁하는 상대가 눈앞에서 자신의 마지막 타석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만큼 부담 가는 일도 없겠지."

이로서 팽팽하던 균형을 유지하던 의사 결정의 시소가 살짝 한 곳으로 기울어졌다.

이전보다 배 이상의 부담을 떠안은 타자.

그 사실을 고려한 메츠 벤치가 즉각적으로 사인이 내보냈다.

정면 승부.

마운드의 투수 아트 그로츠는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퍼어어어엉-!

"스트라이크-!"

곧바로 날카롭게 휘어져 떨어지는 스플리터.

홈플레이트 바깥쪽 모서리를 정확하게 파고드는 커맨드에 중계석에서도 감탄사가 쏟아졌다.

[초구 스트라이크! 날카롭게 떨어지는 스플리터, 배트조차 나오지 않았어요! 뉴욕 메츠가 피해가지 않는 것을 택했습니다!]

툭-툭-

"흠."

그 선택이 해준이 오른발 스파이크 끝에서 배트를 튕기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는 가볍게 웃어 보였다.

'이런 상황이 도움이 될 줄이야.'

사인을 받고 나서 투수의 기세가 변했다.

누가 보아도 벤치에서 나온 사인으로 정면 승부를 택한 시점.

따아아악-!

"파울-!"

오우우-!

다시 한번 떨어지는 스플리터에 해준의 배트가 돌았지만, 파울 타구는 포수 미트를 살짝 스쳐 간다.

하지만 카운트는 0-2.

투수가 단숨에 해준을 코너에 몰아넣자 관중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이이익-!

"이대로 끝내버려! 그로츠 네가 최고다!"

"그로츠-! 그로츠-!"

"Go mets!"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기 시작하는 박수 세례들.

[배트가 밀렸습니다! 오늘만큼은 본인의 구위가 최고라는 것을 증명하는군요! 카운트는 노볼 투스트라이크! 클러치 몬스터 KANG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아트 그로츠!]

캐스터의 목소리에도 흥분이 가득 들어찼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 해준의 기록을 중단시키며 다저스마저 침묵시키는 루키 투수의 등장.

이는 또 다른 스타의 등장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앗-!"

아트 그로츠가 지체없이 투구판을 박찼다.

이번에는 상단 스트라이크존을 살짝 벗어나는 하이패스트볼.

"흐읍-!"

따아아악-!

해준의 배트가 다시 한번 날카롭게 돌자, 모두의 고개가 1루를 향해 빠르게 돌아갔다.

[페..페어...가 아닙니다! 그라운드 밖을 가리키는 1루심의 팔! 아트 그로츠 선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습니다! 능숙하게 공을 밀어낸 강의 위협적인 스윙!]

휘이이이익-!

고 아트 그로츠!

그대로 밟아버려!

강, 신경 쓰지 말고 늘 하던 대로 스윙해요!

찰나의 정적이 이어지고, 곧바로 아트 그로츠와 해준을 응원하는 소리들이 섞여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해준은 아트 그로츠를 바라보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오늘 그로츠는 인생 스플리터가 긁히는 날이야. 배트를 섣불리 내기 까다롭다.'

제대로만 구사된다면 배리 본즈가 아니라 베이브 루스가 살아 돌아와도 헛칠 수밖에 없는 것이 스플리터라는 구종이다.

특히나 터널링이 사기적인 그로츠의 스플리터.

저 변화구가 자신으로 하여금 배트를 내는 타이밍을 강제로 한템포 늦추고 있었다.

'섣불리 배트를 내다가는 곧바로 헛스윙으로 이어지니까.'

더욱이 아트 그로츠는 조금도 템포를 늦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타자를 몰아붙이는 법을 아는 투수야.'

퍼어어엉-!

"볼-!"

이번에는 다소 크게 빠진 패스트볼에 해준이 숨을 돌렸다.

카운트는 1-2.

아직까지도 투수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카운트.

'그렇다고 이대로 당해줄 수는 없지.'

메츠 코치진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해준은 분명 이스마엘의 등장을 의식하고 있었다.

농구나 축구, 혹은 권투 같은 종목들에서 이런 식으로 상대팀 선수를 관전하러 온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매일매일이 경기의 연속인 야구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니까.

심지어 그 상대는 메이저리그 최고 타자 중 한 명이자, 자신과 기록을 두고 다투는 경쟁자.

몸의 밸런스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 흐트러진다는 점에서 메츠 코치진의 생각과 해준의 의도는 매우 달랐다.

따아아악-!

"파울-!"

[다시 한번 파울-! 31경기 연속 안타에 대한 KANG의 집념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홈플레이트에 처박힐 듯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파울로 만들어내는군요!]

'거의 조절했어. 어깨를 확실히 닫고 조금 더 코어 근육을 늘린다는 느낌으로..'

외부의 시선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흐트러진 것이 아닌, 새로운 힘의 방향성을 조율하기 위한 일시적인 흐트러짐.

해준은 단 몇 번의 스윙으로 그 감각을 어느 정도 조율하는 데 성공한 상태였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도는 해봐야지.'

다행히 자신이 시도하는 것과 지금 투수의 상성을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진다.

깊은 터널링으로 홈플레이트 앞에 다다라서야 급격한 낙폭을 보이는 스플리터.

그런 공은 당겨치려 하면 할수록 다급해질 뿐이다.

무언가를 노리는 해준의 눈동자가 심상치 않은 빛을 띠었다.

"하아앗-!"

[6구! 아트 그로츠 선수의 기합성! 그리고---!]

그사이 재빠르게 투구판을 박찬 아트 그로츠.

'지금이다!'

그 순간, 해준이 다시 한번 특유의 레그킥 동작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타이밍이 살짝 달랐다.

콰짓-!

오히려 한 템포 빨리 흙바닥을 짓이기는 왼발의 스파이크.

그에 반해 홈플레이트에 도달하기까지는 한참이나 남은 공.

그때부터 해준 본연의 재능이 믿기지 않은 광경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까드득-!

굳게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어금니를 꽉 다문 소리.

왼발은 이미 땅에 닿아있지만, 어깨는 조금도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하체가 만들어냈던 힘과 함께 상체 한층 더 반대 방향으로 꼬아진다.

끼이이익-!

귓가에는 온몸의 근육과 관절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해준은 그 모든 신호를 무시해버렸다.

상체를 역으로 꼬는 과정을 통해 힘을 더욱 압축하면서도, 타이밍을 잡아먹어 버리는 해준 특유의 타격폼.

그리고.

'억지로 당기지 않고..'

어느새 홈플레이트 부근에 도달하자 폭포수와 같은 낙폭을 보이며 떨어지는 스플리터.

극에 다다른 동체 시력으로 그것을 캐치해 낸 해준의 상체가.

'공이 날아오는 궤적 그대로 휘두른다!'

마침내 폭발적으로 풀려나왔다.

따아아아아악-!

[What?! 쳤습니다! 시티 필드를 저공 비행하며 갈라버리는 라인드라이브 타구! 이 타구는--!!!]

그리고.

터어엉-!

짧은 충돌음과 함께 타구가 플라스틱 의자를 강타하고는 튀어 오르자.

[..holy shit----! 이건 말도...------]

시티 필드는 경악과 경이로 물든 정적으로 빠져들었다.

데구르르-

그사이 한 남자의 발치 부근으로 굴러간 공.

그것을 내려다본 남자는 희미한 웃음을 띠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해준을 바라보았다.

빠른 속도로 베이스를 돌고있는 해준은 손가락을 들어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의 스타들을 잡아먹는 괴물이라.."

뉴욕이 낳은 최고의 스포츠 스타 이스마엘 콥.

"그보다 어울리는 비유가 또 있을까. 이런 선전포고라니."

그의 발아래에는 해준이 쳐낸 공이 떨어져 있었다.

+++

뉴욕 메츠와의 3차전.

루키이기에 심적 압박감을 이겨내기 힘들 것이라던 메츠 코치진의 생각은 역으로 그들의 선발 투수에게 작용하고 말았다.

아웃 카운트를 하나 남기고 해준에게 31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동점포로 내어준 아트 그로츠.

그는 결국 루이스 화이트와 제이크 포드, 드레이븐 래리로 이어지는 다저스의 타선을 감당하지 못하고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LAD 7 : 3 NYM]

최종 스코어는 7-3.

뉴욕 메츠와의 시리즈를 싹쓸이하는 데 성공한 LA다저스.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시티 필드는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양 일순 차가워졌었지만, 정신을 차린 뉴욕 시민들은 해준의 기록을 축하하는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믿기지 않은 다저스의 대역전극! 그 물꼬를 튼 것은 영의 2루타! 그리고 강의 언빌리버블한 홈런입니다. 경기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뜨지 않은 채 박수를 보내고 있는 뉴욕 시민들! 이게 바로 베이스볼이죠, 이게 바로 메이저리그입니다! 결과를 떠나 본인들에게 놀라운 즐거움을 안겨주었던 강에게 관중들의 커튼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던 해준은 다시 벤치를 나와 뉴욕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화답했다.

뉴욕 시민들은 그런 해준을 얄밉다는 듯이 바라보면서도 툴툴거리는 음성 속에는 감탄, 질시, 부러움 등의 감정이 드러나고 있었다.

"제기랄, 이럴 수밖에 없잖아. 그런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봐버렸으니."

"강-! 뉴욕 메츠로 올 생각 없어? 구단주 머리에 총을 들이밀어서라도 역대 최고의 대우를 받도록 해줄게!"

"사랑해요 강-!"

"It's fucking crazy! 자신을 보러온 기록 경쟁자에게 홈런 타구를 쏘아보낸다라?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하던 일이야! 강의 스타성은 말도 안 될 지경이라고."

"역시 보러 오길 잘했어. 아웃 카운트를 겨우 하나 남기고 경기가 뒤집히지만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야."

뉴욕 지역 방송국 NYCBS의 리포터 밀라 디아즈.

그녀 또한 경기장에 맴도는 흥분에 감화됐는지 살짝 붉어진 얼굴로 해준과 인터뷰를 시도하고 있었다.

"강-! 오늘 경기는 정말 인크레더블했어요. 당신이 MOM으로 뽑히는 건 당연하겠지만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인터뷰를 먼저.."

이러한 분위기는 비단 시티 필드에 국한되지 않았다.

MLB 중계를 통해 생중계를 시청했던 전 세계의 팬들.

이들은 계속해서 열광적인 반응이 쏟아내는데 온 정신이 팔려있을 정도였다.

-이 경기를 라이브로 보다니! 이건 내 인생 최고의 경기가 될 거야!

-강의 라인드라이브 타구가 이스마엘의 옆자리를 강타했다고! 영화에서 나왔다면 말도 안된다 욕을 퍼부어줬을 텐데! 심지어 현실에서 벌어질 줄이야!

-이걸로 홈런, 도루가 각각 41개, 40개인 건가? 강은 전반기 성적만으로 MVP가 되기 충분해!

-뉴욕 시민들은 뭐 하는 거야? 단지 박수로 끝날 게 아니라고! KANG에게 끝나지 않는 MVP 찬트를-!

-확률로 따지자면 얼마나 희박한 확률인 거지? 전반기 마지막 경기, 기록이 걸린 마지막 타석, 자신을 보러온 라이벌. 그리고 그 라이벌을 상대로 홈런 타구를 보낼 확률 말이야!

-일일이 따지지 말자고. 그럴수록 머릿속만 복잡해져! 그냥 그의 플레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기만 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dude!

쿵-!

MLB 실시간 중계팀 리더 리카르도 어빙.

그는 아쉬운 표정을 책상을 내리쳤다.

"제기랄, 이런 말도 안 되는 광경이라니! 조금 더 일찍 이스마엘이 등장했다면 역대급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었을 거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되고 있는 이번 경기에 대한 반향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온갖 SNS, 사이트, 인터넷 언론을 가리지 않고 이스마엘의 등장과 해준의 홈런, LA다저스의 역전 장면이 예외 없이 그 모두를 휩쓸고 있었으니까.

경기 막바지에 잠깐 담겼던 광경이었기에 이 정도지, 사전에 알아차리고 제대로 홍보만 됐다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대박을 칠 건수였다.

"그래도 이건... 후폭풍이 믿기지 않을 정도예요. 경기가 끝난 뒤에도 트래픽이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잖아요! 하여간 강 이 선수는 하루라도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는 거 아세요?"

"그걸 제대로 담아내는 게 우리 일이지. 자자, 어서 각자 위치에서 실시간 이슈에 대응하라고! 오늘도 집에 갈 생각은 하지 말고!"

전반기 마지막 경기, 마지막 타석에서 31경기 연속 안타를 이어가는 때려내며 전 세계를 뒤흔들어버린 해준의 극적인 투런포.

"...후우. 이제야 좀 벗어났네."

덕분에 평소보다 유독 길었던 인터뷰, 팬들과의 시간을 보내고 클럽하우스로 돌아온 해준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바깥이 아직 좀 떠들썩하군. 하긴, 내가 생각해도 그럴만하긴 했어."

뉴욕 최고의 슈퍼스타, 퍼펙트 히터.

이스마엘 콥이었다.

< 샤베즈 레빈에 떠오른 별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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