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수에서 타자까지-101화 (101/137)

< 돌주먹 로키스 (1) >

101. 벤치클리어링 (1)

워싱턴과의 1차전이 끝난 다음 날.

아침부터 우중충하던 하늘은 기어코 경기 시작 전부터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결국 2시간을 대기한 끝에 우천 취소가 결정되고 나서야 다시 원정 호텔로 이동한 다저스 선수단.

이들은 휴식을 취하거나, 미흡하다고 생각됐던 전력 분석을 보강하며 내일 있을 경기에 대한 준비에 들어갔다.

올 시즌 다저스가 맞이한 첫 우천 취소 휴식.

하지만, 경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언론들은 워싱턴을 때리는 장대비처럼 수많은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루키 최초 4연타석 홈런포, 그 확률은?]

[역대 21번째 4연타석 홈런, 퍼펙트게임보다 적게 나와.]

[벌써 20홈런 근접. 배드볼히터 KANG의 압도적인 장타 생산 능력의 비밀]

[워싱턴의 전설을 재현한 슈퍼 루키. 워싱턴 팬들의 심장을 꿰뚫다!]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로 터져 나온 루키의 4연타석 홈런포.

그에 더해 보로디미르라는 메이저리그의 전설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 호쾌한 풀스윙까지.

이는 메이저리그를 다시 한번 강타하는 뜨거운 화젯거리로 떠오르며 하룻밤이 지난 지금까지 많은 팬들의 관심을 독차지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해준이 기록한 4연타석 홈런포의 하이라이트 클립은 유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1,000만 뷰를 훌쩍 넘기는 기염을 토해낼 정도였다.

협찬받은 장비들을 전해주기 위해 LA에서 워싱턴으로 뒤늦게 넘어온 오광녹.

그는 그런 기사들을 쭉 훑으며 반응을 체크하다 한 기사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명 겜블 사이트 겜블러즈 인 메이저 관계자, KANG의 4연타석 홈런 적중자 있다 밝혀... 500만 달러 수령 추정.]

"...응? 홈런은 해준이 형이 쳤는데 500만 달러는 누가 가져가?"

에이전트로서 클릭해보지 않을 수 없는 제목에 오광녹은 재빠르게 기사를 클릭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기사 전문을 읽어 내려갔다.

『.....(중략) 파워볼보다 확률은 높다. 메가밀리언보다도 확실히 높다. 하지만, 이곳에 사람의 욕망이 개입한다면 가능성은 한없이 0에 수렴한다. 겜블러즈 인 메이저 측은 이번에 탄생한 Kang의 4연타석 홈런 적중 결과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그 주인공의 신원을 밝힐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다만, 이 행운의 주인공은 한국에서 탄생했다는 코멘트와 함께...』

내용은 별 다른 것이 아니었다.

10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21번째로 나온 4연타석 홈런. 그 결과를 맞춘 사람이 탄생했다는 소리였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고 있는 오광녹으로서는 감탄사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와, 한국에서 누가 대박 터트렸는데요? 그걸 4연타석 홈런에 꼴아박아? 이건 진짜 어지간한 배짱이 아니면 못할 텐데요."

겜블러즈 인 메이저만의 특이한 배팅 게임인 투수, 타자 지정 방식.

이는 한 타석이 끝날 때마다 배팅을 이어갈지, 아니라면 수령을 할지 택하는 구조였는데 4연타석을 모두 맞췄다는 것은 3연타석이 터졌나왔을 때조차 고를 외쳤다는 소리였다.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도저히 택할 수 없는 선택.

실제로 3연타석 홈런까지 살아남은 5명의 적중자들은 모두 수령을 택했다는 내용이 기사 전문에 실려있었다.

그 소리에 헬스장의 보수 공사로 방 안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해준이 혀를 내둘렀다.

"500만 달러? 여태까지 내가 지급받은 돈하고 비슷하잖아?"

현재 자신에게 확보한 계약 금액은 1,500만 달러.

하지만 그곳에서 연방세와 주정부세, 에이전트 수수료 등을 제외한다면 정작 들어오는 돈은 그 절반 수준에 그친다.

물론 750만 달러라 해도 어마어마한 거금임은 분명하지만, 이것조차 시즌 기간 분할지급되는 형식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4억 달러 계약자라는 이름값에 비교한다면 다소 궁한(?) 상황.

특히나 미국이라는 나라는 재산에 걸맞은 지출을 요구하는 곳이기도 했다.

성격이 화끈하기로 유명한 드레이븐의 경우 클러비들에게 지출하는 팁만 해도 연간 3만 달러에 이르며, 평소 자선 활동을 즐겨하는 노아의 경우에는 다저스에서 주최하는 기부 파티에서 수십만 달러를 내놓는 편이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계약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해준으로서도 그에 맞는 지출을 보여야만 했다.

"그러고 보니 곧 마르쿠스가 여는 탁구 자선 행사도 있지?"

해준이 묻자 오광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주일 정도 남았나? 그때도 아마 고액 연봉자들은 다섯 자릿수 체크 정도는 기꺼이 내놓을껄요? 10만 달러 정도 내는 사람도 심심찮게 있을 테고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마르쿠스가 여는 자선 행사인데요. 지역 언론에서 취재도 많이 오고."

기부 문화에 인색한 한국에서 평생을 자라온 해준이다. 야구라면 몰라도 이런 문화를 선뜻 받아들이기는 힘들 법도 했다.

실제로 동양권에서 자란 동양계 선수들은 기부에 인색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기도 했고.

하지만 해준은 별달리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 나는 10만 달러 정도 내면 되겠네."

한화로 1억 2,000만 원에 가까운 거금.

LA의 집은 구단에서 1년간 렌트해준 펜트하우스, 차 또한 협찬으로 받은 것을 타고 다니던 해준이었기에 10만 달러란 금액은 여태껏 미국에서 와서 지출한 금액보다 큰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해준의 반응에 오광녹이 또한 잘 생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절세를 위해서라도 나쁜 선택은 아니죠."

실제로 미국 내 많은 고액 연봉자들이 기부에 적극적인 이유 중 하나로 세금 혜택이 꼽히고는 한다.

각종 기부 행사 참여가 많은 미국에서는 체면도 세우고 세금도 아끼는 꼴이니 아낄 이유가 없는 것. 그에 더해 메이저리거라면 기부에 적극적인 이유가 한 가지 이유가 더 존재했다.

"노아라고 수십만 달러를 기부 행사 때마다 본인 돈으로 내진 않으니까요. 본인의 기부 재단에 스폰서가 기부를 하고, 다시 그걸 함께 기부하는 경우도 허다해요. 우리도 미국에 넘어와서 가장 먼저 한 게 기부 재단 설립이었잖아요."

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기부 재단인 K99 Foundation을 설립하긴 했으니까. 대형 FA 계약을 맺은 메이저리거 중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딴 기부 단체가 없는 선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필수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난 아직 메인 스폰서가 없잖아?"

스폰서라고 한다면 여러 종류가 존재한다.

그중 메이저리거들 사이에서는 유니폼의 패치에 삽입되는 광고주들을 메인 스폰서로 불렀는데, 이는 수많은 스폰서 중 한 가지 유형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 외에도 선수의 성적에 따라 기부를 하거나, 차를 협찬하거나, 배트 혹은 스파이크, 하다못해 TV 같은 생활용품을 지원하며 자연스럽게 언론에 노출 되는 것을 노리는 회사들도 존재했으니까.

해준의 스폰서 관리를 맡은 그린 코퍼레이션 측은 협찬 형식의 스폰서는 모두 받아들인 상태였지만, 유니폼에 부착되는 패치의 스폰서의 경우에는 매우 깐깐한 조건을 고수하고 있었다.

오광녹은 아이패드에 떠오른 제안 리스트를 살피며 말했다.

"사실 이미 웬만한 대기업들에서는 제안이 들어온 상태에요. 소산 그룹, OG그룹부터 해서 중국의 칭화 그룹과 일본 하드뱅크가 유력 후보고... 아, 중동의 석유 부자도 있었고요."

"..석유 부자는 왜?"

"자기 이름 새겨달라던데요? 고등학교도 미국에서 나오고 UCLA를 졸업했다고.. 다저스의 열렬한 팬이래요."

"...."

그 말에 해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메이저리그의 무시무시한 성장세는 이미 북미 내에서도 NBA를 누르고 NFL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이고, 중국과 유럽 시장에서도 큰 호응을 끌어내며 전성기를 구가할 정도다.

그런 만큼 메이저리그에서도 손에 꼽히는 성적을 기록하는 자신에게는 별의별 요청들이 밀려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긴 하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대놓고 돈을 걸며 이상한 요청을 해온 사람은 처음이었지만.

"그 제안은 그냥 넘기자. 다른 곳도 많으니."

그렇게 해준과 오광녹은 오랜만에 난 휴식 시간을 이용해 스폰서에 대해 의논을 계속해나갈 때쯤.

-나 행크 그린이오. 그동안 기다린 보람이 있는 소식이지.

오랜만에 듣는 행크 그린의 목소리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였다.

-언더에라에서 스폰서 제의가 들어 왔소.

세계 최고 스포츠 스타들만을 후원한다는 업계 1위의 글로벌 기업.

스포츠 용품 회사 언더에라.

그곳에서 해준과의 접촉을 원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

밤새 내린 비를 몰고 왔던 검은 하늘이 조각조각 흩어지는 5월 19일.

구름 사이로 비친 햇볕이 워싱턴 내셔널스 파크에 내려앉았다.

워싱턴 내셔널스와 LA 다저스의 2차전.

1차전에서의 대패에도 불구하고, 워싱턴 내셔널스 파크의 관중석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제길, 보로디미르의 재림이라니. 현장에서 보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감이지!"

"저 99번이 Kang이라는 선수야? 프런트 놈들은 도대체 뭐가 문제길래 저 선수를 놓친 거지?"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해준이라는 선수가 워싱턴의 전설과 얼마나 비교할만한지 직접 보기 위해서였으니까.

그리고, 해준은 그에 보답하듯.

-------터엉-!

경기 시작과 동시에 바깥쪽 슬라이더를 밀어쳐 대형 타구를 만들어내더니.

[담장을 직격한 타구가 파울 지역으로 흘러갑니다! 우익수가 공을 더듬는 사이 이미 2루를 돈 KANG! 트리플! 트리플입니다!]

5회 초.

따아아아악-!

[더블! 이번에는 더블입니다! 워싱턴의 불펜 오브라이언과의 10구까지 가는 혈투! 그리고는 2루타를 때려내는 KANG입니다!]

한가운데로 몰린 행잉성 슬라이더를 두들겨 두 번째 장타를 기록한다.

하지만 해준의 활약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퍼어어엉-!

"아웃!"

[.....Oh my gosh! 이게 무슨 일입니까! 내야를 빠져나갈 것이 분명했던 빨랫줄 같은 타구를 백핸드로 캐칭! 그리고 괴물 같은 1루 송구! 워싱턴의 2사 만루가 그대로 증발해버립니다!]

5회 말, 극적으로 역전의 기회를 잡은 워싱턴.

그들의 공격 호흡을 말도 안 되는 유격수 커버 범위와 송구를 보여주며 끊어버린 것.

그제서야 워싱턴 팬들은 자신들이 중대한 착각을 했음을 깨닫고야 말았다.

"..저 선수가 보로디미르의 재림이라고?"

"말도 안 돼. 저 선수는 보로디미르가 될 수 없어..."

워싱턴의 전설이자 역대급 배드볼 히터로 불리는 보로디미르.

하지만 그는 그 괴물과 같은 컨택 능력의 소유자였을 뿐.

-----퍼억-!

[What a catch! 7회, 이번에도 워싱턴 타자의 안타성 타구가 그의 글러브에 걸려듭니다! 이건 뭐라 표현할 수가 없군요!]

메이저리그 역대급의 수비력도.

---------텅!

[이번에도 갑니다! 솟구치는 타구에 투수가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는군요! 쭉쭉 뻗어나간 타구는 전광판으로! 와우-! It's a grand slam! 다저스의 괴물 야수 KANG이 타석에서 또한 그 흉포함을 마음껏 드러냅니다! 2경기 연속 만루홈런!]

지금과 같은 장타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완벽한 공수양면, 그야말로 퍼펙트 플레이어로서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해준.

워싱턴 팬들이 할 수 있던 것이라곤 등골을 타고 오르는 전율을 느끼며 몸을 한 차례 떠는 것뿐이었다.

"다저스에 새로운 전설이 나타났군.."

"저게 고작 루키라고? 미쳐버리겠군. 앞으로 메이저리그는 어떻게 되는 거지?"

"미쳤군. 살면서 저런 수준의 선수는 결단코 본 적이 없어."

그렇게 정신을 차렸을 때의 스코어는 어느새 8-3.

LA다저스는 4타수 3안타 1홈런 4타점을 기록한 해준의 압도적인 활약을 앞세워 워싱턴을 다시 한번 제압하는 데 성공한다.

그 기세를 이어가 더블헤더로 열린 3차전에서 또한 승리를 거두며 시리즈를 모조리 가져간 다저스.

해준은 3차전에서 또한 5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하며 워싱턴에게 악몽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BOOOOM-! 다저스의 괴물, 2경기 연속 그랜드슬램!]

[워싱턴과의 3경기 12타점. 워싱턴 감독 '그의 존재는 압도, 그 자체였다.']

[KANG, 47경기 19홈런. 최소 경기 20홈런 달성할까?]

[이제는 쿠어스 필드로! 메이저리그의 홈런 기록을 노리는 KANG의 행보를 주목하라.]

그렇게 해준은 20홈런에 한 개를 남겨둔 상태에서 콜로라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북미대륙의 밤하늘을 가르며 덴버로 향하는 비행기.

쿠어스 파크에서의 경기는 처음인 해준으로서는 경험자들에게 미리 조언을 구하기 위해 베테랑들의 포커판에 끼어들었다.

투수들의 무덤.

타자들의 천국.

해발고도가 비상식적으로 높은 그곳은 투타와 상관없이 많은 선수들의 체력을 앗아간다.

미리 경기를 준비하는 방법에 있어서 베테랑들의 조언을 들어서는 나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가장 베테랑 축에 속하는 마르쿠스의 답변은 평범했다.

"흠. 조언이라... 숨이 가쁘지. 조금만 뛰어도 많이 가빠. 그것만 알고 있으면 돼."

별다른 비법이랄 것이 있겠냐는 느긋한 표정.

1루수 드레이븐도 입을 열긴 했지만 별로 도움이 되는 소리는 아니었다.

"마르쿠스. 그건 네가 늙어서 그런 거야. 내가 젊을 때까지만 해도 워낙 팔팔해서 그곳이 쿠어스 필드라는 걸 몰랐을 정도였다고."

다만, 노아만큼은 조금은 괜찮은 대답을 들려주긴 했다.

"그런 걸 얼간이라고 하는거야, 드레이븐. 아무튼 별다른 노하우는 없어. 그저 타고난 거지. 그 토드 헬튼처럼 말이야. 유일한 노하우라곤 산소호흡기를 아기 시절 젖병마냥 물고 있어야 한다는 것 정도?"

그것조차 인터넷에서 검색하고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긴 했지만. 하지만, 이번만큼은 예상외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루이스가 도움이 되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제길, 이 느긋한 얼간이들은 벌써 그 사실을 까먹은 거야? 내가 말해주지. 거기선 공보다 주먹을 조심해야 할 거야."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 3위 콜로라도 로키스.

이들은 작년 9월, 다저스와 벤치클리어링에서 퇴장 6명, 징계 8명, 양 팀 벌금 합계 15만 달러라는 기록을 세운 팀이기도 했다.

< 돌주먹 로키스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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