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수에서 타자까지-100화 (100/137)

< 공공의 적Public Enemy No.1 (4) >

100. 공공의 적Public Enemy No.1 (4)

해준의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는 그 순간.

가장 뜨거운 반응이 터져 나온 곳은 현장도, 중계진도 아닌.

-..........?

돈을 걸었던 한국 네티즌들이 모인 오픈 채팅장이었다.

-...어? 어? 진짜? 이거레알트루?

-으아아아아아아! 홈러어어어언!

-갔으요! 갔으요! 요시! 요시! 그란도시즌!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넘어갔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편돌이 5분 만에 보름치 일당 벌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5배 역배 개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국뽕코인 떡상 간드아아아아!

-야 빨리 채팅방 이름 애국회로 바꿔라. 이런 어려운 시국에 외화벌이 하는 우리가 애국자 아니면 누가 애국자냐?

-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빈 하우서가 던진 초구의 속도는 100.3마일. 다음으로 던져진 괴물 같은 커브는 해준뿐만 아니라, 누가 오더라도 공략하기 어려워 보이는 수준이었다.

일방적으로 몰린 노볼 투스트라이크의 상황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 뒤부터 이어진 반전의 연속.

5구, 6구, 7구..

죽을 듯 말 듯, 위태로운 줄타기 속에서 조금씩 볼카운트를 뺏어내며 손에 땀을 쥐게 만들던 해준이 기어코 리드오프 홈런을 폭발시키고야 만 것.

당연하게도 그 반향은 거대했다.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워싱턴을 침묵시켜버리는 강의 리드오프 홈런이 터져 나옵니다! 커브가 약점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13구째 몸쪽 커브를 그대로 받아쳐 담장을 넘겨버렸어요!]

캐스터의 말대로 워싱턴 내셔널스 파크는 순식간에 침묵 속으로 빠져든 상태였다.

13구까지 가는 접전.

그 뒤 거짓말처럼 터져 나온 리드오프 홈런.

이것만으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인데, 조금 전 해준의 모습은 워싱턴에서 그 누구보다 강렬하고 짧게 불타올랐다 사라진 한 선수를 떠올리게 만들고 있었다.

"jesus.... 지금 내가 본 광경이 현실인가? 믿어지질 않는군."

"강이라는 타자가 보로디미르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긴 하지. 그때까지만해도 야구도 모르는 것들이 떠드는 헛소리라 생각했는데.."

"워싱턴의 전설인 보로디미르를 떠올리게 만드는 타자가 다저스에 있었다고? 제기랄! 그러고 보면 저 선수 우리도 영입하려고 했었잖아? 우리 팀 단장은 도대체 뭘 했던 거지? 4억이 아니라 5억, 6억을 쥐여주는 한이 있더라도 데려왔어야지!"

당연하게도 워싱턴 팬들의 술렁거림은 조금씩 커져갈 수밖에 없었다. 해준이 홈플레이트를 밟고 다저스의 더그아웃으로 사라지자, 이제는 꿈속에서 깨어난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현실을 부정하는 워싱턴 팬들.

중계 또한 계속해서 그 장면을 리플레이로 내보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상태였다.

[지금 채팅창에서는 워싱턴의 전설 보로디미르의 모습이 떠오른다는 코멘트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저 혼자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군요!]

[풀스윙을 거듭할수록,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는 공을 걷어낼수록 오히려 스윙 밸런스가 완벽해지는 이레귤러적인 타자 아니었습니까? 강이 그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는 것에 개인적으로 찬사를 보내고 싶을 지경이에요! 그것도 보로디미르와 완전히 천적 관계에 놓여 있던 그 게빈 하우서를 상대로 말이죠! 심지어 이번 경기는 워싱턴과의 게임입니다!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요?]

단순한 홈런의 수준을 넘어 워싱턴 내셔널스를 통째로 뒤흔들어버리는 분위기. 그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마셀 베이더는 이 불길한 흐름을 끊기 위해서라도 마운드에 올랐다.

그는 마운드에 올라 포수 미트로 입을 가리고는 게빈을 바라보았다.

"쳇, 애송이 자식이 느긋하게 돌기는... 이봐, 게빈. 운이 좋았을 뿐이야.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하지만 게빈은 인상을 구긴 채로 한 차례 침을 퉷- 배고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 최고의 공이었어. 그걸 쳐냈다면 다른 걸 던져도 쳐냈겠지."

좌타자라면 모를까. 상대는 자신의 커브가 그동안 무수히 잡아먹어 왔던 우타자다. 그렇기에 게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커브가 약점이라고? 그런 놈이 내 커브를 상대로 13구까지 버텨낼 수 있을 리가.'

더군다나 마지막 몸쪽 코스.

그 반응 속도와 확신이 담긴 스윙 궤적을 감안한다면 분명 노리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그 불쾌한 느낌을 몇 번이나 겪어 본 적 있는 게빈 하우서는 자신도 모르게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What the hel.. 내가 방금 보로디미르 그 빌어먹을 자식을 떠올린건가?'

던져도 던져도 끊임없이 걷어버리는 귀신 같은 스윙.

그렇게 정신을 차리다 보면, 어느새 모든 코스로 향하는 길이 끊겨 있음을 깨닫는다.

어쩔 수 없이 들어선 길은 그런 그가 덫을 놓고 기다리는 곳.

하지만 게빈 하우서는 그 사실을 부정하며 머릿속에서 그 기억을 애써 지워버렸다.

'조금 비슷한 것뿐이야. 배드볼 히터라는 것들이 다 거기서 거기지. 말도 안 되는 변태성. 그러니 닮았다고 생각했던 것뿐이다.'

게빈으로서는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마 쉽지가 않았다. 자신이 평생 뛰어넘지 못한 채 전설로 화해버린 비운의 천재. 해준이 그런 상대와 동등한 레벨의 타자라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니까.

"이만 내려가. 야구를 하면서 맞은 홈런이 몇 번인지 기억도 나질 않아. 날 리틀 리그의 키드 취급하지 말라고 마셀."

"...뭐, 네가 그렇다면야."

결국 마셀은 게빈의 어깨를 툭 한 대 건드리고는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게빈 하우서는 호흡을 가다듬고는 다시 투구판을 밟았다. 몸에 박힌 좋은 투구 리듬은 아직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니...'

오늘의 경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의 투구가 다시 한번 폭발적인 포구음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

잠시 뒤.

해준의 리드오프 홈런으로 승기를 가져올 것만 같았던 다저스.

하지만 이들은 게빈 하우서의 놀라운 역투에 그대로 억눌리고야 말았다.

부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퍼어어어엉-!

"스트라이크 아웃!"

부우우우웅-!

"스-윙 스트라잌 아웃!"

[게빈 하우서가 이번에도 3타자를 삼진으로 처리합니다! 2회를 마무리하는데 필요했던 공은 단 10구!]

1회, 홈런 뒤 이어진 KKK.

2회에서조차 다시 한번 KKK.

조금 전 선두 타자로 나서 삼진을 당했던 드레이븐 래리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루키는 도대체 저걸 어떻게 친 거야? 게빈 저 자식, 오늘따라 완전 미친놈이잖아?"

홈플레이트 앞에서 폭발하듯 솟구쳐 오르는 포심 패스트볼.

경험과 감각의 영역 밖에서 떨어져내리는 커브의 비정상적인 스핀과 각도, 그리고 속도까지.

분명히 오늘 게빈의 상태는 최고였다.

"흠, 오늘 경기는 자칫하다가는 잡아먹히겠는걸."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것이라 평가받는 다저스의 포수 마르쿠스 영. 그조차 그런 게빈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순수한 기백과 실력으로 다저스 벤치의 분위기를 휘어잡아버린 게빈 하우서.

하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조차.

따아아아악-!

[파울! 파울입니다!]

해준은 홀로 게빈 하우서를 압도해버리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3회 초, 두 번째 타석.

이번 타석에서도 벌써 8개의 공을 던진 게빈 하우서가 경악 어린 눈빛으로 해준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건 도저히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군요! 다저스의 스타들을 압도하는 게빈 하우서가 KANG의 앞에 서기만 하면 도저히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계를 극한의 천적 관계라 불러야 하겠죠!]

그렇기에 그 모습을 중계하는 중계석에서도.

"맙소사, 완벽하게 마이너 시절의 보로디미르와 하우서의 관계를 재현하고 있잖아?"

"야구란 놈이 이해 가지 않는 것들 투성이긴 했지만.. 이건 정말이지 놀랍군.. 놀라워."

기사를 써 내려가던 타이핑 소리가 멎어버린 프레스룸에서도.

전설이 되어버린 선수가 그대로 경기장에 나타난 것만 같은 모습에 경이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워싱턴의 벤치와 선수들, 관객들, 기자들.

그리고 게빈 하우서까지.

해준은 그 모든 시선을 담담히 받아내며 자세를 잡았다.

'확실히 보로디미르는 게빈 하우서와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일방적인 관계를 구축했어.'

눈앞에 떠올라있는 홀로그램.

온몸을 휘감은 감각과 함께, 이 메시지들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천적-피식 관계의 투수와 조우했습니다!]

과거 게빈 하우서와의 전적: 0.613/0.724/0.891

[게빈 하우서와의 대응 구종 레벨이 대폭 상승한 상태입니다.]

*포심 패스트볼(MASTER급) 70 -> 80

*커브(PP급) 60 -> 70

메이저리그를 뒤흔들었던 타격 능력에 비해 장타율은 현저히 부족했던 보로디미르. 그런 그가 9할에 가까운 장타율을 기록했을 정도니 이들 사이의 관계는 두말하면 입이 아플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그렇기에.

'천적 정도로 만족할 수 없지.'

해준은 오히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꼈다.

'여기서 고작 단타, 볼넷 정도에 그친다면 그건 그저 보로디미르의 수준이라는 소리다.'

게빈 하우서의 천적 보로디미르.

하지만 자신과 연결된 아웃라이어들은 그뿐만이 아니다.

패스트볼의 토니 디에고 블랑코, 슬라이더의 길버트 밥, 체인지업의 브랜드 맥케이까지.

이 모든 능력을 활용한다면, 자신은 지금보다 더더욱 높은 곳을 바라보고 손에 넣어야 했다.

'그러니..'

스파이크로 바닥을 꽉- 짓이긴 해준이 자세를 잡았다.

동시에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바짝 올라오기 시작하는 타격 감각.

'오늘만큼은 보로디미르를 뛰어넘는다!'

그렇게 게빈 하우서가 다시 투구판을 박차고.

"흐으읍-!"

휘둘러진 준비가 끝마쳐진 해준 배트가.

따아아아악-!

다시 한번 폭발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건 큽니다! 말도 안 되는 스윙으로 공을 걷어 올려버린 KANG! 이 공이 다시 한번....!]

5월 17일의 워싱턴 내셔널스 파크.

해준은 또다시 모두의 예상을 깨부숴버리기 시작했다.

+++

[LAD 7 : 5 WSH]

승 - 로스앤젤로스 다저스

패 - 워싱턴 내셔널스

승리 투수: 루크 브리튼(1과 1/3이닝 1피안타 1볼넷 2탈삼진 1실점)

패배 투수: 게빈 하우서(6이닝 3피안타 12탈삼진 3실점.)

세이브: 케빈 스티븐(1이닝 2탈삼진 무실점)

[LAD, WSH과의 1차전 승리! MOM은 다저스의 슈퍼 루키 KANG.]

[4연타석 홈런포, 그리고 그랜드슬램! KANG, 메이저리그 루키 역사상 최초 기록 수립!]

[4안타 4홈런 7타점 폭발! 내셔널리그 타율, 출루율, 장타율 1위 독식.]

[리그 득점 1위 KANG, 리드오프임에도 불구하고 타점은 3위에 랭크. 포지션의 한계마저 뛰어넘는 그의 저력!]

[보로디미르의 재림? KANG, 게빈 하우서에게 홀로 31구 투구 뺏어내.]

경기가 끝난 뒤.

언론의 흐름은 그야말로 제대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1, 3, 6회에 3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며 기어코 게빈 하우서를 강판시켜버린 해준.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을 하지 못했는지 기어코 7회 초, 메이저리그 첫 그랜드슬램을 폭발시키며 7타점 경기를 완성한 것.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보이던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를 정면 대결에서 박살 내버린 것도 모자라, 전설이 되어버린 타자 보로디미르의 배드볼 히팅 센스까지 본격적으로 내보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많은 팬들은 경악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게빈 하우서의 구위는 분명 괴물 같은 것이었어. 6회를 끝마치고 내려가는 동안 그는 12개의 삼진을 뺏어냈고 Kang을 제외하고는 단 한 명도 출루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걸 증명해!

-하지만 KANG은 그런 괴물을 상대로 3연타석 홈런포를 때려냈지. 7회에는 그랜드슬램까지 쳐버렸고 말이야. 이 다저스의 괴물에겐 한계가 없어!

-오늘 경기에서의 KANG은 확실히 보로디미르와 같았지. 난 이미 KANG의 티셔츠를 가지고 있지만, 그 아래에 보로디미르의 이름을 함께 새긴 저지를 하나 더 살 거야! 그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보기 드문 비운의 천재였고, 나는 그의 열렬한 팬이거든.

-다저스는 도대체 무슨 행운이 따르길래 저런 신인들이 족족 등장하는 거지?

당연하게도 평소보다 몇 배는 많은 코멘트가 온갖 기사에 달리고 있었다.

자신의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재현하던 게빈 하우서.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 최고의 슈퍼스타였던 그를 정면 대결에서 박살 냈다는 전적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으니까.

-다저스는 이제 쭉쭉 뻗어갈 일만 남았군!

-저 괴물을 누가 막을 건데? 내 생각엔 워싱턴과의 3연전은 싹쓸이고 다음 상대인 로키스도 장담할 수 없을 거야.

-장담할 수 없다고? 요즘은 일방적으로 쳐 발린 것 같다는 소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표현하나?

-괴물을 막을 상대는 같은 괴물뿐이지. 로키스의 괴물이라면 그를 막을만 할 거야!

그렇게 괴물들의 세계, 북미 메이저리그에 본격적인 지각변동을 일으키기 시작한 해준. 그 앞으로의 모습을 기대하는 야구팬들이 서로가 생각하는 대항마의 선수들을 꺼내보기 바빴다.

한편, 게시판 구석의 배팅 관련 스레드에.

이곳에서는 화제를 모았던 이번 배팅에 대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겜블러즈 인 메이저에서 배팅 한 친구 있어?

-글쎄, 나는 첫 타석부터 틀려서.

-그 뒤로 KANG에게 걸긴 했는데 배당률이 많이 내려갔어.

-처음부터 그걸 맞춘 사람이 있을까? 솔직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서 누가 KANG이 홈런을 칠 거라 예상했겠어?

-게다가 4연타석이지. 없다고 본다.

-수학적으로 희박했다고. 거기서 누가 커브라는 약점을 이겨내는 걸 넘어 홈런을, 그것도 4연타석을 칠 걸 알아?

그렇게 그 누구도 4타석에서의 모든 결과를 맞히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을 때쯤.

그 시각의 한국.

"으하하하하하-! 잘 있어라, 이 개새끼들아!"

구로구의 한 IT회사.

그곳에서는 미라클 해준이라는 구호를 연이어 외친 한 직장인이 퇴사의 꿈을 이루었다 전해진다.

< 공공의 적Public Enemy No.1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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