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수에서 타자까지-41화 (41/137)

41. 슈퍼 에이전트 (2)

[인천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슈퍼 에이전트 행크 그린]

갑작스러운 행크의 입국 소식은 국내 야구팬들 사이에서 큰 화젯거리를 몰고 왔다.

수많은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의 메이저리그 계약을 성사시켰던 남자였던 만큼, 누구라도 그의 입국 목적을 추측할 수 있었으니까.

바로 강해준의 메이저리그 진출.

본인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기에, 온갖 추측이 무성했지만 행크 그린의 입국은 그에 결정타를 가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레알 메이저 가나보네 ㅋㅋㅋㅋㅋㅋ

-아직 모름. 본인이 간다고 말도 안했는데?

└그건 님 희망 사항이고요;; 안가면 KBO에서 계속 키우게? 통산 0할짜리 타자가 4할짜리 되는 꼴 보고싶냐?

└나쁘지 않은데? 솔깃해. 게다가 이미 통산 타율 1할 돌파함 ㅋㅋㅋㅋ

-간다고 하면 다저스 갔으면 좋겠다. 한국인 메이저리거는 전통적으로 다저스지.

-난 양키스. 뉴욕 주전 유격수가 한국인 ㄷㄷㄷ 상상만 해도 오지는데.

-김치국 그만 마셔라;; 행크 그린 저 양반이 강해준 만나러 간다는 보장도 없지 않냐?

-강해준 말고는 없잖아.

-메이저리그 간다던 유장천은 이미 에이전트 있음. 강해준뿐이지.

-어서 꺼져버렸음 좋겠다. 강해준만 타석에 서면 우리팀 투수들 현기증 도지더라;; 그놈의 볼넷은 언제까지 줄 거냐?

└안주면 홈런 맞던데?

└솔직히 나 같아도 볼넷으로 거를 듯 ㅋㅋㅋ

유례없는 압도적 타격 실력으로 중무장한 채 KBO를 지배하고 있는 강해준.

역사에 남을 타자의 탄생 장면을 지켜보는 일은 야구팬으로서 즐거운 일이었지만, 그 역사의 희생자가 본인의 응원팀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강해준의 기록과 팬들의 반응이 그것을 증명했다.

[제목: 강해준을 메이저리그로 쫓아내야 하는 이유.txt]

1군 복귀 뒤 성적인데 간단하게 OPS만 정리해봄.

OPS가 뭔지는 알지?

장타율+출루율.

간단하게 말해서 아래 리스트가 강해준한테 탈탈 털린 순위다.

1.이칼코메드 전(3경기) OPS 2.587

2.코쿤스 전(5경기) OPS 2.214

3.시갈스 전(3경기) OPS 2.176

4.레나프 전(6경기) OPS 2.098

5.팔콘스 전(3경기) OPS 1.186

6.플레인즈 전(3경기) OPS 1.069

7.게이머즈 전(3경기) OPS 0.958

구라 아니냐고?

나도 지금 이게 꿈인가 싶다.

아무튼 이제 두 팀 남았다. 위저드즈랑 더히트는 제삿날 잡아놔라.

[댓글]

-??????

-우리 팀이 1위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강해준 선수. 언제 가실 거에요? 레드카펫 깔아드릴게요.

-우린 왜 2위냐. 왜 항상 이런데만 이름이 껴있어. 아, 진짜 호구쉐끼들;;

└지금 강해준한테 호구 안잡힌 팀이 없는데?

-이 선수 왜 메이저리그 안가고 한국에 있어요?

-그동안 가고 싶어도 못 갔지. 근데 이제는 우리가 쫓아내야 함.

-저..저 양심 없는 스탯 좀 봐봐 ㅅㅂ

-이제는 강해준이 한국의 배리 본즈가 아니라 배리 본즈가 미국의 강해준이라 불려야 한다.

└어그로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아무리 그래도 배리 본즈한테 비비기는 좀;;

-청원 올리고 왔습니다. 100만 달성하면 강해준 선수 메이저리그 진출한답니다.

└하고 왔습니다. 강해준 선수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코쿤스 팬 일동

-강해준 복귀 초창기에 멋도 모르고 상대했던 팀들이 죄다 상위권이네 ㅋㅋㅋㅋ

└ㅇㄱㄹㅇ 선두주자들 얻어터지는 거 보고 볼넷으로 피해간 애들은 OPS가 훅훅 낮아진다ㅋㅋㅋㅋㅋㅋ

└그것도 이젠 힘들듯. 세오레즈 타자들 슬슬 살아나던데. 이제 피해가기도 힘듦.

└그러니까 하루빨리 메이저리그로 내쫓아야지.

-마, 메이저리그로 꺼지라;; 보기만 해도 토나오네.

강해준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간절하게 희망하는 타팀팬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강해준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누구보다 열망하는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

"지금쯤이면 이야기 나누고 있겠지?"

"그렇겠죠. 그린 코퍼레이션 수장쯤 되면 한국 들어왔다고 관광이나 다닐 시간은 없으니까요. 곧바로 강해준 선수와 접촉했을 겁니다."

서울 세오레즈의 사장 이운요와 그의 조카이자 전력분석실 팀장인 김준해.

그들은 행크 그린의 입국 소식에 화색을 짓고 있었다.

선수 몸값을 올리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한다는 행크 그린. 그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는 탓이었다.

"그린 코퍼레이션.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 그 행크 그린이 직접 붙을 줄이야.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거물이 붙었어."

"우리로서야 나쁠 것 하나 없죠. 계약금액이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한테 돌아오는 돈도 늘어나는데."

이운요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개정된 한미선수계약협정.

그에 의하면 포스팅의 진행 절차는 단독입찰방식이 아닌, 30개 구단과 자유롭게 계약 의사를 나눌 수 있는 구조였다.

언뜻 생각하면 포스팅 입찰 비용이 사라진 만큼, 구단 측이 챙기는 돈은 전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전체 보장 계약 규모가 2000만 달러 이하라면 15%, 5000만 달러 이하는 25%, 그 이상부터는 30%가 우리에게 지급되죠."

바로 선수의 계약금액이 상승할수록, 그에 비례하여 가져올 수 있는 보상금액이 늘어나는 것.

그것이 선수 몸값을 올리는 데 있어서 세계 최고인 행크 그린의 입국을 그들이 반기는 이유였다.

이운요 사장이 물었다.

"예상 보장 금액은?"

"이건 까봐야아는데... 추측이긴 하지만 4000만 달러 이상으로 측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게나?"

이운요 사장이 놀라 되물었다.

아시아 리그 출신 타자들이 메이저리그에서 외면받는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김준해 팀장은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강해준 선수는 기존에 진출을 시도했던 타자들과는 다릅니다. 타격이 죽더라도 너무나 확실한 세일즈포인트가 있으니까요."

"그래, 그렇지. 그 수비가 있지."

뒤늦게 이운요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타격 성적이 너무 말도 되지 않아 잠시 수비를 잊긴 했지만, 역시 강해준의 진짜 장점은 그 수비에 있었다.

김준해 팀장이 이어 말했다.

"네, 메이저리그 역사를 뒤져봐도 찾기 불가능할 것 같은 수비 실력. 1점 1점이 중요한 투고타저 흐름세인 메이저리그 구단들로서는 눈이 돌아갈 만한 포인트죠."

그제야 이운요 사장이 만족스럽게 웃어 보이며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하긴, 스카우트들까지 보냈는데 눈이 옹이구멍이 아니라면 알 수밖에 없겠지. 강해준의 진정한 가치를."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강해준은 비싸게 팔릴 것이라는 확신이.

+++

그 시각, 코쿤스와의 3차전이 끝난 늦은 저녁.

모자를 푹 눌러쓴 해준은 숙소가 아닌 고척돔 근처의 조용한 카페에 모습을 드러냈다.

'돌이켜보면 믿기지 않는걸.'

해준은 이곳에서 그린 코퍼레이션의 수장, 행크 그린을 만나기로 되어있었다.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이 탄생할 때마다 항상 그 옆에서 미소를 짓고 있던 남자가 이번에는 자신을 찾아오다니.

백한타라 놀림 받던 자신이 그런 회사의 수장과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행크 그린이오. 그냥 행크라 불러주시오."

그런 그의 첫 만남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관리를 게을리하지 않은 장대한 체구와 그에 어울리는 두꺼운 손. 현역 운동선수라 해도 가지기 어려운 자신감과 카리스마를 온몸에 두른 남자.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역시 다르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행크는 자신만의 아우라를 강하게 내뿜는 남자였다.

하지만 더욱 인상적인 장면은 따로 있었다.

"그린 코퍼레이션 아시아 지사의 에이전트 오광녹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세오레즈의 전력분석원이자, 지난 6년을 함께 동고동락했던 친한 동생인 오광녹.

그가 행크 그린 옆에 서 있었다.

그것도 평소와 달리 깔끔한 차려입은 비즈니스 정장까지.

해준은 그 모습을 멀뚱거리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광녹아."

"네?"

"일단 다시 만나서 반갑고."

"..아, 네."

"미팅 끝나면 딱 한 대만 맞자."

+++

처음 오광녹의 퇴사 소식을 들을 때.

해준이 느낀 감정은 황당 그 자체였다.

물론 회사가 마음에 안 들어 퇴사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오광녹은 최근 들어 구단 운영 방식에 대해 불만을 자주 토로하곤 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말도 안 하고 사라져?'

무슨 청춘 만화 속에 나오는 사춘기 주인공도 아니고, 6년을 같이 보냈던 사람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사라지다니.

해준이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시간까지 가지게 만들 정도였다.

'보통은 꼴도 보기 싫어야 이렇게 사라지지 않나?'

그런 고민까지 하고 있을 때.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해준의 날카로운 시선을 견디지 못한 오광녹이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하하하, 둘이 정말 친하다고 하더니 진짜였군."

그 모습을 바라본 행크는 털털한 웃음을 터트렸다.

훌륭한 에이전트의 덕목 중 하나는 바로 선수와의 친밀감.

그런 면에서 오광녹은 이미 강해준의 에이전트가 되기 위한 조건 하나를 가지고 시작하는 셈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나중에 따로 묻고... 이제부터 이야기나 좀 해봅시다."

해준은 행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해준이 본론에 들어가기 원하는 것을 눈치챈 행크.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스터 오. 이제부터 통역을 해주시겠소?"

오광녹을 이 자리에 데려온 목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가 자신의 회사 소속 에이전트가 됐음을 알리고 해준에게 어필 하는 것.

나머지 하나는 통역을 겸한 것이었다.

하지만 대답은 오광녹이 아닌, 해준에게서 돌아왔다.

"통역은 필요 없을 겁니다."

해준의 말에 행크의 눈이 순간 크게 떠졌다.

어색함이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은 네이티브 스피커의 악센트. 미국에서 나고 자랐다 해도 믿을 수준이었으니까.

"...어, 형. 언제부터 그렇게 영어를 잘했어요?"

오광녹 또한 벙찐 표정으로 물었지만, 해준은 고개를 저었다.

"형은 원래부터 영어 잘했어."

실상은 아웃라이어와의 링크로 유지되는 영어 실력이었지만, 오광녹이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 오광녹.

하지만 그는 입을 다물기로 결정했다.

중요한 미팅 자리, 그것도 자신의 보스 앞에서 그런 실 없는 소리를 할 용기는 없었다.

감탄사를 터트린 행크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미스터 강은 이미 메이저리그로 향할 준비를 끝마쳤군. 야구 실력도 뛰어난데 언어까지! 이제 우리 회사와 함께 비행기를 탈 일만 남은 건가?"

그로서는 세일즈포인트가 하나 늘어난 셈이었다.

팀 동료들과의 불협화음을 줄이고 팀에 융화될 수 있는 조건을 하나 갖춘 셈이니까.

'보통 외국인 선수는 계약서 조항에 통역에 관한 것이 딸려 들어가지만... 이번에는 그 슬롯을 다른 옵션으로 이용할 수 있겠어.'

마치 에이전트 계약을 이미 마친듯 만족스럽게 미소를 짓는 행크의 모습.

하지만 해준은 아직 김칫국을 마시지 말라는 어조로 대답했다.

"당신이 내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될 겁니다."

최고의 에이전트로 이름 날린 행크 그린.

그렇다고 해서 그 이름값만을 믿고 에이전트 계약서에 사인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최고라 불리는 행크 그린조차 잘못된 계획으로 계약을 말아먹은 케이스는 수두룩하다.

하지만 행크 그린은 여전히 자신 넘치는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소리지. 그래, 당신에 대한 내 계획을 듣고 싶소?"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메이저리그로 가는 것."

"그걸 어떻게 이루어 줄 생각이죠?"

그 말에 행크 그린의 동공이 상어의 그것처럼 번뜩였다.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을 때 나타나는 그의 진짜 모습.

반면, 이어진 말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FA. 미스터 강. 당신은 FA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될 것이오."

포스팅이 아닌 FA.

언뜻 들으면 2년을 더 기다리자는 소리였다.

누가 들어도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였지만, 해준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무덤덤한 모습을 유지했다.

'여기서 끝이었다면 최고의 에이전트라 불릴 있을 리 없어.'

보통 에이전트가 포스팅 대신 FA를 노리자 제안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입찰을 신청한 구단이 없어 후를 기약하는 것이거나, 제 잇속을 챙기기 위해서이거나.

그 어느 것도 최고의 에이전트가 선택할 사항은 아니었다.

선수의 이익보다 본인의 이익을 더 중시하는 에이전트들은 많았지만, 그들은 최고가 아닌 사기꾼에 불과했으니까.

생각을 정리한 해준이 물었다.

"이유를 들어봐도 되겠죠."

그 모습에 이번에는 행크 그린이 눈을 번뜩였다.

'황당할 수도 있는 말에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침착을 유지한다. 좋은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지.'

고개를 끄덕인 행크 그린은 조금 전의 말에 조금 더 살을 붙였다.

"나라면 당신을 포스팅이 아닌 FA를 거쳐 메이저리그로 가게 만들어 줄 수 있소."

해준은 그 말속에 숨겨진 의미를 곧바로 알아챘다.

'나라면?'

사실 FA를 통해 메이저리그로 가는 것은 굳이 행크를 통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맡겨도 가능하다. 그냥 2년만 더 한국에서 뛰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다른 뜻이 있군.'

해준이 더 말해보라는 듯 바라보자, 행크는 그제야 만족한 듯이 웃음을 띠며 말했다.

"정확히는 올 시즌을 끝낸 뒤. 당신은 FA 자격을 얻어 메이저리그로 가게 될 것이오."

악마의 에이전트, 염소의 혀, 사기꾼 등으로 불리는 행크 그린.

하지만 정작 그가 마음에 들어 하는 별명은 따로 있었다.

상어Shark.

그는 구단이 흘린 피 냄새를 절대 놓치지 않는 남자였다. 상어의 그것처럼 동공을 번뜩인 그가 말했다.

"내가 그렇게 만들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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