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수에서 타자까지-35화 (35/137)

35. 레이저! (1)

서울 세오레즈와 부산 시갈스의 2차전이 열리는 북항 돔구장.

1차전에서 석패한 세오레즈는 세오레즈대로, 구장 최초의 스플래시 히트 기록을 빼앗긴 시갈스는 시갈스대로.

그들만의 사정과 경쟁심이 치열하게 부딪히는 이곳에서, 한 남자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믿을 수가 없군..."

디백스의 스카우트, 리처드 포스너.

평생을 야구와 함께 살아왔고, 원석을 골라내는 일은 업으로 삼아온 남자. 하지만 그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과연 베테랑 스카우트가 맞는 것인가 하는 의심에 사로잡혀있었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따아아악-!

[쳤습니다! 기술적으로 스플리터를 걷어 올리는 강해준 선수! 두 번째 타석에서 기어코 2루타를 만들어냅니다!]

마운드를 지키는 시갈스의 선발투수는 선웅진.

스플리터에 한해서라면 전 경기의 선발이었던 김형재보다 한 수 위라던 그조차 해준에게 장타를 허용하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스플리터라는 약점을 완벽히 털어버린 모습.

그런 그의 반응에 존 배쉬가 흘흘-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내가 말했지? 힘들 거라고."

자신만만하게 펜과 리포트지를 들어 보였던 리처드 포스너였지만, 경기가 진행될수록 그는 자신이 기재한 점수들이 혐오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1차전에서의 평가 점수와 문장들이 2차전에서의 강해준과 부조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마치 다른 타자라도 된 듯이, 극단적 레벨 스윙과 어퍼 스윙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강해준.

하지만 리처드 포스너가 경악한 것은 그 스윙의 질에 있었다.

"단순히 적응해서 쳐낸 게 아니야. 스윙 수준 자체가 달라졌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어퍼 스윙, 레벨 스윙, 다운 스윙.

프로 수준에 이른 타자들이라면 이 모든 스윙을 당연하게 구사할 줄 안다. 상황과 카운트, 구종에 따라 다르게 가져가는 것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주축으로 삼는 스윙 궤적은 한가지이기 마련.

해준은 그중에서 극단적 레벨스윙 구사자에 해당했다.

"덕분에 패스트볼에는 강점을 보이지만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에는 약점을 보일 수밖에 없었지. 어퍼스윙을 구사해도 기본이 되는 타격 매커니즘 자체와 부조화를 일으켜서 효과적이지 못했고."

그렇기에 스플리터를 쳐내기는 힘들다.

1차전의 첫 타석을 보았던 리처드 포스너는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두 번째 타석에서, 해준은 갑작스레 발전된 어퍼스윙의 궤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비록 삼진에 그치긴 했지만, 베테랑 스카우트인 리처드 포스너가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그리고 3번째 타석.."

그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마치 한 선수의 주니어 시절부터 프로에 이르기까지의 발전 과정이 한 경기로 압축된 것만 같았으니까.

첫 타석에서는 공의 중심은커녕, 커트도 만들어내지 못하던 스윙이 세 번째 타석에 이르자 강렬하게 공의 중심을 강타하고 있었다.

"어퍼 스윙을 축으로 삼는 타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세련된 모습이었어."

하지만 해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시갈스와의 2차전 경기.

선웅진의 뛰어난 스플리터에 고전하는가 싶더니, 다음 타석에서 또다시 벼락같은 궤적을 그리는 어퍼스윙으로 땅에 박히는 스플리터를 끄집어내 저 멀리 보내버린 것.

아웃 카운트 하나를 마치 진화의 기준점으로 삼는 것만 같은 비정상적인 향상속도.

존 배쉬는 멍하니 중얼거리는 리처드 포스너를 보고는 다시 한번 끌끌 웃어 보였다. 이 자식이 이런 표정을 짓는 것은 정말 오랜만였으니까. 그는 속이 뻥 뚫리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그러게 내가 뭐랬나. 이런 게 야구인 법일세. 제아무리 측정 장비가 발전하고, 스카우팅 기법이 발달해도 저런 선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등장하는 법이야. 모두의 예상과 편견, 부정을 보란 듯이 깨부숴버리지."

그리고 그런 선수들은 세월을 넘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전설을 남기기 마련이다. 리처드 포스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군. 내가 잘못 생각했어. 저 선수는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에도 뛰어난 대처 능력을 갖춘 타자였어. 왜 그 모습이 천천히 발전하듯이 드러나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지만 말이야."

그 말에 존 배쉬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비틀렸다. 마치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표정. 그리고는 눈을 살짝 좁히며 리처드 포스너를 바라보았다.

"이봐, 리처드. 정신 차리게."

그 의미심장한 반응에 리처드 포스너가 되물었다.

"..내가 또 다른 것을 놓쳤던가?"

분명 강해준이 저런 어퍼 스윙을 선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패착이었다.

관찰력 부재이든, 선수의 의도적 행동이든, 아니라면 우연의 산물이든. 자신이 리포트를 작성할 때 그 부분을 놓쳤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렇기에 그 변화된 부분까지 고려하여 다시 스카우팅 리포트를 작성해 보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존 배쉬는 마치 그것이 오답이라는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여전히 어리둥절한 리처드 포스너.

그런 그에게 존 배쉬가 뻔한 것을 묻냐는 듯이 되물었다.

"어째서 저 모습이 스플리터에 국한되었다고 생각하지?"

"뭐?"

"힌트는 여기까지. 보면 알 거야. 보면."

리처드 포스너는 그 모습을 보며 무더운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한기가 도는 것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떠올린 한 생각, 그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눈앞에서 강해준이라는 선수를 직접 보고, 그 놀라움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그 가능성만큼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사람이 그럴 수가 있나...'

리처드 포스너는 그라운드 위의 해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 선수가 보여주지 않은 가능성이 얼마나 더 있을지, 그것이 미치도록 궁금해졌으니까.

+++

세오레즈와 시갈스의 2차전.

세오레즈는 강해준의 싹쓸이 3타점 2루타를 앞세워 시리즈를 동률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5타수 3안타 3타점, 스플리터로는 막을 수 없는 강해준의 폭주?]

[또 터졌다 강해준! 시갈스 이준호 감독 '대응하지 않는 것이 대응책' 강해준보다 타선의 힘을 살리는데 집중할 것이라 밝혀]

그때까지만 해도 팬과 관계자들은 그저 놀랍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경기 전까지만 해도 스플리터가 치명적 약점으로 지적됐던 강해준. 그것이 헛소문이라는 것을 맹타를 휘두름으로써 증명해냈으니까.

하지만 3차전에 나설 시갈스의 선발투수는 시갈스의 심장, 주원형. 그렇기에 대다수 팬들과 전문가들은 강해준이 그 퍼포먼스를 유지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주원형은 앞선 투수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스플리터를 구사하는 투수였다.

[에이스 출격! 이준호 감독이 드러낸 자신만만의 이유]

[메이저리거급 스플리터의 소유자 주원형. 세오레즈의 앞길을 가로막다.]

[7월, 3승 무패 ERA 0.78. 이달의 투수 유력 후보 주원형. 세오레즈 전에서 수상 확정을 노린다.]

그렇게 모두가 시갈스의 승리를 내심 예측하고 있을 때.

대형포털사이트 스포츠란에 한 기사가 조용히 업로드됐다.

「죽을수록 강해지는 남자, 강해준.」

스포츠베어의 세오레즈 전담 기자 허상필 기자.

그가 2군에서부터 강해준을 취재해온 기록을 바탕으로 특집 기사를 기획한 것.

그 기사를 본 팬들의 반응은 찬성 반, 조롱 반으로 갈리었다.

-이 양반 만화 너무 많이 본 듯 ㅋㅋㅋ 일본 만화 주인공임?

-기사가 팩트를 적어야지 희망 사항을 적으면 어떡합니까? 스포츠 베어도 갈 데까지 갔네.

-이거 팩트 맞지 않냐? 이준석이 저격 칼럼 두 번이나 날렸는데 아직도 날아다니는 거 보면 맞는 거 같은데.

-그냥 우연이지;; 약점 없는 타자가 어딨냐? 그냥 아직 분석이 덜된 거야.

-분석이 덜 됐다고? 그럼 이준석이 한 건 뭐임. 그 인간 아이비리그 나온 수재라던데.

-경제학과 나왔다고 경제 살리냐? 노벨상 수상자들 데려다 경제정책 짜보라고 해도 현상 유지는커녕 말아먹는 게 비일비재한데 겨우 학부 레벨 졸업 가지고 유세는 ㅋㅋㅋㅋ

하지만 소수의 팬들은 바로 반응을 내보이기보다는 유보를 택했다.

그들은 알았으니까.

-여기서 댓글로 떠들어봤자 뭐하냐. 어차피 경기 보면 알 텐데

-ㅇㅇ 맞는 말. 이제 시작한다. 다들 그만 싸우고 TV나 켜라.

시갈스의 주원형을 넘지 않고서는 강해준의 고공 행진이 계속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결과는 오래 지나지 않아 드러났다.

---텅!

[강해준의 타구가 담장을 직격합니다! 첫 타석에서 아쉬운 땅볼을 기록했지만, 이후 불붙은 타격감을 이어나가는 강해준!]

따아악-!

"레프트! 레프트!"

[또 쳤습니다! 파울 라인 안쪽을 살짝 들어온 타구! 강해준이 2루를 향해 내달립니다!]

5타수 4안타 2득점, 그것도 4개의 2루타라는 압도적 성적.

강해준은 시갈스의 심장을 무너트리는 선봉장이 되었다.

-어? 형 잠깐만?

-진짜 죽을수록 강해짐?

-강해준이 강해짐

-이게 뭐야. 안된다는 건 다 해버리네 ㄷㄷㄷ

그런 강해준의 모습에 팬들이 경악하는 사이.

창원 게이머즈와의 3연전에서도 강해준은 자신을 둘러싼 소문을 다시 한번 증명해내는 데 성공한다.

-와, 조우민 슬라이더 실화냐;;

-메쟈급 슬라이더 ㄷㄷ

-해준이 형, 어제 조우민 만나서 슬라이더에 삼진이었다.

-두근두근. 아웃당하니까 더 기대하기는 처음이네.

창원 게이머즈의 핵심 불펜이자, 메이저에서도 통한다는 평가를 받는 슬라이더를 뿌리는 마무리 조우민.

1차전에서 그런 조우민에게 맥없이 물러나는가 싶더니.

따악-!

-안타다다다다다!

-와 진짜 죽을수록 강해짐?

-뭐야 이거. 실화?

2차전에서는 안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

하지만 제대로 된 타격기회는 이때를 끝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야, 그런데 게이머즈 좀 쫀 것 같은데?

-강해준한테는 대놓고 볼볼볼이네 ㅋㅋㅋㅋ

-1차전부터 그랬음.

-조우민도 마무리니까 들어간 거지, 다른 투수들은 상대할 생각 자체가 없지. 저 미친놈한테 스트라이크 던졌다가 피 본 투수가 몇 명인데 ㅋㅋㅋㅋ

3차전에 들어서자 대놓고 해준을 거르기 시작한 창원 게이머즈. 그도 그럴 것이 1군 복귀 뒤 11경기에서 타율 0.659 출루율 0.717 장타율 1.432로 2.149라는 말도 안 되는 OPS를 기록하고 있는 타자를 굳이 상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창원 게이머즈와의 3연전에서 1승 2패를 거두며 한차례 숨을 고른 서울 세오레즈.

그런 그들의 앞에는 3위 서울 코쿤스와의 3연전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린다. 팀도루 압도적 1위 코쿤스!]

[타고투저 시대를 역행하는 대도들의 향기. 순위마저 역행해버린 코쿤스의 역발상.]

[세오레즈에게 내려진 도루 경계보, 코쿤스의 발을 막아라!]

"...올 것이 왔구나."

그렇기에 세오레즈의 주전 포수 조진웅이 질린 표정을 짓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어떤 포수든 코쿤스 앞에서는 자동문이 되곤 했으니까.

그때의 무기력함은 정말 말로 형용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골똘히 도루를 억제할 방법을 고민하며 훈련장을 맴도는 조진웅.

한편, 해준 또한 고민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응 구종 레벨]

*포심 패스트볼 70

*써클 체인지업 35

*슬라이더 40

*스플릿 핑거 패스트볼 50

지난 경기들에서 쭉 끌어올린 변화구 대처능력.

하지만 눈에 띌 정도로 급상승한 그 수준에 상대 배터리가 걸어오는 승부들이 하나같이 너무나 까다로워진 것.

'웬만하면 볼만 던져오니 이건 뭐..'

이전 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놓고 볼을 던지며 칠 거면 치고, 아니면 나가라는 식의 볼배합. 당연하게도 장타를 만들어내기는 힘들었다.

존에서 벗어나는 공을 칠수록 범타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불가항력이니까.

물론 볼넷으로 출루하는 것만으로 본연의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은 그런 식으로 만족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하나를 가지면, 거기서 더 나아가야지만 직성이 풀린다.

'코쿤스도 비슷한 패턴으로 나올 확률이 높아. 그러면 나도 도루라도 해야 하나? ..아니다. 이건 힘들어.'

해준은 고개를 저었다.

코쿤스의 주전 포수는 강철 어깨로 유명한 양창섭. 올시즌 도루 저지율이 71.5%에 다다르는 괴물 같은 송구를 자랑하는 괴물이다.

'...음, 잠깐.'

그때 해준의 머릿속에 무언가 번뜩였다.

'송구?'

주자들의 발을 억제하는 것.

생각해보면 그것은 투·포수만의 역할은 아니었다.

[아웃라이어 스토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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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라이어 더 비스트The Beast 강해준 전용 모듈

도매가: 1500P

비싼 가격 탓에 무심코 넘겼던 특수 모듈.

해준은 그것을 보며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이유와 성적은 다르더라도, 상황 자체는 예전과 비슷했으니까.

'공격에서 기여하기 힘들다면..'

수비에서 메꾸면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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