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수에서 타자까지-2화 (2/137)

2.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타자 (2)

그 날의 경기는 완벽했다.

더히트를 상대로 기록하고 있던 6연패.

자신이 그것을 역대급 수비로 끊어버렸다.

내일은 다시 한번 한반도 기상 관측 역사상 가장 높은 기온을 갱신할 예정이지만...

'우리 팀은 경기가 없는 날이지!'

2026년의 한국프로야구리그의 경기 체제는 메이저리그와 같은 162경기. 그 타이트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월요일 휴무일은 사라졌다.

그럼에도 스케줄상 간혹 쉬는 날 정도는 존재했다.

그러니 설령 50˚C를 찍는다 하더라도 에어컨과 함께라면 상관없다!

'아니, 찍었으면 좋겠다. 나머지 팀들 다 말라 죽게.'

해준은 환경보호단체들과 기상단체들이 기함할 생각을 하며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최근 들어 이보다 더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딱 10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감독님이 부르지만 않았으면... 더 완벽했을 텐데.'

갑작스러운 박이인 감독의 호출. 서울 세오레즈의 멀티 유틸리티, 강해준은 불길함이 슬그머니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이전부터 매우 익숙하던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는 것 같기도 하고... 킁킁.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

똑똑-

"감독님, 저 해준입니다."

불길함을 안고 두드린 감독실 문.

"들어와라."

문을 열고 감독실에 들어갔지만 이어진 것은 어색한 침묵이었다. 자신을 뻔히 바라보기만 하는 박이인 감독과 할 말이 없는 해준.

'...아, 이 분위기 알 것 같다.'

그 순간 해준은 직감했다.

이거 망했다고.

그 사실을 확인해주듯 박이인 감독이 입을 열었다.

"고양 내려갈 짐 좀 챙겨라."

"잘못들었슴다?"

해준은 본능적으로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못알아들은 척, 이해 못한척.

고양, 서울 세오레즈의 2군 구장이 있는 장소. 그곳으로 가라는 소리의 의미는 단 하나였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잖아!'

그렇기에 해준은 못알아들은 척 버팅겨 보기로 했다.

농담일지도 모르니까.

박이인 감독의 유머 세포가 사멸한 수준이긴 해도, 날씨가 날씨인 만큼 한 번쯤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더위를 거뜬히 견뎌내시기에는 연세가 있으시잖아? 정신이 살짝 나...'

해준이 현실 도피를 하는 사이.

박이인 감독은 다시 한번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게다가 확실하게 듣도록 끊어 말하기까지 했다. 끝에는 힘까지 준다.

"고양! 내.려.가!"

".....에이, 감독님 농담도 참."

"농담은 무슨. 진담이다. 홈구장 갈 필요 없이 바로 내려가라. 금요일까진 합류하고. 내일은 집에서 푹 쉬고."

"...진짜에요?"

"내가 너랑 농담할 짬은 아니잖냐. 장천이가 올라오기로 했다. 부상 다 나았단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해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해준은 재빨리 인상을 피고는 입을 열었다.

"유장천 그 새... 아니, 걔가 벌써 나았어요?"

"애초에 큰 부상도 아니었어. 큰 부상이길 바랐냐?"

'네, 바랬죠. 그것도 시즌 아웃으로.'

순간 속마음이 불쑥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가까스로 막았다. 믿을 수 없는 인내심에 스스로에게 경의를.

해준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유장천을 저주했다.

'그 빌어먹을 약쟁이 새끼! 한 한 달은 침상에서 비비적거리고 있을 것이지.. 아오..! 언론에 찔러버릴 수도 없고. 혹시 부상도 약 빨면 빨리 낫나? 아, 원래 부상에는 약을 쓰는구나. 잠깐, 그 약이 그 약이랑 같나?'

부모님께 혼나는 어린아이가 바닥 장판의 무늬를 보며 딴생각을 하듯, 해준의 머릿속이 헛소리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준은 애써 정신 상태를 되돌리고는 재빠르게 전략을 변경했다.

'멍청한 척이 안된다면 불쌍한 척이라도..'

"아니.. 장천이 돌아와도 다른 자리도 있잖아요? 3루수라던가, 2루수 라던가. 저 외야수도 잘 봐요 감독님. 아시잖아요? 아니, 백업도 분골쇄신해서 열심히 해요. 저 게으름 부리는 놈 아니잖아요! 이것도 아시죠?"

해준의 애절함이 담긴 반론에 박이인 감독은 한숨을 쉬며 되물었다.

"좋아. 그럼 누구를 대신 내릴까. 6월 타율 4할 8푼 9리 건우? 홈런왕 경쟁하고 있는 조병민이? 이야, 이것 참. 200안타 도전 중인 재필이도 있네! 중견수랑 우익수가 그나마 비벼볼 만 한데.... 어라? 얘네 올해 풀 타석 소화하면 FA네? 좋아, 백업들을 살펴보자... 이런 어쩌나... 얘네들도 냈다 하면 미친놈처럼 치고 나가는데?"

문제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주전이고 백업이고 미쳐 날뛰어버리는 팀원들 덕분에. 여기에 박이인 감독이 쐐기를 박았다.

"나라고 너 내리고 싶어서 내리겠냐? 어떤 미친 감독이 내야수 외야수 전부 최상급으로 수비하는 수비수 내리고 싶겠어. 그런데 해준아. 우리 구단 특징이 프런트 야구 아니냐 프런트... 까라면 까야 돼. 그 프런트께서 요즘 얘들이 주전이고 백업이고 할 거 없이 개나 소나 3할대 쳐대는 바람에 수비로 1, 2점 막는 건 간에 기별도 안 간대요!"

본인도 답답하다며 평소 무뚝뚝하던 박이인 감독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그 모습에 해준도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가겠습니다. 고양 가면 되잖아요."

그렇게 2군행이 확정됐다.

+++

다음 날이 되기 무섭게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서울 세오레즈, 유격수 유장천 1군 엔트리 등록.]

[끝내기 수비 야수野獸 강해준. 결국 2군으로.]

[폭주하는 세오레즈 타선, 강해준의 자리는 없었다.]

[타격 없는 수비수, 앙꼬 없는 찐빵?]

택시를 탄 채 2군 구장으로 향하던 해준이 그중 한 기사를 클릭했다. 스마트폰의 스크롤이 드르륵 내려갔다.

『예상된 결과였다고 말한다면 옳을까?

2일 오전, 서울 세오레즈의 1군 엔트리에 변동이 생겼다. 어깨 부상으로 이탈했던 주전 유격수 유장천(25)가 등록됨과 동시에 전날 경악스러운 수비로 승리를 지켜낸 강해준(25)이 엔트리에서 말소된 것. 수비 실력만큼이나 경악스러운 타격 성적에도 꾸준히 1군 자원으로 기용되던 강해준이지만 세오레즈의 프런트는 백업마저 3할을 기록하는 타자들에 비해 경쟁력을 잃었다고 판단, 결국 2군행을 통보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것이 사실이지만.....』

뻔한 내용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기사. 댓글이 하나도 달리지 않은 것을 확인한 해준은 다른 기사를 찾아 클릭했다.

'[오성웅의 베이스볼] 시리즈. 이 기사는 볼만하지.'

전문가의 지식을 대중의 눈높이에서 잘 버무리는 이 기자는 많은 사람이 구독하고 있는 시리즈였다.

이번 타이틀은 '야수 강해준의 득(得)과 타자 강해준의 실(失)'.

글을 읽어내려가는 해준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6년 전, 한국 야구에서는 이 말을 의인화라도 한듯한 선수가 등장했다. 바로 서울 세오레즈의 멀티 백업 수비수 더 비스트(The Beast) 강해준(25). 야수(野狩)와 같은 움직임을 지닌 야수(野手)라 하여 비스트라 불리는 이 선수는 전문가들과 팬들 사이에서 수많은 갑론을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었다.

...........(중략)........

그렇다면 이 선수의 득과 실은 무엇일까?

득이라 한다면 프로 6년 통산 29.76에 달하는 경악스러운 dWAR(수비 기여도). 연평균으로 따져보자면 이 선수는 수비로만 5승 가까이 기여 한다는 소리다. 물론 한국 프로야구의 수비 기여도에 대한 산출 방식이 논란의 대상이라는 것은 알지만 독자들의 직관적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스탯보다 적절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은 무엇일까? 바로 –19.84에 달하는 통산 oWAR(공격 기여도)다. 강해준 선수가 타석에서 풀타임을 소화할 시 연평균 3.3승을 잃는다는 소리다. 물론 이 두 스탯을 단순 합산 시 통산 WAR 9.92, 연평균 WAR 1.65로 준수한 백업 선수 수준이지만, 바로 이 부분에서 많은 사람의 의견이 갈리기 시작한다.

백업 선수의 레벨이라면 이런 극단적인 언밸런스 선수보다는 공수양면에서 안정적인 선수를 사용하는 것이 낫지 않냐는 의견부터, 수비 스탯 산출 방식이 잘못됐을 뿐 실제 야수로서 강해준의 가치는 그 몇 배에 달하기에 중용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그렇다면 현장의 의견은 어떨까?

2일, 이 기사가 올라가기 1시간 전, 서울 세오레즈는 강해준을 1군 엔트리에서 말소했다. 이 행동이 앞으로 서울 세오레즈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클린 보이가 악성 댓글을 감지합니다.〕

[BEST] SK**8

백한타 결국 내려가네. 그래도 가끔은 보고 싶을 거다 인마.

└ 백한타가 뭐임, 강해준 아님?

└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타자 줄임말. 존나 유명한데 야구팬 맞음?

└ 아닌데. 야구 안 봄. 레저 스포츠 아웃!

└ 개축팬 여기서 지*하지 말고 꺼져 좀 ㅗㅗ

[BEST] OWOA****

1할 중반만 쳐도 중용할 놈인데 통산 타율 6푼이 뭐냐 6푼이... 사회인 리그만 뒤져도 프로에서 1할 칠만한 사람들도 수두룩할 텐데.

└ㅋㅋㅋㅋㅋㅋ 얘들아 이 아재 좀 봐라. 사회인 데려다 놓으면 1할은커녕 공만 봐도 지리고 엎어질걸? 야구공은 잡아보시기나 했소?

[BEST] BAMM****

그래도 어제 우리 타격고자 백한타 없었으면 게임 터졌다. 이신우 타구 질 실화? 40대인 게 안 믿기네. 아무튼 난 솔직히 끝내기라고 생각하고 껐는데 커뮤 들어가니까 세오레즈가 이겼더라;; 강해준 수비 실력 천상계;;

└확실히 강해준 아니었음 더히트 홈이라서 공격도 더 못해보고 끝내기 졌지. 그래도 당분간 세오레즈 홈 경기 연전이라 끝내기 당할 일 없을걸? 저 미친 핵 타선 좀 봐라. 다음 상대팀 투수가 다 불쌍해지네;; 당분간 강해준 생각은 1도 안 날 듯.

[BEST] 꾸웨엥엑

-[속보] 에드 강 백한타 선생 2군행, 광고주들의 눈물에 주가 떡락 조짐 보여...

[BEST] 오*고요지*고요

클린 보이 바보 멍청이 똥개.

이번 2군행에 대한 네티즌들의 의견은 다양했다.

아쉽다는 의견부터, 발암 유발자가 사라졌다는 소리까지. 해준은 그중 하나를 읽고는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백한타? 에드 강? 이 별명 처음 부른 놈 잡히면 일단 반 죽이고 본다.'

에드 강은 수비든 타격이든 강해준에게 걸리면 이닝 종료와 함께 광고가 나온다는 소리였다.

별명이 보이는 족족 열심히 싫어요 버튼을 누르며 해준은 쭉 댓글들을 읽어내려갔다. 확실히 예전보다 해준의 2군행을 아쉬워하는 팬들의 숫자가 많이 줄어 들어있었다.

'타자는 결국 빠따인가...'

해준은 눈을 질끔 감아버리고 화면을 꺼버렸다. 타고, 아니 타신투병의 프로야구판. 이런 환경 속에서는 백날 필드 위에서 날고 기어봤자 도로 아미타불이다. 결국은 투수와 타자가 주연으로 짜져있는 판. 팬들은 1점을 뺏기면 2점을 내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애써 눈을 감아도 댓글의 내용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1할... 그래, 1할 중반. 딱 그 정도만 쳤어도 2군행을 통보받진 않았겠지. 아니, 차라리 반대였으면 어마어마했겠지?'

타격만 잘하는 지명 타자, 수비만 잘하는 야수.

그 차이는 극명하다. 타격 스탯만 좋은 지명 타자는가 FA에 떴다 하면 100억이지만, 수비 스탯만 좋은 야수는 30억만 불러도 배때기가 불러 터졌다며 욕 처먹기 일쑤였다.

'잘돼봐야 백업, 잘해도 상황이 따라주지 않으면 2군이나 들락날락 하는 선수.'

해준도 본래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생 시절, 메이저리그에서까지 주목받던 대형 유격수로 수비는 말할 것도 없고 타격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뽐내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뽑힌 뒤에는 호기롭게 한국 야구를 평정하고 메이저리그로 가겠다 떠벌리고 다녔다.

그렇게 프로 데뷔 1년 차. 두 번째 타석에서 사건이 터져버렸다. 그때를 떠올리자 해준은 자신도 모르게 바지를 있는 힘껏 쥐어 당겼다.

트라우마로 남아버린 기억, 보이지 않는 공, 굳어버린 몸.

"그때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물론 고등학생 때 날고 긴다고 프로에서까지 잘하리라는 법은 없다. 기본적으로 프로란 그런 날고기던 놈들이 모여서 경쟁하는 곳. 그 사건이 아니었더라도 실패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쯤.

"도착했습니다."

차가 부드럽게 멈춰섰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저 멀리 스포츠타운 내에 있는 고양 2군 구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 감사합니다."

돈을 내고는 인사를 건넨 뒤 내리려는 해준. 그때 택시 기사가 그를 붙잡았다.

"강해준 선수 맞죠? 서울 세오레즈에서 뛰는 그 선수."

"네, 맞습니다만... 사인이라도 해드릴까요?"

해준은 부스럭대며 뒷좌석에서 아직 꺼내지 않은 스포츠백으로 몸을 틀었다. 하지만 택시 기사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손사래를 쳤다.

"하하하, 괜찮아요. 아들 녀석이 팬이라 야구장에서 받아온 그쪽 사인볼만 집에 10개는 될걸요? 다른 게 아니라, 힘 좀 내시라고. 표정만 보면 지옥이라도 끌려가는 것 같네."

'2군 구장이 지옥이긴 하죠. 특히나 한여름이면.'

하지만 마음속 이야기를 굳이 내뱉지 않은 해준은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본 택시 기사는 인상 좋은 미소를 짓고는 이어 말했다.

"아들 녀석이 그러더라고요. 야구장만 가면 다들 무표정으로 쌩쌩 지나쳐가서 무섭기도 하고 사인받기도 힘들다고. 그래도 강해준 선수는 웃으면서 잘 해주니까 의리로 야구 본다던가? 사람이 힘들수록 웃어야지, 표정 얼어붙어서 다니면 될 일도 안 되고 그래요. ...음, 이런 말 하면 아들 녀석이 꼰대라고 뭐라 할 텐데. 하하하, 좀 봐줘요. 내가 좀 그래서... 아무튼 파이팅!"

택시 기사는 웃음과 함께 주먹을 들어 보였다.

부으응--

잠시 뒤, 탁- 하며 문이 닫혔다. 해준이 스포츠백까지 챙겼음을 확인한 택시 기사의 차는 천천히 주차장을 나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해준은 작게 중얼거렸다.

"...파이팅."

저 아저씨의 말이 옳다. 세상이라도 무너진 것도 아니고, 표정이나 구기고 다닌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니까.

해준은 잔뜩 굳어있던 입꼬리를 있는 힘껏 끌어올리며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파이팅!"

그 순간, 다시 한번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웃라이어 링크 시스템 로딩 완료!]

[더 패스트볼 긱The Fastball Geek, 아웃라이어 토니 디에고 블랑코와 연결됩니다.]

그와 함께 눈앞이 암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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