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쩌다 배우-115화 (115/127)

〈 115화 〉 선 넘은 사람들.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팬들의 환호성에서 행복과 보람을 느낀다는 연예인.

이슬은 최근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주변 분위기를 통해 동생이 연예계에서 속칭 ‘떴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동생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기지 않지만, 평판만큼은 신경을 쓰는 그녀의 입장에서 최근 팬카페가 만들어지는 상황을 예민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이슬은 팬클럽이라는 단어 자체에 선입견이 있었다.

본인도 학창시절 열렬히 사랑했던 아이돌이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가고 삶에 치이다보니 팬의 사랑과 스타의 보답이라는 것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아버렸다.

연예인이 팬들과 감정을 주고받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환상을 심어주고 기쁘게 만드는 것이다.

연예인이 수익이 발생했다면 그것은 팬들을 행복하게 해주었기 때문에 비롯된 일종의 대가다.

냉정하게 보면 일종의 거래다.

그렇기에 덧없고 허무하다고만 생각했다.

“누나!”

거실에서 이온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슬이 보던 노트북을 들고 거실로 나갔다.

거실에는 여행용 캐리어가 활짝 열려 있고, 주변으로 옷가지와 여행 필수품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잠옷으로 입는 반바지 못 봤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온아, 이리 와봐.”

이슬이 노트북 화면을 보여줬다.

“됐어.”

이온은 자신과 관련한 뉴스기사를 보여주는 줄 알았다.

처음에야 자신에 관한 뉴스가 신기하고 재밌었지, 이제 와서는 크게 감흥을 주지 못했다.

“이거 보라니깐.”

타타타탁.

이슬이 자판을 두드렸다.

검색어는 짧았다.

나이온.

경쾌하게 엔터를 누르고, 주르륵 뜨는 카페 목록 가운데 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바쿠스(Bacchus).

연수·연희 자매가 얼마 전 개설한 나이온 팬카페 중에 하나였다.

이온이 헛웃음을 지었다.

“누나가 만든 거야?”

“미쳤어. 가족이 팬카페를 만들게.”

이슬이 펄쩍 뛰었다.

뭔가 찔리는 데가 있어 보였지만, 이온은 따지지 않기로 했다.

이온은 어딘지 허술해 보이는 팬카페를 훑어봤다.

“만든 지 얼마 안 된 것 같네?”

“내가 해도 이것보다는 잘하겠다. 만들 거면 제대로 좀 만들지, 하여간. 초딩이 만든 것 같잖아.”

이슬이 투덜거렸다.

“오~ 회원 수가 오십 명이나 되네?”

“그 중 한 명은 나야.”

“누나가 여기 가입했다고?”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만들었나 궁금해서 가입해 봤지. 근데 별 거 없더라. 개설된 지 일주일도 안 된 것 같은데 그래도 50명 모은 거라면 나쁘지 않아. 버려질 카페는 아닐 것 같아.”

“고마운 친구들이네.”

“인사말이라도 써 볼래?”

“여기보다 큰 곳도 인사말 안 남겼는데, 이런 데 글 남기면 팬들끼리 싸우지 않을까?”

“여기 애들은 매너가 좋아. 아직은 착한 애들만 있는 것 같더라고. 나름 규율이나 체계도 처음부터 잘 잡고 가는 것 같고.”

“그래도 공식 팬클럽으로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함부로 글 남기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아.”

“언제 공식 채널이 생길 줄 알고. 지금부터라도 팬들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해야지. 여기 팬카페가 조금 어설프긴 해도 운영자 마인드가 좋아 보여. 딱 보인다니까.”

얼른 쓰라고 보채는 누나였다.

이온이 고개를 돌려 누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사실..... 애들도 다 여기 가입했어.”

“애들?”

“수정이 다경이 영지 단비 뭐....”

“단비는 지도 뮤지컬 배우인 주제에 내 팬카페에 가입했다고?”

“단비가 걱정 많이 하더라고.”

“무슨 걱정?”

“라이징 스타의 경우 팬덤이 정리가 되지 않으면 극성스러운 애들이 여기저기 똥탕을 많이 튀긴다고 하던데.... 매너 없고 무례한 팬덤을 가진 배우와는 얽히고 싶지 않은 맘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잖아. 단비 말로는 팬덤의 극성스러움 때문에 배우가 어떤 면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대.”

특히 연극·뮤지컬 쪽 분위기는 일반 영화배우나 탤런트 쪽과 많이 다르다.

연뮤 쪽은 고인물이 워낙 많아서 배우들이랑 퇴근길 인사하고 배우와 너무 사이가  가까워서 쓸데없는 부심도 많이 부린다.

연극·뮤지컬 배우가 지상파나 영화 쪽으로 넘어오면 다른 팬덤과 쓸데없는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이미 연뮤판에서 검증된 스타를 왜 너희들 잣대를 들이대냐며 싸우자고 드는 이들도 있다.

얼마 전까지 이온은 일반인이었다.

그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팬덤의 세계가 있었던 것.

“혹시 누나와 애들이 이 팬카페 밀어주는 거야?”

“우리가 밀어주고 말고가 있을까마는. 매니지먼트 계약할 때까지는 이 카페처럼 정신 똑바로 박힌 애들 위주로 팬덤이 돌아가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혹시 여기 카페 가입자들에 누나 병원 식구들도 있어?”

“응.”

그렇다면 일단 이온과 친분이 있는 이들 위주로 돌아가는 친목모임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인사 정도는 써놓을 게.”

이온은 포털에 로그인해서 카페에 가입했다.

신생 카페답게 게시판 분리가 되어있지는 않았다.

최상단에 공지사항이 기재되어 있었다.

클릭해 봤다.

[배우 나이온을 응원하는 카페입니다. 서로 사이좋게 지내주세요.]

[카페 이용규칙을 꼭 준수해 주세요.]

돌발적으로 만든 카페의 공지다웠다.

과연 얼마나 이 카페가 존속될 수 있을지.

“그래도 이렇게 관심을 보내주니 고맙긴 하네.”

연예인들의 인터뷰를 보면 단골로 등장하는 말이 있다.

[팬 여러분들의 성원 덕분입니다.]

틀에 박힌, 습관처럼 입에 붙은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틀에 박힌 루틴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도 처음으로 확인한 팬들로 인해 한껏 설레고 행복했을 터.

이온 역시 언젠가 만나게 될 팬들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가족과 친구를 제외하고 무조건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어찌 설렘이 없을 수 있을까.

글쓰기 버튼을 누르자 권한이 없다는 알림이 떴다.

“카페도 가입해야지.”

“내가 내 팬카페에 가입을 해야 한다니.... 뭔가 좀....”

카페 가입버튼을 눌렀다.

카페 닉네임은 나이온으로 설정했다.

어차피 친목모임 성격이라고 생각해서 실명을 밝히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카페 가입절차는 은근히 까다롭고 복잡했다.

철저하게 회원을 가려서 받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질문에 대한 답이 상당한 덕력을 갖추지 못하면 적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진짜 친목모임인가 보네?”

“네 팬이라면 알 수 있는 것들이야.”

사실 포털에서 검색하면 알 수 있는 것들이기는 했다.

가입을 완료하고 게시판에 가입인사 글을 썼다.

- 안녕하세요. 배우 나이온입니다.

- 항상 응원해주고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잠깐!”

이온이 게시버튼을 클릭하려고 하자, 이슬이 막았다.

“이게 끝?”

이슬이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온이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누나를 보았다.

“좀 정성스럽게 써봐. 팬들 보라고 남기는 건데.”

“친구들, 병원 간호사 누나동생들이 주로 가입했다면서? 뭘 새삼스럽게....”

“카페 개설자와 운영자는 모르는 애라니까 그러네.”

왠지 아닐 것 같았다.

누나가 지인들까지 끌어들였다는 것은 뭔가 사연이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온은 썼던 글을 지우고 다시 썼다.

[반갑습니다. 나이온입니다. 항상 응원해주고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는 잠시 지도교수님과 과 후배들과 함께 유럽답사를 다녀옵니다. 졸업을 위한 답사이자 휴식을 겸해서 떠납니다. 다녀와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이온은 팬카페 멤버들 대부분이 지인일 것으로 생각해 사적인 내용을 적었다.

“아참! 내 잠옷 반바지는?”

“세탁기 확인해 봤어?”

항상 입고 자는 반바지를 입어야 잠이 잘 온다.

특히 해외에 나갔을 때 챙겨가는 잠옷이 따로 있었다.

이온이 다용도실로 달려갔다.

“내 동생 팬이 200명이 넘네~”

양대 포털을 다 포함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이슬을 포함해 동생들이 중복 가입한 것을 제외하면 전체 규모는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팬카페 활동을 하지 않지만, 동생을 좋아하는 이들도 상당할 터.

이온보다 먼저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단비가 말했다.

팬과 스타는 어는 정도 거리감이 있어야 한다고.

가까워지고 아는 사이가 되면 익숙해진다.

결국 관심도가 떨어져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스타와 팬이 거리감이 있기에 즐길 요소가 많다고 말했다

“언젠가 팬미팅도 하겠지?”

공식 팬미팅.

그런 걸 하는 날이 올지 이슬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김칫국부터 마시는 걸 수도 있고.

위이잉~

헤어드라이어 작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세탁한 반바지를 급하게 말리고 있는 모양이다.

이슬이 노트북을 덮고 이온에게 다가갔다.

“매니지먼트 컨택 몇 군데 더 들어왔다며?”

“응. 유럽답사 갔다 와서 차분하게 미팅 해보려고.”

“신지균 선생과 상의해 봤어?”

“선생님은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하시지 뭐. 답사 선물도 줄 겸 애들 집으로 오라고 해줘.”

“애들?”

“그래도 누나와 내 머리 두 개 보다 집단지성의 힘을 합하면 뭐라도 좋은 답을 도출할 수 있겠지.”

“친구 중에 지성이 어디 있어?”

“다경이는 그래도 법관이 될 지도 모르는데....”

“법전이나 달달 외웠지, 다경이가 사회를 알아 인간관계를 알아. 아, 계약과 관련한 법률적인 문제는 잘 알겠네.”

그렇긴 했다.

지성을 떠나서 다들 사회경험도 없는 애송이들이긴 했다.

“고모나 미국의 리브 오빠와 상의해보는 건 어때? 폴 아저씨도 있고.”

“액션아카데미 권 감독님하고 선배들과도 충분히 상의했어.”

“갑자기 일이 많이 들어온다며?”

<비객>을 마치고, 곧장 영화 <서커스 소녀> 감독 미팅을 했다.

이온에 대한 영화관계자들의 대접이 <비객> 때와 완전 달라졌다.

감독 본인이 직접 2주 동안 충분히 고민해 보고 캐스팅과 관련해 답을 주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아웃도어 브랜드 한곳과 모바일 게임 광고 제안도 들어왔다.

한국관광공사의 Feel the Rhythm of Korea의 다음 시즌 모델 제안도 들어왔다.

정식으로 <아이돌> 시즌2에도 합류하라는 제안도 받았다.

심지어 오찬기의 기획사에서 프로젝트 보이밴드 제안까지 있었다.

혼자 그 모든 일을 처리할 수가 없었다.

“유럽답사 가서 신중히 고민해봐. 처음부터 공을 들이고 있는 매니저도 있다면서.”

“.......”

“말해 봐.”

“뭘?”

“저울질 하는 회사.”

“선생님 회사, 내가 아무것도 아닐 때부터 잘 해주고 있는 캐디네 회사, 스타하우스 엔터.”

“코코아 엔터 산하의 그 스타하우스?”

“응.”

“대형 매니지먼트에 찍혔다며?”

“찍혔지.”

“근데 스타하우스가 영입 제안을 했다고?”

“그렇다는데?”

스타하우스는 콘텐츠 플랫폼 기업 코코아 산하의 연예매니지먼트 레이블이었다.

과거에는 가수 중심 기획사였지만, 현재는 종합 기획사로 거듭 난 엔터 쪽에서 중견 회사였다.

그 외에 이온이 좋게 보지 않는 액터앤스터디에서도 꾸준히 영입제안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비객>에서 배역을 놓고 경쟁했던 이형곤의 소속사인 트라이글로우 엔터까지 영입제안을 해왔다.

<비객>에서 유명세를 얻게 됨으로써 몸값도 함께 뛴 결과였다.

“혼자 벅차면, 다경이한테 괜찮은 변호사 소개시켜달라고 해.”

“알겠어.”

인생은 타이밍이다.

지금 시점에 이온이 유럽답사를 다녀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일말의 고민도 없이 서양사학과 하계 유럽답사를 가기로 했다.

솔직히 지쳤다.

<태황 광개토>부터 <비객>까지 정말 쉼 없이 달렸다.

최근에는 약간의 배역투사 후유증을 겪는 것도 같았다.

악동이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탓이다.

잠시 연기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온이 폴란드·체코 유럽답사를 떠난 사이, <비객> 시청률이 조금 빠졌다.

악동이 캐릭터의 퇴장이 불러온 영향이라고 분석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제작진은 충분히 예상했다는 듯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다만 신인배우의 퇴장으로 시청률이 빠졌다는 사실에 황혜경의 자존심이 상했다.

MBS 드라마국장은 연장방영을 제안하며 악동이의 재출연을 넌지시 타진했다.

드라마가 막바지로 치닫는 가운데 시청률 하락은 좋지 못한 징조였다.

“황작가,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의미에서 악동인가 하는 캐릭터 한 회만 다시 살려봅시다.”

“.....”

“엄 PD가 혹시나 싶어 걔 죽은 거 안 보여줬다면서.”

“......”

“시즌2 기획할 때 악동인가 뭔가 하는 캐릭터로 판을 크게 한 번 벌려보든가.”

“임진왜란 전투 시퀀스 찍게 제작비 좀 많이 주시던가요.”

“다 해줄게. 임진왜란이든 반지의 제왕이든 마음대로 찍어.”

MBS와 황 작가가 중대한 논의를 하는 가운데, 광복절 특집 MBS의 역사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온이 등장했다.

MBS 역사 예능 광복절 특집에는 한국홍보전문가로 유명한 게스트와 역사학도인 이온 그리고 역사 강사가 출연해 일본의 역사왜곡과 임진왜란, 국내 독립운동사에서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만약 소속사가 있었다면 이온의 광복절 특집 예능 출연을 만류했을지도 몰랐다.

일본에서 좋게 볼 리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극우들이 이온에게 반일 활동가 프레임을 씌울 수 있다.

하지만 이온은 <비객> 제작PD의 제안과 예능 프로그램 담당자의 섭외요청을 받고 망설이지 않았다.

소속사가 있었어도 고민 없이 출연했을 것이다.

역사학도로서 광복절 관련 프로그램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은 일본 극우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슈퍼스타가 아니었다.

당장 일본에서 이슈가 될 리가 없다.

안건우나 송민아가 출연했다면 사정이 달랐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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