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쩌다 배우-99화 (99/127)

〈 99화 〉 한치 앞도 모르는 세상.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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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지배하는 자, 그 이름 작가.

한국 방송계에서 탑 10 안에 이름을 올린 스타 작가의 힘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들은 한류시장까지 좌우할 정도다.

국내 방송가에서의 파워를 능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드라마 제작환경이 작가를 중심으로 변화한지 오래다.

시청자의 작품선택 기준 역시 작가 이름으로 흐른다.

무려 회당 원고료가 1억을 육박하는 탑클래스 작가가 모두 다섯 명이다.

그 중에 한 명이 송하나다.

탑 중에 탑은 누가 뭐라고 해도 로맨스물의 대가라고 불리는 최문숙 작가다.

그 뒤를 따르는 작가가 세계적으로 치맥 열풍을 불러온 강정희 작가다.

스타 드라마작가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김영숙 작가도 탑클래스다.

마지막으로 현재 <비객>을 집필하고 있는 황혜경이다.

코리안 좀비 신드롬을 일으킨 김민선 작가가 회당 5천 만 원을 받고 있을 정도니, 그 위급인 탑 5 스타작가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해준다.

분명 황혜경 작가는 히트 작가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을 할 때 여유만만하지 않다.

매 작품 피 말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행히 과거에는 시간에 쫓겨 대본 쓰기 바빴다면 최근에는 사전제작도 있는 편이라 숨통이 좀 트이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글이 안 써질 정도로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황 작가는 촬영 현장이나 프로덕션 오피스 방문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런데 최근 <비객>에 대해 부정적인 리뷰가 온라인상에서 퍼져나가고 있었다.

아역이 출연하는 2회 분만 방영이 되었을 뿐인데, 시청자 게시판이나 SNS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워낙 드라마에 대한 기대치가 박하다보니 지금까지 거론되지 않던 대본 문제도 튀어나왔다.

방영이 안 된 상태라면 모를까, 이미 작품이 들어간 상황에서 이러한 일이 불거지니 모두가 답답해했다.

몇몇 배우는 오디션과 대본 리딩에서 확인한 연기에 비해 현장에서 실력이 크게 떨어졌다.

PD가 어떻게든 배우들을 끌고 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황 작가는 대단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연이어 계속 히트만 친 작가인데, 방영 초기지만 드라마가 기우뚱하니 신경이 크게 쓰였다.

온라인상에서의 비판적인 여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에 15시간씩 꼼짝 않고 앉아서 대본을 써도 신경이 거슬렸다.

은근히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PD님~ 나 너무 스트레스 받아. 어떻게 좀 해줘.”

황혜정 작가는 방송가에서 ‘징징이’로 통한다.

PPL, 스토리가 안 풀려서, 혹은 캐스팅 문제 등등.

시시때때로 PD와 제작진에게 징징거리는 걸로 유명했다.

“꼭 땅재주꾼에 형곤이를 써야겠어?”

“잘생기고 기본기도 괜찮다고 황 작가도 마음에 들어 했잖아.”

“그게 다니까. 아유! 그러니까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이온이 오디션을 봤던 땅재주꾼 살판쇠는 전체 16부 중에서 초반 6부에서 죽게 되면서 사라지는 캐릭터다.

작가에서 소중하지 않은 캐릭터가 없겠지만, 이 정도로 집착할 이유는 없었다.

“섹시하지가 않아.”

“형곤이 정도면 괜찮지.”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몰라?”

PD는 물론이고 회의에 참석해 있는 촬영감독, 미술감독, AD도 잘 안다.

연예계에서 ‘섹시’가 관능미만 일컫는 것은 아니다.

“대중들로 하여금 매력이라는 일종의 착란 상태를 의도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능력. 그런 게 없어. 그냥 잘생기고 연기선생에게 배운 대로 적당히 좀 하는 남자 사람 연기자잖아. 형곤이는....!”

“또래에서 형곤이 정도 연기하는 애도 드물어. 게다가 인지도 없는 신인급에서는 더 찾기 어렵고.”

“송하나 작가는 어디서 소년미 풀풀 날리는 주제에 야성성 까지 품은 원석을 잘만 캐는데 난 도대체 뭐람....”

황 작가는 대단한 작가지만, 딱 하나 송하나 작가와 비교되는 점이 있다.

배우 부분에서 숨겨져 있고, 가공되지 않은 원석을 발굴하는 능력이 별로라는 사실.

이미 검증된 이들을 데려다가 잘 써먹는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였다.

“작가님.....”

“응? 조연출 왜?”

“혹시 <아이돌>에서 남미 교포로 나왔던 애 말씀하시는 겁니까?”

“응. 걔.”

“사실 우리 오디션 봤어요.”

“봤어? 무슨 역할?”

“살판쇠로요.”

“근데? 별로야?”

“솔직히 형곤이 보다 제 개인적으로는 좋았어요.”

“그런데 왜 안 뽑았어?”

황 작가의 고개가 PD에게 돌아갔다.

쏘아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PD님이 커트했어? 형곤이네 매니지먼트 회사 때문에?”

PD는 모르는 일이었다.

“작가님. PD님한테 오디션 테이프가 올라가지 않았어요.”

“왜?”

“뭐 때문인지 모르지만, 오디션 본 날 곧바로 출연이 어렵겠다고 하더라고요.”

“배역이 <아이돌>보다 작아서? 아니면 출연료가 적을까봐? 뭔데? 왜?”

황 작가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그녀는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감히 조단역급에서 버둥대는 녀석이 내 작품을 까?’

“<활빈>을 하고 있었나 봐요. 못하겠다고 캐디한테 그랬다네요.”

“조연출이 직접 들은 게 아니야? 캐디한테 들었다고?”

“예.”

“뭐 그런 싸가지 없는.......!”

황 작가는 그래도 최소한의 교양은 있었다.

입에 욕설을 담지 않으니까.

PD가 나섰다.

황 작가가 발작을 해서 회의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임 감독님?”

“예. PD님.”

“걔 액션은 어때요?”

임대한은 머뭇거렸다.

미운 놈이라 칭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신의 고향이자 정신적 지주인 액션아카데미 출신을 깎아내릴 수도 없었다.

따라서 두루뭉술하게 답을 내놓을 수밖에.

“액션아카데미 애들은 다 잘하죠.”

“임 감독님이 안 가르쳤어요?”

“제가 액션캠프 교육책임자로 있을 때 기수로 들어왔지요.”

“그럼 액션은 믿어도 되겠네.”

“....그렇죠. 누가 가르쳤는데.”

PD는 대화 상대를 조연출로 바꿨다.

“준기야. 네가 직접 연락 한 번 해봐. <활빈> 말고 다른 것도 하고 있는 게 있는지.”

“미팅하시게요?”

“응.”

“형곤이는요?”

“아직 정해진 거 없어. 황 작가랑 내가 직접 봐야 형곤이 대신 넣든 그대로 가든  결정하지.”

“B안에 있는 애들도 다시 보실래요?”

“됐어. <아이돌>에 나왔던 애만 보면 돼.”

“늦어도 내일 모레 안에는 미팅 잡아 볼게요.”

이형곤은 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살판쇠 역할을 따냈다.

사실 캐스팅 디렉터의 농간도 크게 한몫했다.

그의 소속사도 이 바닥에서 제법 유명하기 때문에 제작사에서도 환영했다.

그럼에도 작가와 PD는 형곤 대신 다른 배우로 교체하려고 한다.

배우가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하차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배우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게다가 이미 촬영을 상당부분 진행 한 상황에서 잘라버리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황 작가는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심지어 PD와 조연출까지 이형곤을 교체하는 사안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사실 형곤의 소속사에서 언론 플레이로 피해를 호소할 수도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닌 황혜경이니까.

대한민국 탑5 스타작가의 작품이니까.

신인 배우 하나가 작품 초반에 중도 탈락했다고 다른 소속 배우들까지 황혜경에게 찍힐 순 없으니까.

무술감독 많은 수가 장애등급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운동을 한다.

항상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스턴트맨은 몸이 도구이고 재산이다.

평소에 몸 관리를 소홀히 할 수 없다.

대체로 액션아카데미 소속 액션배우들은 출연 작품이 정해지면 거기에 필요한 기술을 집중적으로 연습한다.

이온은 <활빈> 이후로 고정으로 작업하는 작품도 없었고, 주로 단편과 독립영화에 출연하느라 맞춤형 액션 트레이닝을 하진 않았다.

대신 사극을 대비해서 부족했던 승마와 국궁을 중점적으로 훈련했다.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전국에 활터가 정말 많다는 것.

전국 각지에 400여 개의 활터가 있다.

집궁례(執弓禮)를 한 궁도인은 전국의 어떤 국궁장에 가서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보통 집궁례는 훈련을 시작하고 3개월 정도 지난 후 하게 된다.

이온은 액션캠프 심화교육부터 국궁을 시작해서 현재는 정식 궁도인이었다.

연습용 활이 아니라 전용 활과 화살도 갖추고 있다.

이온은 국궁이 너무 재밌었다.

그런데 친구나 지인들에게 추천하기는 망설여진다.

입문이 정말 쉽지 않다.

실제 활쏘기까지 꽤나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마치 요리사가 되려고 할 때 주방에서 설거지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연령층도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어서 자유분방하고 개인주의적인 젊은 사람들은 국궁장 분위기에 적응하는데 애를 먹을 수도 있다.

전통 활쏘기는 예의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활과 화살은 살상무기이기도 해서 안전사고에 대해서도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이온이 다니는 활터는 액션아카데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다.

선후배들이 사극작업에 들어가면 이곳에서 집중적으로 훈련을 했다.

오늘은 액션아카데미 대장인 권용찬 감독과 함께 활을 쐈다.

슉.

텅.

5개 화살을 1순으로 2순을 내고 나면, 활을 수거 하려 과녁으로 걸어간다.

이온은 권용찬 감독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과녁으로 걸어갔다.

“요새 독립군 뛰냐?”

“예?”

“독립영화 주로 찍으러 다닌다며?”

“단편도 하고 독립장편도 하고 그러고 있어요.”

“거기서는 무술감독이라며?”

이온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왜?”

“그냥요. 어쩌다 보니까....”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거야. 능력되면 감독이고 뭐고 하는 거지. 뭘 죄송한 척 하냐?”

“아무리 학생영화라고 해도. 좀 그렇죠. 제 짬밥에....”

“할 수 있으면 하는 거지. 남들은 하고 싶어도 못해. 대신 기수 망신시키지 말고.”

“당연하죠.”

활시위를 떠난 살은 과녁이 되었던, 땅이 되었건 한 번 부딪치고 나면 피로도가 쌓인다.

그래서 쉽게 부서지거나 파손이 발생한다.

흙이나 나무껍질 등도 닦아주어야 한다.

활과 줄도 관리를 해야 하고.

은근히 손이 많이 간다.

“감독님....”

“왜?”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요.”

“여쭤봐.”

“제가 예전 인터뷰를 봤는데요. 할리우드 진출이 목표라고 하셨더라고요. 그 꿈을 이루셨는데 어떠셨어요?”

“뭘 어때? 더럽게 힘들었어. 날 질투하는 놈들 때문에.”

“질투요?”

“네가 만약 한국의 무술감독인데 중국의 배우가 자기 스턴트더블을 데리고 와서는 그 사람이 뭔가를 창조하거나 현장에서 정해진 합을 바꾸면 기분이 어떻겠냐?”

“재수없겠죠. 자존심도 상하고.”

“현지 스턴트 코디네이터들은 다 나를 싫어했어. 경쟁상대잖아. 막말로 난 굴러온 돌이고. 내가 잘하면 할수록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으니까.”

“인종차별도 은근히 심하죠.”

“그래도 프로듀서나 감독, 배우들은 날 좋아하더라. 내가 진짜 열심히 했고, 그들이 할 수 없는 걸 보여주니까.”

이온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원래 그런 거다.

인종차별이고 굴러온 돌이고 간에.

정말 뛰어나고 열정적이고 진정성이 있다면 배척하기보다 친해지려고 한다.

“할리우드 진출하게?”

“이왕이면 큰물에서 놀아야죠.”

“큰물에서 놀기 전에 활이나 제대로 쏘지.”

“감독님은 반평생 쏘셨고 저는 이제 1년도 안 됩니다.”

이온은 팔이 저릿저릿할 정도가 될 때까지 화살을 쏘고 사대에서 내려왔다.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데, 폰이 진동했다.

“여보세요?”

- 나이온 배우님이죠?

“예. 액션배우 나이온입니다.”

- 예전 <비객> 오디션 봤었죠? 기억할지 모르지만 조연출 곽준기에요.

“안녕하세요. 조연출님.”

- 아직도 <활빈> 촬영 나가요?

“아니요. 요즘 학교 수업 들으면서 독립영화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 그렇구나. 그때도 말했지만, 나는 이온씨 좋게 봤어요.

“조연출님. 죄송한데요. 제가 삭발을 할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아쉽지만 <비객>에는 출연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캐디님께 말씀드렸었는데.... 다른 캐릭터는 할 수 있지만 삭발은 도저히 안 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 삭발?

“예. 조연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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