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억울하면 주인공 해.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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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청 산하의 아트센터.
이곳에서 드라마 <아이돌> 제작발표회가 열릴 예정이다.
청담동에서 스타일링을 받은 이온과 드라마 출연진들이 아트센터 건물로 들어섰다.
평소에는 공연장으로 사용하지만, 간혹 이렇게 제작발표회 장소로 쓰이기도 했다.
제작발표회 경험이 많다 보니 섭외도 편했고, 구청 측의 일처리도 빠른 편이었다.
암튼 이온과 출연 배우들은 도착하자마자 무대부터 확인했다.
당연히 음악방송 수준의 무대가 마련된 것은 아니다.
두꺼운 암막 커튼이 내려져 있는 썰렁한 무대다.
무대의 초라함은 바텐 조명으로 커버할 모양이다.
끽끽.
이온과 출연 배우들이 무대 바닥을 신발바닥으로 문질렀다.
뻑뻑했다.
이런 바닥에서는 미끄러지는 기술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
아직 기자들은 도착하지 않은 모양인지, 객석은 텅 비어 있었다.
“30분 후에 리허설 들어갑니다!”
이온과 출연 배우들이 현장 스태프들의 안내를 받아 준비된 대기실에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각자 몸을 풀기 시작했다.
가장 요란하게 몸을 푸는 것은 비보이 공연팀이다.
열심히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주연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각자 회사에서 계약한 샵을 다녀왔다.
“......”
이온의 분위기는 평소와는 달랐다.
평소에는 남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분위기가 흘렀다면 지금은 장난꾸러기 같다.
‘이게 어딜 봐서 아이돌 같은 거지......?’
대기실에 있는 대형 거울을 보며 이온이 그렇게 생각했다.
이온의 옷차림은 알록달록한 남자아이돌 무대의상 스타일이었다.
스타일리스트는 이온에게 빨간색 멜빵바지를 입히려고 했다.
이온이 완강하게 거부했다.
비보잉 할 때 거추장스러워 다칠 수 있다고 설득한 끝에 지금의 스타일로 바뀌었다.
상하의가 원색이다.
이런 패션을 키치 스타일이라고 한다.
걸그룹에 주로 키치 스타일을 적용하지만, 간혹 보이그룹에도 원색의 알록달록 패션을 적용하기도 한다.
힙합 패션에도 키치 스타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온으로써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비보이 세 명이 키치스타일의 패션이라면 KPOP 댄스 커버를 하게 될 출연진들은 차분한 세미 정장 차림이었다.
“리허설 하겠습니다!”
현장 진행 스태프의 말에 사전공연팀이 우르르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 ✻ ✻
지상파, 일간지, 잡지, 인터넷, 대안 언론 등 매체마다 다르지만, 보통 연예부는 크게 가요, 방송, 영화 세 부분으로 나누어 연예계 전반을 다룬다.
우선 가수들의 공연 현장, 가요계 이슈를 취재하는 가요 담당 기자가 있다.
방송 담당 기자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리뷰 기사를 쓰거나, 출연자들과 함께 프로그램 관련 인터뷰를 한다.
마찬가지로 영화 담당 기자는 시사회에 참석해 기사를 작성하고, 영화감독이나 배우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다.
이렇게 각자의 담당 분야가 존재한다.
그런데 실시간 연예 이슈나 사건·사고 소식을 챙기고 보도자료를 내보내는 일은 연예부 기자의 공통적인 업무다.
임성한 기자는 지상파 방송사 연예부 일진이다.
일진은 취재 담당구역을 책임지는 선임기자를 뜻한다.
임성한 정도 되는 짬밥의 기자가 몸소 제작발표회에 참석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만큼 <아이돌>이 기대작이란 걸 의미하고, 제작진과 출연진 면면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많이도 왔다.”
상당히 많은 매체가 참석했다.
포털에 등록된 활동 중인 언론사는 650개가 넘는다.
그 가운데 스포츠/연예 매체만 170개에 달한다.
그 모든 매체가 오지도 않고 올 수도 없다.
암튼 수많은 매체의 취재진과 Vnet 드라마국장, 책임프로듀서, 제작사대표, 제작관계자, 홍보담당자 등 드라마 관계자들이 함께 참석했다.
진행은 최근에 프리선언한 아나운서가 담당하는 모양이다.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5분 후부터 사전행사와 함께 Vnet 하반기 최고 기대작 <아이돌> 제작발표회를 시작하겠습니다.
TV는 24시간 내내 돌아간다.
화제가 되는 방송 프로그램은 심야 시간대에 행사가 개최된다고 해도 기사가 바로 나와야 한다.
따라서 연예부 기자에게 ‘신속성’과 ‘정확성’은 필수다.
임성한은 방송 전반을 담당하고 있다.
오늘처럼 기대작의 제작발표회나 간담회를 참석하게 되면 행사가 끝난 후 늦어도 15~20분 내에는 기사 작성을 완료해야 한다.
거의 실시간으로 기사를 송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임성한 기자 입장에서 제작발표회는 뭘 해도 그 나물의 그 밥이다.
안 봐도 비디오다.
간담회에서 나올 질문이나 대답 역시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천하의 요물이 뜬금없이 청춘 드라마를 썼다고 해서 뭘 잘 못 처먹었나 했더니, 티저나 예고편은 잘 빠졌단 말이야.’
순전히 송하나가 집필한 드라마기 때문에 몸소 제작발표회에 참석했다고 볼 수 있다.
- 지금부터 Vnet 청춘성장드라마 <아이돌>의 제작발표회를 시작하겠습니다!
갑자기 발표회장에 불이 꺼졌다.
보통은 제일 먼저 작품의 영상 시사로 포문을 연다.
제작진은 약 5~7분가량 되는 영상을 제작해 드라마 전반적인 스토리와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소개한다.
객석에 앉아 있는 참석자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했다.
파파팟.
조명이 들어오자 무대 위에서 드라마 출연진으로 구성된 KPOP 걸그룹 커버 댄스팀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한 조명이 무대를 수놓는 가운데, KPOP 히트곡 메들리에 맞춰 댄스팀의 군무가 펼쳐졌다.
얼마나 준비를 열심히 했는지 알려주는 무대였다.
“쟤들 배우 맞아?”
“현역 걸그룹 애들보다 잘하네.”
“당장 데뷔해도 되겠어.”
그런 말들이 관계자들 입에서 나왔다.
물론 덕담이다.
KPOP 걸그룹의 춤과 노래 실력과 감히 비교될 실력이 아니다.
이어서 남자 출연진으로 구성된 댄스팀이 무대로 올라왔다.
커버 댄스팀은 현역 아이돌 오찬기가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마치 쇼케이스 무대에 선 것처럼 최선을 다했다.
실제 아이돌처럼 제대로 끼를 발산한 것이다.
이들은 제작발표회의 주인공이 아니다.
하지만 사전행사도 기사나 사진이 포털에 실릴 것이 뻔했다.
또 제작발표회의 풀 영상이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공개가 된다.
Vnet의 여러 프로그램에서 자료화면으로 쓰일 수도 있다.
오찬기뿐만 아니라, 댄스팀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
원래는 KPOP 보이그룹 히트곡 메들리 중간에 댄스 브레이크를 넣을 계획이었다.
헌데 <아이돌> 안무가는 비보잉을 마지막으로 밀었다.
이온의 파워무브가 커버댄스를 시시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했기 때문이다.
“이번 무대에서 모두가 공평하게 주인공이 될 수 없어. 제작발표회 무대의 하이라이트는 찬기와 이온이 될 거야.”
안무가가 대놓고 커버 댄스에 참여하는 배우들에게 한 말이다.
어쩔 수가 없다.
이들이 실제 아이돌 그룹이었다면, 댄스 파트도 공평하게 나누고, 멤버 한 명 한 명이 돋보일 수 있도록 분배를 했겠지만, 출연자로 구성된 댄스팀에는 엄연히 실력차가 존재했다.
당연히 잘하는 사람을 전면에 내세울 수밖에 없다.
안무가와 이온은 함께 댄스 브레이크에서 비보잉을 하게 될 두 녀석에게 어려운 걸 요구하지 않았다.
복잡한 연계기술이나 연타도 없다.
석고라고 불리는 손 안대고 옆돌기(트릭킹 기술)로 등장해서 토마스를 두 번 돌고, 윈드밀로 갔다가 프리즈하는 걸로 끝이다.
프리즈 한 상태로 있는 두 사람 사이를 뚫고 이온이 무대 뒤쪽에서 옆돌기로 멋지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훌턴이라는 공중돌기 연타를 친 후에 콕크스크류를 돌았다.
비보잉으로 들어가기 전에 맛보기로 트릭킹 기본기를 살짝 선보인 것이다.
오오.
객석에서 드라마 관계자들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사실 어지간한 트릭커에게는 기본 중에 기본이다.
박수를 받을 만큼 어려운 걸 선보인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온은 바닥으로 몸을 던지며 한 손 짚고 물구나무선 자세에서 곧바로 에어트랙을 돌고, 앨보우 에어플레어를 한 바퀴 돈 후에 두 바퀴든 세 바퀴든 아니면 자신의 기록인 네 바퀴 반이든 원 핸드 에어플레어의 연타를 시도했다.
아쉽지만 자신의 기록인 네 바퀴 연타는 실패했다.
비보잉이 끝나자마자 이온과 두 녀석이 커버 댄스팀 무리에 합류했다.
그리고 안무에 수화가 들어가 있는 KPOP으로 커버 댄스 공연을 마무리했다.
짝짝짝.
객석에서 박수가 터졌다.
시원찮다.
취재진들 중 일부만 건성으로 박수를 쳤다.
대부분은 노트북이나 테블릿에 기사를 타이핑하기 바빴다.
먼저 공연을 마친 여자 출연진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취재진과 참석자들에게 인사했다.
사회자가 출연자 한 명 한 명을 호명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 멋진 공연을 보여준 <아이돌> 출연진들에게 다시 한 번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
출연진들은 박수만 받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 자리를 남녀주인공과 김성식, 박호섭 같은 주요 연기자들이 채웠다.
이후 포토타임이 이어졌다.
배우들의 단독사진 촬영과 커플촬영, 단체촬영 등이 이어졌다.
무대위에 단상과 마이크 세팅을 위해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이온아~, 이온이 우리 이온이~”
언제부터 우리 이온이가 된지 알 수 없지만, 박호섭이 친근한 척 굴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박호섭이 건우의 주위를 한 바퀴 돌고는 감탄을 내뱉었다.
“오올! 오늘 멋진데. 십 년은 젊어 보인다.”
“중딩같다고요? 그건 욕인데요?”
“중딩같이 입었구만 뭘.”
“키치 패션이란 겁니다.”
“알아. 나도 어릴 때 그런 옷 좀 입어봤어.”
“아이돌 하셨어요?”
“아니, 어린이 연극도 하고 B급 영화도 몇 편 찍어봤다.”
“전대물이요?”
“그 비스므리 한 거 있어. 흑역사니까 묻지 마. 인터넷에서 찾아보지도 말고.”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남의 흑역사 일부러 찾아볼 정도로 한가하지도 않고.
“너희들은 포토타임 없어?”
“사전행사 하기 전에 홍보마케팅에서 동영상도 함께 찍긴 했어요.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공개된다나 뭐라나. 그러더라구요.”
“신인 때는 그런 거 다 필요없더라. 무조건 본편 안에서 연기로 따먹어야 돼. 기사 뿌려봐야 금방 묻혀.”
“이제 간담회 가보셔야죠.”
“간담회는 무슨. 만날 레퍼토리가 똑 같아서 이 짓도 재미가 없다.”
박호섭이 이온과 헤어져 새롭게 단상과 음향시스템이 마련된 무대로 올라갔다.
공동인터뷰는 제작PD와 발표회 현장에 온 배우들을 상대로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 답변하는 시간이다.
담당 PD에게는 주로 작품 기획 의도와 장르, 배우 캐스팅 등 제작과 관련된 질문이 주어진다.
배우들은 각자 맡은 캐릭터에 대한 소개와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 촬영 소감, 촬영장 분위기와 에피소드, 포부, 시청률 공약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간담회에 참석하지 못한 배우들이 나란히 앉아서 간담회를 지켜봤다.
자기 할 일을 끝낸 이온은 돌아가고 싶었다.
갑자기 회식이 잡혔단다.
하는 수없이 동료들과 제작발표회가 끝날 때까지 객석 끄트머리에서 간담회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부럽네.”
오찬기의 중얼거림을 들은 이온이 고개를 돌렸다.
“넌 현역 아이돌이 되어서 저 모습이 부럽다고? 쇼케이스 많이 해봤을 거 아냐.”
“딱 한 번 해봤어요. 음방도 딱 두 번 나가보고.”
“송하나 작가님 작품에 출연했으니까 앞으로 꽃길만 걸을 거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힘내.”
“부러우면 지는 거죠. 더럽고 치사해서 꼭 주인공 할래요.”
이온은 뭐라고 해 줄 말이 딱히 없었다.
“하여간, 화려한 겉모습에 견줘 내실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니까. 쯧.”
임성한 기자가 혀를 찼다.
제작발표회는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고 출연자와 피디가 포토타임을 갖고, 기자의 질문을 받는 순서로 진행된다.
2시간 남짓 진행되지만, 정작 드라마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듣기는 힘들다.
사진 촬영이나 생중계를 위한 쇼타임 등에 대부분 시간을 할애한다.
몇 년 전만 해도 공동인터뷰 뒤 추가로 심층인터뷰 시간이 마련됐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사라지는 추세다.
“미현씨, 제작발표회가 말이야.”
임성한 기자 주변을 얼쩡거리던 BS E&M 홍보실 양미현이 얼른 다가왔다.
“네. 기자님!”
“다채로워지는건 좋지만, 정작 본질인 드라마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줄어드는 건 아쉬워. 전처럼 공동인터뷰 시간이 끝나면 배우와 취재진의 밀착인터뷰 시간이 주면 안 되나? 한 30분만이라도 말이야.”
“제작발표회 시간을 마냥 길게 잡을 수가 없어서. 뉴미디어 분야의 홍보마케팅 부분도 있고요.”
“뉴미디어는 빌어먹을!”
기존 전통적인 미디어인 레거시 미디어는 뉴미디어 혹은 대안미디어에 의해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기득권은 뉴미디어나 대안미디어에 대해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일정 지분을 그들에게 넘겨 준지 꽤 됐다.
“누가 한국대 출신 스턴트맨이야?”
양미현이 사전공연을 하고 객석에 나란히 앉아 있는 출연진을 돌아봤다.
“저 뒤에 다른 배우들과 앉아 있네요.”
“그 친구도 이번 작품에서 송하나의 남자 후보 중에 하나야?”
“그 정도는 아닐 걸로 알아요. 송 작가님의 기대주였다면 최소 서브 남주로 추천하셨겠죠.”
“조연이 아니라고?”
“엄밀히 말하면 조단역급이에요.”
특정 작가의 작품을 통해 톱스타로서의 입지를 다진 경우 그 작가의 남자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한다.
송하나 작가에게도 그런 남자 배우가 두 명이나 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장현기 역기 세 번째 송하나의 남자가 될 것인가를 놓고 연예부 기자들의 전망이 엇갈리고 있었다.
송하나의 마법은 남자 주인공에게만 국한 되지 않는다.
이른바 서브 남주에게도 통하고 있다.
이미 톱스타 반열에 든 주인공을 떠받치는 역할에 캐스팅 된 주조연급 배우가 주인공 못지않은 주목을 받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것.
덕분에 작은 배역이라도 송하나 작품에 출연하려는 배우들의 물밑 경쟁은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뜨겁다.
“하긴 다 고만고만한 연령대 배우들이 떼거리로 출연하니까. 여러 밑밥 중에 하나 일 수도 있겠구만.”
“신지균 배우님이 나이온이란 친구 연기를 봐주고 있대요.”
“배우의 연기 선생이라는 그 신지균?”
시큰둥하던 임성한이 관심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