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이미지단역.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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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때 심사 번호가 어떻게 되세요?”
순간 이온은 당황했다.
1차 오디션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개별 추천 오디션 배우시구나. 그쵸?”
“아, 예.”
이온의 경우처럼 작가·피디·캐스팅디렉터 등이 직접 추천한 배우는 서류심사와 1차 오디션을 프리 패스했다.
공개오디션이 아니기 때문인지, 사전공지가 매우 소홀했다.
더럽고 아니꼬워도 어쩌랴.
단역배우나 이미지단역들에 대한 대우가 보통 이렇다.
“이름이?”
“나이온입니다.”
특이한 성과 이름의 조합이라 인물담당 조연출은 출생년도를 묻지 않았다.
명단을 훑어보다가 나이온의 이름을 찾아 참석 표식을 남긴 조연출이 이온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C룸이 나올 거예요. 그곳에서 대기하시면 됩니다.”
따로 수험표를 주진 않았다.
2차 오디션 참가자 수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의미했다.
물론 이틀에 나눠서 오디션을 진행한다는 사실을 이온은 몰랐다.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암튼, 이온은 조연출이 가리킨 곳으로 걸어갔다.
여러 개의 연습실 가운데 C라고 적힌 명패가 붙은 방으로 들어갔다.
서른 개 정도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A4용지에 프린트 된 자신의 이름이 붙어있는 의자로 가서 앉았다.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집합시간이 가까워지자, 대기실 의자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세대교체라도 됐나......?’
스트리트댄서로 보이는 이들이 많이 보였지만, 모두 안면조차 없는 이들이다.
후배들이 한두 명은 끼어있을 줄 알았다.
스트리트댄스 바닥에서 군복무와 스턴트맨 교육캠프까지 3년여 시간의 공백이 피부에 와 닿았다.
“설마 처음 오디션 보는 분 없겠죠? 사전에 공지한 것처럼 자유연기 안 봅니다. 지금 나눠드리는 지정연기만 볼 겁니다. 춤이나 노래 등 특기까지 포함해 5분 안에 오디션을 마치셔야 합니다. 다들 좋은 연기와 특기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인물담당 조연출이 서른 명 정도 되는 오디션 참가자들에게 A4 종이를 나눠주었다.
드라마 스토리와 관련해서 어떤 정보도 없다.
대사만 달랑 있다.
좋게 본다면 무척 보안에 신경 쓰고 있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 본다면 정말 불친절한 오디션 대본이라고 할 수 있다.
“10분 후, 첫 조부터 들어가실게요.”
용무를 마친 인물담당 조연출이 오디션 대기실을 나갔다.
드르륵.
어흠.
아아아.
갑자기 대기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목을 푸는 참가자도 있고, 댄서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이온은 A4 용지 한 장의 절반을 겨우 채우고 있는 짧은 지정연기 대본을 꼼꼼히 읽었다.
상황은 설연휴인 모양이다.
이 장면 속의 두 연습생은 고향이나 집에도 가지 못하고 숙소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이얼로그만 놓고 보면 캐릭터를 전혀 유추할 수가 없다.
[가자.]
[어딜?]
[어디긴 어디야, 연습실이지.]
[명절에? 자유시간이잖아. 명절에 연습한다고 누가 알아주냐?]
[남들 쉴 때 연습을 해야지. 놀 거 다 놀고 쉴 거 다 쉬면 언제 데뷔조에 뽑히겠어.]
[실장님이 숙소에서 게임이나 영화 보면서 푹 쉬라고 했잖아?]
[그 말,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될 걸?]
[고향 못 내려가는 사람들끼리 맛있는 음식도 사먹고 가까운 곳에 바람도 쐬고 오라고 용돈도 주셨는데?]
[내가 너보다 이 회사에 6개월 먼저 들어왔잖아.]
[그래서?]
[쉬라는 말은 더 열심히 연습하란 말이더라.]
[젠장! 젠장! 젠장이다! 싫다. 진짜 싫다!]
오디션 참가자는 두 인물 중에 한 캐릭터를 선택해 리딩 혹은 연기를 선보이면 된다.
보통 눈이 가는 것은 맨 마지막 대사일 가능성이 높다.
아무래도 평범한 대화보다 짜증, 신경질, 분노, 좌절 같은 극단적인 감정이 분출되는 마지막 대사가 임팩트 있는 구간이다.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마지막 대사를 주로 중얼거리고 있다.
이온은 귀를 활짝 열고 근처에서 참가자들이 연습하는 대사를 들어보았다.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까지 연령대의 참가자들 대부분의 발성, 화술, 호흡 같은 기본기들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이온이 누군가를 평가할 주제가 못되긴 하지만.
‘한 명도 만만한 상대가 없겠어.’
내심 속으로 감탄했다.
스턴트맨으로 활동할 때는 단역들의 연기를 보며 어설프다고 느꼈었다.
따라서 단역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항상 중견연기자의 연기만 흉내 냈다.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 같은 오만한 생각을 버릴 수 있었다.
중고등학생 연기자들조차 탄탄한 연기력을 가진 걸 보며 절로 겸손해졌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진짜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있자면 그들의 연기가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다.
‘......악인들.’
최근 작업한 <지옥의 악인들> 촬영장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이온은 연기경험이 일천했지만, 그 당시에 비보이로서 무대에 서보았던 본능이 되살아난 바 있었다.
성우정 배우나 도창학 배우의 기세에서 밀려서 존재감이 지워질까봐 나름 발악을 했었다.
본능이었다.
그래서 감독이 시키지도 않은 ‘X새끼’ 같은 입모양 애드리브도 넣고, 담배를 피울 줄 모르지만 어떻게든 가짜 태가 안 나게 하려고 잔머리를 엄청 굴린 바 있었다.
비보이는 무대에서 에너지와 흐름을 상대에게 넘겨줘선 안 된다.
무조건 주도권을 자신이 쥐어야 배틀에서 승리할 수가 있다.
트릭커도 마찬가지다.
‘뽕 맞은 것처럼....! 오늘은 그냥 스웩으로 가자!’
이온은 자신의 연기력을 뽐내고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5분짜리 1:1 비보이 배틀 혹은 트릭커 배틀을 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으드득.
이온은 대본과 가방을 자신에게 배정된 의자에 두고 일어섰다.
그리고 몸을 풀기 시작했다.
인물담당 조연출이 참가자를 세 명씩 호명했다.
두 명은 복도에서 대기하고 한 명이 오디션장으로 들어가는 진행 방식이다.
액션아카데미에서 충분히 몸을 풀어두었지만, 이온은 매우 꼼꼼하게 신체 각 부분을 점검했다.
‘......!’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비보이들의 탐색전이 장난 아니었다.
배틀을 앞두고 있는 것이라면 나름 재밌는 신경전이 벌어졌겠지만.
무대를 씹어먹거나 평정할 것도 아닌데, 이온이 후배들과 꼴사납게 눈싸움 따위를 벌일 이유가 없었다.
참가자들이 세 명 씩 대기실을 빠져나갔고, 마침내 이온의 차례가 왔다.
“오찬기씨, 나이온씨, 윤현태씨.”
현직 아이돌, 현직 스턴트맨, 현직 비보이가 한 조로 편성되었다.
이온은 복도에 마련되어 있는 대기자 의자에 앉기 전에 미리 준비해 온 생수 한 통 비웠다.
✻ ✻ ✻
드디어 이온의 차례가 되었다.
오디션장으로 들어가자, 80평 대연습장 중앙에 심사위원석이 덜렁 놓여 있었다.
여덟 명의 심사위원 가운데 송하나 작가가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왼쪽 끝자리에는 최소망 무술감독이 앉아 있었는데, 그 옆에 앉아 있는 인물도 낯이 익었다.
댄싱오디션 TV프로그램의 심사위원으로 유명한 현직 아이돌그룹 안무가였다.
“......!‘
이온은 최소망 감독과 눈이 마주쳤다.
제법 진지한 모습에서 심사 위원 같은 분위기가 났다.
이온은 어딘지 그 모습이 웃겼다.
하지만 속으로 웃음을 삼키고 씩씩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스턴트맨으로 활동하고 있는 나이온입니다!”
마이페이스이자 상당히 싸가지가 없었던 송하나 작가.
그녀의 교만한 성격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현재 그녀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권위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압박감이 느껴졌다.
보통 신인이거나 오디션 경험이 일천한 배우라면 그녀 앞에서 주눅이 들어 제대로 자신의 능력을 펼쳐 보일 수 없을 것이다.
이온에게는 해당 사항이 아니다.
도리어 좋은 기회였다.
자신이 어느 수준인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뭐부터 할 거죠?”
송하나 작가 왼편에 앉은 중년 남자가 마이크에 대고 물었다.
명패에는 'PD'라고 적혀 있었다.
<아이돌>의 연출을 맡게 될 한기중이다.
두 편의 판타지 드라마를 연달아 히트시키고, 최근 가장 뜨거운 관심을 몰고 다니는 송하나 작가와 의기투합해 내놓게 되는 KPOP 드라마의 연출을 맡게 되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었다.
“비보잉부터 하겠습니다.”
“서두르지 말고, 충분히 준비되면 하세요.”
“예!”
배틀 무대에서는 무조건 기세 싸움이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내보일 때 결코 약해 보이면 안 된다.
오디션이라고 해서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이 한 번의 오디션에서 실패한다고 해서 인생까지 망하는 건 아니다.
그저 액션배우 인생에서 있어서 여정 중에 극히 일부일 뿐.
그렇다고 설렁설렁 할 생각 따위 추호도 없다.
“시작하겠습니다!”
모자와 체인 목걸이, 토끼발을 한편에 고이 모셔두고 연습실 중앙으로 돌아온 이온이 풋워크를 밟기 시작했다.
안무가와 최소망 감독의 눈빛이 유독 빛이 났다.
자신들의 전문인 댄스 파트였기 때문이다.
휙.
기본적인 식스스텝에 이어서 앞공중돌기를 돌았다.
연습실에서는 풋워크에서 곧바로 양 팔로 몸을 띄우면서 두 다리로 크게 원을 그리며 도는 토마스(플레어)로 들어가다가 윈드밀로 이어지는 흐름이었다.
그런데 이온은 오디션 현장에서 트릭킹 기술을 즉흥적으로 섞었다.
이어서 바닥에 어깨와 목을 대고 바닥을 구르는 플로어 기술에 이어 두 손바닥을 바닥에 대고 빙글빙글 도는 투싸우전즈(2000s)에서 프리즈, 넘어지고 난 후 쓰로잉과 유사한 플로어 기술 이후로 물구나무서기로 풍차처럼 도는 에어 트랙을 돌았다.
“오오!”
심사위원석에서 얕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온은 오디션용으로 준비한 것을 무시했다.
물론 그걸 기본으로 했지만, 소위 ‘필’에 몸을 맡겼다.
미리 준비한 것은 토마스-윈드밀-에어트랙 파워무브 연계였다.
그런데 투싸우전즈뿐만 아니라 나인틴(1990s), 머리와 함께 손까지 쓰는 대각선 헤드스핀이랄 수 있는 헤일로까지 펼쳤다.
파워무브 기술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대표기술들을 다 섞어버린 것이다.
윈드밀을 하는가 싶었더니 토마스로 이어지고 이어서 나인틴 나인으로 발전한다.
고난이도의 프리즈로 끝을 내는가 싶었는데, 다시 현란한 파워무브가 계속된다.
이런 연속 동작은 기술도 기술이지만 파워와 상상력이 없으면 할 수 없다.
‘쉣! 질러버렸네!’
이온은 머리를 비우고, 뜨거운 가슴에 몸을 맡겼다.
사실 도는 속도도 적당히 하려고 했다.
근데 파워와 에너지를 풀로 써버렸다.
후우.
비보잉을 마친 이온이 호흡을 골랐다.
특별히 호흡이 달리거나 힘이 부치진 않았다.
연이어서 연기를 해야 하기에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것이다.
“조연출님이 B를 해주시면 됩니다.”
움찔.
조연출이 곧바로 대사를 읽지 않고 머뭇거렸다.
오디션 처음으로 A파트를 하는 참가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가자.]
- 어디?
배우가 아니다보니 조연출의 리딩은 상당히 어설펐다.
이런 아마추어의 리딩을 받아 리액션 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온은 외운 티를 내는 걸 최대한 조심했다.
그리고 조감독의 어설픈 리딩에 대해 적당히 반응했다.
[어디긴 어디야, 연습실이지.]
감정 같은 것 전혀 담지 않았다.
솔직히 감정이란 걸 뭘 어떻게 담아야 하는 지도 모른다.
단편적인 정보만 가지고 추측해야 하는데, 어설픈 추측은 독이라 생각했다.
때문에 중학교때 PC방에 가려는 영재를 설득해 독서실로 데려가려던 상황을 떠올렸다.
당시 이온 본인의 기분과 경험, 느낌을 재현하려고 노력했다.
배우는 기본적으로 모방하는 존재다.
모방은 관찰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관찰력이 좋다는 건 배우로서 꽤나 좋은 자질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 명절에? 자유시간이잖아. 명절에 연습한다고 누가 알아주냐?
정말 조연출의 리딩은 최악이다.
말 그대로 책을 읽는다.
없던 몰입도 깨질 판이다.
이런 리딩에 연기를 했던 앞선 지원자들이 존경스러울 정도다.
[남들 쉴 때 연습을 해야지. 놀 거 다 놀고 쉴 거 다 쉬면 언제 데뷔조에 뽑히겠어.]
실제 중학교 때는 이온이 영재를 때렸다.
워낙 영재가 뺀질거렸기 때문이다.
- 실장님이 숙소에서 게임이나 영화 보면서 푹 쉬라고 했잖아?
[그 말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될 걸?]
- 고향 못 내려가는 사람들끼리 맛있는 음식도 사먹고 가까운 곳에 바람도 쐬고 오라고 용돈도 주셨는데?]
[내가 너보다 이 회사에 6개월 먼저 들어왔잖아. 쉬라는 말은 더 열심히 연습하란 말이더라.]
힘 빼고 하는 대사처리와 맥없이 하는 대사처리는 완전히 다르다.
이온은 최대한 일상적인 대화처럼 들리도록 담담하게 대사를 쳤다.
그럼에도 딕션도 나쁘지 않고 발성도 안정적이라 몇 미터 떨어져 있는 심사위원석에서도 잘 들렸다.
조연출은 마지막 대사는 생략했다.
그때 PD가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나이온씨, 마지막 대사 한 번 해볼래요?”
이온은 곧바로 대사를 치지 않았다.
“조연출님! 쉬라는 말은 더 열심히 연습하란 말이더라. 그 부분만 읽어주시겠습니까?‘
- 쉬라는 말은 더 열심히 연습하란 말이더라.
[젠장젠장.... 제엔장이다. 싫다. 진짜 싫어. 후우~]
이온은 앞서 자신이 했던 대사 톤을 그대로 유지했다.
결코 지르지도 대사를 뻗어내지도 않았다.
어설프게 지르다간, 대사가 뻗지 못하고 먹어들어 갈 가능성이 높다.
발성의 문제가 아니다.
경험의 문제다.
똑같은 감정처리나 화술에서 맛을 내는 배우가 있고 못하는 배우가 있다.
어설프게 지를 바에는 생활연기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그것이 이온의 이번 오디션 전략이었다.
관계자들이 원하는 것은 주인공이나 조연급의 감정연기가 아닐 것이다.
단역 혹은 이미지단역이 연기할 부분은 감정의 진폭이 클 리가 없다.
이온은 심사를 보는 관계자들에게 어떤 배역이라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거라는 안정감, 준비된 배우라는 인상을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기본기가 충실하다는 걸 짧은 연기만으로 어필할 수 있어야 하고.
“연기를 먼저 하고, 비보잉을 나중에 보여주지.”
최소망 감독이 다소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말을 송하나 작가가 받았다.
“전략 미스야.”
안무가와 프로듀서 그리고 제작자 등이 그녀의 말에 동의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연기가 영 아니라는 뜻은 아니야. 비보잉이 워낙 눈부셔서 생활연기하듯 힘 빼고 툭툭 던진 다이얼로그 연기가 임팩트가 없어 보인 것 뿐이니까.”
송하나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쌀쌀 맞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옆자리의 한기중 PD를 돌아볼 때는 눈망울에 만족감이 어렸다.
넙죽.
이온이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돌아섰다.
짧은 오디션 시간이 모두 끝났다.
“잠깐만!”
오디션장을 빠져나가려던 이온의 발걸음을 한기중 PD가 멈춰 세웠다.
“현직 스턴트맨이라고요?”
“예.”
“연기 경험도 많겠네요?”
“이제 2년차라 그렇게 많진 않습니다. 지금까지 열 작품 정도에서 스턴트와 액션연기를 주로 했습니다.”
“대사는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얼마 전 <지옥의 악인들>이라는 영화에서 성우정 선배님과 다이얼로그를 맞춘 적이 있습니다.”
편집에서 잘려나가 극장개봉 시에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연기를 했던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알겠어요. 수고했어요.”
다시 한 번 인사를 한 이온이 오디션 장을 완전히 빠져나갔다.
5분 안팎의 짧은 시간이지만, 모든 걸 다 쏟아냈다.
섭섭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
후회나 미련도 없다.
도리어 후련했다.
‘오늘 왠지 헤일로가 잘 된 것도 같단 말이야.’
댄스연습실을 나서는 이온의 머릿속은 오디션은 사라지고 없었다.
공군 비보이팀에서도 죽어라 연습해도 생각대로 되지 않던 기술, 헤일로.
동작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만큼 자세나 속도가 나오지 않았던 기술이다.
오늘은 속도, 자세 모두 괜찮았던 것 같다.
이온은 일산으로 돌아오면서 온통 오늘 즉흥적으로 짰던 파워무브 연계기술들을 복기했다.
‘내일 체육관 가서 다시 한 번 해보고. 형민이형한테 촬영도 해봐달라고 해야겠어.’
먹고 살 걱정만 없으면 정말 좋다.
액션배우란 직업이.
이온으로서는 복학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