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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배우-44화 (44/127)

〈 44화 〉 뭐야 이 웅장한 스케일은! (5)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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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 일행이 황매산 정상 부근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우일 선배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옷깃을 여몄다.

“으으~ 더럽게 춥네!”

뒤 늦게 차에서 내린 일재 선배가 다소 근심어린 어투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눈이 안 와서 다행이긴 한데. 밤 되면 기온이 장난 아니게 내려가겠어.”

“막내 기수 애들이 걱정이네.”

일재 선배가 저 멀리로 보이는 황매산 정상의 억새풀 평원을 바라봤다.

산청군은 지리산을 끼고 있어 전형적인 산지마을이다.

황매산은 그 산청군에 위치해 있다.

해발 1,103m 바위산의 모양이 매화가 피어 있는 모습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5월에 와야 황매산의 진가를 경험할 수가 있다.‘

수십 만 평의 고원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선홍의 색깔을 연출하는 철쭉 군락지는 전국에서 최고를 자랑한다.

<펄럭이는 태극기>를 비롯해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하고, 사시사철 관광객이 찾는 명소이며, 정상 평원 일대가 인생샷을 건질 수 있는 포토존이다.

“몸 푸는데 신경 바짝 쓰고, 꼼꼼하게 풀어 놔. 카메라 돌아가기 전에 예열해 두는 것 소홀히 하지 말고.”

“추위 때문에 움츠러들면 더 다칠 위험이 높아. 이렇게 추운 날 촬영할 때는 더 과감하고 더 몸을 던져야 돼. 그래야 안 다쳐.”

일재와 우일 선배가 차례로 충고했다.

“아씨! 추워서 도저히 못 참겠다. 난 차에 있을래.”

우일 선배가 도로 차로 들어가 버렸다.

주차장 곳곳에 서울에서 이곳 현장으로 곧바로 내려온 액션아카데미 선배들이 보였다.

이온과 형민이 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넙죽넙죽 인사했다.

“지금 도착한거냐?”

“일재 선배님하고 어제 먼저 와 있었습니다.”

“부지런도 하다.”

표일재보다 기수가 앞선 선배가 이온과 형민의 다리를 만졌다.

“내복 안 입었어?”

“가져오긴 했는데......”

“센척하지 말고 입어. 이 추위에 산에서 날 밤 까면 고추 언다.”

“......예.”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번 촬영은 야간촬영이다.

저녁을 먹고 촬영을 시작해 동이 트기 전까지 강행군이 예정되어 있었다.

주차장에는 온갖 종류의 트럭과 차량들이 즐비했다.

그 가운데 방송사 로고가 붙어 있는 차량도 보였는데, 형민은 그런 풍경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진짜...... 내가 드라마에 출연을 다 하는 구나.”

스턴트맨으로 머리를 올리는 것보다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오는 모양이다.

10년 전만 해도 영화나 드라마 현장에는 촬영 버스와 승용차 몇 대가 전부였다.

그 동안 영화·드라마·광고 등에서 전문화,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바퀴 달린 차들을 모조리 촬영현장으로 불러들였다.

살수차, 발전차, 조명탑차, 크레인, 장비차 같이 멋진 화면을 만들어 내기 위해 동원되는 기능형 차량부터 케이터링차, 분장 및 드레스차, 촬영 버스, 배우 개인 트레일러처럼 후생 복지를 위한 차량까지.

특히 로케이션 촬영의 경우, 촬영장 주변은 각양각색 차들의 주차장이 된다.

이온이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는 차량들을 눈대중으로 세어봤다.

‘발전차 7대, 조명 크레인 4대, 살수차 2대, 촬영장비차와 조명탑차 다섯 대. 저기 검은색 트럭들은 특수효과팀의 차겠지?“

온갖 특수기능차량과 탑차들 그리고 검은 덩치의 큰 차들 수십 대가 출동해 해질녘 황매산 기슭에 보기 드문 스카이라인을 만들어냈다.

“이온아, 이 웅장한 스케일은 뭐냐?”

“내게 물어도 소용없어. 나도 아는 게 없으니까.”

“넌 현장경험이 있잖아.”

“그때보다 열 배는 더 스케일이 큰 것 같아.”

스턴트맨이 투입되는 장면은 당연히 액션시퀀스다.

조폭들 간의 맨손격투 장면을 촬영해도 평소 드라마나 대화 장면 촬영 때는 볼 수 없는 특수장비들이 동원된다.

대규모 전투씬은 말할 것도 없다.

사극이라면 그 규모는 더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창사특집극이라고 하더니 제작비 아낌없이 쏟아 붓는가 봐.”

이온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형, 커피 마실래?”

“커피가 있어?”

“제작부한테 물어보면 믹스커피 먹을 수 있는 곳 알려줄 걸?”

“그래도 자식이 촬영을 한 번 해봤다고 든든하네.”

이온이 짐짓 우쭐대며 앞장섰다.

“나만 따라다녀.”

이온이 허리가방을 목부터 겨드랑이로 사선으로 맨 여자 스태프에게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지난 촬영을 통해 안 사실은 저런 스타일에 무전기를 소지하고 있는 여자 스태프는 대체로 제작부이거나 연출팀이란 사실이다.

“저희는 최창민 감독님 무술팀인데요. 혹시 제작팀이세요?”

“뭘 도와드릴까요?”

이온은 스태들이 쌀쌀맞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제작팀 여자는 친절했다.

“저희가 믹스커피를 좀 마실 수 있을까요?”

“아직 발전차가 자리를 잡지 않아서 전기를 못 끌어 써요. 쫌만 기다려주세요.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저희가 현장 경험이 없어서 잘 몰랐어요.”

“좀 있다 발전차 자리 잡고, 온수기로 전기 끌어오게 되면 알려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수고하세요.”

촬영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차는 발전차다.

전기가 공급되지 않으면 영화를 찍을 수가 없다.

때문에 발전차가 촬영장에 도착하면 그 즉시 발전차 기사가 전선을 꺼내 본선과 지선을 나눠 촬영현장 전체에 전력을 공급한다.

발전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조명장비에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지만, 그 외에 카메라 배터리 충전, 모니터 전원공급, 하다못해 분장팀의 헤어드라이 사용까지 촬영현장에서 필요한 각 파트에 전기를 공급한다.

발전차가 도착하지 않으면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려 해도 불편하다.

온냉수기에 전력이 공급되지 않으면 커피 마시고 싶은 사람은 휴대용 버너에 주전자를 올리고 이제나 저제나 물 끓기를 기다려야 한다.

황매산은 오토캠핑장을 제외하고 취사금지다.

사실상 휴대용 버너도 사용할 수 없다.

“......”

형민의 말수가 급격하게 줄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형민은 촬영에 큰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다.

도리어 기대감으로 인해 잠까지 설쳤을 정도다.

막상 현장에 도착한 후, 촬영지원 규모와 인원에 질려버렸다.

실제로 와서 보니 상상 이상이었던 것.

“형, 촬영현장 한 번 둘러보고 올까?”

“......응? 그, 그럴까?”

이온은 눈치껏 촬영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길로 방향을 잡았다.

<태왕 광개토>의 촬영지는 황매산 정상의 억새풀 평원이 아니었다.

산 중턱에 있는 야외세트장이었다.

세트장주변은 어디를 보아도 인공미가 전혀 없다.

어떻게 산속에 이러한 지형과 공간이 존재할 수 있는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십여 년 전, 영화촬영을 위해 지어진 세트로, 산적들의 소굴, 민란 주동자들의 은신처, 음모를 꾸미는 악당들의 비밀아지트 등 촬영에 주로 사용된다고 한다.

오후 3시가 막 넘어가는 시각이다.

이미 야외세트장 안에는 주요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최창민 무술감독 역시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막바지 점검을 하고 있었다.

이온과 형민은 고정으로 일하는 메인은 아니지만, 무술팀의 일원으로 명백히 스태프다.

촬영장을 구경한다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헌데 눈치가 보인다.

다들 진지한 태도로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면 안 될 것 같았다.

“형, 그만 주차장으로 가자.”

“그러는 게 좋겠어. 빨리 가서 몸 좀 풀어놓자.”

형민이 빠른 걸음으로 세트장을 벗어났다.

이온은 형민이 왜 저러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도 처음으로 촬영장에 갔을 때 그랬으니까.

설레고 긴장되고 두렵고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들.

그런데 막상 ‘큐‘ 사인이 떨어지면 도리어 차분해진다는 사실.

뭔가 현실세계에서 다른 차원으로 강제로 이동하는 것만 같은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것들이 빠져가지고! 어디 갔었어!”

최장민 무술감독의 부사수이자 <태왕 광개토>의 무술지도인 석현 선배가 화를 냈다.

주차장에 50여 명의 스턴트맨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온과 형민이 얼른 달려가 선배들 틈에서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몸풀기는 무려 한 시간 진행됐다.

스트레칭뿐만 아니라 조별로 가볍게 합까지 맞춰봤다.

그 사이 관광버스 세 대가 주차장에 도착했다.

보조출연자를 태운 버스였다.

인솔자의 안내에 따라 보조출연자들이 분장차와 버스를 오갔다.

분장팀에서 수염을 붙이거나 가발을 쓴 이들은 다시 의상탑차로 이동해 각자 갈아입을 의상을 수령했다.

‘보조출연자들은 그냥 타고 온 버스에서 옷을 갈아입는 모양이네.’

스턴트맨이라고 처지가 다르지 않다.

백여 명에 달하는 보조출연자들이 수염을 붙이고 가발을 쓰고 의상을 수령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줄 알았다.

30분 만에 끝났다.

신병훈련소 교육생처럼 빠릿빠릿하진 않다.

그렇다고 예비군처럼 어슬렁거리지도 않는다.

다음은 무술팀 차례다.

선배들부터 움직였다.

분장차로 가지 않고 먼저 의상차로 향했다.

그래도 무술팀이라고 비교적 상태가 좋은 의상들을 따로 빼놓은 모양이다.

보조출연자들이 입은 의상보다는 어딘지 좀 더 깨끗하고 나아보였다.

이온과 형민 등 25기는 갑옷을 받았다.

“기껏 포졸 비슷한 옷을 입을 줄 알았더니, 갑옷이네?”

형민을 포함해 막내 기수들이 감탄했다.

지방관청 포졸나부랭이 옷을 걸치고 화면에 잡히지도 않는 곳에서 열심히 칼춤을 출 줄 알았다.

그런데 제법 멋진 갑주를 지급받았다.

신분이 나름 병사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보조출연자에게는 지급되지 않았던 소품용 가검도 수령했다.

액션아카데미에서 수련용으로 쓰던 가검보다 묵직했다.

촬영에 쓰일 가검을 처음으로 쥐어본 이온과 동기들이다.

가검을 뽑아 휘둘러보았다.

휙.

휙휙.

검도에 조예가 없다보니 균형감이 좋은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 것 보다, 지금까지 연습했던 가검보다 무겁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밥 먹고, 촬영장으로 모여주세요!”

석현 선배가 액션아카데미 식구들에게 외쳤다.

어느새 주차장 한편에 밥차 서비스가 식탁과 의자를 세팅해 놓았다.

메인 스태프 즉 연출, 촬영, 조명, 미술팀부터 식사를 마쳤다.

그 뒤를 이어 의상 수령과 분장까지 마친 액션아카데미 선배들이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이온을 포함해 막내 기수들이 분장차에 탑승했다.

분장 차에 오르자, 이온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온이 병사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얼굴만 놓고 보면 동료들 가운데 군계일학이다.

“연기자는 저녁 먹고 나서 시작할 거예요. 나중에 부를 때 오세요.”

거울 앞에 앉은 이온에게 분장팀이 말했다.

이온을 단역배우로 오해한 것이다.

“무술팀이에요.”

“아, 미안해요. 배우인 줄 알고.”

“배우는 배우죠. 액션배우.”

이온이 넉살 좋게 대꾸했다.

“호호, 그러네. 특이 피부 알레르기 없죠?”

“왜요?”

“어떤 배우들은 수염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더라구요. 우리 무술팀...... 이름이 뭐예요?”

“이온입니다.”

“이온씨 피부가 너무 좋아서.”

“피부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한 적은 없어요.”

“피부가 타고났다는 거네. 부모님께 효도하세요.”

“아, 네.”

“이온씨는 몇 살? 대학생?”

이십대 후반의 분장팀원은 이온을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애송이로 봤다.

“24살입니다.”

“진짜?”

“군대도 다녀왔어요. 예비군입니다.”

“엄청 동안이네.”

“그런 말 지겹게 듣고 있습니다. 가끔 고딩들이 시비털기도 하고요.”

호호호.

이온의 넉살에 분장팀이 웃었다.

기본 수염을 붙이는 간단한 분장이다.

무술팀은 보조출연자처럼 스킨톤을 보정한다든가 미모를 돋보이게 하는 등의 메이크업은 하지 않는다.

화면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보조출연자와 다를 것이 없으니까.

왜인지 알 수 없지만, 이온의 분장은 오래 걸렸다.

수염 붙이는 것이 그렇게 어렵고 복잡하지 않음에도.

출연 배우에게 하듯 심혈을 기울여 작업하는 느낌은 아니지만, 동기들이 질투를 할 정도로 좀 더 시간을 할애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온씨가 고생이지 뭐. 저녁 든든하게 먹어요.”

이온이 분장차에서 나와 동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형민이 수염을 붙인 이온을 보며 씨익 웃었다.

“수염을 붙여도 어째 꼬마신랑을 못 벗어나냐?”

형민의 놀림에 당해 줄 이온이 아니다.

“내가 형보다 10센티 큰 거 잊었어? 어디서 꼬마라는 단어를 함부로 입에 올리시나.”

“이제 나 배우라고 불러야겠어.”

“형도 박 배우라고 불러줄 게.”

형민이 멋스럽게 도를 뽑아 들고 살짝 기본자세를 잡아보았다.

“폼 좀 나냐?”

“다 옷빨, 아니 갑옷빨이야.”

이온과 형민이 서로의 수염 붙은 얼굴을 놀려대며 밥차로 향했다.

갑옷을 입은 채 수염까지 붙이고서 밥을 먹는 것은 곤욕이다.

이온은 국물 떠먹는 것을 포기했다.

헌데 선배들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국을 잘만 먹었다.

빨대를 이용해 국을 마시는 선배도 있었다.

‘저녁식사를 하고 수염을 붙이면 좋았을 것을.’

그럴 수가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식사 후, 무술팀은 곧장 리허설 준비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술팀을 비롯해 스태프들이 준비를 하는 동안 단역배우부터 주인공들이 차례로 분장을 받는다.

배우를 배려하는 측면도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촬영 진행 있어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번쩍!

해가 저물기 직전.

네 개의 달이 황매산 중턱에서 떠올랐다.

진짜 달이 아니다.

조명크레인 4대에서 12KW 대형조명기가 발하는 빛이 보름달처럼 빛났다.

그러는 동안 무술팀은 위치를 지정받고 리허설에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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