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쩌다 배우-38화 (38/127)

〈 38화 〉 나도 빽이 생기는 건가?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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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송관효를 쳐다봤다.

중고교와 대학 선배도 아니다.

일가친척은 더더욱 아니다.

액션아카데미 교육캠프에 참가하기 전까지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다.

“혹시 샌프란시스코에 사셨습니까?”

송관효는 대답 없이 스턴트 잡지 페이지를 열심히 넘겼다.

그의 손에 쥐어진 잡지는 미국의 유명한 모터사이클 잡지 ‘D.U.K BIKE‘였다.

모터사이클 레이싱 및 크로스로드 점프, 공중점프 등을 폭넓게 다루는 미국의 유명한 모터사이클 매거진 중 하나였다.

“찾았다!”

송관효가 2001년 잡지에서 원하던 기사를 찾아냈다.

그리고 잡지를 활짝 펼쳐서 이온에게 보여줬다.

“......?”

생전의 해리 굿맨이 아시아계 아기를 품에 안고 활짝 웃는 사진이 두 페이지에 걸쳐 실려 있다.

해리 굿맨이 안고 아기는 의심의 여지없이 이온 본인.

사진 설명에는 ‘데어데블(해리 굿맨)‘과 ‘굿맨의 축복(레오)‘이라는 닉네임과 이름이 친절하게 적혀있다.

다음 페이지에는 한창 윤기가 나고 털도 수북했던 시절의 토끼발 목걸이 사진이 세세한 설명과 함께 실려 있다.

“맞지?”

“......예.”

“왜 말 안 했어?”

“뭘 말입니까?”

“네가 데어데블 해리와 관계있다는 것 말이야.”

그런 사연을 꼭 말해야 할 이유는 없다.

따라서 이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네가 지금 목에 걸고 있는 그것이, 그 데어데블의 토끼발이 맞아?”

송관효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탐욕이나 욕심에 번들거리는 눈빛은 아니다.

호기심.

선망의 대상 혹은 우상을 바라보는 듯한 눈망울이랄까.

“맞습니다. 대부의 유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 데어데블 해리가 대부였어?”

“예.”

잡지를 가지고 있기에 당연히 알고 있을 줄 알았다.

헌데 송관효는 영어의 까막눈이다.

모터사이클 점프에 매료되었던 2000년대 초반, 청계천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수집했던 외국 모터사이클 잡지 가운데 ‘D.U.K BIKE‘가 있었던 것 뿐.

송관효는 해리 굿맨과 관련한 다큐멘터리도 닥치는 대로 구해서 보고, 데어데블 해리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인 토끼발과 한국에서 온 불치병(당시에는)을 앓고 있는 아기와의 인연 등에 대해서도 모두 알고 있었다.

“와아! 이 자식 이거...... 스턴트계의 성골이었네!”

“......?”

“네가 미국의 유명한 스턴트맨 가문의 일원이란 말이잖아!”

“......!”

“스턴트가 얼마나 대단한 직업이라고 대를 이어서 하려고 해? 한국대 다니는 놈이.”

데자뷰.

언젠가 이런 말을 들어본 기분이 든다.

암튼, 이온은 전설의 스턴트맨 후계자도 아니고, 스턴트계의 성골은 더더욱 아니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 스트리트 댄서이자 트릭커였을 뿐이다.

지금까지는.

“저기, 죄송한데. 저는 굿맨 집안사람이 아닙니다만. 저를 낳아준 부모님은 따로 계시고, 해리는 제 대부셨습니다. 혈연이 아닙니다.”

송관효에게는 이온이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바쁘냐?”

“검술 합 맞추고 있었습니다.”

“따라와. 커피 사줄 게.”

송관효는 이온을 액션아카데미 건물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커피전문점으로 데리고 갔다.

“현장 나갔었다며?”

“예.”

“특채나 실력으로 압살하지 않는 이상 교육생 안 데리고 다니는데. 네가 싸가지는 좀 없어도 유망주는 유망주인갑다.”

이온처럼 싹싹하고 성실한 막내도 없다.

그런데 오디션 대답부터 선배인 심동혁에게 대든 것까지 이래저래 점수를 많이 잃긴 했다.

“사실 원래 스턴트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재미로 시작했겠지......”

“교육캠프를 함께 수료한 친구가 멋대로 접수해서 별 생각 없이 응시하긴 했지만,  6개월 교육을 받으면서 급 관심이 생겼습니다.”

“데어데블 해리의 아들도 모터사이클 스턴트 하지 않았냐?” “지금은 은퇴해서 직장 생활하고 있습니다.”

“내가 데어데블 해리의 광팬이었어. 그 양반 다큐멘터리 보고 뻑이 가서 스턴트맨이 되기로 마음먹었지.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회사에 취직했었거든. 운동으로는 돈을 못 번다는 어른들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 근데 세 달 만에 그만뒀어. 월급날만 바라보고 살면 앞으로 크게 후회할 것 같더라. 그래서 체대에 들어갔지만 2학년 올라갈 때쯤 그 길도 내 길이 아닌 거 같더라고. 그래서 입대했지. 제대하고 우연히 액션캠프 모집 공고를 보게 됐고 보자마자 ‘내가 갈 길이 이 길이다’란 생각이 들더라. 원래 F1팀에 들어가 오토바이 전문 스턴트맨이 되려고 했는데, 그것만 해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거야. 일이 많지가 않거든.”

“아, 네......”

박충원도 그랬지만, 송관효도 은근히 말이 많다.

원래 막내들에게 정을 주지 않기로 유명한 것이 스턴트업계라고 하던데.

잘못된 소문인 모양이다.

안물안궁.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

그럼에도 개인사까지 다 말해준다.

물론 막내 기수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무술감독도 있고, 임대한이나 심동혁처럼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못된 성격의 선배도 있다.

선배 스턴트맨들의 무관심과 꼰대질 때문에 관두려고 고민하는 이온의 동기까지 있을 정도다.

그에 비하면 이렇게 수다스러운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호의적으로 대해주는 것이니까.

액션아카데미의 대선배들을 마주칠 때마다 물어본다.

“계속 할 거냐?”

그럴 때마다 막내 기수는 ‘예’ 라고 대답한다.

특히 이온에게 묻는 선배들은 입가에 냉소가 맺혀 있을 경우가 많다.

사실 한국대에 다니는 멀쩡하게 생긴 놈이 고되기만 한 스턴트맨에 인생을 바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느 정도 맛을 봤다고 판단되면 슬그머니 관둘 것이라 모두가 단정했다.

누구 말처럼 실증이 나버리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배신 때릴 것이란 오해가 선배들 사이에서 당연시되고 있다.

게다가 액션캠프 신입 오디션장 권용찬 감독 앞에서 돈 벌이가 될 것 같다는 소리를 당당하게 지껄이던 맹랑한 녀석이 이온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견적이 안 나오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는 걸 암시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그런데 왜 뽑았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의문이다.

아무리 토끼발이 행운을 가져다주는 부적이라고 할지라도.

뭔가 앞뒤가 맞지가 않는다.

지금까지 학벌이 좋았던 기수생들은 반드시 스턴트계를 떠났다.

무명생활을 거쳐 직업배우로 자리 잡은 이들도 대체로 6개월 교육캠프만 이수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먹고 살기도 힘들고.

항상 위험에 노출되고.

게다가 스턴트 분야는 부익부 빈익빈이 심한 편이다.

실력 좋고 영업력 좋은 이들은 1억 원 이상 연봉을 가져가는 반면에, 실력이 처지는 이들은 일 년의 30일도 채 일하지 못하고 남은 기간을 통째로 쉬는 경우도 허다하다.

심지어 치명적인 부상을 당해 젊은 나이에 강제 은퇴당하는 경우도 있다.

미치지 않고서는.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그런 절박함이 없다면, 절대로 못 버티는 것이 스턴트맨의 삶이다.

“현장 나가보니 어때?”

“제 스스로가 재밌게 할 수 있는 일. 성취감을 크게 느낄 수 있는 일. 나를 극한까지 밀어붙일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 많이 했습니다. 찾은 것 같습니다.”

풋.

커피를 홀짝이던 송관효가 뿜었다.

가볍게 물었다.

따라서 대답도 시답지 않게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모범 답안을 내놓은 이온이다.

그것도 매우 진지하게.

“우리는 말이야. 회사 들어가서 틀에 박혀 살 성격이 못 돼. 아마 너도 그럴 것이라는 데 백만 원 건다.”

송관효나 박충원처럼 공동무술감독 크레디트를 받고 있고, 곧 단독 무술감독으로 입봉을 앞둔 이들로서는 이온 같은 엘리트가 한 명쯤 팀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현재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는 글로벌 투자를 받아 작업한다.

한국에만 머물지 않고 외국과 협업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실제 진행되는 프로젝트도 있다.

현직 할리우드 조단역급 배우도 캐스팅되어 한국영화에 출연한다.

학벌 좋고.

그 학벌에 따른 인맥도 빵빵할 예정이며.

심지어 4개 국어까지 하는 녀석이 이온이다.

운동신경도 좋아서 어떻게 훈련시키는가에 따라 스턴트맨으로서도 실력이 일취월장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데리고 다니며 써먹을 때가 많겠지만, 액션아카데미 전체로 봤을 때도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소위 전도유망한 인재다.

‘문제는 이 자식이 부잣집 아들래미처럼 곱상하게 생긴데다가 뭐 하나 아쉬울 것이 없다는 거지. 배우로 나가겠다고 하면 말릴 수도 없고.’

송관효가 이온을 빤히 쳐다봤다.

이온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아기 때 불치병 걸리지 않았냐?”

“그런 것도 아십니까?”

“데어데블 해리로 검색하면 다 나오고, 번역기 돌리면 알 수 있는 내용인데 뭘......”

“불치병 아닙니다. 희귀유전병인데 대부님 덕분에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어서 완치됐습니다.”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비보이에 트릭킹을 했겠지. 아니면 진짜 그 토끼발......”

송관효가 말을 멈추고 갑자기 커피전문점 안을 둘러봤다.

혹시 누가 엿듣는 것은 아닌지 확인했다.

이온은 그의 과잉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유전병과 관련해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는 최고의 병원에서 최고의 의사선생님들이 치료해 주셨습니다. 미국 교포 이모들하고 어린이재단 관계자분들도 많이 도와주셨구요. 돈과 적절한 기회가 없어서 못 고치는 것이지, 그게 아니라면 못 고치는 병이 없는 세상입니다.”

“누가 뭐래? 데어데블 해리의 수호부적이 워낙 유명하니까.......”

“솔직히 한국에서 대부의 토끼발을 아는 사람이 있을 거라곤 예상 못했습니다.”

“요즘은 폭주족도 거의 없어지고 오토바이는 배달 알바들이 주로 타지만, 나 때만 해도 바이크에 미친 애들이 좀 있었어. 레이싱과 스턴트는 장르가 다르긴 하지만.”

“선배님은 오토바이 스턴트도 하십니까?”

“응.”

“근데 어제 <도련님을 부탁해> 촬영에는 왜......?”

“그 정도는 10년 차 이상 되는 애들은 다 할 줄 아니까.”

본인은 좀 더 난이도가 높고 위험하고 복잡한 스턴트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좀 비싸기도 하고.”

“......?”

“일당 40만 원에 쇼부칠 수 있는 일에 100만 원짜리를 쓸 순 없잖아? 제작비가 남아돌면 몰라도.”

“아, 네.”

영화, 지상파 드라마, 케이블 드라마, 광고, 뮤지컬, 모션 캡쳐, 각종 이벤트 기타 등등.

스턴트맨이 투입되는 일은 다양하다.

그런 만큼 급여 기준도 다양하고 편차도 심한 편이다.

“얼만 받는지는 현장 나가면서 차차 알아보고.”

“네.”

“영화 공부한다며?”

“공부라기보다는 영화 이론서적 읽고 책에서 추천하는 영화 보고 그러고 있습니다.”

“나중에 무술감독을 하려면 카메라나 연출, 공부할 게 많지. 지식이 있으면 아무래도 액션을 연출하는 데 유리하긴 해. 다만 기본적으로는 경험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봐. 막내에서 시작해 현장도 뛰어 보고 대역도 해보고 스턴트도 해보고.”

거기까지 말한 송관효가 얼굴색을 싹 바꾸었다.

“공부는 그 다음이야.”

“......예.”

“무술감독이 대역이나 스턴트, 다양한 액션연기를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를 위험한 곳으로 내몰고 촬영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아.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바뀌지 않는 게 사람이야. 내가 이렇게 이야기 한다고 네가 하던 방식을 바꿀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 바뀐다면 오히려 그게 더 문제일 수도 있겠지. 다만 뭐시 더 중헌지 그것만은 잊지 마.”

“예. 선배님. 충고 감사합니다.“

“다 마셨으면 이만 가자.”

커피전문점에서 30분 정도 대화를 나눴다.

액션아카데미로 돌아온 두 사람은 현관에서 헤어졌다.

‘나도 이제 액션아카데미에 빽이 생기는 건가?’

분명 이치열 무술감독, 송관효와 박충원 선배 모두 이온에게 호의적이다.

그들이 이온의 사수가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온아!”

“응?”

“매번 형민씨하고만 합 맞추지 말고 나와도 맞춰.”

형민과 나이가 같은 25기 동기 고준수가 목검을 건네주며 말했다.

시기와 질투로 가득했던 동기들의 시선이 돌변해 있었다.

이온이 현장에 자주 나가게 된다면, 함께 합을 많이 맞춰본 사람에게도 기회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계산이 선 것이다.

앞으로 어떤 액션씬에서 함께 출연할지 알 수 없는 이들이다.

평상시에 자주 합을 맞춰야 한다.

그래야 실력도 늘고, 막상 현장에 나갔을 때 호흡이 맞지 않아 부상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암튼 이온으로서도 나쁠 것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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