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저 사람은 별이 될 거야.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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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을 찾아? 좀 전에 외국인들이 저쪽으로 지나갔어.”
“예? 예......”
“세상의 모든 것은 언젠가 태양신의 품으로. 그것이 순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버지가 남겨주신 유일한 물건이...... 음.”
간혹 쿠스코의 전통시장이나 잉카문명 관련 유적지에서 노점상이 샤먼이라며 사기를 치며 관광객의 지갑을 털어먹기도 한다고 이야기가 떠올랐다.
샤먼이라고 사기를 칠 것이라면 잉카문명 기념품 가판이 보여야 하는데, 노파는 자신이 직접 키운 농작물을 팔러 나온 행색을 하고 있다.
신기가 있는 무당 같지 않다.
중남미의 전형적인 못생기고 키도 작은 인디오 할머니다.
알록달록한 전통의상을 입고 있어서 신비감은커녕 아야쿠초 원주민 마을 할머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유품을 잊어버렸다고 해서 죽은 사람까지 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건 아니지.”
“......”
“슬픔과 이별을 해야 행복을 사랑할 수 있겠지. 불행이 길을 비켜줘야 행운이 들어오는 법이고.”
이온은 자신이 맞게 알아들은 것인지 자신할 수 없었다.
스페인어 실력과는 상관이 없었다.
뭔가 현기가 느껴지는 말 같기도 하고, 중남미 속담 같기도 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헛소리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했다.
“태양신의 가호 아래서 마음을 깨끗이 하고 너의 나라로 돌아가기를.”
“예. 많이 파세요.”
이온은 찝찝한 마음에 서둘러 노파에게서 멀어졌다.
제대하자마자 집에 고이 모셔두었던 토끼발을 태워버릴까도 생각했었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란 생각에 다시 목에 걸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성장한 어른이 되었지만.
이온은 여전히 두 분 아버지에 대한 미묘한 감정을 모두 털어내지 못했다.
삶은 언제나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라고 한다.
이온은 이별에 익숙해질 수 없었다.
두 아버지의 불행이 자신 때문인 것만 같아서.
“어? 이온아.”
이온이 장을 보고 있는 캠퍼들을 지나쳤다.
“야, 어디가?”
어딘지 얼빠진 표정이던 이온이 영재의 부름에 번쩍 정신이 돌아왔다.
“얼빠진 놈처럼 왜 그래? 폰이라도 잃어버렸어?”
“아냐.”
노파가 알려준 방향에 동료 캠퍼들이 있었다.
이온은 동료들과 함께 시장을 돌아다녔다.
식단을 고민해가며 장을 보면서 노파와의 대화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다음날 아침부터 봉사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강행군으로 인해 시장에서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 ✻ ✻
문자, 화폐, 바퀴, 철.
이 네 가지가 잉카문명에는 없다.
바퀴와 철기도 없이 2톤이 넘는 12각 돌로 성채를 만들고 안데스를 호령했다.
역사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천년 잉카제국은 불과 300명의 스페인 군대에 멸망했다.
쿠스코와 마추픽추에서 잉카의 후예들은 태양신 대신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십자가와 성모상을 숭배한다.
수백 년 동안 노예처럼 수탈과 피지배를 받으면서도 혁명이나 항쟁은 없었다.
현재 백인들로부터 차별과 멸시를 받지만, 얼굴에 어떤 그늘이나 수심도 별로 없다.
한 번도 풍요를 누려보지 못했기 때문에 욕심도 없는 모양인지.
하루하루 작은 것에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들이다.
잉카 후예들은 심성이 착하고 정이 많다.
아직도 전통의상을 입고 농사일을 한다.
지배자와 종교가 달라져도 그들의 전통은 변하지 않았다.
높은 산에 계단을 만들어 옥수수와 감자를 재배하고 라마와 알파카를 키운다.
아야쿠초의 외곽지역에서 만난 잉카의 후예들이 오랜만에 만난 친척같이 왠지 정다웠다.
‘그래서 다시 페루를 찾아온 걸지도.’
캠퍼를 많이 모집하고 현지 봉사단원까지 합세한 이유가 있었다.
많은 일거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온의 하루 일정은 생각보다 빡빡했다.
기상 후 식사.
8시부터 12시까지 근로봉사.
점심식사 및 휴식 후, 2시부터 6시까지 교육봉사 및 야외활동.
한국팀은 실내가 아닌 실외 근로봉사를 하게 됐다.
30도를 웃도는 뙤약볕 아래서 학교 주변을 돌며 쓰레기를 치우거나 청소를 하고, 학교의 담장에 페인트를 칠하고, 낡고 부서진 교정의 각종 시설을 손보는 등 생각보다 노동 강도가 센 편이다.
“군악병이 사역을 해봤어야지. 똑바로 안 하냐?”
육군 보병 출신의 영재가 군악병 소속이던 이온을 비웃었다.
명색이 병장 제대인데, 일머리가 영 아닌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놀구 있다. 전방에 사역 없어진지가 언젠데 사역 타령이냐? 자식이 어디서 약을 팔려고.”
“영내 사역만 사역이냐? 공군은 폭설이나 태풍 왔을 때 대민지원 안 나가?”
“......”
공군 출신들의 그 흔한 레퍼토리인 활주로 제설작업이나 새 쫒기 같은 걸 해본 적이 없는 이온이다.
대민지원도 나가본 적이 없다.
이온에게 대민지원은 민간인이 개최하는 행사에서 공연한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삽질 잘 해서 좋겠다. 그래서 인생도 삽질의 연속이냐?”
학교 운동장 주변의 배수로를 손보며 티격태격하는 이온과 영재에게 영지가 다가왔다.
“또 싸우냐? 오빠들은 입으로 일해?”
“왜 또 와서 잔소리야. 가서 파울로나 도와.”
“잔 말 말고 둘 다 일루 와.”
영지가 오빠들의 목덜미와 팔에 자외선 차단제를 꼼꼼하게 발라주었다.
페루는 한국보다 자외선 노출도가 꽤 강한 편이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땡볕에서 보내는 오빠들을 위해 영지는 썬크림이나 자외선 차단제를 꼭 챙겼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귀찮다고 바르지 않을 것이 뻔했으니까.
“하여간 유난은......!”
“이온 오빠만 발라준다?”
“밤마다 벨기에 여자애들한테 화장품 파냐?”
“뭔 소리래?”
“봉사 와서 밤마다 피부마사지 한다며?”
“애들이 코리안 스킨케어루틴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준 거야.”
“적당히 해라. 봉사 나와서 무슨 피부 관리를 한다고.”
“내가 먼저 말 꺼낸 것도 아니고. 물어보기에 알려준 것뿐인데 뭐가 불만인데?”
“피부가 반들반들하다 못해 투명해져야 직성이 풀리겠냐?”
“됐그든! 오빠가 뭘 알아!”
오빠 말에 토라진 영지가 성을 내고 가버렸다.
이온은 친구 녀석에게 한 소리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영지한테 짜증이냐? 힘들면 그늘에 가서 쉬어. 엄한데 풀지 말고.”
“......후우.”
시쳇말로 빡세다는 말로 한참 부족한 근로봉사다.
첫 삼 일 간 학교 주변과 운동장을 중심으로 쓰레기를 치우고, 시설을 간단하게 보수하는 일을 했다.
방학이라 아이들도 오지 않았기 때문에 오후에도 같은 일을 했다.
내일부터는 울타리에 페인트를 칠해야 한다.
엄청난 면적이다.
이온, 영재, 파울로 셋이 감당해야 한다.
영재를 짜증나게 만든 것은 자신이 칠해야 하는 울타리에 대한 사연 때문이다.
전에 다녀갔던 워크캠프 팀이 이미 페인트를 칠했던 곳이란다.
5개월도 안 돼서 페인트가 다 벗겨지고, 색도 변색되고 엉망이 되었다는 사실.
전 팀이 작업을 엉망으로 했거나 페인트 품질이 엉망이었거나.
암튼 고산지대라 여전히 숨쉬기도 원활하지 않고, 페인트칠이 익숙하지 않은데다가 작업시간까지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오후에 학생들이라도 많이 찾아오면 공부나 놀이를 함께 하면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텐데, 인근에 사는 초등학생 한 두 녀석이 찾아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 조차 영지가 전담하다니 보니, 매일매일 노동의 연속이었다.
“꼬레아노라면서요?”
“BPS 알아요?”
“친해요?”
“길 가다 본적 없어요?”
“진짜 피부가 하얗고 잘 생겼어요?”
“춤추는 거 실제로 봤어요?”
그늘에서 쉴라치면, 꼬맹이들이 와서 KPOP 스타에 대해 물어본다.
“안 친해. 혹시 길 가다 마주치면 꼭 셀카 찍어서 사진 보내줄게. 저기 언니랑 가서 종이접기도 하고 공기놀이, 재기차기, 고무줄놀이 하고 놀아.”
이온이나 영재나 일반적인 한국의 청년이다.
한국인끼리 있을 때는 몰라도 외국인들과 무엇인가를 하게 되면, 은연중 드러나는 어떤 기질이 있었다.
죽어도 지기 싫어하는 경쟁 심리다.
그것이 일이든 술이든 스포츠든 뭐든.
그리고 무엇이든 빨리빨리 해야 속이 시원한 성격까지.
다른 팀들이 이 만큼 하면 자신들을 그 보다 조금이라도 더 해내야 찝찝하지가 않다.
“야, 게토레기!”
“왜?”
“금요일 오전까지 울타리 다 끝내놓자.”
“오후에는? 뭐 따로 할 거 있어?”
“일찍 끝내놓고 한선생님 댁에 사갈 선물 좀 사놓자. 겸사겸사 마트에서 장도 좀 보고.”
오리엔테이션에서 알게 된 한국인 교사로부터 둘째 주 일요일 저녁 식사초대를 받았다.
몇 명 되지 않는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은 영지와 파올로에게 전담시키고, 두 사람이 토요일까지 해야 할 일을 해치워버리자는 말이었다.
“울타리 다 끝내놓으면 다음 주부터는 뭐 하게?”
“한 번 손대기 시작하면 수렁에 깊이 발 담글까봐 겁나긴 하는데, 여기 운동장 주변 함 봐라. 할 일이 지천으로 널렸어.”
흙바닥에 대충 만들어진 배구코트는 기둥 하나만 삐딱하게 서있고, 반대편은 아예 한쪽에 방치되어 있다.
네트는 보이지도 않는다.
그네, 시소, 미끄럼틀 또한 녹슨 데가 군데군데 보이고, 아이들이 타고 놀다 혹시 다치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오바 아냐?”
“우리가 명색이 전역한지 얼마 안 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예비역 아니냐. 열심히 먹물만 빨다 온 외국애들 딱 걔네만큼만 해서야, 어디 가서 봉사 쫌 하고 왔다고 말할 수 있겠냐? 특히 짜장 애들한테는 노가다라도 지기 싫어.”
“군악병이라고 개무시할 때는 언제고.”
“이 먼 페루에서 한국 사람이 좋은 인상으로 남았으면 좋지 뭘.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우리가 대한민국 아니겠냐?”
워크캠프는 단순히 여행이 포함된 봉사 프로그램이 아닐 수 있다.
현지인과 접촉하기 때문에 외교사절단이라는 책임감을 안 갖으려야 안 가질 수가 없다.
정상적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말이다.
“중국에서 온 애새끼들 봐라. 밤새 어디서 술을 처먹고 다니는지 새벽에 기어 들어와서 아침 근로봉사 날려먹기 일쑤잖아. 그것 때문에 벤트 형이 빡 돌아서 미쳐버리기 일보직전이래.”
영재입장에서는 만약 한국인 동료가 쯔시안과 하오란처럼 밤에 술 먹고 늦게 들어오고, 다음날 아침에 힘들고 아파서 제대로 봉사 활동을 못하는 꼴을 보게 된다면 조용히 불러 패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런데다가 쯔시안이란 놈은 누가 샤오펀홍 아니랄까봐 중국어를 배우겠다고 찾아온 고등학생 몇 명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기는커녕 중국과 중화민족의 위대함만 설파하는 것으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한다는 불만이 나왔다.
“도저히 제 정신이 아니라니까. 그 새끼들 뇌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있는지 열어보고 싶어. 해외봉사를 나와서 정말 그러고 싶을까?”
때론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난하고 척박한 삶을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이지만, 이들은 외지인들과 음식을 나눌 줄도 알고 아픔이나 기쁨을 함께 하는 등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처지를 보며 자신들의 부유함에 우쭐하고 민족적 우월감을 여과 없이 표출하는 모습이 천박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영재는 그들이 역겨웠다.
“일부러 일을 찾아서 할 것까진 없을 것 같고. 3주 안에 학교 두 곳의 외부 작업 끝내놓고, 벨기에 팀 도와주자.”
“그것도 괜찮네.”
여성들로만 구성된 벨기에팀은 책걸상을 고치는 작업을 주로 했다.
낡고 부실한 책걸상을 사포로 깨끗하게 밀어서 정리한 후에 갈색 페인트로 칠한 후, 바니쉬까지 발라주는 일이다.
한국팀 못지않게 작업 강도가 상당했다.
일단 작업해야 할 책걸상 숫자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 ✻ ✻
일주일이 쏜살 같이 지나갔다.
아무리 군악대 소속으로 군생활을 했다고 해도 이온은 명색이 대한민국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이다.
노동일에 도가 튼 정도는 아니지만, 바스티앙이나 중국인들보다 체력이나 요령에서 월등한 능력을 자랑했다.
전체 캠프를 관리하는 가브리엘라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친절하고, 성실하고, 똑똑하기까지 한 한국인들.
게다가 한국의 음식까지 맛보게 해주는 자상함까지.
한국팀이 식사당번을 할 때 불고기를 해줬다.
티나와 가브리엘라를 비롯해 현지 대학생 봉사자들도 초대했다.
모두가 불고기를 무척 좋아했다.
시내 마트에서 장을 봐온 재료와 영재 남매가 한국에서 싸온 것들을 이용해 부대찌개 비슷한 것을 끓여서 내놓기도 했다.
“부대찌개라는 음식이야.”
이온은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일단 찌개는 절대 아니었다.
그냥 햄과 소시지, 소고기, 라면 면말이 들어간 매운 맛 나는 잡탕국이라면 모를까.
그렇다고 모두가 있는 식사자리에서 따지지는 않았다.
한국인과 중국인, 싱가포르인을 제외하고 모두가 찌개를 메인으로 생각하고 밥을 사이드로 보는 모양인지, 찌개와 불고기만 집중 공략했다.
영지는 유럽의 캠퍼들에게 밥과 반찬 개념을 알려줘야 했다.
재밌는 것은 불고기나 부대찌개 유사 음식보다 더 큰 호응을 얻는 것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
바로 조미김이다.
영지가 입맛이 없을 때 먹으려고 싸가지고 온 것인데, 유럽애들이 환장을 했다.
암튼 국가별로 돌아가면서 식사당번을 했기 때문에 벨기에 음식, 미국 음식, 독일 음식, 프랑스 음식, 중국 음식을 다양하게 먹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서툰 솜씨지만 영지와 오빠 둘은 한국의 음식을 그들의 기억 속에 인상 깊게 남겨 주고 싶어 더 열심히 했던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첫 주 식사당번은 그런대로 성공적이었다.
주말에는 아야쿠초 일대를 돌아봤다.
전에 한 번 방문한 경험이 있는 이온이 관광지도를 참고해 가면 캠퍼들을 이끌었다.
“다음 주에는 끼누아에 가보자.”
“도자기 공예로 유명한 도시 맞지?”
“응. 아야쿠초 대평원과도 가깝고, 도기장, 박물관 돌아보고. 도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퀴노아의 주요 생산지야. 치차론이 유명해서 아야쿠초 사람들이 일부러 가서 먹는다고 하더라고. 아야쿠초에 오면 꼭 들러가는 코스 중에 하나 일 걸.”
중국인 두 명은 따로 움직이기로 하고, 나머지 인원은 이온을 따라서 끼누아와 아야쿠초 전쟁과 관련한 관광지를 돌아보기로 했다.
이온과 영재가 새로운 한 주를 최상의 컨디션으로 시작하기 위해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방으로 영지가 찾아와 앞 뒤 다 잘라먹고 물었다.
“오빠, 키하고 몸무게 어떻게 돼?”
“갑자기?”
“단비 언니 톡 왔는데, 오빠들 정확한 키랑 몸무게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봐 달래.”
단비는 이온과 영재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가장 친한 여사친 중 한명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며 각종 오디션을 보고 다니고 있었다.
“신종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취업했대? 갑자기 외간 남자 신체 사이즈를 물어보고 난리래냐? 혈액형이나 고혈압 당뇨 있냐고는 안 하디?”
“몰라. 무슨 공짜로 무술 가르쳐주는 데가 있는데 거기 지원한대.”
“다단계에 걸린 거 아냐?”
“서류 심사보고 오디션까지 합격해야 공짜로 연수시켜준대. 그런 데가 다단계는 아니겠지.”
“그거랑 내 키, 몸무게와 무슨 상관이야.”
“혼자 훈련받으러 다니기 무섭대.”
“진짜 다단계나 도를 아십니까에 합류했나?”
“언니가 링크도 남겼어. 내가 오빠한테 링크 보내줄 게. 확인해 봐.”
“178. 72.”
“웃기시네. 오빠가 무슨 178이야.”
“군대 가서 자랐어.”
“진짜?”
“씁! 그런 줄 알아. 뭘 꼬치꼬치 캐물어.”
“개뻥인 거 알지만 일단 그렇다고 해 둘 게. 단비 언니가 특히 이온 오빠는 꼭 알아야 된다고 했어.”
“나? 나는 트릭커지 격투가가 아닌데?”
“뭐든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경험을 하는 것도 좋지 뭐. 스펙 쌓겠다고 히말라야 등반하는 동기도 있는데.”
“184. 74.”
“와. 이온 오빠가 74인데 울 오빠는 72. 2Kg 밖에 차이가 안 나. 완전 돼지였어.”
“내가 살 찐 게 아니라 게토레기 저게 마른 거야.”
“일단 그렇게 언니한테 톡 보낸다. 궁금한 건 나중에 직접 언니랑 이야기 해.”
이온은 단비가 하려는 일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가끔 엉뚱한 일을 벌이곤 하지만, 친구들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지는 않으니까.
어쨌든 아야쿠초 워크캠프 첫 일주일이 마무리됐다.
그 짧은 기간 동안 한국팀은 근로봉사면 근로봉사, 식사당번이면 식사당번, 심지어 숙소의 이층침대 시트와 개인물품의 각 잡힌 정리정돈까지 캠퍼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