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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122화 (122/134)

122화.

반전된 여론에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메탈렉시온을 필두로 한 기업 연합체였다.

이중엔 군수 기업 서열 10위 이내의 기업이 세 개나 엮여있었다.

“제길! 이젠 어떡할 거요!”

“존 메이어가 전면에 나선 이상 정면승부로는 어렵소.”

이들은 아크팩토리의 회장, 존 메이어가 밝힌 이클립스2 미사일의 성능이 거짓일 가능성은 터럭만큼도 생각지 않았다.

적어도 연구, 개발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존 메이어의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손만 대면 신제품과 신기술이 튀어나오는 세기의 천재.

특히 마법공학 실력은 이미 남부를 넘어서 중앙 최고 레벨이라는 이야기가 거의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신무기 대결에서 성능이 밀린 쪽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건 당연한 일.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반 아크팩토리 연합 일원들은 어떻게든 활로를 찾고자 중앙을 뚫기 시작했다.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하는 자가 본업을 소홀히 하고 남부의 일에 관여한다는 프레임을 씌워 어떻게든 오너 본인에게 흠집을 내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수포로 돌아갔다.

“중앙에 연락이 닿질 않는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정확히 말하면 중앙엔 연락이 되는데 황성 쪽과 연결이 안 된다는군.”

“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그야 모르지.”

“존 메이어가 우리 연락을 의도적으로 차단하고 있을 가능성은?”

“그럴 확률은 낮은 편이지. 아무래도 저쪽에 무슨 일이 생겼을 가능성이 더 크겠어.”

중앙이 본래 다른 경계에 비해 폐쇄적인 성격을 띠긴 하나 이 정도로 연락에 묵묵부답인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런 상황이 한동안 계속 이어지자 이들은 황성 쪽에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고 이러한 의구심은 남부뿐만이 아니라 다른 경계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마치 피의 숙청으로 중앙이 닫혀있을 때 와 같은 적막감이 제국 전역으로 퍼지고 있었다.

* * *

“탐탁지는 않지만 사령관께서 당신을 풀어주라고 했어.”

“…….”

“뭘 하든 당신 자유야. 여길 떠나도 좋고, 정보를 알아보고 싶으면 그렇게 해. 은하간 통신망을 쓸 수 있도록 해줄 테니까.”

“…….”

조명이 다소 어두운 방 안.

침대와 간단한 책 몇 권만 놓인 독방에서 카린은 의자에 앉아있던 한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은?”

“배신자 새끼….”

“뭐?”

배신자라는 말에 카린의 이마에 살짝 주름이 졌다.

“모든 근위기사는 폐하께 충성을 맹세하고 서약한 자들이다. 그런데 엘프인 네가, 폐하를 배신해!!!”

다소 초췌하고 건강 상태가 영 좋지 못했던 남자지만 어디서 그런 기백이 나오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쩌렁쩌렁한 외침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의 외침에 카린은 입술을 꾹 다물고선 침묵했다.

조금이나마 고민이 깊어진 기색이었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카린을 바라보는 남자는 제퍼슨.

이단심문관으로 본의 아니게 엔터프라이즈호에 실려 남부까지 오게 된 인간이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폐하를 모시지 않아.”

“닥쳐! 그게 어디 네 맘대로 정할 수 있는 일인 줄 알아! 너 같은 건 기사도 아니야!”

“폐하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자료를 받았을 텐데?”

“이딴 조작된 자료에 선동당하다니, 너는 애초에 근위기사를 해선 안 될 재목이었던 거다!”

100만 명의 시민이 거주하던 자치령을 통째로 지워버린 황제의 악행.

진즉에 전말을 확인한 제퍼슨이지만 그는 자료가 조작된 것이라며 현실을 부정했다.

조금이나마 그를 딱한 눈빛으로 바라본 카린은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제부터는 뭘 하든 자유지만 조금이라도 존 메이어에게 해를 끼치면 그때는 반드시 목을 치겠다는 흉흉한 경고였다.

그렇게 카린은 떠났고 잠시 뒤, 제퍼슨은 방안에 놓여있던 옷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통신센터를 방문해 은하간 통신망을 사용하는 일이었다.

‘폐하께선 그럴 분이 아니다. 이건 명백한 음모다. 반동분자들의 얄팍한 계략이라고!’

헬리오스 황제가 100만 명을 죽인 대량학살범이며 중앙이 무너졌을 거라곤 생각지 않은 제퍼슨은 서둘러 정보 수집에 나섰다.

대원수의 군대와 충돌했을 황성 소식을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제퍼슨 역시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긴 마찬가지였다.

이를 악문 그는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남부에 남은 이단심문관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단심문관이 가장 많은 지역은 역시 중앙이지만 다른 경계라고 해서 이단심문관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이들은 비상시 서로를 찾을 수 있도록 비밀 네트워크와 암호를 가지고 있었고 제퍼슨은 어렵지 않게 이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중앙에서 빠져나온 제퍼슨도 상황을 모르는데 계속 남부에서만 지냈던 이들이 뭘 알겠는가.

중앙의 소식을 알 길 없다는 현실에 좌절한 제퍼슨이 술에 젖어 메이어 행성의 펍에 눌러앉을 즈음, 황성의 소식을 알기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펼친 세력이 튀어나왔다.

바로 북부였다.

한때 존 메이어의 활약으로 어비스데몬의 주력군을 격파, 잃어버린 영토를 상당 부분 회복한 북부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다시 자원지대를 손에 넣고 각종 전략 무기와 전투함을 생산할 수 있는 수준까지 내실을 복구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어비스데몬이 뇌파 교란 장치의 대응법을 들고나와 다시 전선이 고착되기 시작했다.

속수무책으로 도망치던 적의 생체전투함이 반격에 나섰고 북부는 다시 과거의 공포가 떠오르는 듯 급격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닌 건 바로 라이키니르 대장이었다.

본래 중앙군 출신인 그는 헬리오스 황제의 명을 받아 북부 영토 수복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는 뛰어난 전술로 어비스데몬을 연거푸 물리쳤고 실속 없는 토론으로 아까운 시간만 버리는 북부평의회를 질타, 독자적 판단으로 전선 병력을 조율했다.

만일 그의 뛰어난 대처가 아니었더라면 북부는 다시 사방에서 압박을 받았을 테고 기껏 수복한 자원지대를 내주게 되었을 터였다.

그의 공로가 워낙 뛰어났기에 일각에선 마크 딜런 대원수의 뒤를 이을 차기 후보로 라이키니르 대장을 거론하는 귀족들이 많았다.

물론 이십 대의 나이에 단숨에 대장직을 꿰찬 존 메이어의 이름도 종종 올라오기도 했으나 나이를 고려하면 라이키니르 대장이 먼저 바통을 물려받고 그다음을 존 메이어가 잇게 되지 않겠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예측들은 어디까지나 현재 상황이 유지될 때의 이야기.

북부 전선이 다시 적들에게 밀리기 시작해 전과 같이 어려운 상황을 맞이한다면 황제가 라이키니르 대장을 원수로 진급시킬 리 없었다.

“대체 중앙에선 뭘 하고 있단 말인가! 로버트 켈리 이 개자식! 의자에 궁둥이만 붙이고 있으면 전쟁이 자동으로 돌아가는 줄 알아! 어린 놈의 새끼가 말이야!”

수성만으로 적을 격퇴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 라이키니르 대장은 중앙에 있을 군수사령관을 마구 씹어대며 고속정을 후방으로 급파했다.

통신이 안 되면 직접 중앙에 가서라도 확답을 받아오라는 거였다.

애초 라이키니르 대장이 중앙에서 끌고 온 병력은 2개 군단 규모.

고작 이 정도로 드넓은 북부를 지키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모두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중앙에서도 마땅히 추가 지원군을 보내주기로 약속이 다 되어 있던 것이다.

그런데 말 한마디 없이 갑작스레 지원이 끊겼으니 그것만 믿고 북부로 건너온 라이키니르 대장으로선 뚜껑이 열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직접 연락부대를 보낸 라이키니르 대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척 수상한 보고들을 받게 되었다.

메인게이트를 타고 건너간 부하들이 중앙 분위기가 전과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마땅히 중앙을 지켜야 할 병력이 대거 황성이 위치한 제국 중심으로 이동했고 황성과는 여전히 통신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대장님. 사태는 심각합니다. 대원수가 위구 바깥에 있는 병력까지 집결을 명령해 현재 중앙군 전체 8할에 이르는 병력이 위구로 쏟아져 들어갔다 합니다.>

부하들의 보고에 라이키니르 대장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위구 우주가 어떤 곳인가.

굳이 집결을 명령하지 않아도 백만 척에 달하는 전투함이 물샐틈없이 수비에 전념하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그런데 그것으로도 모자라 추가 집결 명령을 내렸다면 이는 높은 확률로 한 가지 사실을 의미했다.

‘반란이다…. 대원수가 반란을 일으킨 거야.’

만약 귀족 일부가 반란을 일으켰다면 위구 수비 병력만으로 손쉽게 장악할 수 있었을 터다.

애초에 위구의 수비병력은 나머지 중앙 병력을 모두 합쳐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한 수준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집결을 명령했다면 병력이 필요했단 뜻인데 내부에 대원수가 지휘하는 대군을 맞이해 싸울 수 있는 세력은 아무리 머릴 굴려도 하나뿐이었다.

황제와 대원수.

중앙에서 가장 세력이 강한 둘이 나뉘어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눈 게 틀림없었다.

욕이 절로 튀어나온 라이키니르 대장은 머릴 벅벅 긁으며 담배를 찾았다.

“이런 개 같은 일이 있나….”

침울한 표정으로 눈을 감은 그는 모든 일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황제와 대원수가 갈라졌다.

무슨 이유였든지 간에 일은 터졌고 이제 위구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리라.

라이키니르 머릿속에 작은 미니어처 전투함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쪽 세력이 먼저 승기를 잡을 것인가.

아무래도 대원수파가 유리해 보였다.

백만 척도 넘는 전투함의 군권 대부분을 그가 쥐고 있다는 게 결정적이었다.

문제는 라이키니르 본인은 정작 대원수 파벌이 아닌 황제 쪽 파벌이라는 데 있었다.

물론 중앙에선 황제 파벌이 아닌 군인은 살아남을 수 없다지만 그래도 그 묘한 차이라는 게 있었다.

그간 라이키니르는 황제에게 좀 더 신임을 받는 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군공을 세울 기회가 극히 드문 중앙에서 두 번이나 연속으로 대외원정군을 도맡아 병력을 이끌 수 없었을 테니까.

반면 조금 전까지 씹어댔던 군수사령관 로버트 켈리나 작전사령관 토드 클레이튼은 대원수와 죽이 아주 잘 맞는 인간들이었다.

‘혹시라도 폐하가 쓰러지시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 가문은?’

라이키니르 대장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운이 좋으면 한직으로 밀려날 테고 재수가 없으면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여 목이 잘릴 수도 있었다.

대원수와는 이렇다 할 악연이 없지만 그 밑에 놈들이랑은 영 사이가 좋지 못했었으니까.

상황이 이쯤 되자 라이키니르 대장은 북부 방어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생존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지러움 속에 잠시 휴식을 취해야겠다고 생각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주변 부관들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장님!”

‘이 녀석들이 왜 소리치고 난리지?’

호들갑을 떨며 달려오는 부하들을 보며 라이키니르 대장은 의문을 품었지만 그의 생각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세상이 빙글 돌며 시야가 어두워진 탓이었다.

“대장님! 정신 차리십시오! 군의관! 군의관 불러!”

함교는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올해 나이 56세.

중앙의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라이키니르가 예고도 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원인은 극도의 스트레스였다.

전선사령관이 몸져눕자 당연히 모든 작전은 중단되었고 이 사실은 금세 북부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북부군 수뇌부와 평의회는 라이키니르 대장이 쓰러진 이유를 깨달았다.

이것이 원인이었다.

중앙의 반란 사실이 경계를 넘어 제국 전역으로 퍼진 이유 말이다.

이로써 제국은 근래에 경험해본 적 없는 거대한 혼돈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안으로는 반란, 밖으로는 적들의 침공.

수천 년간 굳건했던 제국이 순식간에 휘청이고 있었다.

* * *

중앙에서 반란이 터졌다는 소식에 제국 전역이 몸살을 앓았다.

의회에선 연일 중앙으로 지원군을 보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대립으로 시끄러웠고 발 빠른 기회주의자들은 이참에 새로 들어설 황실에 잘 보여야 한다며 목소릴 높이기도 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군 수뇌부며 의회며 할 것 없이 반란 소식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나는 오직 황금콩 재배에만 신경을 쏟았다.

어차피 누가 이기든 이미 남부는 노선을 굳혔고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 전까지 조금이라도 더 전쟁 준비에 집중하는 것이 옳은 일 아니겠는가.

특히 황금콩은 수확에만 성공하면 남부군의 식량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었다.

‘근데 왜 싹이 안 나는 거지.’

하지만 라이언의 도움으로 실력 있는 식물학자들을 데리고 왔음에도 여전히 콩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시즈 일족을 호출해보기도 했지만 콩의 발아만큼은 자기들도 방법이 없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이런 나쁜 놈들! 하자가 있는 물건을 팔았어!

‘물건엔 이상 없다잖아.’

시즈 일족이 나를 엿 먹이려고 불량품을 판 건 아닐 터였다.

그리 생각한 이유 중 하나는 식물학자들의 의견 때문이었다.

“바이오 스캔 결과 현재 씨앗은 잠을 자는 듯 조용한 상태입니다.”

“죽은 씨앗은 아니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우주의 어떤 식물은 천년에 한 번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아마 긴 주기나 특별한 조건에서만 생장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짜 천년 뒤에 싹이 나면 곤란한데….

진은 그때쯤이면 나는 이미 뼈도 안 남았을 거라며 우울해했다.

그렇게 분지를 매일 오가던 어느 날, 하늘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우며 쿵 소리와 함께 분지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또! 또! 또! 일도 안 하고 돌아다닌다 싶었더니 이런 곳에 숨어있었구나!”

빌딩 공사를 감독하느라 한동안 내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공녀가 나타난 거였다.

“뭐? 황금콩? 참나, 식물 전문가인 이 몸을 두고 엉뚱한 데서 도움을 찾고 있었다는 거 아냐. 한 번 도와줘?”

내 사정을 들은 공녀는 코웃음을 치며 이깟 식물 하나 싹을 틔우는 건 일도 아니라며 자신만만했다.

생각해 보니 그녀는 우주 전역에서 모은 희귀 식물을 길러본 경험이 있지 않던가.

관리는 모두 골렘이 했다지만 그녀만큼 식물 관리에 정통한 인물도 드물 터였다.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생각해 보니 안 되겠다. 전쟁할 땐 바빠서 못 하겠다 그러고, 지금은 뭐 연구니 농사니 하며 갖은 핑계를 대는데! 넌 염치도 없냐!”

“이번 일만 마치면 전력을 다해 마법진 연구를 돕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저뿐만 아니라 공녀님께도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설명해 봐. 나한테 왜 도움이 된다는 건지.”

“이 황금콩은 엄청난 생명력이 깃든 물건입니다.”

오크의 굶주림을 해결해줄 정도의 에너지를 지닌 황금콩.

다른 희귀 식물보다 더 뛰어난 에너지가 콩에 들어있을 거란 의견은 분명 일리가 있었다.

게다가 북부에서 연구했던 천년공의 치료 술식엔 생명력을 위한 뛰어난 제물이 필요했다.

어떤 매개의 생명력을 정제해 환자에게 전이하는 마법이었기에 황금콩을 대량 생산하면 그 제물에 효과적으로 쓰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내 이야기를 듣던 공녀는 고민하는 듯 턱을 괴고 흐음- 소릴 냈다.

“뭐야. 거기까지 생각하고 일을 진행한 거야?”

“당연하죠. 저 아니면 누가 공녀님을 돕겠습니까.”

-그저 입만 열면 거짓말이….

“아닌 거 알지만 이번 한 번만 넘어가는 거야.”

그리 말한 공녀는 따라와보라며 나를 콩이 심어진 위치로 데리고 갔다.

“어떤 식물은 말이야. 마력에 의해 생장이 촉진되기도 한다고. 가만히 심어두고 비료만 준다고 해서 싹이 나는 게 아니란 말이야.”

“오. 그렇습니까? 역시 대단하십니다.”

나는 손뼉을 치며 그녀의 기분을 맞춰주었고 그녀는 피식 웃으며 지팡이를 들고 선언했다.

용언 마법.

드래곤 족의 언어로 주문을 외우자 일대의 마력이 생기를 띠며 흐르기 시작했다.

“자, 이제 며칠만 지나면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길걸?”

“이렇게 간단할 줄이야. 진즉 공녀님께 도움을 요청할 걸 그랬습니다.”

“알면 앞으로 잘 해. 한 입으로 두말하기 없기다? 너 치료 연구에 전념한다고 했어.”

“물론입니다.”

그렇게 공녀는 다시 날개를 펼치고 홀연히 분지를 떠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보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이후에도 공녀는 몇 번 더 분지를 다녀갔다.

하지만 황금콩을 심은 자리엔 여전히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이거 콩이 문제네. 내 잘못은 아니다?”

머쓱한 표정으로 분지를 떠난 그녀.

그 뒤로 공녀가 분지를 찾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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