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주 군벌가 망나니-69화 (69/134)

< 69화 >

VV5610 점령 작전 개시 12시간 전.

내게서 임시작전 안에 관한 이야기를 확인한 모리더스 대장은 이게 가능하겠냐는 것처럼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스텔스를 이용해 VV5610의 거점 방어 시스템을 무력화하고 행성을 점령하는 것까진 무척 훌륭한 작전이라고 생각하네.”

“예.”

“그런데 다음 단계는···.”

무어라 말을 하려던 모리더스 대장은 그답지 않게 망설이고 있었다.

행성 점령으로 시작되는 작전의 다음 단계가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이건 사령관으로서 동의하기가 어렵군.”

“대장님. 저는 이것이 저희의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반란군의 힘은 더욱 거세질 것이고 그때가 되면 연방군이 승리할 가능성은 실낱조차도 남아있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 계획대로면···. 자네는 필시 죽고 말걸세.”

모리더스 대장은 다시 계획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그에게 제안한 작전은 크게 2단계로 나뉘어 있었다.

첫 번째는 연방군이 보급을 마치고 후방으로 공간도약을 하기 위해 VV5610을 점령하는 것.

이는 엔터프라이즈호의 스텔스 장치를 이용해 행성 방어 시스템만 무력화시키면 상당히 승산이 높은 작전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다음은 모리더스 대장이 우려를 표한 두 번째.

이 단계는 엔터프라이즈호가 VV5610을 떠나 트라카를 경유, 하이퍼 에테르를 재차 보급한 뒤 니케아까지 연속으로 공간도약을 한다고 되어 있었다.

남부평의회가 위치한 행성 니케아.

우리의 목적은 이곳의 통신 센터를 무력 장악, 오스카 원수의 이름으로 성명을 발표하는 척하며 반란군 측에 가담한 모든 함선에 하나의 파일을 전송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모한 작전이네. 작전은 1단계까지만 실행하는 것이 좋겠어.”

“대장님. 설령 VV5610을 손에 넣는다 해도 연방군은 이미 반란군에 비해 크게 열세입니다.”

“현실을 직시하게. 니케아의 통신 센터를 순양함 한 대로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데 파일 하나로 반란군의 시스템이 다운되기까지 기도해야 하네. 이 모든 게 예상대로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느냔 말이야.”

모리더스 대장은 작전의 후반부를 실행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다.

성공 확률도 낮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AI를 크게 배척하며 기술 발전이 둔화된 탓인지는 몰라도 제국의 전자전 수행 능력은 생각만큼 우수한 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내겐 오스카 원수의 추가 성명으로 위장한 해킹 프로토콜이 반란군 함선에 심어지기만 하면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리란 확신이 있었다.

게다가 여기엔 내가 남부 전투함 상당수에 깔아둔 EMP 방어 장치도 한 몫을 거들었다.

노리고 만든 건 아니었으나 CPU와 연계해 함선의 중추를 방어하는 EMP 방어 장치를 거점 삼으면 메인시스템에 무시 못 할 타격을 줄 수 있었다.

긴 설득 끝에 결국 모리더스 대장은 작전 실행 허가를 내주었다.

내 말마따나 이런 무모한 작전이 아니고선 우리가 반란군을 상대로 전세를 역전시킬 방도가 없다는 현실을 결국 받아들인 거였다.

“미리 말해두지만, 계획의 후반부에선 확실한 전조가 있기 전까진 아군이 움직이지 않을 걸세. 일이 잘못되면 개죽음이란 뜻이야.”

“알고 있습니다.”

“꼭 성공시키게. 반드시!”

*

오리온 대장을 비롯한 제1군의 제압을 마친 뒤, 엔터프라이즈호는 다른 함보다 최우선으로 보급을 완료하고 VV5610을 떠났다.

여기엔 일부 크릭 친구들과 연구단지 지하에서 그라프 개발에 임했던 연구원들도 함께였다.

워프 드라이브의 냉각과 가동을 반복.

신속히 트라카로 워프를 전개하는 동안 나는 격납고에 들러 연구원들을 찾았다.

“시간이 촉박하니 서둘러 데이터를 뽑아보도록 하지.”

“정말 함장님이 직접 타실 겁니까?”

그라프 개발에 참석한 젊은 연구원들은 걱정스런 기색으로 물었다.

“나 말곤 마력을 다룰 줄 아는 이가 없으니 별수 있겠나.”

나는 흉부 메인 프레임을 열고 파일럿 탑승을 기다리는 그라프를 바라보았다.

카린 대령이 조종하던 것에 비하면 훨씬 작은 크기.

그러나 이 정도로도 이미 전고가 30미터에 이르는 수준이었다.

만약 더 컸더라면 격납고에 들어가는 것부터 문제가 생겼을 테니 오히려 지금은 이 사이즈가 우리에게 딱 맞는 셈이었다.

“그럼 녀석의 힘을 한 번 보도록 할까.”

연구원들과 논의 끝에 시험기엔 실피드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일개 구축함에도 이름을 붙이는데 그라프에 이름을 안 달아줄 순 없지 않은가.

실피드는 바람의 정령이란 뜻에서 나온 이름인데 진도 썩 괜찮다는 반응이었다.

-이름대로만 가면 바람처럼 훌훌 날겠군.

‘이제 막 테스트를 시작했으니 너무 성능을 기대하면 실망할걸?’

문이 열리고, 캐터펄트를 이용해 미끄러져 나간 실피드가 첫 출격에 나섰다.

그와 동시에 호위에 나서는 전투기들.

우주 공간에 발을 내딛는 순간 처음 든 생각은 조종간이 무겁다는 거였다.

‘전투기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제국의 전투기도 길이가 20미터에 이르는 커다란 놈들이지만 실피드는 무언가 달랐다.

조종석 바로 아래 위치한 마력팩 때문이었을까?

묵직한 파장이 몸을 쑤시는 느낌을 받으며 나는 차츰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함장님. 그런 속도로는 굼벵이도 잡기 어렵겠습니다.>

이때다 싶어 입을 터는 헨리.

그와 동시에 웃음을 참느라 몇 명이 끅끅대는 소리가 있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통신 채널엔 적막만이 감돌았다.

“헨리. 왜 그러지? 따라오기 벅찬가?”

<크윽···.>

전투기와 달리 거의 직각에 가까운 기동을 해낸 실피드는 서서히 전투기를 능가하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슬슬 전투기가 내 뒤를 쫓아오기 힘들어하자 나는 180도 턴을 하며 뒤쫓아오던 헨리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묘기를 선보였다.

<으악!>

“대위. 혹시 지렸다면 갈아입고 오도록.”

비틀거리며 균형을 잡는 헨리를 놔둔 채 나는 지크의 편대에게 전투 기동을 펼칠 것을 주문했다.

총 열 대의 전투기.

지크가 이끄는 편대는 남부군 최강의 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산개하여 포지션을 잡는 조종사들.

이번 테스트의 목적은 실피드가 정예 전투기들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모의 전투가 시작됐다.

그라프의 주력 무장은 방패와 마력 전달이 용이한 장검 한 자루, 레이저포를 쓰는 소총과 미사일.

-자, 네 힘을 보여봐라. 실피드!

나는 내심 실피드의 선전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예상만큼 좋진 않았다.

기동성을 살려 전투기의 포위망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던 찰나 속도가 급격히 느려진 탓이었다.

마력핵을 정제해 만든 배터리팩의 용량이 너무 적은 탓이었다.

-아니 비행한 지 얼마나 됐다고···. 조루도 이런 조루가 없구만.

격납고를 떠나 훈련을 시작한 지 고작 7분.

실피드의 배터리는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면 가동 시간이 5분 내외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마저도 실드는 크게 사용하지 않았을 때의 시간이었다.

전투함의 대공망을 뚫고 들어가 검으로 장갑을 찢는다든지 하는 묘기를 선보이면 에너지 소모가 더 커질 테니 사실상 인스턴트 카레급 배터리였다.

진은 실용성이 너무 떨어진다며 투덜거렸고 그 의견엔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카린 대령이 보여주었던 전함을 반으로 가르거나 하는 등의 위력을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최소한 실전에 투입하려면 가동 시간을 대폭 늘릴 필요가 있었다.

“베렐 중령, 재충전 준비해주게. 준비되는 대로 실드 한계도 파악해두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공간도약을 위한 하이퍼 드라이브의 준비 시간은 한 시간, 장치 냉각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하면 일정한 텀을 두고 계속해서 기체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셈이었다.

“1차 테스트를 종료한다. 2차 테스트는 워프 이후 재개하겠다. 전 인원은 도약 준비에 임하도록.”

<라저.>

*

폭우가 쏟아지던 저녁.

천둥이 치는 공장 지대를 한 남자가 헉헉거리며 달리고 있었다.

남자는 연신 뒤를 살피며 도망치길 반복했는데 모터의 굉음과 함께 하늘에서 강한 조명이 자신을 비추자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털썩 주저앉았다.

“대체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무릎 꿇고 애원하는 남자.

그러자 헬기가 착륙하고,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나타났다.

“라이언 코멧. 소환에 불응하고 계속 도망쳤다는 건 스스로 죄가 있음을 고백한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이 씨빨 새끼들아! 네놈들이 사람을 잡아가는 족족 사지를 비틀어놓는단 소문이 파다한데 그럼 안 도망치고 배기겠냐!’

라이언은 피 토하는 심정으로 울부짖었으나 그것을 끝내 입 밖으로 내뱉진 못했다.

자신의 앞에 서서 비열한 웃음을 짓고 있는 남자.

그는 다름 아닌 마르크 메이어였다.

존에게 복수하겠단 일념으로 연방군에 입대한 마르크였지만 그는 자질이 부족해 조종 장교는 될 수 없었다.

게다가 임관에 앞서 터진 융족과 남부의 전쟁.

마르크 메이어는 진급보다 살아남길 택했고 후방으로 물러나 관리직을 전전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만하면 자신의 주제를 깨달을 법도 하건만, 그는 여전히 존에 대한 복수를 꿈꾸었다.

가주직은 사촌 형인 하비에게 양보하더라도 존 만큼은 기필코 끝장내고야 말리라는 각오 하나로 사는 괴물이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르크 메이어에게 복수를 위한 천금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오스카 원수가 중앙에 대한 반란을 선포한 것이다.

뜻있는 자들은 함께 모여 미래를 도모하자는 선언문에 마르크는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반란군에 고갤 숙였다.

후방을 전전하며 지상에 남아있던 별 볼 일 없던 장교.

반란군으로서도 마르크 메이어는 썩 가치 있는 인물이 아니었으나 마르크는 자신을 제법 열심히 포장했다.

“저는 메이어 가문에 속해있습니다. 예. 존 메이어 대령, 녀석과는 사촌 관계이지요. 녀석은 지금도 전방에서 중앙의 회복을 기다리고 있는 줄로 압니다. 원수 각하의 뜻에 반대하는 파렴치한 놈이죠.”

마르크 메이어는 반란군 수뇌부에 자신에게 트라카 감시를 맡겨줄 것을 간청했다.

혹시나 모를 존 메이어의 수작을 미연에 방지해 보이겠다는 내용이었다.

마르크의 능력 자체는 그다지 보잘 게 없었지만 존 메이어를 감시하는 일은 반란군 입장에서도 제법 우선순위가 높은 역할이었다.

존은 현재 남부에서 가장 뛰어난 전투 장교를 꼽을 때 반드시 언급되는 이름 중의 하나.

그런 자가 원수의 뜻에 따르지 않고 중앙의 충신을 자처한다면 반란군으로서는 어떻게서든 제거해둘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마르크 메이어는 임시 감찰대원이 되어 트라카로의 배정을 명받았다.

물론 반란군도 마르크 메이어가 전쟁 영웅을 제거할 능력이 되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제때 보고를 해준다면, 혹시 모를 존 메이어의 후방 침투를 알리기만 해도 쓰임새로는 충분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렇게 트라카에 구축함을 이끌고 도착한 마르크 메이어는 감찰대원이란 감투를 이용해 온갖 패악질을 부렸다.

아직 정정한 윌리엄 백작에게 어서 반란군에 충성을 맹세하라고 큰소리를 치는가 하면 빼앗긴 옛 공장, 로얄 머신의 부지 위에 지어진 아크팩토리의 신공장을 무단압류하기도 했다.

반란군 장교가 강한 압박을 시도하자 아크팩토리의 운영은 순식간에 엉망이 됐다.

그런데 수난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트라카 바깥에서도 아크팩토리와 거래를 튼 자들을 조사한답시고 줄줄이 소환장이 날아드는 판국이었다.

이 전방위적인 압박은 존이 등장하기 전까지 가주직 승계가 유력했던 하비 메이어가 외부에서 힘을 실은 결과였다.

마르크와 하비, 두 사촌이 뜻을 합하여 존이 세워놓은 것들을 무참히 밟아대자 아크팩토리의 부회장이었던 라이언은 결국 잠적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미 끌려간 사람들은 모진 고초에 고생이 말도 못 한다는 이야기가 돌던 때였다.

‘내가 이래서 부회장은 하기 싫었는데···! 회장님. 제발 빨리 돌아오십쇼.’

가동이 중단된 신공장에 숨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어느 날, 라이언은 마르크의 끝없는 추적으로 결국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공장 대지 도로에서 라이언이 털썩 무릎을 꿇은 이유였다.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비 때문인지, 아니면 공포 때문인지.

눈물인지 콧물인지 모를 것을 흘리며 라이언은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아무것도 몰라? 네 놈이 아크 팩토리의 부회장 아니더냐.”

“끄, 끄윽!”

비에 젖어 엎드린 라이언은 자신의 손등을 군홧발이 짓이기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했다.

“존의 계좌 중 일부도 네가 관리했던 것으로 안다. 아는 걸 전부 털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육체적 고통, 그리고 정신적 고통.

양면으로 고통이 밀려들었지만, 라이언은 끝까지 판단력을 유지했다.

아는 정보를 이야기한들 저놈이 자신을 살려줄 것 같진 않았다.

거액의 비용이 담긴 회장의 계좌 정보를 손에 넣고 나면 뒷말이 나올 것을 염려해서라도 입을 막을 확률이 높았으니 말이다.

‘말을 하든 안 하든 죽음은 피하기 어렵다.’

결국, 살길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라이언은 배에 힘을 꽉 주고 고갤 들었다.

머릴 흠뻑 적시고 내리는 빗물이 자꾸 눈에 들어가 따가웠다.

“그래. 이야기할 생각이 좀 들었나?”

“좆 까. 이 패배자 새끼야.”

“······?”

“너 같은 새낀 평생을 발악해도 우리 회장님 발뒤꿈치도 못 따라가. 네 주제를 알아라! 병신아!”

“이 새끼가···.”

라이언은 어둠 속에서 파르르 떠는 마르크 메이어를 보며 조소했다.

죽기 전에 볼 수 있는 표정으론 가히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은데 곱게 죽진 못할 거다.”

라이언이 죽음을 각오했음을 안 마르크는 이를 갈며 라이트 세이버를 꺼냈다.

어둠을 뚫고 타오르는 광선검.

마르크가 라이언의 팔을 베어내려던 찰나, 먼저 쏘아진 총격이 마르크의 손을 관통했다.

“으, 으아악!”

삽시간에 날아가 버린 손.

손목 위가 통째로 없어진 마르크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고 주변에 있던 호위들 역시 보이지 않는 사격에 픽픽 쓰러져 나갔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눈을 동그랗게 뜬 라이언 코멧.

그런 그의 눈에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그림자들이 보였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나···?’

그것은 라이언이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는, 총을 든 커다란 토끼들이었다.

[여기는 진저. 라이언 코멧의 신병을 확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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