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주 군벌가 망나니-68화 (68/134)

< 68화 >

땅거미가 지며 밤이 찾아올 무렵.

지표면을 밝게 빛내는 건물들 사이에선 장성들이 모여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이번 전투는 그대들의 공이 컸네. 내 꼭 잊지 않고 상부에 보고하지.”

“감사합니다. 장군.”

화기애애한 분위기.

이들은 모두 제1군 소속 오리온 대장 휘하에 있는 장성들로 오스카 원수의 뜻을 따르는 반란군 무리였다.

지난 1차 공방전에서 이들은 전투함 1200척을 파괴하며 상대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3개 군단을 상대로 거둔 승리였기에 이들의 기분은 마냥 흡족하기만 했다.

“곧 새 시대가 열릴 것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은 중앙의 회복을 두려워하나 우린 그럴 필요가 전혀 없네.”

“원수님께서 따로 남긴 말씀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작금의 혼란은 단순히 황제의 죽음으로만 비롯된 것이 아니네. 이미 중앙은 옥좌를 두고 사분오열하여 남부보다 훨씬 많은 피를 흘리고 있다더군.”

오리온 대장은 술이 조금 과했는지 붉게 물든 얼굴을 하고 털썩 의자에 앉았다.

“앞으로 사흘만 더 있으면 추가 지원군이 도착할 것이네. 후방의 교전은 이미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고 하니 말이지.”

“역시 원수 각하십니다. 벌써 후방의 혼란을 정리하시다니요.”

“암! 새 시대의 주인이 되실 분 아니시겠나. 하하하.”

오리온 대장에게서 불쑥 튀어나온 새 시대의 주인이란 표현.

그 말을 들은 장성 일부는 몸을 움찔했지만, 이내 표정을 관리하며 자신의 속내를 감추었다.

그들은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반란에 가담하게 된 장성들로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을 품고 있긴 하나 제 목소리를 낼 용기는 없는 자들이었다.

반란군 장성들이 땅에 발을 딛고 축하연을 벌이는 사이, VV5610의 궤도엔 제1군 전투함 수천 척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적의 기습에 대비하고 있었다.

땅 위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건 장성들의 특권이고 영관급 이하 장교들은 24시간 대비태세를 위해 제 한 몸을 갈아 넣고 있는 셈이었다.

일부 장교들 사이에선 이런 일이야말로 기계 병사를 써야 하는 것 아니냐며 투덜댔지만 오리온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아직 완전히 AI를 신뢰하지 않았고 이런 일은 역시 사람의 힘을 쓰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새 시대를 위하여 다시 한번 건배하지. 건배!”

“건배!”

분위기를 주도하는 오리온 대장은 이 상황이 퍽 만족스러운 듯했다.

이대로 적 3군단을 막아내면 반란군 내에서 자신의 공로는 무시할 수 없을 수준이 될 것임엔 분명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새 시대가 열리면 오스카 원수는 곧 새로운 황제로 등극하여 남부 제국을 통치하게 될 터.

그렇다면 자연스레 공석이 된 원수직을 누군가는 물려받아야 했다.

그리고 오리온은 자신이야말로 그 적임자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모두의 부러움을 한눈에 받는 자리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희망찬 미래에 부풀어 있던 그때, 행성 전역을 찢는 듯 울리는 경고음과 함께 공습경보가 발령되었다.

오리온은 취기가 확 달아나는 것을 느끼며 다급히 부관을 찾아 통신을 시도했다.

“무슨 일이냐!”

<공, 공습입니다!>

“공습이라니! 어디서!”

통신기를 붙잡고 악을 쓰는 오리온 대장에게 부관은 울먹이는 소리로 답하다 비명을 질렀다.

<지표에서 갑자기 적함 반응이···으악!>

“적함이라니! 마일즈!”

아무리 불러도 치직거리는 소리 외엔 답변이 없는 부관.

잠시 뒤, 장성들이 창밖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우르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곳엔 있어서는 안 될 거대한 화염 기둥이 솟구치고 있었고 사방에선 연달아 폭발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빌어먹을!”

헐레벌떡 건물 밖으로 빠져나와 전함을 향해 달리던 오리온 대장은 크억! 소릴 내며 털썩 주저앉았다.

이미 융단 폭격으로 지상이 엉망이 된 상황.

땅이 전부 헤집어져 튀어나온 돌부리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걸려 넘어진 것이다.

고통을 참고 잽싸게 다시 일어선 오리온은 불현듯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휘몰아치는 VV5610의 밤하늘.

“으으윽···!”

비틀린 신음이 오리온의 입가를 비틀고 새어 나왔다.

군단이 밝히는 전투함의 환한 불빛이 지상을 향해 유성우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

-누워서 떡 먹기였군.

‘결과가 좋았지.’

각오를 다지고 제안한 단독돌파 작전은 즉시 모리더스 대장에게 채택되었고 이어 각 군단 사령관의 동의하에 실행되었다.

라함 장군은 내게 스텔스 장치가 있다는 사실을 듣고선 마치 신이 나를 돕고 있는 것 같다는 평을 남겼고, 콜린 장군은 그런 물건이 있으면 1차 교전을 하기 전에 알렸어야 할 거 아니냐며 오히려 성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시즈 일족과의 교류 사실을 윗선에 털어놓는 것은 나로서도 큰 부담을 각오한 것이었다.

외계 종족과의 교류 사실을 숨긴 것.

이후 이단심문관의 추궁을 피하고자 카린 대령과 짜고 거짓말을 한 것.

여기에 기술 발전이라면 눈을 부릅뜨는 중앙의 감시를 피해 몰래 스텔스 장치를 숨긴 것까지.

중앙에서 물고 늘어지면 목이 잘리거나 감옥에서 평생 썩고도 남을 수준의 문제들이 산재해 있었다.

하지만 후일이 두려워 잠자코 있으면 남부의 반란군 제압은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차라리 이 기회를 살려 반란군 제압에 공을 세우면 잘못을 어느 정도 묵인해줄 거란 기대도 있었다.

-그래야 다시 대령이랑 기쁨의 재회도 할 수 있을 거고?

‘거기까진 생각 안 했어.’

-부끄러워하긴.

아무튼, 속전속결로 펼친 작전에 우린 생각보다 쉽게 VV5610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중앙이 열심히 만든 행성 방어 시스템은 엔터프라이즈호가 쏟아내는 미사일과 전투기의 폭격에 허무하게 터져나갔다.

방어 시스템은 머리 위를 나는 적을 공격하도록 설계됐지만, 지면을 깔고 날아오는 미사일엔 전혀 내성이 없었다.

그렇게 대공방어 시스템이 무력화되자 궤도 위에 있던 제1군은 라함 장군과 콜린 장군의 협공에 속수무책으로 얻어터졌다.

살아남은 적 장성들은 항복을 선언했고 지상에 남아있던 반란군도 이내 모리더스 대장에 의해 제압되었다.

1차전 승리로 술을 퍼마셨는지 오리온 대장은 술에 취한 채로 사로잡혔고 작전이 마무리된 것을 확인한 나는 서둘러 연구단지로 향했다.

엔터프라이즈호의 무장 병사들을 대동하고 연구단지에 들이닥치자 연구 장교들은 목숨만 살려달라며 통로 바닥에 엎드리기 바빴다.

반란이 일어나고 수뇌부가 갈리는 와중에도 이들은 그저 평소처럼 연구를 진행해왔던 것으로 보였다.

나는 이들 중 반란에 깊게 가담한 자들이 있을 수 있다며 모두 제압할 것을 명령했고 이후엔 원래 목적이었던 연구단지 지하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사해야 할 텐데.’

지하 연구동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매티스 대위는 위험할 수 있다며 부하들만 보낼 것을 권했다.

만약 적이 매복해있다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상황이 예상될수록 내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막을 수 있겠지?’

-가능할 거야. 이젠 인간치고는 좀 봐줄 만 해졌다고.

꾸준한 수련으로 인한 마법 실력의 향상.

진은 내 몸에 축적된 마력을 개방하면 레이저 소총이나 폭탄 등의 공격은 능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내가 직접 돌입하겠다고 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아무리 부하를 중무장시키고, 방패를 들려준다 한들 적이 맘먹고 공격하면 예상치 못한 사망자가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직접 힘을 쓴다면, 그런 사고를 방지할 수 있으니 부하들에게만 뒷일을 맡길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소수의 병사만을 대동한 채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빠르게 지하 깊은 곳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나는 푸른빛이 감도는 실드를 펼쳤다.

기계의 도움은 전혀 없이, 순수한 마력으로 만들어낸 방어막이었다.

‘음? 뭐지?’

지하 연구동에 발을 내딛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복잡하게 얽혀있는 바리케이드였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빼꼼하고 머릴 내민 연구원이 어? 하며 벌떡 일어났다.

“아니, 대령님? 여긴 어떻게···?”

그는 다름 아닌 베렐 중령이었다.

베렐 중령 곁으론 프로젝트 팀원들이 다수 모여 총을 붙잡고 있었는데 이들은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크게 놀란 기색이었다.

“제법 강한 진동이 있었을 텐데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습니까?”

“설마 반란군 진압이 시작된 겁니까?”

내가 고갤 끄덕이자 연구원들은 두 손을 번쩍 들고선 만세를 외쳤다.

“행성 방어 시스템이 워낙 견고하다고 들어서 아군이 작전 중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베렐 중령은 강한 진동이 느껴지길래 이제 반란군이 자신들을 치워버리려는 줄 알고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후의 항전이라니.

이들도 말 못 할 고생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다들 별일 없었습니까?”

“예···. 무슨 이유에선지 오리온 그놈이 다른 연구실은 다 헤집고 다녔는데 여기만큼은 건들질 않더군요.”

“다행이군요.”

나는 오리온이 이곳만큼은 건들지 않았던 이유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이곳에 있는 크라켄의 핵.

지금이야 우주 크라켄을 추가로 사냥하여 마력핵의 숫자가 좀 더 늘어났지만 이전까지는 남부에 단 두 개밖에 없는 핵을 연구하던 곳이었다.

게다가 그 연구를 허락한 것은 다름 아닌 반란군의 수장 오스카 원수.

오리온은 이곳에서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지 잘 알았을 것이고 그라프가 완성되면 반란군에도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여 이곳을 가만 놔둔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정작 프로젝트를 담당하던 연구 장교들은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었다며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놈들은 프로젝트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수시로 내려와 확인하고 갔습니다. 다들 말은 안 해도 시험기를 완성하고 나면 정리당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많았죠.”

“음. 그 말대로면 시험기 완성 전까진 놈들이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을 텐데 저렇게 바리케이드를 쌓은 이유는 뭡니까?”

내가 통로를 가로막은 장애물들을 가리키자 베렐 중령의 얼굴이 살짝 펴졌다.

“대령님께서 직접 선발한 팀원들의 역량은 가히 천부적이었습니다. 일정 구간을 지나자 프로젝트에 탄력이 붙었고 1차 프로토타입이라 부를만한 시험기가 완성됐습니다.”

“벌써 시험기를 제작했단 말입니까?”

-이렇게나 빨리?

중령의 말에 나도 진도 상당히 놀랐고 베렐 중령은 연구실 안쪽으로 우릴 데려가 거대한 천에 가려져 있던 그라프 시험기를 공개했다.

“···정말로 완성을 했군요.”

“아직 테스트해야 할 부분이 산더미긴 합니다만 외형은 어느 정도 갖춰졌습니다.”

프레임에 고정돼 두 발로 선 강철의 거인.

외장은 함급 느낌이 선명한 크롬색에 카린 대령의 것에 비하면 크기가 훨씬 작았지만 분명 그라프가 틀림없었다.

“당장 움직여볼 수 있겠습니까?”

“아직 안 됩니다!”

아직 탑승은 이르다며 실전에 내놓을만한 데이터를 더 모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마력핵도 배터리화에 성공했고, 무장도 제대로 장착한 것 같은데 뭐가 문제입니까.”

어느덧 주변에 모인 연구원들은 앞다투어 시험기가 풀어야 할 숙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파일럿 선정입니다. 안정화를 하려면 실제 기동에서 데이터를 뽑아야 하는데 이게 마력핵으로 만든 물건이다 보니 파일럿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군. 카린 대령도 강한 마력의 소유자였으니 말이야.

마력핵으로 만든 배터리가 내뿜는 파장을 견딜 수 있을 강한 파일럿.

연구원들은 파일럿 선정 이후에도 한동안 그라프를 조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음. 어차피 제대로 완성하려면 우리가 직접 손을 봐야겠어.

내가 연구원과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시험기의 상태를 확인한 진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카린 대령의 그라프는 각종 마법 술식이 내·외부에 새겨져 배터리에서 나오는 마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나 지금 완성된 그라프는 그저 출력이 강한 사람 형태를 띤 전투기에 불과하다는 평이었다.

-연구원 중에 마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이가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진은 시험기를 엔터프라이즈호로 옮겨 남은 테스트를 진행하자고 말했고 나는 그 의견에 동의했다.

시험기의 크기는 약 25미터 남짓.

충분히 순양함의 격납고에도 실을 수 있는 크기였다.

“예? 시험기를 전투함으로 옮기신다고요?”

“파일럿이 필요하다면서요. 시간이 없으니 남은 테스트는 가면서 하는 수밖에요.”

시간이 없다는 말에 연구원들은 이게 다 무슨 이야긴가 싶은 반응이었다.

“행성 탈환을 이제 막 하셨는데 바로 떠나신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VV5610 점령은 오로지 보급을 위한 작전의 출발선에 불과했다.

이제는 두 번째 스텝, 오스카 원수를 노린 후방 침투 작전을 시작할 차례였다.

“이제 반란군과의 전쟁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앞으로 있을 일주일에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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