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주 군벌가 망나니-66화 (66/134)

< 66화 >

오스카 원수의 추가 영상을 확인한 이후 2군의 분위기는 더욱 심각해졌다.

기계 병사라니.

영상만 봐도 이미 원수는 오래전부터 중앙의 감시를 피해 이번 일을 계획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서 저 많은 기계 병사가 튀어나왔단 말인가.

문제는 저것들이 전장으로 나오는 순간 전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기계 병사는 사람이 아니다.

기계 병사가 전장에서 파괴된다고 해서 생명의 가치를 고민할 일이 있겠는가?

놈들은 두려움이란 게 없었고, 훈련 없이 바로 전장투입이 가능한 존재였다.

생산기반이 확실하다면 오스카 원수는 불멸의 군대를 손에 쥐게 된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었으니 이제 오스카 원수를 상대하는 모든 군단은 시간과도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속전속결로 VV5610을 점령해야 합니다!>

<저길 어떻게 뚫고 들어간단 말이오! 저 무수한 기뢰의 바다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옵니까?>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우린 다 말라 죽습니다!>

<한 달, 아니 일주일만 지나도 기계 병사가 수백만 대씩 늘어날 거요.>

<다들 좋은 의견이 있으면 기탄없이 이야기해보게. 이대로 가만있을 순 없지 않겠나···.>

고성 말곤 남은 게 없는 통신회의.

나는 지끈거리는 머릴 뒤로 하고 함교를 빠져나와 잠시 통로를 걸었다.

-문제가 심각해졌군.

일단 VV5610에 들어가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보급이었다.

지나치게 넓은 우주.

연방군이 우주에서 작전할 때는 반드시 확보해두어야 하는 전략 자산들이 존재한다.

식량과 식수, 그리고 미사일 등등.

그 밖에도 여러 가지 품목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최우선 관리 대상은 공간도약을 위한 하이퍼에테르, 그리고 은하간 통신을 위한 퍼플옵테늄, 이 두 개가 대표적이었다.

하이퍼에테르가 없는 전투부대는 발을 묶고 싸우는 것과 같으며 퍼플옵테늄이 없는 경우는 눈과 귀를 가리고 싸우는 거나 마찬가지다.

공간도약과 실시간 통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 아군 전투함 대부분이 전선에서 활약하는 동안 이 중요 자원 두 가지가 상당히 소모됐다는 데 있었다.

‘VV5610은 현재 전선에서 중요 자원을 보급할 수 있는 유일한 행성이야. 이대로 공략을 포기하고 우회해서 돌아간다면 제때 후방에 도착하는 건 불가능하겠지.’

오스카 원수는 이미 기계 병사로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 선언한 상황.

평의회를 무력 진압하고 남부의 수많은 행성을 손에 넣은 원수라면 하루가 다르게 병력을 찍어낼 수 있었다.

결국, VV5610을 공략하지 못하면 전선의 연방군은 발이 묶이게 되는 셈이고 그렇게 되면 이 싸움은 오스카 원수의 승리로 끝날 확률이 매우 높았다.

모리더스 대장이 머릴 쥐어 싸매고 고민하는 사이, 전장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다른 군단의 출현이었다.

“거리 2천! 아군 부대 신호 포착했습니다! 제3군입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외치는 오퍼레이터의 외침.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VV5610을 점령하기 위해 부리나케 달려온 3군이었다.

이때 전투함 함장들은 그야말로 초긴장 상태였다.

기뢰 폭발로 구축함 수십 척이 녹아내렸고 1군에게 공격을 받은 게 바로 조금 전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아군 식별 신호는 전장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아군인 척하고 주포나 쏘아대지 않으면 다행이다.

모리더스 대장은 언제든 반격할 수 있도록 제3군의 겨냥을 지시했고 이쪽 반응에 화들짝 놀란 3군 또한 우릴 향해 머리를 돌렸다.

‘이러다 자멸하겠군.’

-아니야. 양측 거리가 가까워지진 않고 있다.

아슬아슬하게 서로의 최대사거리 밖에서 양측은 의견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오리온이 오스카 원수에게 붙었다는 말인가? 아군 구축함을 기뢰로 터트려?>

<전부 사실이다.>

모리더스 대장의 말에 3군의 대장인 콜린 장군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할 순 없다며 오리온 대장과 오스카 원수에 대한 엄청난 욕설을 퍼부었는데 저게 연기라면 콜린 장군은 군인이 아니라 배우가 됐어도 대성했을 양반이었다.

콜린 장군의 열변에도 불구하고 모리더스 대장은 쉽게 의심을 놓지 못했고 결국 양측이 조심스레 합류를 시도한 것은 그로부터 2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그래도 결과적으론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제2군에 3군이 더해져 이쪽은 2만여 척의 전투함을 확보한 상태가 된 것이다.

물론 이것으로도 VV5610을 공략하기엔 한참이나 부족한 규모였다.

통상적으로 방어 시설을 완전히 갖춘 행성을 공략할 땐 3배의 병력을 투입해야지 동수를 이룰 수 있다는 게 정설이었다.

그런데 중앙이 직접 방어 시설을 깔았고 행성 규모도 타 행성의 10배를 우습게 넘는 VV5610이라면 훨씬 더 많은 병력이 필요할 터였다.

모리더스 대장과 콜린 대장.

두 장군은 VV5610을 최대한 빠르게 점령해야 한다는 데는 뜻을 모았으나 고작 2개 군단만으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제는 기도밖에 남은 게 없군.’

믿을 수 있는 아군 부대가 추가로 합류하는 것을 기도하는 것만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나는 분위기를 환기할 겸 카페를 찾았다.

엔터프라이즈호는 순양함이 되며 승조원들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을 확충해두었는데 카페 또한 그러한 흐름으로 갖춘 시설 중 하나였다.

‘푸른 은하수’라는 간판을 단 카페는 매일 커피를 마시러 오는 군인들로 붐볐다.

이유는 간단했다.

맛이 뛰어나니까.

나는 넘쳐나는 크레딧으로 실력 있는 바리스타들을 섭외해 데려왔고 각종 고급 원두를 부족하지 않게 배치해 천 명이 넘는 다양한 인원의 기호를 맞출 수 있도록 지시했다.

“분위기가 영 흉흉하군요. 늘 드시던 것으로 내어드릴까요?”

“부탁하지.”

익숙한 듯 내게 줄 커피를 내리는 뤼겐 중위.

그의 커피 내리는 솜씨는 가히 일품이었는데 누가 보면 바리스타 자격으로 장교가 된 건 아닌지 생각할 정도였다.

물론 중위는 바리스타로 군에 들어온 게 아니라 취미로 커피 일을 배웠는데 그 재능이 너무 뛰어났던 경우에 속했다.

“중위의 솜씨는 늘 훌륭하군.”

“감사합니다.”

단맛과 산미의 조화가 적절한 커피.

그 향을 음미하며 긴장을 풀어낸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각 군 대장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길목에 더 많은 아군 부대가 집결할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모리더스 대장은 언제 공격에 나설 것인가.

나는 그 시점을 군단 3개가 모였을 때가 아닐까 생각했다.

-군단 3개라고? VV5610은 거대 행성이라 더 많은 병력 우위를 점하고 싸워야 하는 거 아니었나?

‘아군이 제때에 합류해줄 거란 보장이 없으니까.’

문제는 시간이었다.

계속 기다리면 이쪽의 규모가 더 커질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저쪽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제1군만 VV5610을 지키고 있지만 원수의 뜻에 찬성하는 또 다른 군단이 방어를 위해 합류한다면···.

VV5610은 영원히 뚫을 수 없는 철옹성으로 변할 터였다.

*

대치 19시간째.

내 예상대로 첫 공격이 시작됐다.

제3군에 이어 제5군이 우리 쪽에 합류해주었기 때문이었다.

5군 사령관은 라함 도미니우스.

그는 연방군 유일의 라다만 대장이었으며 언제나 냉철한 판단을 한다고 알려진 자였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에게 딱히 좋다고 볼 수만은 없었다.

<곧 중앙이 나서서 원수의 반란을 정리할 것이니 너무 염려 마시오.>

대장들끼리 나눈 통신만 봐도 그랬다.

라함 장군이 우리의 손을 들어준 건 아직 중앙의 힘을 믿기 때문이지 어떤 큰 신뢰 관계에서 비롯된 행동은 아니었다.

지금이야 괜찮지만 만약 오스카 원수의 세력이 더 커지고, 남부의 독립이 임박하면 장군은 얼마든지 태도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

-라다만이라고 다 같은 건 아니군. 우리 지크는 안 그럴 거야.

‘확실히···. 지크가 우릴 버리고 떠나는 건 상상이 안 가는걸.’

보통의 라다만과는 다른 지크를 떠올리며 우린 전투에 돌입했다.

작전은 간단했다.

3개 군단이 VV5610을 삼면으로 조여 포위 공격을 펼치는 것이었다.

화력을 생각하면 군단을 집중하는 것이 옳지만 이번 전투의 최우선 과제는 일단 행성에 상륙하는 것이었다.

지표면 전투를 펼쳐 행성의 대공방어 시스템을 무력화하면 적은 3배에 달하는 수적 열세에 놓이게 되니 이쪽이 충분히 우위를 잡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전투함은 주포를 발사하여 기뢰를 제거하라.>

모리더스 대장은 전함의 주포를 이용해 무수한 기뢰를 안전히 제거하며 천천히 전진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건 다른 군단 역시 마찬가지일 터.

그렇게 차근차근 전진해 나갈 때였다.

제3군 사령관인 콜린 장군 측에서 다급히 지원을 요청했다.

<제1군이 이쪽으로 총공격에 나섰다! 지원 바란다!>

지원 요청은 이쪽뿐만 아니라 제5군 측에도 전해졌다.

그러나 라함 장군은 자신은 상관없다는 듯 구조 요청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기뢰 제거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닌, 애초에 정해져 있던 작전대로의 움직임이었다.

삼면으로 포위해 들어갈 경우, 적이 타겟을 잡고 돌파를 하러 나올 수 있으니 그때 나머지 군단은 지원에 신경 쓰지 말고 최대한 행성 점령을 우선하기로 미리 계획이 되어 있었던 것.

그 점을 생각하면 큰 위협을 느낀 콜린 장군의 다급한 지원은 오히려 작전을 깨는 것이 되는 셈이었다.

그러나 모리더스 대장은 콜린 장군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었는지 마이클 소장에게 지원에 나설 것을 명했다.

그렇게 마이더스호를 따르는 전투함은 다급히 방향을 돌려 제3군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융족의 워프를 막겠답시고 기뢰를 촘촘히, 그리고 광범위하게 깔아둔 탓에 지원을 가는데 만도 족히 수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사이, 제3군은 먼지 나게 두들겨 맞고 있었는데 계속해서 들려오는 지원 요청은 조금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로 3군의 열세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상한데.’

놈들이 3군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한들 각 군단의 규모엔 차이가 없을 터였다.

그런데 이렇게도 3군이 밀린다는 건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각 군은 행성 방어 범위 안에 들어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거리 1800! 곧 공격 범위 안으로 들어갑니다!”

<모든 아군 전투기는 3군을 돕기 위해 발진하라!>

<발진!>

마이클 소장은 3군과 1군의 전투 지점이 가까워지자 전투기 출격을 명령했다.

그의 지휘 아래 전함 편대가 수천 대에 달하는 전투기를 내보냈다.

이중엔 지크 셉타누스가 이끄는 엔터프라이즈호의 전투기 편대도 포함이었다.

잠시 뒤, 적과 먼저 맞붙은 아군 전투기가 다급히 상황을 알려왔다.

엔터프라이즈호에 상황을 알린 건 지크였다.

<지크 소령이다! 놈들의 전력이 매우 강하다! 아군이 밀리고 있다!>

“그럴 리가! 우리가 밀리는 게 확실한가!”

재차 사실을 확인하는 오퍼레이터에게 지크는 그렇다고 답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3군의 사정이야 몰라도 지크 셉타누스가 이끄는 엔터프라이즈호의 전투기 편대는 남부 최강의 실력을 자랑했다.

우리가 개입한 이상 전세가 역전돼야 정상일 텐데 지크는 도리어 아군까지 위험할 지경이라고 한 것이다.

<제길! 더 버티기 힘들다! 아군이 엄청나게 격추되고 있다! 버티는 건 우리 편대뿐이다!>

개개인이 융족 전투기 네다섯대를 너끈히 상대할 수 있는 에이스 파일럿들.

그런 우리가 간신히 버티는 수준이라니.

절망적인 상황에 나는 현재 일어나는 일의 자초지종을 깨달았다.

‘놈들이 벌써 기계 병사를 투입한 게 틀림없다···!’

육체적 제약을 벗어나 전투기의 스펙을 그대로 소화할 수 있는 기계 병사.

놈들이라면 어지간한 파일럿을 손쉽게 요리하는 지금의 상황이 납득이 됐다.

“지크! 함장이다! 후퇴해라! 부대원을 이끌고 즉시 전투 영역을 벗어나라!”

<이대로 벗어나면 아군의 피해가 커질 겁니다!>

“명령이다! EMP를 발사하겠다!”

<···라저!>

AI를 탑재한 기계 병사의 약점, 그것은 바로 고위력 EMP에 있었다.

EMP를 쏘겠다고 하자 지크도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는지 망설임 없이 방향을 돌려 후퇴에 전념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전자탄 발사!”

“전자탄 발사! 목표 명중 9초 전!”

“전자탄 명중 확인!”

강렬한 파장과 함께 터진 고위력 EMP.

그와 동시에 아군 채널에선 어떤 미친놈이 예고도 없이 EMP를 터트렸냐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줄을 이었지만,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동시에 침묵한 양측의 전투기들.

얼마 있지 않아 아군 전투기에선 시스템이 타버렸다며 구조 요청을 보내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그러나 적 전투기에선 그 어떠한 반응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전투기를 조종하던 AI가 맛이 가버렸을 테니 움직임이 없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장은 너무 넓었고 EMP를 쏠 수 있는 범위엔 한계가 있었다.

다시금 AI로 무장한 적 전투기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콜린 장군은 군을 뒤로 물리기 바빴다.

이대로 전투를 더 지속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진! 다른 군단 상황은 어때!’

-최악이다. 방어가 생각보다 강해서 통 전진하질 못하고 있어.

기뢰를 제거하고 행성 쪽으로 향한 모리더스 대장과 라함 대장 휘하 전투함들.

그러나 강한 화력으로 대응하는 VV5610의 행성 방어에 군단은 더 전진하질 못하고 발이 묶이고 말았다.

적은 언제부터 반란을 계획했는지 엄청난 물량의 전략 자산을 행성에 비축 중이었고 쏟아지는 미사일과 화력에 결국 아군은 후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군단을 합하여 총 1200척 이상의 전투함 손실.

아군의 완벽한 패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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