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이보다 더 충격적일 수 없는 소식.
오스카 원수가 무력으로 평의회를 장악하며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전선은 큰 충격에 빠졌다.
<제2군 휘하 함장들은 들으라! 지금부터 2군은 추후 명령이 있을 때까지 타군과 일절 교류하지 않을 것이며 이 명령을 어기는 이가 있으면 전부 첩자로 간주할 것이다!>
모리더스 대장은 급히 타군과의 통신을 끊어냈으며 제2군을 집결시키기 시작했다.
이는 누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알 수 없기에 비롯된 명령이었다.
현재 전선에 나온 대장 계급 숫자는 모두 일곱.
이중 누가 오스카 원수에게 포섭되었는진 알 도리가 없었다.
모리더스 대장 본인부터가 오스카 원수와 뜻을 함께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생각해?
‘이건 미친 짓이야···.’
중앙의 혼란을 틈타 기습적으로 일으킨 쿠데타.
이미 평의회를 무력 장악했으니 당장 오스카 원수에게 반기를 들 세력은 남부 은하 중심권에 없다고 봐도 좋을 터였다.
하지만 문제는 이 이후였다.
중앙의 혼란은 영원하지 않을 터였다.
건강이 위독하다 했던 황제가 죽고 새로운 황제가 나타나거나 그 밖의 여러 가지 가능성이 존재했지만, 혼란이 잠잠해질 거란 사실만은 명확했다.
그때가 되면···.
황제가 독립을 선언한 남방 경계를 가만 놔두겠는가?
어림없는 소리였다.
중앙의 아무리 크고 부유하다곤 하나 남부는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남부는 융족과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해 영토가 두 배 이상 늘어난 상황.
이는 자치령으로 삼을 수 있는 거주용 행성과 자원지대의 무한한 확장을 의미했다.
중앙에선 멀쩡하던 자원 수급처가 사라진 느낌일 테니 이를 가만두고 볼 리 없었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무력 개입이 있을 테고 그때가 되면 남부군은 융족이 아니라 중앙과 싸우게 될 운명이었다.
‘중앙을 무력으로 이길 순 없다.’
중앙의 혼란이 백 년쯤 지속하고.
나와 같은 인재들이 대거 나타나 남부의 기술력을 중앙급으로 끌어올린다면 또 모르겠으나 그럴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다.
당장 카린 대령이 그라프를 타고 와 내 목에 칼을 겨눈다고 생각하면 그만큼 무서운 일도 드물었다.
중앙의 사정을 정확히 알진 못하나 이 혼란이 10년 이상 갈 확률은 상당히 낮았다.
그것은 후계 문제로 혼란에 빠졌던 과거 제국의 역사가 증명해주었다.
분명 오스카 원수도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 대체 왜, 뒷감당이 안 될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골치가 아파진 나는 일단 마이클 소장에게 연락을 넣었다.
“충성, 소장님. 상부에서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습니까?”
<대령이군. 없었네. 지금은 이쪽도 그야말로 혼란 상태네.>
“이번 일···소장님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마이클 소장은 순간 운을 떼려다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선 제법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염려하는 기색으로 말이다.
“소장님.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이번 사건을 매우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불행 중 다행이군. 나도 그렇네. 이건 미친 짓이지. 아마 모리더스 대장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실 걸세.>
마이클 소장은 중앙의 혼란이 가라앉은 이후의 일을 떠올린다면 절대 해선 안 되는 일이라며 오스카 원수의 행동을 맹비난했다.
오스카 원수는 융족과의 전쟁에서 제때 나서주지 않은 중앙을 비난했으나 지금 이 행동은 더 큰 피바람을 몰고 올 것이라며 말이다.
마이클 소장은 지금 전선에 나선 함장 중에 원수의 의견에 찬성하는 사령관이 있을지 모른다며 몸조심할 것을 당부했고 나는 그리하겠다며 통신을 마쳤다.
한 시간 뒤, 모리더스 대장으로부터 추가 성명이 흘러나왔다.
이번 사건은 제국의 기틀을 흔드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며 그 어떤 이유로도 오스카 원수의 행위는 인정받지 못한 일이라는 내용이었다.
모리더스 대장의 발 빠른 대처로 적어도 2군의 혼란은 빠르게 가라앉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앞으로 어떤 움직임을 취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오스카 원수의 반란을 제국의 일원으로 용납할 수 없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융족과의 전쟁을 잠시 중단하고 다시 머리를 돌려 혼란스러운 후방의 질서를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평의회까지 장악한 오스카 원수, 여기에 수많은 장성이 이미 저쪽 편에 서서 박수를 치는 광경을 연출하지 않았던가.
일단 적과 아군을 확실히 구분 짓기 전엔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떠올려보고자 남부군의 조직도를 살폈다.
통수권자인 오스카 원수.
그 아래로 열다섯의 대장 계급 장군들.
이 중 일곱은 현재 1군부터 7군까지 조직해 전선으로 나온 상황이었다.
현재 후방엔 여덟 명의 대장 계급 장군이 남아있었고 이중 최소 셋은 오스카 원수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후방 방어를 위해 대기 중인 장성들이 모두 원수의 의견에 동의하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이들을 빨리 회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늦을수록 이들 중 원수 쪽 파벌에 넘어가는 이들이 늘어날 확률이 높았다.
이것을 모리더스 대장과 현 전선 수뇌부도 모를 리 없을 터.
나는 곧 소집 명령이 떨어질 것을 예감하며 행성을 떠날 채비를 했다.
<충성!>
“소령. 내 자네에게 부탁할 일이 있네.”
<뭐든 말씀하시지요.>
“소령도 알고 있겠지만 이쪽에 남아있는 크릭 친구들의 숫자가 꽤 많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곧 모리더스 대장님이 어떤 식으로든 호출을 하시지 않겠나. 그래서 일찍 떠날 준비를 하려는데 수송을 좀 도와주었으면 하네.”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그쪽으로 합류하겠습니다.>
나는 지상의 간이 시설을 회수하는 한편 주변 부대에 연락을 돌려 합류해줄 것을 부탁했다.
지금 이곳에 남아있는 크릭의 숫자는 자그마치 1만 명에 달했다.
격납고와 화물칸, 복도를 가득 채운다고 해도 엔터프라이즈호와 구축함 두 척만으론 이들을 모두 데리고 갈 수 없었다.
그렇게 추가로 구축함 3대를 더 합류시키고 나서야 우린 간신히 크릭들을 수송할 수 있었다.
이후 엔터프라이즈호를 포함한 여섯 척의 연방 전투함은 마이클 소장과의 합류를 위해 사막을 벗어나 우주로 향했다.
어제의 동지가 적인지 알 수 없게 돼버린 상황.
지금은 한 명이라도 더 믿을 수 있는 아군과 함께하는 게 중요했다.
*
오스카 원수의 쿠데타 이후 28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모리더스 대장은 1만여 척에 달하는 제2군을 모두 끌어모았고 긴급히 VV5610으로의 귀환을 추진했다.
VV5610은 지금껏 융족 영토에서 발견한 행성 중 가장 풍요로운 곳이었기에 최우선 전략 요충지에 해당했다.
게다가 이미 남부의 자본이 상당히 투입돼 방어가 견고했고 전략 자산이 풍족하니 장기 작전을 고려한다면 귀환 결정은 무척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렇게 VV5610 진입을 눈앞에 두었을 시점, 2군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만약 오스카 원수의 뜻을 따르는 다른 부대가 먼저 행성을 점거했다면 우린 매우 힘든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융족의 기습적인 워프를 방어하기 위해 수없이 깔린 기뢰지대 사이를 조심스레 이동하고 있을 때였다.
오퍼레이터들의 비명과 함께 갑작스런 전투가 시작됐다.
“대규모 기뢰 폭발 확인!”
“기뢰 폭발이라니!”
“아군 전투함···60척 이상 신호 소실됐습니다···.”
일부러 기뢰를 건드리지 않고 이동 중이었는데 기뢰가 왜 터진단 말인가.
당황해하고 있을 때 오퍼레이터가 추가 정보를 전달했다.
“2시 방향 거리 1100!”
“대규모 전투함 확인!”
“식별 신호···판독 결과, 제1군입니다!”
<빌어먹을!>
난데없는 기뢰 폭발로 구축함들이 터져나간 것을 확인한 모리더스 대장이 분노를 터트렸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주포 충전 확인!”
“제1군이 우릴 겨눴습니다!”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아군끼리의 충돌.
전선에 있던 군단 중 오스카 원수의 뜻에 동조하는 세력이 나타난 것이다.
<오리온!!! 이게 무슨 짓이냐!>
<모리더스. 역시 발 빠르군. 이곳으로 제일 먼저 달려올 줄이야.>
제1군을 이끄는 건 오리온 대장.
그는 3대 파벌을 이끄는 수장 중 한 명으로 오스카 원수와는 데면데면한 사이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란에 찬성하여 우리를 압박하는 입장으로 돌변해 있었다.
<개소리하지 마라!>
<가망 없는 전투를 하겠다는 건가? 이쪽은 이미 행성의 대공방어를 수중에 넣은 상태다. 승산이 없다는 건 누구보다 네가 더 잘 알 텐데?>
오리온 대장의 말에 모리더스 대장이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도 그럴게 지금 VV5610에 배치된 방어 장치의 태반은 중앙에서 만든 것으로 그 효과가 매우 훌륭해 궤도 위 적까지 능히 타격이 가능한 것들이었다.
즉, 저 거대 행성을 끼고 있는 제1군을 2군의 힘만으로 몰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네 이놈! 부끄럽지도 않으냐! 오스카 원수가 하는 짓은 명백한 반란이다! 중앙에서 이를 두고 볼 성싶으냐!>
<모리더스. 중앙의 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냐!>
<곧 원수께서 모든 것을 설명할 것이다. 못 믿겠다면 군을 뒤로 물리고 잠시 기다리면 될 게 아닌가.>
기뢰의 폭발 장치까지 저들이 원격으로 조종하는 상황.
이대로 더 전진하는 건 불가능했기에 결국 모리더스 대장은 함대를 뒤로 물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기다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오리온 대장은 오스카 원수로부터 받은 추가 메시지라고 밝힌 영상을 이쪽으로 전달했다.
평의회를 장악하고 후방 정리에 나선 오스카 원수가 전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쪽과 뜻을 함께하겠다는 이들은 모두 받아들일 것이다.
단, 남방 경계가 안정화될 때까지 중장 이상 계급의 장성들은 모두 연금 조치를 하겠다.
이는 더 이상 무고한 군인들이 전장에서 피를 흘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 각 장군은 심사숙고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모리더스 대장은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팔걸이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융족으로 인한 인명 피해보다, 남방군이 내전을 일으키며 입을 피해가 훨씬 더 클 게 자명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중앙이 다시 질서를 회복한 이후엔 어떻게 되겠는가.
반란에 가담했단 이유로 남부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될 게 분명했다.
모리더스 대장은 절대 이 같은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외쳤으나 영상의 후반부, 갑작스레 등장한 평원으로 인해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되었다.
바람이 부는 대지에 수많은 병사가 도열해 있었다.
그것은 은빛 갑옷을 걸친 무장 군사로 그 숫자가 족히 수만을 넘었는데 놀라운 건 이들이 아주 작은 흔들림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영상을 지켜보던 장성들의 입에서 짓눌린 듯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영상 속 군인들은 바로 인간이 아닌 로봇, 제국이 그렇게도 치를 떨며 금지한 기계 병사들이었기 때문이다.
명령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동작을 수행하며 두려움을 모르는 기계군단.
자세를 바로 한 오스카 원수가 큰소리로 외치며 영상의 말미를 장식했다.
<중앙은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해 기계를 부정하며 사람의 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다. 그것이 결국 어떠한 결과를 불러왔는가···. 제국의 가엾은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아아, 우리는 이제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자유를 얻은 이곳에선! 더는 인간이 인간을 위해 피 흘리지 않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