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얼마 전에 입원한 VIP 말이야. 너무 얌전하지 않냐구. 윌터 선생님은 뭐라셨던 줄 알아? 아예 다른 사람 같대.”
“내 말이, 처음 눈떴을 때 존댓말까지 해서 선생님 식은땀 흘리셨다잖아.”
“진짜로?”
“너 귀족이 존대하는 거 봤어? 뭐 가끔 그런 분들도 계시긴 하지. 그치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개망나닌데?”
이른 아침, 병원 일과가 시작된 시간.
복도를 오가는 간호사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최근 저들의 주된 화제는 바로 나였다.
큰 수술을 받고 깨어난 백작가의 망나니가 이상해졌다는 것.
본의 아니게 그들의 대화를 듣고 나서야 나는 이 몸의 전 주인이 얼마나 개차반 같은 놈이었는지를 새삼 실감했다.
“왜 내 팔다리가 안 움직이는 건데 이 개새끼들아-!!!”
이것이 의료진이 예상했던 내 첫마디였다고 하니 말 다 했지 뭐.
나는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저들이 나 들으라고 병실 코앞에서 저리 떠드는 것은 아니었다.
이 세계의 기술은 지구와 비교하면 한층 더 발달해 대다수 분야에서 훨씬 뛰어난 기술을 자랑했다.
인류가 우주선을 타고 별들을 항해하는 시대라고 하니 말이다.
이러니 건축 기술 또한 뛰어난 것은 당연한 일.
아마 간호사들은 내가 자신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줄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거다.
보통 인간이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내 오감은 이 새로운 세상에서 눈을 뜨며 비정상적인 변화를 이뤘다.
“혹시 정령과 계약하게 되면 초인이라도 되는 거야?”
-아니. 계약에 그런 효과가 있다는 이야긴 들어본 적이 없어.
“그럼 내가 운이 좋은 거네.”
불현듯 덮친 화물트럭을 생각하면 내가 운이 좋은 게 맞나 싶지만 아무튼···.
진이 정리해준 자료를 토대로 이세계 적응을 위한 공부를 하던 나는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진.”
-왜.
“이렇게 발전한 세계인데도 어떻게 귀족이 남아있던 걸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했다. 자네의 세계엔 귀족이 없었던 모양이지?
“없었어.”
귀족처럼 특권을 인정해주는 신분제도는 현대 지구에서 대부분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이 세계는 달랐다.
이곳은 여전히 소수 귀족이 다수의 시민을 다스리는 중이었다.
사람들이 이런 사회에 별다른 불만을 품지 않고 있단 건가?
다들 이런 신분제를 군말 없이 받아들인다는 게 지구인이었던 나로선 조금 신기한 일이었다.
-아마 사람들이 이 제도에 거부감이 없는 건 누구나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겠지.
“기회?”
-제국은 연방군에 들어가 군공(軍功)을 세우면 귀족 작위를 준다고 하거든. 신분 상승을 노린다면 누구나 한 번쯤 도전을 해볼 수 있는 셈이지.
“군공이라. 제법 위험하겠지?”
-그렇겠지. 그대를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아.”
존 메이어는 파일럿 훈련 도중 사고를 당했다.
그건 아마도 군에 입대하기 위한 훈련이었을 터.
존의 파일럿 재능이 꽝이었던 건 둘째치고 전투기가 필요하다는 건 그만큼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단 뜻으로 해석됐다.
“이게 다 뭐야?”
-연방군 자료.
“세상에···.”
나는 진이 활성화한 영상을 보며 충격을 금치 못했다.
외계 함선의 압도적 크기와 화력.
폭죽 터지듯 산화하는 제국 전투기들.
1분여의 짧은 영상 속에 수많은 파일럿의 목숨이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체 존 메이어는 뭐가 아쉬워서 군인이 되려고 했던 걸까.
망나니라곤 해도 엄연히 귀족가문의 일원이고 사치도 적당하게 부리며 살면 죽을 때까지 돈 걱정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들 하지. 하물며 한 행성의 왕이 될 수도 있는 기회인데 누구든 눈 돌아가지 않겠어?
“행성의 왕?”
존이 속한 메이어 가문은 귀족 중에서도 급이 상당히 높은, 백작 가문이었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면 백작 이상의 지위를 가진 귀족은 사실상 행성을 완벽히 복속시켜 그곳의 주인이 되는 게 가능했다.
이는 오직 백작 이상의 대귀족에게만 주어진 특권으로 백작이란 사실상 한 행성의 왕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는 셈이었다.
-2년 전 가주인 윌리엄이 후계 경쟁을 선포했어. 군공을 가장 크게 올린 손주들에게 작위를 물려주겠다고 말이야.
“손주? 자녀들이 아니고?”
-특별한 일이 없다면 가주의 자녀들보단 손주들이 더 오래 살 테니까. 가문의 부를 더 오래 이어가고 싶다면 합리적인 선택이지.
이곳 트라카 행성의 크기는 지구와 맞먹는다.
행성의 최고 통치자가 된다는 것.
이것은 지구 역사상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일로 진의 말대로라면 아무리 망나니라 한들 욕심을 내 볼만 한 일인 것처럼 보였다.
“진은 이런 걸 어떻게 다 아는 거야?”
-네트워크.
마법의 정령인 진은 주변에 인터넷만 있으면 몸을 비집고 들어가 다양한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다고 했다.
아무 때나 네트워크 상의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니, 정말이지 편리한 능력이었다.
-이제 이곳에 대한 적응은 제법 됐을 것 같은데?
“덕분에.”
-자, 그래서 앞으론 어떻게 할 거지? 새로운 존.
진의 질문에 난 머릴 긁적였다.
“일단은 퇴원부터 할까?”
*
나이 스물둘의 백작가 망나니.
후계 경쟁에서 진즉에 밀려난 것은 물론이고 가문에 얼씬도 하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일단 가주를 찾아가 인사하는 것이었다.
-가주에겐 한 번쯤 인사를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
-기록을 살펴보니 수술을 지원한 사람도 가주이고 아직 이 행성을 떠날 일이 없다면 더더욱 그래야지.
트라카 행성의 모든 것은 백작인 가주의 손안에 있었다.
그러니 목숨을 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정돈 해둬야 이곳에서 사람답게 사는 게 가능했다.
그렇게 나는 퇴원하는 날을 맞이했다.
신경 회복까지 2주가량의 시간이 걸렸지만 병원을 찾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존 메이어가 가문 내에서 어떤 인간으로 여겨졌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부모님조차 돌아가셨으니···.’
우연의 일치였는지 존은 나와 같은 고아였다.
존의 부모는 존이 어릴 적, 제국 전역에 발동된 황제의 소집령에 의해 전선으로 향해야 했고 그곳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것이 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2주 만에 병원 바깥으로 나섰을 때, 뜨거운 햇살은 지구의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존 님.”
꾸벅 인사하는 의사 선생.
나보다 나이가 최소 스무 살은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의료진이 줄지어 서서 나를 배웅하는 것이 새삼 신분의 격차를 실감케 했다.
병원에서 준비한 고급 리무진 앞에서 나는 의사 선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게 변한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려는 일종의 연기였다.
“그동안 수고했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비굴할 정도로 자신을 낮추는 의사들에게 고개를 까딱 끄덕이는 것으로 나는 병원을 떠났다.
병원 측에서 마련한 고급 세단의 승차감은 지구의 그 어떤 자동차보다 부드러웠다.
자율주행으로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가는 차량.
나는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풀기 위해 정신을 가다듬었다.
-왜 그래?
“조금 긴장돼서.”
그런 일이 또 일어날까 싶지만 언제고 커다란 차가 나를 덮치진 않을까 몸이 잔뜩 긴장한 것이 느껴졌다.
-허약한 계약자 같으니.
혀를 차며 투덜거린 진은 내 상태를 보더니 이상한 주문을 들려주었는데 그 효과가 실로 놀라웠다.
“이게···뭐야?”
-마법의 정령이라고 했잖아. 심신 안정화 마법이지.
효과 죽이네.
우황청심환이 필요 없는 압도적 능력.
단점이라면 다소 어지러움을 느꼈다는 것인데 진은 그것도 곧 익숙해질 거라 말했다.
-정령을 다루려면 마력이 필요한 법이지. 곧 익숙해질 거야. 그리고 앞으로 나랑 대화를 주고받을 땐 되도록 머릿속으로 하자고.
‘이렇게?’
-그래. 그렇게. 누가 엿들을지도 모르잖아.
‘이 세상에선 누구나 이렇게 마법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마법을 쓸 수 있는 인간은 귀족보다도 적을 테니까.
다른 사람에겐 없는 특별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썩 기분 괜찮은 일이었다.
*
“방금 연락받았어.”
“무슨 연락?”
“망나니가 퇴원했다고 하네.”
메이어 그룹 본사 부 회의실.
인물 훤칠한 남녀들이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메이어 가문의 후계 경쟁에 참여 중이라는 것.
“파일럿 훈련 도중 추락했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
“당연히 죽은 줄 알았는데 대체 어떻게 살아난 거야?”
“의학이 너무 발달하면 이런 문제가 생기곤 하지. 죽어야 할 인간이 죽질 않는다니까.”
사촌을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라고는 다소 섬뜩한 대화들.
그러나 이들의 얼굴에선 그 어떤 거리낌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몰랐네. 오빠가 존을 그렇게 신경쓰고 있었을 줄은.”
“신경 썼다기 보단 그냥 자연스럽게 들려오는 거지.”
남자는 그리 말하며 피식 웃었다.
존 따위는 신경 쓸 것도 못 된다고 말하는 그의 이름은 마르크 메이어.
가주의 차남에게서 난 자식으로 이 모임을 주도하는 이였다.
“그건 그렇고, 오빠는 언제 입대할 생각이야? 하비 오빠는 벌써 소령 진급이 코앞이라던데.”
사촌의 질문에 마르크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방금 언급된 하비 메이어는 가문의 장손으로 일찍 군에 입대해 벌써 상당한 군공을 올린 상태였다.
이대로 간다면 가주의 자리는 그에게 돌아가게 될 가능성이 상당한 터였다.
“차이가 너무 벌어진 거 아니야?”
“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여유를 되찾은 마르크가 손가락을 흔들었다.
“너희들. 이 후계 경쟁이 얼마나 더 이어질 것 같아.”
“글쎄에?”
“3년 내로 마무리 지어지지 않겠어?”
“틀렸어.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는 거야.”
귀족은 정년이 없다.
한번 받은 직위는 그가 죽을 때까지 유지된다.
마르크는 이 점을 사촌들에게 어필했다.
“할아버지도 연세가 있으시니 유언의 초안 정돈 구상을 해두셨겠지. 하지만 생각해봐. 너희들 할아버지가 당장 돌아가신다고 상상이 돼?”
“아니.”
“워낙 건강하시니까.”
“존 같이 곤죽이 되고 뇌가 죽어도 살려내는 시대야. 아직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진 시간이 많이 남았고 그 사이에 상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이거지.”
장교로 군에 입대할 수 있는 나이 제한은 35세까지.
마르크는 올해 스물여섯으로 입대를 생각하면 늦은 감이 있지만 그에겐 나름의 생각이 있었다.
“하비 형이 성실한 건 인정해. 그러니까 벌써 소령 진급을 눈앞에 두고 있겠지. 하지만 진정한 진급 경쟁은 그때부터 시작이라고. 너희 진급을 순수하게 실력으로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실력이 아니면 뭐로 진급하는데?”
“멍청한 자식. 이게 필요하단 말이야.”
마르크는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며 돈을 뜻하는 손짓을 취했다.
“제국이 영토를 늘리면서 관리를 신규 귀족에게 맡기는 이유가 뭘 거 같아. 다 지출을 줄이기 위함이야. 지금 전방에서 활약하는 영관 장교 중에 돈에 허덕이지 않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을걸?”
함선을 꾸미는 것도, 최고급 장비를 갖추는 것도 모두 돈이 필요한 일이었다.
기본 보급품만 가지고선 아무래도 불안한 곳이 제국 최전선의 전장이었다.
마르크는 적어도 상재(商才)에서만큼은 자신이 하비보다 낫다는 것을 자랑했다.
“내가 괜히 입대를 미루고 있는 게 아니라고.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지.”
“그러고 보니 형 얼마 전에 대형 엔진 계약을 체결했다는 이야기가 들리던데. 사실이야?”
“그게 이야기가 거기까지 들어갔어?”
마르크가 긍정하는 투로 어깨를 으쓱하자 사촌들의 눈빛에 시기와 질투가 차올랐다.
“내가 아는 거랑은 좀 다르네? 오빠 아직 그 계약 마무리 못 했잖아.”
“무슨 소리야?”
“맞잖아. 경쟁입찰이니까. 트라카에 엔진 제조 공장 하나 더 있는 거 잊었어?”
그녀의 말에 마르크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며 노기를 드러냈다.
트라카에 함대 엔진 제조를 전문으로 하는 공장이 하나 더 있긴 했다.
마르크의 것에 비하면 한없이 낙후됐고 체급 차이가 크게 나긴 했지만 말이다.
“제인. 미치지 않고서야 그 녀석이 내게 싸움을 걸 리가 없잖아. 이건 처음부터 결과가 정해진 일이라고.”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그 애가 파일럿에 도전할 줄도 다들 예상 못 했잖아?”
제인의 조소에 마르크는 분노를 삼키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제인,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녀석은 단 하나 남은 공장마저 잃어버리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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