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주 군벌가 망나니-1화 (1/134)

1화

반도체 공학자 김우진.

떠오르는 실리콘밸리의 젊은 천재.

그는 지금 시장 점유율에서 완전히 밀린 반도체 기업, 제너럴을 되살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우진 결과물이 나왔다고?

“그래. 안 그래도 지금 연구실로 들어가는 중이야.”

실리콘밸리를 가로지르는 101번 고속도로.

운전 중에 통화를 받은 우진의 목소린 조금 들떠 보였다.

그도 그럴게 지난 일 년 동안 진행한 프로젝트가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미리 축하하지. 이제 곧 돈방석에 앉게 되겠군.

“그래야 할 텐데 말이지.”

상대의 덕담에 김우진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간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다지만 그는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자신이 있었다.

이 차세대 CPU는 기울어진 시장의 판세를 다시 구성할 힘이 있었다.

그런 물건을 만든다면 부는 자연스레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마크는 벌써 자네에게 차세대 프로젝트를 맡기고 싶은 모양이던데? 어때, 생각 있나?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번 일만 마치면 한동안은 쉴 거야. 이건 아무도 말릴 수 없다고.”

물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적지 않은 돈을 받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돈이 많은들 그 돈을 쓸 시간조차 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나.

하루도 쉬지 않고 일 년을 달려왔으니 한동안은 푹 쉬어도 될 터였다.

-후후. 알겠네. 그래도 계속 쉴 건 아니지?

“글쎄? 어디 한적한 섬에서 쉬다 보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지. 난 돈에 그렇게 욕심을 내는 사람은 아니라서.”

-항간엔 스스로 돈 욕심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경계하라던데?

“하하.”

상대의 농담에 피식 웃은 우진은 잠시 생각했다.

말은 이렇게 했어도 사실 우진은 계속해서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는 것.

그것이 젊은 천재인 김우진의 현재 목표였다.

“뭐 이번 작품이 점유율 탈환을 못 하는 상황이 오면 그때는 바로 프로젝트에 들어갈 수도 있을···!”

-우진?

통화를 하고 있었던 탓일까.

우진은 옆을 달리던 화물트럭의 궤도가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알아채는데 조금 늦고 말았다.

‘젠장···.’

자율주행을 갖춘 차량이 위험을 감지하고 급히 핸들을 틀어보지만 재앙을 피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밀려오는 컨테이너를 보며 우진은 생각했다.

‘역시 운전은 수동···.’

그것이 우진이 이 세상에서 떠올린 마지막 생각이었다.

***

여긴 대체 어딜까.

머릿속이 왕왕 울리고, 어쩔 도리가 없이 엉킨 실타래가 가득 찬 것만 같은 느낌.

그런 기이한 느낌 속에서 끝없는 공간을 헤매다 간신히 눈을 뜰 수 있었다.

묘한 느낌이었다.

메탈 소재를 중점으로 지어진 내벽, 그리고 바이탈 사인을 알리는 스크린 모니터.

눈알만 데굴 굴려 주변을 살피자 병실 같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병실이면 병실이지 병실 같은 공간은 뭐냐고 할 수 있겠다만은 내가 그런 생각을 떠올린 이유는 뭔가 내가 알던 병실과는 조금 다른 곳이라서였다.

조금 미래지향적인 방 같다고 해야 할까.

SF영화 속에서 보던 의료실이 꼭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었다.

근데 내가 왜 병실에 있지?

나는 인상을 쓰며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장면을 떠올리려 애썼다.

분명···고속도로였다.

차를 타고 연구실로 달려가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들이닥친 화물트럭.

그리고는 세상이 빙글 돌았다.

운 좋게 살아난 건가?

평생 중환자실을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그 사고 속에 간신히 목숨만은 건졌다고 하면 현재 상황이 이해가 됐다.

문제는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게 머리밖에 없다는 것.

눈꺼풀을 깜빡이거나.

혀로 마른 입술을 적시는 것도 가능한데 팔다리는 아무리 용을 써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속으로 욕이 절로 나왔다.

부모님은 일찍이 돌아가셨고 세상은 내게 친절한 곳이 아니었다.

그래도 악착같이 버텨서 이제야 좀 누리고 사나 싶었는데···.

몸이 이래서야 그렇게 견딘 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던 그때, 기이한 목소리가 들렸다.

놀랍게도 머릿속 한가운데서였다.

-들리나?

낮고 중후한 목소리.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를 파악하려 애썼다.

-정신을 차린 것 같은데.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나?

“대체 어떻게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오호.

반가움의 탄성.

내가 목소릴 들을 수 있다는 것에 안심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들리나보군.

“대체 어떻게?”

나는 어떻게 머릿속에서 말을 거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진이라고 한다. 그대의 계약 정령이지.

정령? 새로운 개념을 뜻하는 단어인가?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만물에 깃든 영혼의 한 갈래라고 할 수 있지.

상대의 대답에 나는 크게 놀랐다.

내가 입 밖으로 내지 않은 생각까지도 상대가 읽을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당혹스러움을 알아차린 것인지.

자신을 정령이라 소개한 진은 조용히 내 대답을 기다려 주었다.

“그···물어보고 싶은 게 좀 있는데.”

-뭐든 물어보도록.

“대체 여긴 어디지?”

-병원이지. 훈련장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이다만.

“훈련장?”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나?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대는 파일럿 훈련 도중에 추락했다.

파일럿 훈련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화물트럭에 깔려 사고가 난 게 아니라고?

나는 진이라는 정령과 한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그 결과 뭔가가 크게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내 이름이 존 메이어?”

-정확히는 존 트라카 메이어지. 자신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면 상당히 후유증이 큰 모양이군. 피곤하진 않나?

정령이란 존재의 말을 듣고 보니 갑자기 급 피곤함이 느껴지긴 했다.

“그러고 보니 조금 그런 것 같기도···.”

마치 수면제라도 먹은 것 같은 급작스러운 졸음이 몰려왔다.

-일단 큰 고비는 넘은 것 같으니 회복은 천천히 해보도록 하지.

스륵 감기는 눈꺼풀.

나는 잘 자라는 정령의 인사를 받으며 다시 곤한 잠에 빠졌다.

*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좀 더 많은 사람을 볼 수 있었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 그리고 간호사들.

내가 눈을 뜨자 그들은 탄성을 터트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존 메이어님. 정신이 드십니까?”

“제 손가락을 쳐다보세요.”

“확실히 의식을 차렸어요.”

“기적이 일어났군.”

의사들의 호들갑에 나는 내가 희귀생물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저는···.”

“예? 존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내 머릿속의 목···.”

-이봐. 일단 나에 대한 건 저들에게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머릿속이 어떠시다고요?”

“아닙니다. 아무것도.”

정령이 말했다.

자신의 존재는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순전히 감이었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그의 말을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내가 다시 움직일 수는 있는 겁니까?”

“물, 물론입니다. 신경계가 회복되면 다시 일상생활을 하시는 덴 문제가 없을 겁니다. 길어도 2주면 몸을 가누실 수 있을 거고요.”

의사는 본가에 일단 연락을 취했다는 등의 이야길 했고 나는 그저 고갤 끄덕이기 바빴다.

내가 존이라는 남자가 된 것부터 이해가 안 되는데 다른 건 말해 뭐하겠는가.

“그럼 저희는 잠시 있다가 다시 오겠습니다. 불편한 점이 있을 땐 언제든 호출해 주시면 됩니다.”

머리 말곤 움직일 수도 없는데 뭘로 호출을 하나 싶었는데 호출벨은 음성 인식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의사들이 떠난 자리.

나는 조용히 정령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일단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한건지를 제대로 알아야 했다.

그리고 잠시 뒤 알게 된 내 현실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이게 나라고?”

의사에게 부탁해 옆에 놓은 거울.

거울 속엔 내가 익히 보아왔던 김우진의 모습이 아닌, 갈색 머리칼의 훤칠한 외국인 청년이 들어 있었다.

“진짜로 내가 다른 사람이 됐다니···.”

본의 아니게 갖게 된 이 새로운 몸의 원래 이름은 존 트라카 메이어였다.

나이 스물둘, 일대를 주름잡는 위세 등등한 메이어 백작가의 막내.

어쩐지 목소리도 좀 다른 것 같더라니.

게다가 더욱 충격적인 건 이곳이 내가 알던 세계가 아니라는 거였다.

지구가 아닌 완전히 다른 세상.

그 트럭 사고로 내가 차원 이동이라도 해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이 황당함을 가라앉히기 위해 유일한 소통 상대인 진과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니까 자넨 존 메이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의 영혼이란 거지?

“그렇다니까.”

-이래서 타인에 의한 계약은 잘 안 받는데 말이지. 아무래도 계약과 맞물려 그대의 영혼도 이곳에 도착한 모양이군.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되는데···.”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지. 자네 말대로라면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니까, 일단은 회복에만 집중하자고.

나를 안심시키려는 정령의 조언에 나는 문득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했다.

평생을 김우진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다.

이 세상에도 CPU 공학자가 취직이 잘 되려나?

보아하니 미래 배경의 세계 같은데 자신이 아는 기술이 모두 구닥다리일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그, 정령씨?”

-편하게 진이라고 부르도록.

“진, 나 좀 도와주겠어?”

-뭐를.

“네 말대로 나는 이곳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거든. 최소한의 정보 제공이라든가?”

-알겠다. 나는 그대와 계약된 몸, 최대한 돕도록 하지.

“고마워.”

-일단은 운명공동체니까 말이야.

나는 그렇게 정령의 도움을 받아 이 세계의 정보를 익히기 시작했다.

*

“정말 대단한데?”

-뭐,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나는 진이 보여주는 자료를 보며 연신 감탄했다.

그는 내 머릿속에 말을 거는 것뿐만 아니라 가지런히 정리된 자료를 보여주었다.

마치 머릿속에 선명한 스크린이 하나 생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약, 도박, 밀수까지?”

-폭력은 덤이고.

진이 정리해 보여준 기사들.

그곳엔 과거 존 메이어가 저질렀던 다양한 범죄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트리플 크라운도 아니고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

-세간에서 그대를 뭐라고 부르는 줄 아나?

“···뭔데?”

-메이어 가문의 수치, 백작가의 개망나니라고들 하더군.

“······.”

프로젝트 마감을 앞두고 일어난 청천벽력 같은 사고.

나는 아무래도···머나먼 세계의 망나니가 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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