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21. 나랑 싸우면 이길 자신은 있고?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21. 나랑 싸우면 이길 자신은 있고?
2023년 3월 5일 일요일.
일요일임에도 이날 오전 넬슨의 수술 소식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정밀진단은 이미 금요일에 결과가 나왔다는데, 왜 금요일에 발표하지 않고, 오늘에서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 처리를 참 이상하게 하는 것 같다.
“태양, 축하해. 넬슨한테는 정말 안 된 일이지만, 넌 정말로 운이 좋은 것 같아.”
“정말 부럽군. 나는 언제야 액티브 로스터에 들어보려나.”
출근하자마자 동료 선수들의 축하가 이어졌다.
메이저리그에서 누군가의 불행은 다른 이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되고 행복이 된다.
물론 뭐 그렇다고 해서 동료 선수들이 넬슨을 외면한 건 당연히 아니고, 다들 넬슨에게도 이미 위로의 메시지를 보낸 후였다.
사실 넬슨의 수술 소식이 발표됐을 뿐, 아직 나의 액티브 로스터 진입이 발표된 건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다들 나의 액티브 로스터 진입이 확정된 것 마냥 설레발을 떨고 있었다.
이러다가 내가 아닌 다른 선수가 들어간다면 이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물론 뭐 그런 일은 절대로 없겠지만.
그리고 아마 모르긴 몰라도, 액티브 로스터 진입을 노리고 있는 40인 로스터 선수들, 그러니까 카를로스 놈이나, 훌리오 놈 같은 애들은 대놓고는 표출 안 하지만, 지금 나에 대한 질투를 느끼고 있을 거다.
특히 카를로스, 그 자격지심과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찌질이는 그러고도 남지.
뭐 어쨌건 오늘의 상대 팀은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홈 경기였다.
오늘 경기, 양 팀의 선발 라인업은 다음과 같다.
-----------------------
1. T.J. 르몽드 2B
2. 왕태양 DH
3. 브라이언 게인즈 CF
4. 카를로스 오테로 RF
5. 앙헬로 푸엔테스 1B
6. 루이스 카루소 3B
7. 케빈 사네즈 C
8. 로건 덤브릴 LF
9. 해리 코니즈 SS
P. 산티아고 오수나
-----------------------
-----------------------
1. 짐 벨에어스 CF
2. 닉 가이슬러 LF
3. 루이스 아리아스 1B
4. 토드 피어스 DH
5. 스티브 팔켄버그 RF
6. 펠릭스 바르가스 3B
7. 마크 로저스 SS
8. 조지 우드 C
9. 호라시오 인판테 2B
P. 요스바니 페르난데스
-----------------------
상대 팀의 선발 투수인 요스바니 페르난데스는 쿠바 출신으로, 작년 2022년 7월에 망명에 성공하여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입단 계약을 체결하였다.
현재 볼티모어 팜에서 가장 기대받는 유망주지만, 볼티모어에서 그 재능을 폭발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트레이드되는데,
볼티모어, 오클랜드, 보스턴 레드삭스, 시카고 컵스, 워싱턴 내셔널스 등을 거치며 커리어 통산 158승, 3.68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며 쿠바 출신 선발 투수 중 가장 빼어난 기록을 남기게 된다.
좌완 투수로 최고 구속 104마일(167.3㎞)의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는데, 그래서 리틀 아구스틴 산타크루즈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물론 뭐 그래봤자, 지금 시점에서는 상대하기 대단히 쉬운 투수다.
게다가 1회차 때도 나는 이미 이 투수를 상대로 엄청 강했었다.
어쨌건 오늘도 대단히 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아주셨다.
팬들의 열광적인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오늘도 난 최선을 다할 것이다.
1회 초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공격.
우리 팀의 선발 투수는 산티아고였다.
가정폭력 징계로 2020시즌을 풀로 날리고 돌아온 후 2021, 2022, 두 시즌은 그야말로 처참하게 폭망했고, 현재도 시범경기에서 DFA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처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시즌 후에 논텐더로 풀리게 되는데, 아마도 그 운명은 이번에도 변하지 않을 듯싶다.
아무튼.
❝타격했습니다. 좌익수와 중견수 사이를 완전히 갈랐습니다. 공이 펜스까지 대굴대굴 굴러갔고, 짐 벨에어스는 2루 지나 3루까지 뜁니다. 3루에, 세잎입니다.❞
일단 3루타를 얻어맞았고,
❝쳤습니다. 1루 선상. 라인 안쪽의 페어입니다. 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며,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빠르게 선제 득점을 가져갑니다. 그리고 타자 주자 닉 가이슬러는 2루까지. 연속해서 장타가 나오는군요.❞
다시 2루타로 먼저 빠르게 실점을 하고야 말았다.
이거 아무리 내가 활약을 한들 오늘도 무난하게 대패할 각인데?
그리고.
❝잡아당겼습니다. 큰 타구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펜스를 넘겼습니다!!! 홈런!!! 루이스 아리아스, 시범경기 첫 홈런을 신고합니다. 두 점을 더 달아나서 점수는 이제 3:0입니다.❞
❝밀어친 타구가 3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그대로 빠져나갑니다. 3루타, 2루타, 홈런, 안타로 네 타자 연속 안타입니다.❞
홈런과 안타로 경기 시작 후 네 타자에게 히트 포 더 사이클까지 나오고야 말았다.
이대로라면 산티아고가 1회를 버텨줄지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볼.”
“볼.”
“볼.”
“볼.”
이번에는 스트레이트 볼넷이 나왔고, 급기야는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 지금은 펠릭스 바르가스의 머리 쪽으로 대단히 위험한 공이 날아갔습니다. 피했기에 다행이었지, 맞았다면 정말 아찔했을 상황이었네요.❞
홈팬들의 야유에 멘탈이 털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후속 타자를 상대하면서 초구가 정말로 터무니없이 빠져버렸고, 하마터면 헤드샷이 될 뻔하였다.
홈팬들의 야유가 다시 거세졌다.
그리고.
❝오!!! 지금도 또 공이 손에서 터무니없이 빠졌군요. 이번에도 하마터면 헤드샷이 될뻔했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설마 홈팬들에게 야유를 받았다고 일부러 빈볼을 던진 것일까?
아니면 갑자기 입스가 온 것일까?
어느 쪽이건, 상대 타자로서는 당연히 분노가 폭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아. 펠릭스 바르가스가 마운드로 돌진합니다. 그리고 양 팀 선수들이 모두 우르르 몰려나옵니다.❞
분노를 참지 못한 펠릭스가 마운드로 돌진하면서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하였다.
메이저리그의 벤치클리어링은 KBO의 벤치클리어링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곳은 지금 아수라장입니다. 대체 이곳이 야구장인지, 격투기 링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일단 펠릭스 바르가스가 산티아고 오수나에게 먼저 주먹을 날리면서 두 선수가 주먹질을 주고받았고, 그 와중에 앙헬로 푸엔테스가 스티브 팔켄버그, 호라시오 인판테와 물리적인 충돌이 있었습니다. 모두 출장 정지 징계를 받겠군요.❞
일단 안 나오면 벌금이라 나도 뛰쳐나오긴 나왔지만, 감히 나한테 덤비는 간 큰 자식은 없었다.
그 와중에 앙헬로가 미친개 마냥 흥분해서 날뛰고 있었다.
아니 먼저 잘못을 한 건 우리 팀인데, 지가 왜 저렇게 설쳐대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네.
❝이제 상황이 좀 진정이 되려 하는데요. 일단 산티아고 오수나, 펠릭스 바르가스, 앙헬로 푸엔테스, 스티브 팔켄버그, 호라시오 인판테에게는 퇴장이 명령되었습니다.❞
한동안 신나게들 싸우다가 사태가 대충 진정이 되었고, 폭력을 사용한 선수들에게는 당연히 퇴장이 선고되었다.
대체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이게 무슨 개판이었는지 모르겠다.
정규 시즌 경기도 아니고, 시범경기부터 이런 화끈한 벤치클리어링이라니.
너무 오버들 하는 거 아닌가?
시범경기부터 이러면, 정규시즌 되면 배트 들고들 싸우겠네?
뭐 아무튼 그래서 산티아고가 그렇게 무책임하게 퇴장당하면서 두 번째 투수로 올랜도 베라스가 미처 몸을 제대로 풀 시간도 없이 급하게 올라왔고 그렇게 1회에만 무려 9실점을 하며 초반부터 게임이 완전히 터지고야 말았다.
무려 아홉 점 차로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지긴 했다만, 아직 1회고, 한두 점씩 차곡차곡 쫓아가다 보면 못 뒤집을 점수 차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뭐 승패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시범경기라고 해도, 그래도 이왕이면 지는 것 보다 이기는 게 낫지.
어쨌건 1회 말 공격이었다.
❝4구도 바깥쪽으로 많이 빠지면서 스트레이트 볼넷이 나왔습니다. 양키스도 일단 선두타자가 출루하네요.❞
일단 선두타자인 T.J가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걸어 나갔다.
이제 여기서 내가 홈런을 치면 바로 두 점을 쫓아가는 거다.
상대 투수인 요스바니 페르난데스는 포심 패스트볼 외에 서클 체인지업과 커브, 슬라이더를 던지는데, 이 변화구의 제구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커브와 슬라이더를 버리고, 포심 패스트볼과 서클 체인지업만 노릴 거다.
더군다나 서클 체인지업을 던질 때의 투구 동작과 팔의 스윙 스피드가 포심 패스트볼을 던질 때와 비교하면 아직은 확연하게 구분이 되기 때문에, 상대하기에 난이도가 더 쉬울 것이다.
“볼.”
86.4마일(139㎞)의 서클 체인지업이 낮게 떨어졌다.
서클 체인지업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지만, 존 밖으로 벗어나는 것이 확연하게 눈에 보였기에 그냥 흘려보냈다.
보통 덜떨어진 타자들은 이런 공에 헛스윙을 많이 하지만, 나는 아니다.
“볼.”
이번엔 102.9마일(165.6㎞)의 포심 패스트볼이 몸쪽으로 깊게 들어왔다.
피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몸에 맞았을 것이다.
❝태양 왕이 요스바니 페르난데스를 노려봅니다. 글쎄요? 지금 공은 위협구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 같은데요.❞
“이봐. 일부러 던진 것도 아닌데, 기분 풀어. 요스바니는 산티아고처럼 고의적인 위협구는 던지지 않는다고.”
상대 팀 포수 조지 우드가 빈정거리듯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리고 배트로 흙을 탈탈 털어냈다.
“이게 지금 무슨 짓이야?”
흙바람을 잔뜩 들이킨 조지가 짜증을 냈다.
“고의가 아니었다고. 기분 풀어.”
들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그러자.
“뭐 이 자식아? 너 지금 해보자는 거냐?”
조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런 단순한 도발에 화를 내다니. 정말 단순한 놈이군.
“나랑 싸우면 이길 자신은 있고? 한 판 붙어볼래?”
물론 나는 놈이 그럴 배짱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이놈은 쫄보에 겁쟁이에 패배자다.
“뒤지기 싫으면 그냥 닥치고 앉아서 조용히 공이나 받아.”
“이건 뭐 야구선수인지, 깡패인지.”
겁쟁이가 구시렁대건 말건 깨끗하게 무시했다.
그리고 다시 3구째.
“볼.”
이번 공은 87.2마일(140.3㎞)의 서클 체인지업이었지만, 존에서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사실 이 정도면 다른 심판이라면 스트라이크를 줄 수도 있었을 텐데, 이 심판은 다른 주심에 비해 스트라이크 존이 대단히 좁은 편이었다.
스트라이크존이 넓은 심판일 때는 적극적인 타격을 해야 하지만, 지금처럼 스트라이크존이 극단적으로 좁은 심판일 경우 타자로서는 급할 거 없이 공을 오래 보며 여유 있는 타격을 해도 된다.
볼 카운트는 이제 3-0.
타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볼 카운트고, 투수는 7구 연속으로 볼을 던지고 있었다.
이제 분명히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한복판에 공을 꽂아 넣을 거고, 그걸 노려서 치면 된다.
야구 참 쉽네.
그래서
‘따악’
❝잡아당겼습니다. 총알보다도 더 빠른 타구가 그대로 펜스를 넘겼습니다. See-Ya. 태양 왕. 시범경기 일곱 번째 홈런입니다. 지금까지 8타수 7홈런의 놀라운 파워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미 인간의 힘을 초월한 것 같습니다.❞
예상대로 한복판 코스였는데, 여기서 띨띨하게도 포심 패스트볼이 아닌 87.5마일(140.8㎞)의 서클 체인지업을 던졌다.
이 배팅볼은 명백한 실투로, 그냥 대놓고 제발 홈런을 쳐달라고 비는 공이었다.
어쨌건 멋진 배트플립과 화려한 세레모니로 관중들의 환호성에 보답하며, 천천히 다이아몬드를 돌았다.
이미 벤치클리어링이 있었고, 아직도 양 팀의 감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배트플립과 세레모니는 다음 타석 때 빈볼을 야기할 위험이 있었지만, 나는 이를 전혀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저 겁쟁이들한테 감히 나를 상대로 빈볼을 던질 용기는 없을 테니까.
뭐 그렇게 다이아몬드를 돈 후 동료들의 열화와 같은 환영을 받으며 더그아웃으로 화려하고 당당하게 귀환했다.
이제 점수는 일곱 점 차였다.
이어서 타석에는 브라이언이었다.
그리고.
“볼.”
“볼.”
“볼.”
“볼.”
다시 스트레이트 볼넷이 나왔다.
가뜩이나 제구가 안 좋은 투수가 스트라이크존이 극단적으로 좁은 심판을 만나면서 더욱 고전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열두 개의 공을 던져 열한 개가 볼이었다.
스트라이크를 전혀 던지질 못하고 있었다.
이 기세로 상대 투수를 더욱 몰아붙여야 한다.
이제 카를로스의 타순이었다.
그리고.
“볼.”
“볼.”
“볼.”
“볼.”
❝또다시 스트레이트 볼넷이 나오는군요. 지금까지 네 타자를 상대하여 세 타자를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내보낼 만큼 요스바니 페르난데스가 오늘 제구에 대단히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또다시 스트레이트 볼넷이 나오며 카를로스도 1루로 걸어 나갔다.
아마도 볼티모어 팬들은 지금 속이 터지다 못해 타들어 갈 것이다.
아홉 점이라는 넉넉한 점수 차에 선발 투수라는 놈이 계속 볼질만 하고 있다.
팬들뿐만 아니라 볼티모어 야수들로서도 짜증이 폭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타석에는 에릭.
사실 여기가 제일 고비였다.
과연 에릭이 타석에서 인내심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에릭, 절대로 함부로 타격하려 하지 말고, 일단 인내심을 가지고 상대 투수의 공을 지켜보라고.”
타격코치 데렉의 지시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타석에 들어섰던 에릭은.
❝초구를 공략했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땅볼입니다. 2루수 토니 클라인이 공을 잡아냅······ 아!!!! 그가 공을 떨어뜨렸습니다. 토니 클라인의 포구 실책. 여기서 또 어이없는 수비가 나오면서 투수를 도와주지 못하는군요.❞
공을 지켜보라는 코치의 당부에도 초구를 건드려서 땅볼을 때려냈지만, 상대 팀 2루수의 어이없는 포구 실책이라는 뜻밖의 행운으로 1루에 살아나갔고, 주자는 이제 무사 만루가 되었다.
그리고 아담과 데렉의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에릭은 현재까지 시범경기에서 대단히 좋지 않은 타격 컨디션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성의 없는 타격으로 감독에게 찍혔으니, 이번 시즌도 분명 마이너에서 시작하게 될 것이다.
1회차 때도 에릭은 2024년 7월에야 메이저에 처음 콜업됐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도 이런 모습 때문에 콜업이 늦어졌던 것이 아니었을까?
결국 에릭은 전형적인 공갈포로 커리어를 끝마친다.
앙헬로에 이은 대표적인 실패 사례라 할 수 있었다.
뭐 어쨌건 무사에 만루라는 좋은 기회에 이제 루이스의 타순이었다.
여기서 주자를 두 명만 불러들일 수 있다면, 다섯 점 차 까지 좁혀진다.
그리고.
“볼.”
“볼.”
“볼.”
또다시 볼 세 개가 연속해서 들어왔다.
그래. 밀어내기도 나쁘지 않아.
그러나.
“스트라이크.”
4구째는 102.2마일(164.5㎞)의 포심 패스트볼이 한복판에 들어왔지만, 이걸 가만히 흘려보내는 것이었다.
지금과 같은 공이면, 아무리 볼 카운트가 3볼이어도 무조건 쳤어야 하는 공이다.
상대 투수는 볼 카운트가 스리 볼로 몰려 있었다.
더군다나 주자는 만루, 여기서 또 볼이 되면 밀어내기다.
그렇다면 4구째는 당연히 스트라이크를 잡으려 할 게 아닌가.
물론 타석에서 참을성을 가지는 것도 좋지만, 과감해야 할 때는 과감해야 하는 거다.
좋은 타자는 상황에 맞는 판단을 해야 한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지금의 루이스는 아직 한참 부족한 타자라 할 수 있었다.
아담의 표정을 보니 아담도 대단히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스트라이크.”
이번에도 한복판에 101.7마일(163.7㎞)의 포심 패스트볼이 들어왔고, 루이스는 이를 또다시 그냥 흘려보냈다.
아니 대체 이런 공을 안 치면 어떤 공을 치려고 하는 걸까?
그보다도 상대 투수가 이제 스트라이크존 안에 포심 패스트볼을 꽂아 넣고 있다.
분명 우리에겐 좋지 않은 흐름인 것 같다.
이제 볼 카운트는 풀 카운트. 스리 볼이라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카운트에서 여기까지 왔다.
상대 투수가 모자를 벗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무사 만루에 풀 카운트. 분명 투수 쪽에 부담이 더 가는 상황이었다.
과연 이 승부의 끝은 어떻게 될 것인가?
“볼.”
❝풀 카운트 승부 끝에 그 결말은 결국 다시 볼넷, 밀어내기가 되면서 양키스가 한 점을 또 쫓아갑니다. 아직 1회고, 아웃 카운트를 한 개도 잡지 못했음에도 벌써 네 개째 볼넷이네요. 여섯 타자를 상대하여 네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이후 몸쪽으로 들어온 공 두 개를 커트해낸 후 8구, 결국 바깥쪽에 낮게 떨어진 공을 골라내어 밀어내기가 되었다.
점수는 이제 9:3. 여섯 점 차까지 좁혀졌고, 무사 만루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상대 팀의 투수코치가 마운드를 방문했다.
상대 팀으로서는 여기서 흐름을 한 번 끊고, 투수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
물론 나였다면 이보다 좀 더 일찍 마운드에 올라갔었을 것이다.
저 코치나 포수나 야구를 참 멍청하게 하는 것 같다.
이제 케빈의 타순인데, 여기가 또 고비였다.
공갈포 성향인 케빈이 과연 침착한 승부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용케도 풀 카운트까지 끈질긴 승부를 했지만, 결국에는 낮게 떨어지는 유인구에 헛스윙하며 삼진으로 물러나고야 말았다.
음······
이제 로건과 해리의 타순으로 이어지는데, 솔직히 전혀 기대가 되질 않는 타자들이다.
이대로 이 좋은 흐름이 끊기고 마는 것일까?
그러나.
❝밀어친 타구가 3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꿰뚫었습니다. 3루 주자가 홈에 들어옵니다. 로건 덤브릴의 1타점 적시타로 점수는 이제 9:4, 다섯 점 차까지 좁혀졌습니다.❞
❝날카로운 타구입니다. 1루 쪽 페어 라인 안쪽에 떨어지는군요. 공이 펜스까지 굴러갔고, 주자 세 명을 모두 홈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리고 타자 주자 해리 코니즈는 3루까지. 점수는 이제 9:7, 두 점 차까지 좁혀집니다. 양키스의 집중력도 정말 무섭네요.❞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던 두 타자가 연속해서 적시타를 때려내면서 이제 두 점 차까지 점수 차이를 좁혔다.
이런 상황이면 투수를 교체해줘야 맞는데, 여전히 요스바니 페르난데스가 마운드를 계속 지키고 있었다.
설마 벌투라도 시키려는 건가?
볼티모어 더그아웃에는 콘동님이라도 강림하시기라도 하셨다는 것인가?
어쨌건 이제 벌써 타순이 한 바퀴 돌았고, 다시 1번부터 시작이었다.
만일 T.J가 출루한다면, 내가 홈런을 치면 바로 역전이다.
그리고.
“볼.”
“볼.”
“볼.”
“볼.”
또다시 스트레이트 볼넷이 나오면서 T.J가 1루로 걸어 나갔다.
상대 투수는 이번 이닝에만 벌써 다섯 개째 볼넷.
결국에는 투수가 교체되었다.
두 번째 투수로 올라온 투수는 폴 알드리치.
이후 미래에 꽤 솔리드한 불펜 투수로 제법 활약하게 되는 투수다.
현시점에서는 최고 구속 100마일(161㎞)의 포심 패스트볼과 94마일(151.2㎞)의 고속 슬라이더를 던지는 파이어볼러 투피치 투수로, 역시나 그 제구가 대단히 불안한 투수였다.
그래. 여기서 홈런 치고 바로 역전하자!!!
그러나.
❝아. 태양 왕을 자동고의사구로 내보냅니다. 다시 누상에 주자가 꽉 채워졌습니다. 내야 땅볼로 병살을 유도하겠다는 건데요. 과연 이 선택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에이. 더럽고 비겁한 겁쟁이들.
그리고.
❝초구를 잡아당겼습니다. 그러나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는 타구입니다. 2루수 잡아서 2루에 토스 아웃. 다시 1루에 토스. 아웃. 볼티모어의 계산대로 더블 플레이가 나오고야 맙니다. 글쎄요. 브라이언 게인즈의 지금의 이 타격은 대단히 아쉽고, 안타깝네요.❞
브라이언이 초구를 건드려 병살을 치며, 이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확 끼얹었다.
베테랑, 팀의 최고 연장자이자 더그아웃의 리더라는 선수가 참 잘하는 짓이다. 쯧쯧.
심지어 브라이언은 동료들에게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이 실실 쪼개면서 더그아웃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브라이언, 지금 웃음이 나와요? 더그아웃의 리더면 리더답게 모범을 보여야지, 거기서 초구를 그렇게 건드려서 이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야 했어요?”
그 모습을 보니까 울화통이 터져서 한마디 했다.
“정규시즌도 아니고, 고작 시범경기인데, 뭘 그렇게 오버를 해. 그리고 내가 일부러 더블 플레이를 당한 것도 아니고, 잘해보려다가 그런 거잖아. 너 이 자식 너무 건방져. 적당히 좀 해라. 네가 지금 이렇게 설쳐대는 건 주제넘은 행동이야. 루키면 루키답게 굴어. 야구 좀 한다고 눈에 뵈는 게 없냐?”
“그러니까 루키한테 욕 처먹기 싫으면 리더답게 행동하던가. 지금 웃음이 나오냐?”
저 자식이 실실 쪼개면서 들어오지만 않았어도, 내가 지금 이렇게까지 화가 나진 않았을 것이다.
스코어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고 집중력을 발휘해서 단 두 점 차로 따라붙었고, 동점, 역전을 할 수 있는 좋은 찬스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팀의 베테랑 선수이자, 더그아웃의 리더라는 놈이 거기서 초구를, 정말 얼척 없는 공을 성의 없는 스윙으로 건드려 병살타를 치며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확 끼얹었다.
그러고 자책하거나 동료 선수들에게 미안해하기는 커녕 실실 쪼개면서 들어온다.
이게 어디 사람 새끼인가?
그리고 정규시즌도 아닌데, 뭘 그렇게 오버하냐고?
그렇다면, 관중은 무슨 죄로 저런 성의 없는 플레이를 봐야 한단 말인가?
“뭐 이 자식아?”
“나랑 싸우면 이길 자신은 있고? 호켱처럼 이랑 턱뼈 나가고 싶으면 어디 한 번 덤벼보던가.”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도, 상대방은 감히 덤비지를 못했다.
겁쟁이에 패배자 같으니라고. 쯧쯧.
뭐 어쨌건 그렇게 길고도 길었던, 1회가 양 팀 합쳐서 16점을 주고받으며 드디어 끝이 났다.
비록 역전의 찬스가 저 빌어먹을 브라이언 때문에 날아갔지만, 경기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아직도 우리가 지고 있고, 또 브라이언 때문에 좋은 흐름이 끊기긴 했지만, 이제 분위기는 우리 쪽으로 완전하게 넘어왔다.
역전의 기회는 아직도 얼마든지 있다.
시범경기라도 나는 지는 것이 정말로 싫다.
오늘 경기는 반드시 이기고 말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