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8.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수정)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8.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그로부터 또다시 두 달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지났고, 해가 바뀌어서 2023년이 되었고, 2월 15일인 오늘. 내가 회귀한 지도 벌써 100일이 넘은 105일째 되는 날이었고, 또 오늘은 내가 스프링캠프에 합류하는 날이었다.
그날 입단식 기자회견 이후 나는 구단에 벌금을 물었지만, 대신 구단에서는 향후 구장에 한국 기레기의 출입을 영구히 금지하기로 조처하였다.
물론 한국 기레기들은 이 당연한 조처에 크게 항의를 하였지만, 구장에서는
“아쉬운 건 한국 기자들이지 우리가 아니다. 당신들이 그렇게 미워하는 태양 왕은 미우나 고우나 우리 선수다. 그러게 진즉 우리 선수와 사이좋게 지냈으면 이런 조처도 없었을 게 아닌가.”
는 성명문으로 한국 기레기들의 항의를 일축하였다.
물론 기레기들은 이에 대해서도 무슨 뭐 악덕 구단의 갑질이니 어쩌니 기사들을 쏟아내며 발광을 하였지만, 뭐 구단에서 그런 거에 눈 하나 깜빡하겠나.
어쨌건 어제 스프링캠프가 열리는 플로리다 탬파에 미리 도착했고, 오늘은 오전 6시에 일찌감치 기상하여 웨이트와 필라테스로 아침 운동을 마친 후에 오전 9시에 스프링캠프 홈구장인 고든 M 스테인하우어 필드에 일찌감치 출근했다.
투수는 본래 야수보다 1주일 앞서 소집이 된다.
내 딴에는 진짜 일찍, 내가 제일 먼저 출근을 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스프링캠프 명단에 든 모든 투수 중 내가 제일 꼴찌로 경기장에 도착했다.
스프링캠프 기간에는 하나의 라커룸을 대략 70명쯤 되는 선수가 사용해야 하기에, 그 공간이 대단히 협소했다.
그렇기에 심지어 초청 선수 중에는 자신만의 라커룸을 사용하지 못하고, 다른 선수와 함께 라커를 공유해야 하는 선수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나는 초청 선수 주제에 하나의 단독 라커를 배정받았다.
물론 가장 구석의 안 좋은 자리에 위치한 작은 라커였지만, 그래도 초청 선수 주제에 개인 라커를 사용할 수 있는 게 어디인가?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106마일을 던지고, 양투양타로 투웨이에 도전한다는 건방진 동양인이 쟤야?”
“동양인처럼 안 생겼는데?”
“동양인이 아니라 하프라더군.”
“그럼 그렇지. 순수 동양인이 106마일을 던질 리가 있나.”
“7피트가 넘는다더니, 진짜 거대해 보이는군.”
“아니. 저런 체격으로 쟤는 왜 농구를 안 하고 야구를 한 거지?”
“쟤한테 한 대 맞으면 그냥 바로 뻗을 것 같은데? 괜히 옆에서 깝치면 안 되겠어.”
“양투양타 투웨이라니. 만화를 너무 많이 봤나 봐. 나 참. 오타니라는 친구도 그렇고, 동양인들은 왜 다 저러는지. 야구를 장난처럼 아나 봐?”
내가 듣건 말건, 지들끼리 신이 나서들 떠들고 있었다.
설마 내가 영어를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
한마디 해주려는데, 누가 날 붙잡아서 보니, 동양인이다.
“반갑다. 팀에서 같이 한국말로 떠들 후배가 드디어 생겼네.”
이 선수는 김호경이라는 선수였다.
2023년 현재 기준으로 MLB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선수는 모두 네 명, 그리고 마이너에 있는 선수까지 합하면 한 열 명쯤 될 거다.
김호경이라는 저 선수는 1996년생으로, 나랑은 여덟 살 차이였고, 양키스 산하의 AA팀에서 뛰고 있었는데, 원래대로라면 이번 시즌을 마친 후 유턴을 선택하게 된다.
구단이 기대하는 것만큼 성장하지 못했고, 또 병역 문제가 걸려 있었기 때문인데, 그래서 병역을 해결한 후 나이 30에서야 겨우 간신히 KBO리그에 데뷔하였다.
그리고 38세에야 겨우 첫 FA를 할 수 있었는데, 워낙 고령이었고, 또 KBO리그를 압도할 만큼의 맹활약을 했던 것도 아니어서 결국 2년 5억이라는 헐값에 만족해야 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랑은 레벨 차이가 엄청 많이 나는 그냥 보통의 평범한 투수라는 이야기다.
미국에 온 지 9년이 되도록 아직도 AA인 것만 봐도 답 나오지 않는가?
물론 뭐 사실 우리 아빠도 마이너 생활만 10년 넘게 했고, 끝내 MLB 입성에 실패하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아빠는 두 번의 어깨 수술만 아니었어도, 분명 MLB를 호령했을 거다.
뭐 그렇다는 거고, 일면식도 없던 자가 갑자기 말을 까면서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 네.”
솔직히 별로 같이 어울리고 싶지 않아서 그냥 대충 건성으로 대답했다.
“이 새끼 말하는 게 좀 띠껍네? 야. 이 씨발놈아. 내가 너 남산중학교, 남산고등학교 8년 선배야. 선배가 좆으로 보이냐?”
하······
아주 제발 저 좀 때려주세요. 저 뒤지고 싶어요. 하고 아주 애원을 하는구나.
“응. 좆으로 보여. 그리고 미국에 와서까지 무슨 선후배를 찾아. 너 나랑 싸우면 이길 자신 있냐? 스프링캠프 합류 첫날이라 참고 있는데, 괜히 개겼다가 망신당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라. 아니면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한판 붙을까?”
이 정도로 경고했으면, 지능이 있는 놈이라면 알아들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너 좀 따라 나와 봐.”
내가 알기로는 김호경이 저놈도 학폭범이었다.
나처럼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 아니라 진짜 오리지널 학폭범이고, 일진이었다.
KBO 구단 스카우트들, 그리고 야구팬들도 이놈의 학교 폭력에 대해 암암리에들 알고는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 문제가 그렇게 크게 이슈화되지 못했었는데,
나중에 이놈이 군복무를 마치고 KBO 드래프트에 참가하면서 뒤늦게 학폭 폭로가 터져 나왔고, 피해자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입막음을 하였고, 결국 논란에도 불구하고 KBO 팀에 지명을 받고 하찮은 선수 생활을 이어갔던 것이다.
돈이 참 좋다.
그럴 줄 알았었다면, 나도 오성식이를 돈으로 매수할 걸 그랬었나 보다.
뭐 하여튼 본성부터가 이렇듯 글러 처먹은 놈인데, 그렇다고 해도 이놈이 대체 뭘 믿고 나한테 이렇게 주제도 모르고 깝쳐대는 것일까?
체급으로만 봐도 쨉이 안 된다는 것을 뻔히 알 텐데,
이건 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한국 속담이 딱 맞았다.
이때였다.
“뭐야. 호켱. 신입이랑 무슨 문제 있어? 분위기가 험악해 보이는데?”
갑자기 나선 이 친구는 훌리오 팔라시오스라는 선수였다.
훗날 에이스급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3~4선발은 충분히 맡아줄 수 있는 준수한 선발 투수로 성장하게 되는 투수다.
2023시즌은 AAA에서 뛰게 되는데,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어 있었고, 8월에 콜업이 되어서, MLB 데뷔전을 치렀던 거로 기억한다.
1회차 때는 별로 친분이 없었다.
내가 데뷔할 무렵에는 이미 트레이드돼서 마이애미 말린스로 떠났기 때문이다.
아마 내년에 트레이드됐던가?
“신입이 건방져서 손 좀 봐주려던 참이야. 말리지 말라고.”
“신입을 손봐준다고? 외려 신입이 널 손봐줄 것 같은데?”
“뭐라고? 이 새끼, 너도 맞고 싶냐?”
훌리오의 솔직한 팩폭에 김호경이 발끈했다.
내가 봤을 때 찌질한 김호경이는 훌리오한테도 맞고 질질 짤 것 같다만.
“호켱. 난 널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그래도 네가 정 원한다면 한판 붙던가. 내가 공정하게 심판을 봐줄 수 있어.”
“좋아. 이 건방진 새끼를 손봐주고 나면, 다음은 네 차례니까 각오하고 있어.”
“그렇다면, 따로 어디 갈 거 없이 여기서 붙는 게 어때? 관중들도 많잖아.”
하긴, 많은 선수가 지켜보는 앞에서 확실하게 짓밟아서 본보기를 보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김호경이를 확실하게 죽여놓으면, 앞으로 감히 나한테 겁도 없이 시비를 거는 미친놈도 이젠 절대로 없겠지.
물론 감독이나 코치가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면, 당연히 제지하겠지만, 김호경이한테 안타깝게도 아직 감독과 코치들은 도착하지 않았다.
“나야 상관없어. 이 건방진 새끼야. 넌 이제 뒈졌다고 복창해라.”
내가 해야 할 대사를 저 하룻강아지가 외려 나한테 하고 있었다.
사실 지금이라도 저 가련한 하룻강아지가 잘못했다고, 죽을죄를 지었으니 제발 살려달라고 무릎을 꿇고 빈다면, 캠프 합류 첫날이고 하니 특별히 용서해줄 용의는 있었다.
그러나 뭐 본인이 처맞고 싶다는데, 뒤지고 싶다는데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는가.
한국 속담에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이 있다.
“자자. 여러분. 우리 강해 보이는 신입이 미친개 호켱과 한판 붙는답니다. 어느 쪽이 이길지 다들 배팅해 보라고.”
이제 보니 훌리오 저놈은 나를 이용해서 도박장을 차리려 하고 있었다.
음······
저 자식도 아주 마음에 안 드는데, 언제 한 번 손을 봐줘야 할 것 같다.
“난 신입 쪽에 걸겠어.”
“나도 신입.”
“안 봐도 비디오지. 내년 오늘이 미친개 호켱의 제삿날이겠군.”
몇몇 선수는 실제로 배팅을 했다.
이렇게 되니 꼭 무슨 검투장의 투사, 혹은 투견장의 개가 된 것만 같은 그런 불쾌한 기분이다.
그때였다.
“지금 뭐 하는 거야? 훌리오, 싸움을 말려야지 부추기면 어떡해.”
이렇게 버럭하며 나서는 선수는 게리 콜건.
양키스의 에이스이자, MLB 최고 투수 중 한 명으로, 팀에서 가장 거액의 연봉을 받는 선수였고, 자연히 팀의 리더 역할도 하고 있었다.
“아니. 게리. 그냥 놔둬. 말려봤자 들을 두 놈도 아닌 것 같고, 이참에 그냥 서열정리를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돈을 거는 거야 뭐 재미 삼아 장난으로 하는 거고.”
이렇게 말하는 투수는 아구스틴 산타크루즈.
양키스의 수호신이자 한때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졌던 사나이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갈수록 그의 구속은 나날이 줄고 있었고, 작년 2022시즌 그의 평균 구속은 96마일(154.5㎞)이었다.
물론 평균 96마일도 대단히 빠른 구속이긴 하지만, 100마일을 훌쩍 넘기던 과거에 비할 바가 못 됐다.
“그러다 두 명 중 누구 한 명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게리가 아구스틴의 말에 바로 반박했다.
그래. 나는 김호경이를 한 몇 달 동안 누워서 지내도록 만들 예정이었다.
“그거야 제 팔자지. 너무 빡빡하게 그러지 말고, 캠프 첫날이잖아. 재미 삼아 즐기자고.”
“그래. 게리. 우리의 재미를 빼앗지 말라고.”
“우리는 신입이 저 미친개 호켱을 어떻게 혼내주는지 지켜보고 싶다고요.”
아구스틴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김호경이 나한테 뒈지도록 처맞는 것을 지켜보고 싶어 했다.
그보다 미친개 호켱이라······
여기서 저 새끼 별명이 미친개로 통하나 보지?
잘됐네. 미친개한테는 몽둥이가 약이랬다고, 내가 저 미친개를 훈육하여 순한 양으로 만들어 놓겠다.
어쨌건 모든 이들이 나한테 배팅을 하였다.
하긴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저런 놈한테 배팅을 하겠는가.
“뭐야. 이러면 내기가 안 되잖아. 모두들 돈을 다시 가져가라고.”
그렇게 도박이 무산된 것에 훌리오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이봐. 신입, 한방에 때려눕히라고.”
“신입. 파이팅.”
모두가 나의 승리를 응원하고 있었다.
대체 김호경 이놈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던 것일까?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생판 처음 보는 신입인 나보다, 그래도 같이 부대끼고 살아온 동료를 응원하는 것이 맞지 않나?
“자. 내가 3, 2, 1을 외치면 경기 시작이고, 규칙은 한쪽이 먼저 KO 될 때까지야. 동의하지"
그런데 훌리오 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먼저 김호경의 주먹이 날아오는 것이었다.
잽싸게 피했고,
‘퍽.’
번개보다도 빠른 나의 주먹이 김호경의 턱을 그대로 강타했고, 김호경은 입에서 다섯 개의 피가 묻은 강냉이를 뱉어낸 후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뭐야? 벌써 끝이야? 시시하군.”
“평소에 싸움 잘한다고 그렇게 설쳐대더니 겨우 한방이었어?”
실망한 구경꾼들이 투덜댔는데, 하긴 그렇다.
아무리 허약하게 생긴 놈이더라도, 그래도 저렇게 설쳐대는 걸 보면, 최소한 한 대는 버티겠거니 싶었는데, 설마 진짜 한방에 나가떨어질 줄이야.
그런데 하필 감독인 아담 쿤과 투수코치 키스 케틀러가 이때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참 공교로운 타이밍이었다.
“뭐야? 왜들 몰려있어. 무슨 일 있어? 아니. 이게 대체 뭔······”
아담과 키스는 그대로 뻗어있는 김호경을 보고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누가 호켱을 이렇게 만들었어?”
아담이 선수들을 무섭게 추궁했다.
그런데, 이때 훌리오 놈이
“신입이 호켱한테 먼저 시비를 걸다가, 호켱을 때려눕혔습니다.”
지가 바람을 넣은 주제에 이렇게 사실을 왜곡하여 지껄이는 것이었다.
저런 일본군 앞잡이 같은 나쁜 새끼를 보았나.
“그게 아니라 호켱이 먼저 저한테 시비를 걸었습니다. 저는 참으려 했는데, 저 훌리오 놈이 부추겨서 1:1로 정식 맞짱을 떴는데, 보시는 것처럼 호켱이 허약해서 한방에 나가떨어졌습니다.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나는 재빨리 반박하며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였다.
“이게 죄송하다고 될 일인가? 아니. 첫날부터 대체 이런 사고를 치면 어쩌자는 건가?”
내 설명을 들은 아담이 크게 성을 내었다.
그러는 동안 다른 선수들의 부축을 받고,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김호경은 치아 다섯 개가 나갔음에도, 안 좋은 발음으로 계속해서 내게 한국말로 욕을 퍼부었다.
“너, 이 새끼. 어디 두고 보자. 너, 내가 반드시 야구 못하게 만들 거니까 두고 봐.”
“대체 호켱이 또 뭐라 하는 건가? 그 알아듣지도 못할 빌어먹을 한국말 말고 영어로 말하라고 해.”
아담이 소리를 꽥 질렀다.
“저를 나중에 가만 안 놔둔다고 협박과 욕을 하고 있습니다.”
김호경이 하는 욕을 다 통역해 줄 수는 없어서 마지막에 내뱉은 말만 대충 통역을 해줬다.
“이번 일은 절대로 묵과할 수 없어. 반드시 징계할 테니까 각오를 단단히 해두는 게 좋을 거야.”
하며 아담은 단단히 엄포를 놓았다.
징계래 봐야 또 기껏 벌금 몇푼 내고 끝이겠지.
하나도 겁 안 난다.
여기가 KBO처럼 임의탈퇴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설마 170㎞를 던지는 나를 뭐 방출한다거나 그러겠어?
아마 오히려 별 볼 일 없는 찐따에 실패한 유망주인 김호경만 방출될걸?
“감수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빨리 훈련 준비나 하고, 호켱은 일단 의무실로 데리고 가.”
그렇게 해서 상황이 정리되었다.
“여러분. 첫날부터 물의를 일으켜서 정말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나는 팀원들에게 지금의 사태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를 했고,
“반갑습니다. 소개가 늦었는데, 나는 한국에서 온 태양 왕입니다. 앞으로 잘 지내봅시다.”
뒤늦게 자기 소개를 하였다.
“그래. 반갑다. 그리고 양키스에 온 것을 환영한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게리가 선수들을 대표하여 나에게 환영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요. 게리.”
“이 루키 성질이 어떤지는 방금 너희들도 모두 봤지? 루키라고 무시하고 함부로 막대하다가 호켱처럼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우리 모두 앞으로 조심하자고.”
이건 그냥 단순한 조크일까? 아니면 나를 비꼬는 것일까?
일단 내가 알고 있는 게리라는 사람의 성품을 볼 때, 또 지금 모두가 게리의 저 말에 폭소를 하는 걸 보면, 전자인 것 같다만, 그래도 어째 좀 찜찜하네?
아무튼 그러고 드디어 훈련이 시작됐다.
메이저리그는 KBO와 비교하면 단체 훈련 시간이 짧다.
하지만 시간이 짧다고 해서 훈련을 적게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알차게 진행이 되었다.
훈련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거 아니겠는가?
뭐 1회차까지 합하면 나는 이미 메이저리그 19년차다.
어떻게 내 몸을 관리해야 할지, 어떻게 훈련해야 할지를 다 알고, 또 나만의 확실한 루틴도 있다.
물론 뭐 1회차 때는 야수였고, 지금은 일단 투수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지만.
어쨌건 나는 보통의 루키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저 녀석, 루키 맞아? 꼭 메이저리그 생활 한 20년쯤 한 베테랑 같은데?”
“자기만의 루틴이 있다는 건가? 루키치고는 제법인데?”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워밍업을 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선수들이 수군댔다.
그리고 셔틀런으로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됐다.
“헐. 저 녀석 동양인 맞아? 저 거대한 체구에 저런 운동능력과 체력이라니.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는군.”
“106마일을 던지는데, 저 정도 운동능력은 당연한 거 아닐까?”
“맙소사. 아직도 뛴다고? 꼭 로봇 같군.”
1위로 셔틀런을 완료한 나를 보며 선수들은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뭐 내가 원래 체력과 운동능력이 대단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마력을 얻어서 지칠 줄을 모르니, 셔틀런 같은 건 사실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이어지는 순서는 캐치였다.
훈련 첫날이니만큼, 전력으로 던지는 것이 아니라 가벼운 하프 피칭이었다.
‘퍼어엉.’
하는 굉음과 함께, 하필 나의 파트너가 되어서 내 공을 받은 훌리오가
“윽.”
하는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이봐. 루키. 이건 그냥 가볍게 던지는 거라고. 첫날부터 그렇게 힘을 쓸 필요가 없어. 공을 받는 내 팔이 다 뻐근하다고.”
물론 마력을 가지고 있는 나는 처음부터 바로 전력 피칭을 해도 됐다.
“그냥 힘 안 쓰고 가볍게 던진 건데?”
솔직히 다른 파트너였으면 그냥 살살 던졌을 텐데, 훌리오, 저 친일파 앞잡이 놈이 파트너라 더 세게 던졌다.
“거짓말.”
“거짓말인지 아닌지, 못 믿겠으면 어디 진짜로 한 번 세게 던져볼까?”
“뭐. 좋아. 어떻게 던지든 그건 네 마음이니까. 다만 그러다 다쳐도 난 모른다?”
지 걱정이나 할 것이지, 주제에 내 걱정을 다 하네.
생각 같아서야 더 세게 던져서 저 녀석 어깨랑 팔꿈치가 나가게 만들고 싶지만, 어디 그럴 수야 있나.
그리고 이어서 날아온 훌리오의 공은 상체로 가볍게 던졌음에도 꽤 묵직하고 빠르게 날아왔다.
역시 미래에 에이스급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리그에서 나름 꽤 준수한 선발 투수가 괜히 된 것은 아니었다.
“오. 훌리오. 생각보다 꽤 하는데? 제법이야.”
“제법이라고?”
내 본의는 아니었지만, 훌리오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하기야. 루키한테 이런 말을 들으면 나 같아도 빡치긴 하겠다.
그러나 나는 보통 루키가 아니지 않는가. 물론 뭐 훌리오는 그 사실을 모르겠지만.
“아. 상처받았다면 미안해. 근데, 솔직히 너도 내가 너보다 뛰어나다는 건 인정하잖아.”
“그야. 그렇지만.”
훌리오는 말꼬리를 흐렸다.
분명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하지만 훌리오가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건 간에, 훌리오와 내가 수준 차이가 크게 난다는 것은 엄연한 팩트였다.
그리고.
‘퍼어엉.’
하는 굉음이 다시 들렸다.
“그래. 태양. 너 정말 대단해. 최고야. 그러니까 부탁인데, 제발 살살 좀 던져줘. 받는 내가 힘이 들어.”
그러라고 세게 던지는 건데?
이 자식. 너 어디 고생 좀 한 번 해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