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Chapter 19. 시범경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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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 시범경기 (4)
#1 마지막 퍼즐
내가 보기에 이 못생긴 양키 놈은 이번 시즌 대전 호크스의 마지막 퍼즐 같은 녀석이다.
아, 물론 저기 구석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물 건너온 검은 머리 외국인 노동자 녀석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이 양키 녀석은 자기가 실수 한 것을 전혀 모르는 애송이라는 점이다.
“네가 무슨 짓을 했냐고? 지금 팀원들 표정 안 보여?”
그제야 톰은 주변을 살펴본다.
양심고백을 하자면 나도 투수라는 생명체긴 하지만 투수들은 세상에서 제일 예민한 녀석들이다.
투수라는 생명체의 존재 의의는 원하는 곳에 7.3cm의 야구공을 넣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투수라는 생명체는 조금만 기분이 더럽거나 몸에 이상이 있으면 원하는 곳에 야구공을 던질 수 없는 생명체다.
물론 나같이 아주 무던한 최고의 성격을 가진 투수들도 존재한다.
당연히 나같은 성격을 지닌 투수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톰이라는 녀석에게는 역대 최고의 자질이 보이지 않는다.
주변들 둘러본 톰은 얼굴을 붉힌다.
190cm에 가까운 백인 수컷이 얼굴을 붉히는 모습은 썩 미관상 좋은 장면은 아니었
다.
“그래서 어쩌라고!”
하아, 이 녀석도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랑 같은 병을 앓고 있는 건가?
미안한 일을 하고 사과를 하려고 하다가도 ‘미, 미 미친놈아! 네가 잘못했잖아.’라는 지랄병 말이다.
솔직히 나는 지랄병에 특효약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루키라는 신분은 그 특효약을 처방할 수 없는 신분이다.
특히 유교탈레반이라 불리는 이 빌어먹을 KBO에선 더더욱 말이다.
“너 이번에 딸이 태어났다면서! 네가 한국에 온 것도 돈을 벌려고 온 거 아냐? 그런데 네가 여기서 개판을 치면 과연 저기 있는 아저씨들이 네 등판일 때 최선을 다 할까?”
물론 프로라면 어떤 경기에서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며칠 전 (전)대전 호크스 토종 선발 에이스에게 ‘기대 하니까 당하는 것이다.’라는 교훈을 얻었다.
실제로 병민 선배 역시 크게 수비에 기대를 하지 않는 투구를 펼쳤다.
“······.”
“그렇게 너는 시즌 중반쯤에 성적부진이라는 이유로 계약해지를 당할거고 네 딸은 한 성깔하는 아버지 덕분에 굶주림을 배우게 되겠지.”
“뭐?! 너 뭐라고 했어! 건방진 루키새끼가!”
녀석이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백인 아저씨가 나를 죽일듯이 노려본다.
물론 아주 익숙한 풍경이다.
물론 나에게 달려든 녀석들은 모두 내 인품(물리)에 반해서 얌전해지곤 했다.
나는 녀석의 어깨에 손(인품)을 올렸다.
턱!
내 크고 두꺼운 손이 녀석의 어깨위에 올라가자 녀석도 내 얼굴을 살펴본다.
뭐? 잘생겼지? 알고 있어 임마! 수지가 어제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다고 했거든!
내가 손에 살짝 힘을 주자 녀석의 안색이 퍼렇게 질린다.
“깝치지 말고 잘 들어! 그게 네가 만족하는 미래야? 그렇다면 계속 그렇게 굴어. 네 자식새끼 굶겨가면서 네 자존심을 지키고 네 기분대로 마음껏 나데란 말이야.”
꽈아아악!
내가 녀석의 어깨에 인품(손, 19세 / 물리)를 더해주자 녀석의 안색이 더 파래진다.
조금만 더 인품을 더해주면 곧 스머프가 될 수 있겠는걸? 흠, 스머프라 별로 좋아하는 애니가 아닌걸 다행으로 알아!
“······.”
“지금이라도 팀에 녹아들어서 어떻게든 퍽킹 코리안 머니를 얻어 내겠다면 저 아저씨들 한테 사과해.”
내 설득(물리) 덕분에 녀석은 냉정을 되찾은 듯 했다.
그리고 서툰 한국어로 사과를 한다.
“······내과 미아네!”
내과가 왜 미아야! 이 자식 한국어부터 다시 가르쳐야겠다.
“풉! 내과가 왜 미안해! 푸하하하하!”
중범 애송이가 분위기를 풀어준다.
확실히 싸가지는 없는 녀석이지만 눈치 하나는 빠르다.
에휴 이 녀석은 보면 볼수록 진우를 닮았네!
다행히 우리 팀 야수들이 야구는 못해도 성격은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하긴 야구를 못하니 성격이라도 좋아야지! 나를 제외한 대부분 성격 더러운 녀석들은 야구를 잘한다.
특히 선발 투수가 욱하는 성질에 화를 내고 사과를 하는 모습에 잘잘못을 따질만큼 악바리있는 놈은 없다.
“······톰! 아니야. 내가 더 미안해.”
“아임 존나 철벽 세컨드 트러스트 미!”
동수 저 애송이는 절대 해외에 진출 할 생각이 없는지 얼토당토않은 영어로 톰을 위로했다.
방금 전 수비의 실책으로 얼굴이 붉게 물든 톰 녀석은 조금 진정이 된 듯 호흡이 차분해졌다.
하아, 이 다혈질 양키 애송이 녀석을 어찌할꼬?
톰은 이날 5이닝 4실점으로 부진했지만 얼굴은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아직 팀에 동화되지 못한 백인 애송이가 팀에 반쯤 녹아든 것 같아서 참 다행이다.
“이영아, 그런데 너 영어 진짜 잘한다. 원어민인줄?”
“병민선배, 나란 남자에 대한 완벽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셨군요.”
“······그런데 네 친구들이 없으니까 점점 더 이상해지는 것 같아.”
그럴리가! 나는 선동과 날조를 일삼는 저 애송이 녀석과 더 이상 대화를 보이콧 하기로 마음먹었다.
5회까지 톰이 4실점을 했지만 내과가 미안한 톰 녀석 덕분에 팀의 분위기는 살아났고 한번 타오른 타격은 [메가 치킨 포]라 불리는 쿨타임 1년짜리 8득점 빅이닝을 만들면서 톰을 승리 투수로 만들어줬다.
생각지도 못한 승리를 거둔 톰 녀석이 나에게 다가왔다.
“영, 고마워. 네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어.”
“기억해, 선발의 존중받는 이유는 같은 팀에서 뛰고 있는 동료들의 승리를 지켜줄 존재이기 때문이라는거! 즉 네가 존중받는 이유는 오직 팀의 승리를 위해서야. 오늘 네 행동은 팀의 승리에는 1g의 가치도 없는 행동이었어.”
“Copy That.”
주로 저런 말은 경찰들이 즐겨 사용하는 관용군데?
“······느그아부지 뭐하시노?”
“······What?”
“너희 아버지 뭐하시는 분이시냐고.”
“얼마 전까지 스왓팀이셨는데? 물론 지금은 은퇴하셨지.”
What가 아니라 SWAT이셨구나! 일단 이 녀석과는 멀어지는게 좋겠어!
나는 법 없이도 살 남자지만 왠지 법을 집행하는 경찰들이랑 눈이 마주치면 오금이 저리더라고!
그 당시에 내가 원정을 갔을 때 관중들이랑 자주 싸워서 그런가?
톰은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는 사이영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저딴게 루키? 마이너의 선배들도 나를 이렇게 따끔하게 가르치는 선배는 없었다.’
톰은 처음에 사이영이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릴 때 같이 멱살을 잡을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사이영의 눈빛 때문이었다.
마치 뱀이 개구리를 노리는 것 같은 날카로운 눈빛을 본 톰은 감히 사이영에게 덤벼들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빌 선배도 무섭긴 했지만, 그 녀석의 눈빛은 정말······.’
다시 한 번 사이영의 눈빛을 떠올려 본 톰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샤워실로 향했다.
샤워실에서 상의탈의를 한 톰은 자신의 어깨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푸른색 손바닥 자국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이영이 톰의 어깨를 짓누른건 정말 짧은 10초도 안되는 시간 동안이었다.
그런데 이토록 선명한 멍자국이 남았다는 것은 사이영의 괴력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뜻이었다.
꿀꺽!
톰은 욕실에서 마른침을 삼켰다.
‘맙소사! 잘못했다가 나 정말 죽을뻔 했다는 소리잖아?’
#2 세상에 나쁜 오타쿠는 없다.
핫토리는 서울 히어로즈와의 경기에 등판해 5회까지 안정적으로 공을 던지고 있었다.
하지만 핫토리의 머릿속에는 투지나 타자와의 싸움에서 얻는 쾌감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 빨리 들어가서 쉬고 싶다.’
핫토리에게 야구는 직업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기에 성실하게 훈련을 받고 성실하게 공을 던질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핫토리는 오늘따라 의욕이 없었는데 오늘은 일본에서 원킥맨의 오리지날 스토리가 첫 방영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빨리 경기가 끝났으면 좋겠다. 뜨끈한 방안에서 귤까먹으면서 원킥맨을 보면 소원이 없겠네! 하긴 그게 섹스지!’
하아, 저 녀석도 문제네!
톰의 경우 너무 승부욕이 강해서 문제라면 핫토리 저 녀석의 피칭에는 혼이 없다.
고리타분한 이야기지만 한국 야구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타자는 일타일생(一打一生)이요 투수는 일구입혼(一球入魂)이어라.
즉 타자는 타석에 나설 때 그것이 한 평생에 한번 올 기회라 생각하고 타격에 임해야 하고 투수는 공을 던질 때 혼을 담아서 던져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투수가 공을 던질 때 핫토리 녀석처럼 공을 던지면 타자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무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공 하나 하나 전력을 다해서 던져도 모자랄 판에 핫토리 저 녀석은 될대로 되라는 듯이 공을 던지고 있으니 타자의 입장에선 군침이 도는 먹잇감이 아닐 수 없게 된다.
다행인 것은 핫토리 녀석의 구위가 제법 괜찮아서 타자들이 쉽게 정타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시즌이 지나고 핫토리가 분석이 되면 엄청나게 얻어맞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과거 메이저리그에 있을 때 시즌 도중에 부상으로 선수가 팀에서 나가는 경험이 제법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10년 넘게 구르다보면 이별은 익숙해지지만 그래도 팀원을 잃는 것은 가족, 식구를 잃는 것과 비슷한 상실감을 느낀다.
그도 그럴것이 야구팀은 주 6일 훈련과 경기를 합쳐서 12시간 이상 같이 붙어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영향을 받기 싫어도 받지 않을 수 없다.
자연스럽게 팀의 사기는 떨어지고 사기가 떨어진 팀은 성적도 떨어진다.
그런데 우리 대단하신 용병 나부랭이 어르신들께서는 저따위로 공을 던지고 있다.
“이봐, 핫토리!”
“응? 사이영씨 무슨일이십니까?”
“혹시 집안에 우환이라도 있어? 왜 그렇게 널어놓은 미역마냥 축 쳐져있어?”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말해봐, 내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
일본인들은 상대방의 시선을 매우 의식한다.
핫토리 또한 일본인이었고 이런 특성은 핫토리라고 다르지 않았다.
‘굳이 직장동료에게 내 은밀한(?) 취미를 알릴 필요도 없고 말이지.’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들은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았고 그에 따라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을 밝히는 것을 꺼려했다.
‘심지어 지금은 팀에 일본인이라고는 나 밖에 없는데 내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는 소식이 일본에라도 전달되면?’
한국으로 이적을 하면서 일본 야구계에서 한차례 찍힌 핫토리였다.
거기다가 자신이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소식이 바다건너로 전달되면 나중에 일본으로 돌아갔을 때 먹을 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녀석과 이야기를 나누자마자 느껴지는 엄청난 동질감을 느꼈다.
이 녀석은 나와 같은 인간이다!
“혹시 애니 좋아해?”
녀석이 뜨끔한다.
씨익!
“사, 사이영씨는 나를 뭘로 보십니까? 설마 일본인이라고 모두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어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평소 감명깊게 본 애니 대사를 녀석에게 쳤다.
‘가, 갑자기 여기서 만원돌파가 나온다고?’
“······.”
“나는 사이영이다! 대 호크스의 리더예정! 1선발 사이영이다! 네놈이 아무리 철ㄹ벽을 쳐도 언제라도 바람구멍을 뚫어주마! 그것이 내 패스트 볼이다!”
“사이영씨! 설마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십니까?”
“내가 2살 때 뿌로로 선생에게 큰 가르침을 받고나서부터 애니메이션은 내 인생의 일부가 되었지.”
핫토리는 자신이 오타쿠라는 것을 당당하게 밝히는 사이영의 모습이 눈부셨다.
“저도, 저도 오타쿠임을 밝힐 수 있을까요?”
“고개를 들어! 네가 선발투수로 공을 잘 던지는 이상 이 세상에 너를 욕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우오오오오옷!”
만성 피로를 보이는 직장인 같은 핫토리는 한국에서 만난 동료 덕분에 의욕이 불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