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Chapter 16. 주황색 유니폼을 입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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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6. 주황색 유니폼을 입다 (1)
#1 새로운 대전 호크스의 사령탑
김동진은 그 동안 있었던 대전 호크스의 사령탑을 떠올렸다.
한때 김동진이 어린이일 때 6할에 가까운 승율을 기록한 감독이 있다고 들었지만 이후의 감독들은 승율이 5할을 넘는 감독이 없었다.
아주 잠깐 감독대행으로 후반기 30경기 정도 치른 감독대행 때 승율이 5할을 넘기긴 했지만 그 조차 표본이 너무 적었다.
그나마 대전 호크스의 가장 괜찮은 감독이었던 김인직 감독 시절 나왔던 승율이 4할9푼이었다.
이후 팬들의 간곡한 요청에 야신이라 불리던 감독을 대전 호크스의 사령탑에 앉혔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해마다 혹사 논란을 일으키지 않은 적이 없었고 성적은 성적대로 안 좋았다.
최근 김동진은 모든 것을 리셋 시키기 위해서 외국인 감독이라는 초 강수도 꺼내봤지만 그 결과는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작년에는 탱킹에 가까운 시즌이긴 했지만······.’
“사장님도 알고 계시겠지만 대전 호크스는 그 동안 2대 감독인 김형덕 감독 이후 5할이 넘는 승율을 기록한 감독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박단장이 생각하는 후임 사령탑은 누군가?”
“우리는 사이영이라는 KBO최고의 명검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날카로운 명검이라고 해도 쓰는 사람이 어린아이라면 오히려 우리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습니다.”
박민우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김동진은 불현 듯 한 남자가 떠올랐다.
그 남자는 대전 호크스에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투수이자 안타깝게도 구단과의 마찰로 인해 영구결번을 획득하지 못한 남자였다.
“자네, 설마?!”
“구태성, 고등학교 3년간 사이영이라는 희대의 명검을 쓰고 엄청난 숫자의 우승을 경험한 남자 그를 다시 대전 호크스로 영입한다면 떠나간 팬들까지 잡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카드가 될 것입니다.”
김동진은 자신이 부임한 몇 년간 대전 호크스의 프런트를 비롯한 적패들을 청소하는데 힘을 썼다.
물론 일각에서 대전 호크스의 프런트는 일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구단 내부적인 정치문제와 알력다툼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러한 문제는 구단에 크고 작은 문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대전 호크스는 구단의 레전드 투수인 구태성과도 약간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구태성이 구단에서 나가는 과정에서 안화 그룹 수뇌부와 마찰이 있었던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적어도 구태성을 다시 대전 호크스로 불러들이려면 대화 테이블이라도 만들어야 하는데······.’
구태성은 대전 호크스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상처입은 맹금류를 달래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끄응, 송진욱선수 연락처는 아직 있지?”
“아직 연락은 될 겁니다.”
“내가 직접 찾아가서 송진욱 선수에게 부탁을 해야겠군.”
“사장님이 직접 움직이실 생각이십니까?”
“어차피 자네도 나에게 그 부탁을 할 생각이었지 않나?”
“외부인인 저보다는 미래의 안화그룹 오너이신 분께서 설득하는게 더 효과적이라 생각만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2 작은 술자리
구태성의 몸값은 지난 3년 동안 수직 상승했다.
자연스럽게 여기저기 불려나가는 술자리도 많아졌다.
하지만 오늘 구태성을 찾은 사람은 조금 특별한 사람이었다.
‘진욱형님이 무슨 일이지?’
구태성은 평소 송진욱과 자주 어울리던 돼지껍데기 집으로 향했다.
“어, 태성아 여기!”
테이블에는 이미 연기가 몽글몽글 올라오고 있었다.
‘어라? 민철이도 있잖아? 오늘 무슨 날인가? 특별한 날은 아닌 거 같은데?’
장민철은 송진욱, 구태성과 함께 대전 호크스를 대표하는 투수로 영구결번이라는 어마어마한 명예를 가지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전 호크스 단장으로 활약하던 후배였다.
“진욱이형 어? 민철이도 있었네? 이야~ 이거 대전 호크스의 영구결번 투수 두명이 다 모이셨구만?”
“에이, 준다는 거 제 발로 차버린 사람이 누군데?”
‘새끼, 꼭 사람 가슴을 후벼파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한다니까.’
물론 장민철의 장난끼 많은 성격을 알기에 구태성은 장민철의 도발도 웃으며 넘겨주었다.
“민철이 너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
“에휴, 백수가 뭐 할게 있겠어? 그냥 진욱 선배네 가서 투수코치로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살고 있지.”
세 사람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대전 호크스의 레전드 투수였다는 사실과 자의든 타의든 대전 호크스에서 멀어진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구태성은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 소주잔을 체우고 바로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크, 오늘따라 소주가 다네.’
“그래서 진욱이형 무슨 일로 날 불렀어요?”
평소 직설적인 구태성 답게 바로 본론을 꺼내들었다.
송진욱 역시 그런 후배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바로 용건을 꺼냈다.
“너 감독 할 생각 없냐?”
“감독은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대전고 감독 구태성 몰라요?”
“그거 말고. 진짜 감독!”
송진욱이 말하는 진짜 감독은 프로야구팀의 감독을 뜻했다.
“······관심 없어요. 남 좋은일 시켜서 뭐해?”
“대전 호크슨데?”
“대전 호크스?”
구태성은 오랜만에 만난 친한 형이 혹시나 알츠하이머 병이라는 위험한 질환에 걸린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형님 그러게 술 좀 그만 드시라니까! 60도 안되서 치매라도 걸렸소?”
“치매라니! 나 아주 멀쩡해.”
“적어도 오늘은 말짱해 보이지 않아서 하는 이야기요.”
“어제 대전 호크스 사장이 나한테 전화를 넣더라. 너를 대전 호크스의 차기 사령탑으로 앉히고 싶다고 말이다.”
“······.”
구태성은 자신이 나올 때 구단과 한바탕 했던 과거를 떠올렸다.
이후 구태성은 도망치듯 한국을 벗어나 호주로 가서 마지막 야구혼을 불태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대전 호크스와의 과거에 대한 미련을 묻어두었지만 그렇다고 대전 호크스에 대한 애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구태성이 말없이 깡소주를 마시자 송진욱은 품에서 김동진의 명함을 꺼내 구태성에게 내밀었다.
“관심있으면 연락해봐. 요즘 호크스도 많이 변하려고 하는 것 같더라. 그리고 혹시 아냐? 네가 감독을 잘하면 15번을 영구결번으로 해줄지도 모르잖아.”
구태성은 돼지껍데기를 씹으며 송진욱이 내민 명함을 말없이 노려봤다.
#3 주황색 유니폼을 입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나는 대전 호크스에 소속된 선수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나에게 11번 주황색 유니폼이 지급되었고 나는 곧장 부모님께 달려가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내 모습을 보여드렸다.
“여보, 이영이가! 이영이가 드디어 주황색 유니폼을 입었네요.”
“크흠! 역시 우리아들이야. 주황색 유니폼이 잘 어울리네!”
“그래요?”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귀여워한다지만 솔직히 내가봐도 내 모습은 꽤나 괜찮았다.
2m가 넘는 키에 모델 같이 하늘하늘한 몸매는 아니지만 탄탄한 체격에 긴 팔다리, 착 달라붙는 언더셔츠에 드러나는 잔 근육은 그야말로 야구를 하기위해 태어난 남자 같았다.
물론 모든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고 어머니를 닮아 꽤나 잘 생긴 내 얼굴 역시 더욱 빛이났다.
“그나저나 이영이 네가 사이 영 아니 덴튼 트루 영이라는게 이제야 믿기는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무슨 신인이 한 20년 넘게 뛴 베테랑 같은 포스가 느껴지지? 얼굴은 아주그냥 소년소년한데 포스는 어우야!”
“그래요?”
나는 아비저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다.
환생을 하고 다시 프로무대에 오르기까지 18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그리고 환생으로 인해서 나는 전생보다 더욱 강력한 신체를 얻었다.
전생에는 고작 해봐야 188cm에 95kg에 불과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노력한 나는 203cm에 107kg에 달하는 신체 스팩을 가졌다.
심지어 윙스팬은 226cm로 이 신체 스팩으로 농구를 했어도 아마 대성을 했을 것이다.
윙스팬이 긴 투수는 원심력으로 인해서 보다 강한 공을 던질 수 있고 그만큼 팔의 길이가 길다보니 그만큼 공을 놓는 릴리즈 포인트도 앞으로 나가 타자에게는 같은 공도 보다 위력적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환생을 한 것만으로도 전생보다 강력한 신체를 얻었지만 환생의 진정한 위력은 신체만 젊고 강해진 것이 아니다.
환생의 진정한 혜택은 바로 전생의 경험이다.
야구는 피지컬보다는 뇌지컬로 하는 게임이다.
물론 강력한 피지컬이 있다면 굳이 머리가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지만 그렇다고 마운드에서 현명하게 활동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오히려 피지컬이 강해질수록 뇌지컬의 중요도는 더욱 올라간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리그인 메이저리그에서 그 어떤 투수보다 많은 공을 던졌고 많은 이닝을 소화했으며 많은 승을 거뒀고 많은 패배를 경험했다.
이런 경험이야 말로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엄마, 올해 제가 가을 야구의 참 재미를 느끼게 해드릴게요.”
“난 그냥 네가 무리만 안했으면 좋겠어, 우리와 약속을 지키려고 너무 무리는 하지 마렴.”
항상 어머니는 자신의 욕심보다 내 몸을 걱정하신다.
솔직히 지금 같은 심정으로는 환생 트럭이 나를 치고 지나간다고 해도 환생 트럭이 부숴지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만큼 내 몸 상태는 완벽하다.
“그나저나 호크스 새 감독이 구태성 감독님이 된다고 하던데 너 알고 있었어?”
“글쎄요? 제가 감독님이랑은 그렇게 친하지가 않아서······.”
솔직하게 중학교때 나를 변태같이 노려보던 그 애송이는 나에게 간간이 연락이 오는 편이긴 한데 내가 거의 무시하는 편이고 그나마 나랑 이야기가 통하는 지도자는 나의 마스터 뿐이다.
역시 애니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인성이 나쁜 사람이 없다는 ‘그 판별법’은 틀리지 않았다.
“그래? 나는 그래도 네가 구태성 감독님이랑 친한 줄 알았는데······.”
어머니가 실망한 표정을 짓자 나는 곧장 구태성 감독님께 전화를 걸었다.
-어, 이영이냐? 이 밤중에 무슨일로 전화를 걸었어?
“감독님 저랑 감독님 나름 친한 편이죠?”
-그래, 친한 편이지? 아마?
“알겠습니다! 감독님 호크스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사이영은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갑작스럽게 사이영과 통화를 한 구태성은 황당했다.
‘뭐지 이 새끼? 따지고 보면 나는 재 취업이고 너는 신입아니냐?’
구태성은 3년 동안 사이영을 지도했지만 도무지 사이영의 머릿속을 짐작 할 수 없었다.
언론에서는 구태성이 사이영이라는 대단한 투수를 키웠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틀린 이야기 였다.
구태성은 협회가 정한 등판 간격을 지키면서 그냥 사이영을 마운드에 올려보내기만 했다.
다른 투수들의 경우에는 플레툰이니 작전이니 고민할 건덕지가 많았지만 사이영이 등판하는 날은 우엉청심환을 수십개는 씹어먹은 것처럼 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사이영이 고교3년 동안 너무 많은 이닝을 먹었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사이영이 던진 공의 개수를 생각하면 오히려 일반적인 투수들 보다는 더 적은 공을 던졌다.
그래서 구태성은 궁금했다.
사이영이라는 사람의 한계가 어디인지 그리고 한계투구가 없는 프로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었다.
그래서 구태성은 김동진이 제안한 대전 호크스의 감독직을 수락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사이영이라는 규격외 투수가 공을 던지는 것을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35경기 정도 소화하는게 전부겠지? 아니, 이제 풀타임 선발로 뛰는 녀석에게 너무 과한 것을 기대하고 있나? 30경기 정도 소화하는걸로 기대를 낮춰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