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Chapter 11. 초고교급 투수 사이영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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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 초고교급 투수 사이영 (5)
#1 대기록?
건방진 꼬맹이놈이 나에게는 트라우마이기도 한 번트를 시도했다.
볼 카운트 0-1(미국식 카운트)에 과감한 번트모션에 내 몸은 반사적으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비록 내가 은퇴할 시즌즘에는 협응력이 떨어지고 근력도 떨어져서 번트수비가 불안해 졌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나는 리그에서 손에 꼽히는 반사신경을 가지고 있는 내야수였다.
하지만 내 신체가 아무리 젊고 싱싱하다고 해도 3루로 향하는 공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제법 빠르게 굴러가는 야구공은 야속하게도 파울라인을 피해서 3루수에게 넘어갔다.
당황한 3루수는 허둥지둥 거리면서 잡은 공을 1루로 뿌렸다.
하지만 1루수의 미트를 맞고 공이 떨어졌고 타자주자는 아슬아슬하게 1루에 도착했다.
내 실책은 아니지만 퍼팩트 게임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야구는 이런 일도 벌어질 수 있고 저런 일도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해야하는 것은 발 빠른 주자를 1루에 묶어두고 타자와 상대를 하는 것이다.
마운드 위에서 태연한 표정으로 주자와 타자를 상대하는 사이영을 본 구태성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다못해 자기도 팀의 수비가 애러로 타자를 살려 보내면 짜증이 나서 얼굴을 찌푸리는데 사이영은 전혀 그런 기색조차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이 위기일 수 있다.’
1회부터 전력투구한 사이영이기에 체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 이닝은 5이닝이지만 투수들은 체력보다 정신에 더 큰 영향을 받곤 한다.
마운드에서 아무리 좋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고 해도 노아웃에 주자가 나가있는 상황은 모든 투수들에게 껄끄럽기 마련이다.
‘특히 저 팀의 1번 타자, 카를로스라고 했나? 주루 센스가 상당하다.’
주자 녀석이 제법 거슬리긴 하지만 지금 내 포수로 앉아있는 주빈이 녀석의 어깨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쓸데없는 기술이긴 하지만 앉아서도 충분히 2루로 송구를 할 수 있을 만큼 강인한 어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포수로써 정말 큰 장점이다.
하지만 도루저지는 포수의 스텟이지만 투수의 역할이 더 크다.
주자는 투수의 폼을 읽고 달리는 것을 선택하지만 투수도 주자의 폼을 보고 도루의 타이밍을 읽는다.
내가 보기에 저 녀석은 내가 공을 던지는 순간 무조건 달릴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투구와 최대한 비슷한 폼에서 견제구를 날리는 폼을 완성했다.
그 결과 우투수임에도 견제사를 제법 거둘 만큼 내 견제구는 나의 또 다른 무기가 되었다.
슈우웅 팡!
“세잎!”
카를로스는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날아오는 견제구에 기겁을 했다.
‘이게 말이 돼?’
카를로스가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에게 인정받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리키 헨더슨의 재림이라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의 주루 때문이다.
메이저 커리어 내내 1400개가 넘는 도루를 해낸 리키 핸더슨과 비교 될 만큼 카를로스의 주루 센스는 엄청났다.
도루를 잘 하기 위해서는 4S가 필요하다고 한다.
투수의 타이밍을 빼앗는 스타트, 그리고 실제로 루를 훔칠 수 있는 스피드, 도루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슬라이딩, 그리고 이 모든걸 포함한 센스까지 이중 하나가 부족해도 도루를 하긴 어렵다.
그중에서도 카를로스는 포수가 2루로 공을 던지지도 못하게 하는 압도적인 스타트가 발군이었다.
‘만약 내 귀루가 0.1초만 늦었어도 나는 아웃이었을거야.’
도루로 어떻게든 투수를 흔들어 보려고 했던 카를로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1루로 조금 더 가깝게 리드를 잡았다.
흥, 건방진 애송이! 타이 ‘애송이’ 콥도 나에게는 도루할 생각을 안했다.
물론 타자 타이 콥은 대단하다는 수식어가 무안할 타자였지만 800개가 넘는 도루를 한 내 시대 최고의 주자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타이 콥은 나를 상대로 출루를 해놓고도 도루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 도루 저지 능력이 남다르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녀석은 모르겠지만 짜증 날만큼 길었던 리드 폭이 약 1인치 정도 줄어들었다.
즉 저 녀석은 나의 견제구에 겁을 먹고 도루를 포기하게 되었다는 소리다.
나는 간단하게 타자를 상대해 아웃카운트를 잡았고 주자 녀석은 1루에서 망부석이 되어 이닝이 끝났다.
“고생많았다.”
“저 정도 타자는 누워서 잠자기죠.”
“누워서 떡먹기 아니냐?”
“감독님, 누워서 떡 먹다가 목에 걸리면 죽습니다.”
나 같은 인류의 보물은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 알겠냐? 이 애송아!
“그나저나 아직까지 체력이 남아있나보군?”
체력? 하, 누구를 21세기 허접한 체력을 가진 꼬맹이로 보시나? 이래뵈도 나는 19세기 체력을 가진 청년이지!
사실상 생긴것만 같지 19세기 인류와 21세기 인류는 전혀 다른 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육체적인 부분에선 차이가 있었다.
물론 21세기 인류는 애니라는 아주 위대한 문화를 발명했기에 더욱 진화했다고 할 수 있겠다.
“뭐 감독님 투수는 에라자빠저라고 생각 하십시오.”
“변화구를 익히지 않은 너는 구위가 떨어지면 결국 무너지게 되어있다. 만약 이번 경기 완투를 못하면 필히 변화구를 익히도록!”
하, 이 양반 나를 너무 무시하네?
한국의 레전드 투수라고하지만 나는 역사와 전통 그리고 근본이 넘치는 메이저리그 명예의전당 그것도 투표로 2번째에 오른 덴튼 트루 영인데 말이야.
나는 감독의 저주를 무시하고 내 자리로 이동했다.
경기는 특별한 전환점 없이 계속 진행되었다.
간간히 대전고 타자들이 출루를 했지만 점수는 변하지 않았고 마운드에는 계속해서 사이영이 불같은 강속구를 뿌리고 있었다.
슈우우우우웅 뻐어어엉!
구태성은 9회에 들어서까지 구위가 죽지 않는 사이영을 신기한 듯이 바라봤다.
‘오히려 구위가 더 좋아진 것 같은데?’
구태성은 사이영의 완투를 이해 할 수 없었다.
보통 사이영처럼 던지는 선발투수들은 5이닝 정도 되면 체력이 떨어져서 난타를 당한다.
하지만 사이영은 9이닝 내내 1이닝때와 같은 탬포로 공을 뿌렸다.
심지어 한 타순이 돌아서 타자들이 눈에 공이 익으려고 하자 팔 각도를 내려서 전혀 다른 공을 뿌려댔다.
보통 이렇게 경기도중 투구폼을 바꾸면 투수의 밸런스가 흐트러져서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
잘못하다가는 부상을 당하기 십상이고 제구가 흔들릴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짓이다.
하지만 사이영의 제구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타자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사이영의 공에 배트를 휘둘렀다.
그 결과 사이영은 9이닝 마지막 타자까지 깔끔하게 막아내고 비공식 노히트 노런을 성공했다.
심지어 퍼팩트 게임이 되지 않은 이유는 상대팀의 1번 타자가 4회 때 푸쉬 번트를 했는데 3루수가 송구 실수를 하는 바람에 에러로 출루를 한 것이었다.
만약 그 수비가 없었다면 비공식 퍼팩트 게임을 할 뻔한 사이영이었다.
“감독님 약속 지키셔야 합니다.”
구태성은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노히트 노런에 흔들리지 않는 제자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녀석은 초고교급 투수다. 녀석이라면 노는게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훈련을 하겠지.’
일반적인 감독과 달리 자율적인 훈련이 더욱 효율이 좋다고 믿는 구태성은 거리낌 없이 사이영의 요청을 수락했다.
“당연하지. 나는 한입으로 두말 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걸로 수지랑 같이 데이트를 할 수 있겠군!
나도 주중에 하루는 쉬어야지!
#2 경기가 끝나고 난 뒤
오랜만의 9이닝 투구, 어깨가 기분 좋게 달아올랐다.
그래, 드디어 제대로 된 야구경기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 동안 이런 기분이 너무 그리웠다.
조금만 더 던지면 어깨가 기분 좋게 달아오를 것 같은데 이닝제한 때문에 경기를 마무리 못하는 건 나에게는 스트레스였다.
다행히 고등학교 야구부터는 완투가 가능하다.
나는 현역시절 내 마운드를 불펜 투수에게 넘기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나는 8할이 넘는 경기를 완투했고 역사상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한 선수가 되었다.
요즘 투수들은 완투만 해도 스포츠 신문에 등장할 만큼 대단한 일이지만 나에게 완투는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었다.
이런 나에게도 오늘 경기는 조금 특별했다.
9이닝 노히트 노런, 현역시절 퍼팩트 포함 4번의 노히트 노런을 한 경험이 있다.
비록 프로도 아닌 꼬맹이들을 상대로 한 노히트 노런이지만 전생에서도 고작 4번 밖에 하지 못한 귀한 기록이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이영아, 감독님이 너 아이싱 하래!”
“아, 아이싱 해야지.”
옛날에는 아이싱같은 개념이 없었다.
그냥 투수가 공을 던진 다음날에는 푹 자게 해주는 것 정도가 회복의 일정이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공을 던진 어깨에 염증이 생기지 않도록 아이싱을 해서 어깨를 식혀주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굳이 아이싱을 할 만큼 많이 던지지도 않았으니 아이싱을 하지 않았지만 오늘 경기는 9이닝까지 던졌기에 나는 주빈이가 건내준 아이싱 용품을 착용했다.
달아오른 어깨가 조금씩 식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이 느낌 나쁘지 않군.
“Hay! Amigo.”
내 투구용 장비를 챙기고 호텔로 가는 길 어떤 건방진 꼬맹이가 나를 불러세웠다.
“뭐야?”
“너 나 몰라?”
“내가 너를 알아야 하나? 그리고 나는 게이가 아니니까 그따위 작업하려다가 진우 녀석처럼 그라운드에 같이 묻어버리는 수가 있어.”
“뭐라고? 아니 그게 아니라 너 2M 리틀 야구팀 출신 투수지?”
“그래, 한때 그랬던 적도 있었지.”
카를로스는 아련한 과거처럼 이야기 하는 사이영을 미친놈처럼 바라봤다.
'생각해보면 프랭크 그 녀석도 좀 미친놈 같긴 했어. 야구를 잘하는 투수는 다 미친놈들인가?'
'눈빛을 보니 너도 비슷한 녀석을 알고 있나 보군? 그 녀석은 얼마나 미친놈이지?'
옆에 서있던 말 많은 포수가 알아듣기 어려운 한국어로 말을 걸어왔다.
“나는 너를 이해해.”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뜻은 전달되었기에 카를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저 자식들이 서로 끈적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이지?
설마 주빈이 네 이놈! 취향이 그쪽이었나? 나에게는 수지가 있다 이놈아!
“왜 나를 불러 세웠지?”
카를로스는 어린시절 자신에게 재능의 벽을 보여준 호적수를 노려봤다.
여전히 여유가 넘치는 상대는 자신을 기억조차 못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 모습이 카를로스의 승부욕을 더욱 부추겼다.
“내 이름은 카를로스 아이작 알론소, 이번에는 너에게 졌지만 언젠가는 너를 이길 남자다.”
하, 이 자식 애니 좀 본 녀석인가?
그나저나 이름이 CIA냐? 차라리 야구선수 말고 첩보요원을 하지 그랬어?
이름이 웃긴 녀석이라고 해도 나는 미래의 적수가 될지도 모르는 녀석의 기를 살려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네가? 나를? 오늘 경기 노히터인건 알고 있지?”
“무, 물론 지금은 네가 나보다 더 강할지 몰라. 하지만 이번에는 출루는 했다.”
“너 수비 실책으로 출루한건 알고 있지?”
팩트로 뼈를 몇 대 때려주니까 사납게 나를 노려보던 녀석은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글썽거렸다.
흥, 이제 나를 위협할 수 있는 울음은 수지의 울음뿐이다. 애송이!
“······어찌되었건 출루는 출루다.”
그도 그럴게 어린시절 카를로스는 사이영의 공을 보고 지례 겁을 먹고 출루할 생각조차 못했던 반면 지금의 카를로스는 사이영의 공을 보고 어떻게든 살아나가겠다는 의지를 가졌다.
‘그것만 해도 충분한 발전이야.’
“뭐, 만약에 내가 너랑 큰 물에서 만나면 그때는 반갑게 인사정도는 받아줄게.”
카를로스라고 했나? 나의 메이저 식 인사는 좀 다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