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Chapter 9. 성장하는 소년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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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 성장하는 소년들(3)
#1 춘계 대전시장배 중학교 리그 D-day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춘계 대전시장배 리그에 선발 등판한 정병민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정병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3루에 있는 사이영을 바라봤다.
“흐아아아아아암!”
사이영은 동내 마실이라도 나온 것 처럼 3루 베이스를 밟고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있었다.
사이영의 행동 어디를 보더라도 긴장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려고 해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내, 데뷔 경기는 어땠지?’
정병민은 작년 추계리그에서 처음 마운드위에 섰던 기억을 떠올려봤다.
0.2이닝 4피안타 4사사구 5실점 조기강판, 그 경기는 5회 콜드게임으로 유성중이 광탈하는데 정병민이 지대한 공을 세웠던 경기였다.
당시 정병민은 얼떨결에 마운드에 올랐고 결국 이닝을 끝내지 못하고 조기강판 당해야 했다.
이후 그때의 패배를 잊기위해 이를 악물고 슬라이더를 갈고 닦았던 정병민이었다.
‘사실 아직도 그 경기의 기억이 안나.’
다만 마운드에서 내려오고 허탈감과 패배감 그리고 선배들의 기회를 빼앗았다는 죄책감에 오열을 했던 기억만 남아있었다.
‘정말 저 녀석은 신기한 녀석이야.’
정병민은 사실 사이영이라는 후배가 정말 싫었다.
자신보다 반짝이는 재능을 가진것도 싫었고 첫날부터 친구들과 싸우는 미친 성질머리도 싫었고 자신보다 일찍 일어나서 늦게 숙소로 들어가는 근성도 싫었다.
그래서 하루는 사이영에게 공도 잘 던지는 녀석이 왜 그렇게 악착같이 운동을 하냐고 물었던적이 있었다.
‘그때 녀석의 대답이 가관이었지.’
사이영은 정병민에게 ‘이슬이 맺히는 새벽부터 어둑해질 때까지 노력할 각오가 없는 남자는 투수가 될 생각도 해선 안 된다.’는 대답은 정병민의 가슴을 파고들어 심장에 박혔다.
그리고 정병민은 사이영이 하는 훈련을 자발적으로 따라했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구토를 할 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합숙훈련이 끝날 때즘 더 이상 먹은 음식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지.’
그리고 정병민은 스토브리그에서 제법 좋은 공을 던지며 팀의 1선발로 확정이 되었다.
‘저 덩치만 큰 꼬맹이에게 엉성한 모습을 보여 줄 순 없어.’
신기하게 사이영을 바라보고 있으면 투지가 솟아오르면서 심장이 느리게 뛰었다.
“플레이 볼!”
심판의 플레이 선언이 떨어지기 무섭게 정병민은 힘껏 와인드업을 했다.
나는 시합 시작전에 한껏 이완시킨 몸과 정신을 다시 끌어올렸다.
3루는 핫코너다.
언제든지 강력한 타구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의 집중력이란 것은 아주 요상해서 항상 100%를 발휘 할 수 없다.
이것이 가능한 인간이 타자라면 5할은 칠 것이고 투수라면 퍼팩트게임을 밥 먹듯이 할 것이다.
내가 이닝이 시작되기 전 몸을 한껏 이완 시키는것도 여기에 있다.
필요한 순간에 집중을 하기 위한 나만의 루틴이랄까?
깡!
역시나 오른손 타자가 힘껏 잡아당긴 공은 나를 향해 날아왔다.
“킹치만 갓림도 없지!”
깔끔한 포헨드 케치에 이은 1루 송구!
비록 마운드 위에서 던지는 것 만큼의 위력은 아니지만 내 어깨는 팀내 최고였기에 레이저같은 송구로 타자주자를 잡아냈다.
“나이스 캐치!”
아, 뭐 보통이지!
사실 3루수가 핫코너다 뭐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강습타구는 투수강습타구다.
기본적으로 3루수보다 타자에게 가까운 포지션이 투수다.
포수를 제외한 모든 야수들중에 타자와 가장 가까운 포지션이 바로 투수다.
당연히 타구의 속도도 말도 안될 만큼 빠르다.
나는 그런 강습타구를 22년간 몸으로 막아온 남자다.
그런 나에게 건방진 중학생 꼬맹이가 휘두른 강습타구는 식은 죽먹기와 다름없다.
호수비 하나는 팀원들의 사기를 올려준다.
그래서인지 우리 건방진 애송이 선배님께서 삼진으로 두타자를 돌려 세우고 이닝을 마쳤다.
상황은 우리 유성중학교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1회초 2점, 2회초 1점, 3회초 2점을 득점한 우리는 병민선배의 호투 덕분에 5점의 리드를 안고 갔다.
그리고 4회 결국 5점이라는 대량득점을 거두며 콜드게임이 가능한 점수를 기록하고 병민 선배의 4이닝이 끝났다.
중학야구는 리틀리그와 다양한 점에서 차이가 있는데 우선은 다이아몬드의 규격이 성인 무대와 똑같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고 두 번째로 이닝이 더욱 길어진다.
중학야구에서 5이닝 6이닝은 콜드게임룰이 적용되고 7이닝이 마지막 이닝이 된다.
리틀리그와 달리 8강부터는 타임오버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전히 근본 없는 룰이긴 하지만 어린 청소년들에게는 제법 큰 체력을 요구하는 플레이 타임이다.
#2 경쟁심
“자, 병민아 수고 많았다. 다음 투수는 혁이가 올라가자.”
“네, 감독님.”
이휘현은 생각보다 더 강력해진 유성중의 실력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 겨울에 합숙훈련때 애들이 자진해서 더 많은 훈련을 소화해서 그런지 전력이 확실하게 올라갔다.’
강혁이라는 투수는 정병민과 마찬가지로 올해 3년에 올라간 투수로 키는 작지만 언더핸드로 공을 던지는 투수였다.
‘오버핸드인 병민이의 공을 보다가 혁이의 언더핸드를 본다면 적응이 힘들 거야.’
예상대로 대덕중학교는 강혁의 공에 정신을 못 차리고 방망이를 돌리기 일쑤였다.
자신의 생각대로 딱딱 맞아 떨어지자 이휘현은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5이닝 콜드게임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타자가 타석에 선 상황
그 모습을 지켜보던 코치 이상식이 물었다.
“감독님, 우리가 콜드게임이라니 이거 실홥니까?”
“그럼 구라겠냐? 사쿠라겠냐고! 정신 안차려? 이 새끼 빠져가지고!”
말은 이렇게 하지만 이휘현도 사실 콜드게임이 실감나지는 않았다.
이전까지 유성중학교는 콜드게임을 당하기만 해봤지 해본적은 없는 팀이었다.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는 중학교 야구부가 그렇듯 약체팀은 늘 약한 선수들이 들어왔고 강팀의 희생양이 되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늘 콜드게임을 당하던 유성중이 당당하게 비슷한 포지션의 대덕중학교를 콜드게임으로 누르고 8강행을 결정짓기 직전이었다.
한편 이 모습을 지켜보는 김진우는 속이 부글부글 끌었다.
김진우는 리틀리그에서 늘 항상 주전이었다.
사이영이 평가하길 싸가지는 없지만 눈치는 있는 김진우는 센스있게 수비를 깔끔하게 했고 타격도 그 나이 수준에서는 나쁘지 않은 타격을 했다.
분명 유성중의 선수 풀은 얇고 얕았지만 2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을 수준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나이 수준에서 김진우는 반짝반짝 빛이 나는 원석이었지 사이영이나 우민규처럼 나이를 뛰어넘는 재능을 보유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최주빈처럼 한정된 포지션에 있는것도 아니었기에 데뷔전에서 출장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김진우는 오랜만에 벤치에서 친구들이 즐겁게 야구를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나도 뛰고싶다.’
야구 선수라면 기본적으로 가지게 되는 욕망이 어린 소년의 마음에 불을 집혔다.
그리고 김진우는 어떻게 출전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다가 사이영이 수비에 집중해보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영이 그 녀석이 하는 말은 대부분 헛소리긴 하지만 야구에서 만큼은 헛소리가 없다.’
“코치님!”
“어, 진우야. 무슨 일이야?”
“저 이번 경기 마치고 펑고 좀 쳐주실 수 있나요?”
펑고는 야수가 수비연습을 할 수 있게 쳐주는 타구를 뜻하는 단어로 야구선수들 사이에선 최악의 훈련으로 손에꼽는 훈련이었다.
하지만 펑고만큼 수비실력을 키워주기 좋은 훈련도 없었다.
“펑고? 오늘은 훈련이 없는 날인데?”
“부탁드릴게요.”
이상식은 열정에 불타는 1학년 꼬맹이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 우리가 오늘 콜드게임으로 일찍 끝날거 같으니까 오후에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을 빌려볼게.”
경기는 모두의 예상대로 콜드게임으로 간단하게 끝났다.
그리고 프로선수들도 힘들어 할 수준의 엄청난 양의 펑고를 시작했다.
김진우의 부탁으로 펑고를 치게 된 이상식은 상상을 초월하는 독기를 보여주는 김진우의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진우야 그만 할까?”
“아뇨, 조금만 더 받아 볼게요!”
‘이러니 대전 최고의 유망주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거겠지?’
김진우의 유니폼은 흙과 땀으로 얼룩져 있었다.
“헉, 헉! 헉!”
김진우는 무야지경 속에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을 향해 글러브를 뻗었다.
텁!
정확하게 글러브 볼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 공을 받고 오뚜기처럼 일어난 진우는 방금과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녀석들에게 뒤쳐질 순 없다.’
네 사람은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지만 또 라이벌이기도 했기에 김진우는 다시 펑고를 향해 몸을 날렸다.
김진우는 그날 해가 질 때까지 펑고 훈련을 거듭했다.
#3 준결승전
유성중은 8강에서도 콜드 게임으로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대전 지역 최강자를 가리는 준결승전이 시작되었다.
준결승전의 상대는 호연중학교로 대전 체육 중학교와 함께 대전지역에서 손에 꼽히는 강팀이었다.
호연중학교가 압도적인 전력으로 다크호스 유성중학교를 압도적으로 이길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면 경기는 의외로 시소게임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실점을 하게 된 정병민은 슬라이더의 유혹에 빠졌다.
‘이제는 팔꿈치도 덜 아픈데 슬라이더 몇 개만 던져도 되지 않을까?’
정병민은 오늘도 3루에서 하품을 하고있는 사이영을 바라봤다.
투수가 점수를 잃으면 짜증이라도 낼 법한데 사이영의 표정에는 짜증이라곤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 없었다.
정병민이 보기에 사이영은 말대신 표정과 행동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점수를 잃으면 더 많이 점수를 따면 되지.]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듯 행동하는 사이영 덕분에 정병민은 마음을 단단히 먹을 수 있었다.
‘그래, 슬라이더를 던진다고 타자가 그냥 잡히는 건 아니야! 잠깐 어려움을 무마하기 위해서 올해 내내 슬라이더를 던지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정병민은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2학년까지만 해도 자신이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3학년이 되고나서 판타스틱4라는 녀석들을 본 다음에야 자신의 재능은 형편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부상이 두려워졌다.
재능도 없는 자신이 부상까지 당하면 정말 야구를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자 정병민은 강해졌다.
비록 얻어맞을지라도 묵묵하게 직구를 뿌리는 정병민 때문인지 호연중학교 타자들은 지난 이닝처럼 점수를 얻지 못했다.
“와, 저 새끼들 왜 저렇게 잘해졌지? 작년까지만 해도 좆밥이었는데.”
“야, 재들 두 번째 투수가 더 쉬워. 어차피 지고 있어도 선발 내려가면 우리가 이겨!”
“이기는 거야 당연하고! 꼰대들한테 깨지는게 짜증나서 그러지!”
“아, 네 말대로 이번경기 삽질했다고 폴대폴 죽을 때까지 달리는 거 아니냐?”
“와 듣기만 해도 개토나오네.”
그렇게 4이닝이 끝날 때 유성중은 4:3으로 불안불안한 리드를 지켜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휘현은 아껴둔 전가의 보도를 뽑아들었다.
“다음 투수는 이영이 너다.”
아, 비밀병기가 나설 차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