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Chapter 7. 사이영을 노리는 사람들(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Chapter 7. 사이영을 노리는 사람들(2)
#1 사이영 11세 시즌
우리는 리틀 리그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을 거두고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휴, 생각보다 미국 꼬맹이들의 실력이 매서웠다.
1번 타자 카를로슨가 뭔가 하는 꼬맹이를 제외하고도 내 공을 따라가는 녀석이 3명은 더 있었기 때문이다.
내년에 녀석들이 더욱 성장한다면 과연 내가 ‘패스트 볼’만으로 녀석들을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야구는 피지컬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기술이 중요한 스포츠다.
현대 야구에서도 선수들의 전성기가 20대 초중반이 아니라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머무는 것만 봐도 그렇다.
나는 회귀 덕분에 꼬맹이들 보다 더욱 기술적 완성도가 높은 상황이라 리틀리그에서는 무적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타자 녀석들과 힘든 싸움을 해야 할 것이다.
그 증거로 과거 내 메이저 평균자책점이 2.63이라는 것이다.
지금이야 0점대로 애송이들을 상대하겠지만 고등학교만 올라가도 안타도 맞고 실점도 할지 모른다.
아니 분명 한국 고교야구에서도 내 공을 때리는 녀석들이 나오겠지.
눈 감고 힘차게 방망이를 휘둘러도 재수 없으면 홈런이 나오는게 야구니까.
그래서 나는 더욱 열심히 운동을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질 수 있었다.
내 목표는 전생이 이룩한 511승도 아닌 700승이니까.
신이 빚은 1번 타자라 불리는 리키 헨더슨이라는 애송이는 도루부분에서 2위와 400개 가까운 차이를 벌리며 압도적인 1번 타자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나 역시 선발 투수라는 포지션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줘서 더 이상 월터 ‘애송이’ 존슨과 비교를 거부하는 최고의 명예를 거머쥘 것이다.
이미 한번 511승을 거둬본 나는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부터 더욱 현명하게 육체를 단련시켜야 한다.
비행기 좌석에서 가만히 있을 때조차 나는 악력기를 사용해서 악력을 키웠다.
투수에게 악력은 정말 중요한 능력이다.
과거에 이런 악력기가 존재했다면 나는 이동하는 기차에서 매일 같이 악력기를 가지고 놀았을 것이다.
나는 악력기를 사용해서 양손에 악력을 키우는 운동을 하다가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꿈을 꾸었다.
꿈에는 아주 그리운 사람이 등장했다.
꿈에서 나마 다시 보고 싶었던 나의 첫사랑 로바였다.
“영, 오랜만이야.”
로바 영, 그녀는 나와 소꿉친구로 어린시절부터 내가 사랑했던 유일한 여인이었다.
비록 야구를 할 때는 같이 있어주지 못했지만 내가 야구를 그만두고 20년 동안 우리는 늘 함께였다.
어린 시절 내 심장을 뛰게 했던 맑은 미소도 여전했다.
“맙소사. 로바? 정말 로바 당신이야?”
“그럼, 자기, 잘 지냈어?”
그녀가 맞다.
비록 내 기억속에 그녀인지 아니면 진짜 사후세계에서 나를 찾아온건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이 낮은 목소리는 로바만의 것이다.
“솔직히? 로바 당신이 내곁을 떠나고 나는 쓸쓸하게 늙어갔어.”
내 이야기에 로바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는 서둘러 변명을 했다.
이것이 나를 최고의 투수이자 최고의 남편으로 만들어준 순발력이다.
“물론 즐거운 일도 있었지! 당신이 떠나고 나서 명예의 전당이라는게 생겼어!”
“명예의 전당?”
“미국에서 위대한 업적을 세운 야구인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야. 비록 최초의 5인은 될 수 없었지만 그래도 2년차에 당당하게 입성을 했지.”
“당신이 최초가 아니라고?”
“빌어먹을 기레, 아니 기자 녀석들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어.”
“당신은 항상 기자들을 싫어했지. 그렇지만 그것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말이야.”
“내가 다시 태어나고 나서 알게 된 속담인데 물지 않는 개가 짓는다고 하더라.”
“그래, 내 남편은 그런 남자였지.”
“꿈에서나마 당신을 볼 수 있다니 참 즐겁네.”
“이보세요. 덴튼 트루 영씨! 내가 왜 당신을 찾아왔는지 알아요?”
우리는 거의 평생을 함께한 동반자였다.
그래서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몰라도 이번에 마지막 만남이라는 것은 확신 할 수 있었다.
“모르면 더 자주 찾아와주나? 그럼 알고 싶지 않은데 말이야.”
“당신은 이제 새로운 인생, 새로운 목표를 가졌죠?”
“그래, 과거 덴튼 트루 영의 삶이 2인자 이지 않도록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위대한 투수가 될 거야.”
“멋진 목표네요. 당신 다워요. 그리고 이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으니 새로운 동반자와 함께 하세요. 나한테 미안해하지 말고 말이에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당신을 꼬시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아마 당신을 모르시겠죠. 그런데 앞으로 그런 고생을 한 번 더할 친구가 보여서 어쩔 수 없이 당신을 찾아왔어요.”
나는 로바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내 눈치를 본다고 이번 생의 인연을 밀어내지 말고 이번 생에도 새로운 인연과 함께 행복하게 보내세요.”
그리고 나는 깊은 잠에서 깼다.
“야, 무슨 잠을 그렇게 오래자?”
하아, 눈을 뜨자마자 빌어먹을 진우녀석의 얼굴이 보인다.
나도 모르게 녀석의 볼을 잡고 양손으로 잡아 당겼다.
“으갸갸갸! 으퍼!”
“거봐, 이영이 잘 때 건드리면 큰일 난다니까.”
눈은 뜬 나는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졌음을 실감했다.
빌어먹을 꼬맹이 지옥이라니! 죽어라 진우 꼬맹이!
#2 고백받다.
“다녀왔습니다.”
“이영이 왔니? 우승한거 축하한다.”
이미 그 비싸다는 국제전화로 우승축하를 받았지만 직접 부모님께 축하를 받으니 기분이 남다르다.
아버지는 축하인사 대신 CD를 나에게 주셨다.
“이게 뭐에요?”
설마 야구 동영상? 어머니도 계신데 아버지도 참 대단하시다니까.
“우리 아들이 케이블에 처음 얼굴을 비췄는데 당연히 녹화를 해야하지 않겠니? 이번 월드 시리즈 녹화본이다.”
어라? 진짜 야구 동영상이구나······.
어린 시절 내 친구였던 TV 옆에는 처음 보는 기계가 놓여 있었다.
아무래도 저걸로 내 경기를 녹화하신 것 같다.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신다.
전생의 아버지도 무뚝뚝 하셨지만 나랑 같이 케치볼을 하러 나갈 때 가끔 저런 미소를 보여주곤 하셨다.
나는 말 없이 그냥 부모님 품에 안겼다.
로바, 당신을 결코 잊을 순 없겠지만 이제 이 생에 더 충실해 볼게.
“그런데 이영이 여기까지 목에 메달을 걸고 온 거야?”
“아! 맞다. 엄마 아빠! 잠시 수지네 다녀올게요.”
“지금? 이제 곧 밤인데?”
한국의 치안은 미국보다 월등히 좋기에 밤이 되어도 나같은 꼬맹이가 밤길을 걸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하, 어찌된게 미국은 내가 죽고 나서 70년이 지났는데 변하는게 없는지!
“약속지키러요! 금방 돌아올게요.”
이번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우승메달을 얻자마자 목에 매달고 한국까지 도착했다.
멍청한 꼬맹이들은 사정도 모르고 나를 놀려댔지만 나는 그런 꼬맹이들의 조롱을 무시했다.
딩동~ 딩동~
-누구세요?
인터폰 너머로 수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수지야! 정수지! 빨리 나와.”
-사이영? 지금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약속을 지키러 왔다.”
솔직하게 수지 녀석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신경이 쓰였다.
안 그래도 눈물이 많은 녀석인데 이번에도 약속을 못 지켰다간 감당 못할 눈물 바다를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상황이다.
-잠깐만 기다려! 금방 나갈게.
아, 금방 나온다는 녀석이 30분째 소식이 없다.
위이이이이잉~ 짝!
내 피 같은 피를 노리고 내 팔뚝에 붙은 모기를 때려잡았다.
그렇게 모기 3마리를 잡고 있으니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철컥!
“무슨 일인데 이렇게 갑자기?”
수지의 근처에서 은은한 샴푸향이 흘러나온다.
머릿결을 확인하니 아직 덜말렸는지 머리카락이 아직 촉촉하게 젖어있다.
괴씸한 녀석! 할아버지는 밖에서 모기놈들과 혈투를 벌이고 있는데 자기는 집에서 샤워를 하면서 나를 기다리게 하다니!
“샤워했어?”
“······무슨 소리야. 왜 왔냐니까?”
나는 목에서 메달을 벗어 수지에게 건내줬다.
“자, 이걸로 약속은 지켰다? 허접한 예선전 우승 메달 대신 월드시리즈 우승 메달이야.”
“······이걸 주려고 지금 달려온거야?”
“잘못하다가 또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
수지양께서 감동하신 듯 눈가가 촉촉해졌다.
제길, 나는 꼬맹이들이 우는 꼴은 도저히 못 보겠다.
그것도 특히 여자아이가 우는건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
지금 이 세상에는 나와 로바의 아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나와 로바는 화목했고 부부금술도 좋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가 찾아오지 않았다.
은퇴를 하고나서 딸 아이를 겨우 얻었지만 나를 닮지 않고 로바를 닮은 이쁜 아이는 워낙 약하게 태어났다.
그리고 얼마안가 우리 부부곁을 떠났다.
그 이후부터 나는 여자아이들이 다 내 딸 같고(절대 TV에서 사고치고 딸 같아서 그랬다는 개자식들이 하는 의미가 아니다.) 그래서 더욱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유독 잘 우는 정수지양은 내 약점이나 다름없다.
저렇게 작고 예쁜 꼬맹이가 서럽게 우는데 사이코패스가 아니고선 다들 마음이 약해질 것이다.
“울지마.”
“그래, 안 울거야! 좋아. 네가 나에게 메달을 주면 내가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지? 소원을 말해봐.”
네가 무슨 램프의 요정이라도 되냐? 너같은 꼬맹이에게 무슨 소원을 빌어보라는 거야.
아, 그래도 녀석이 나에게 해 줄수있는 것이 있다.
“야, 그럼 앞으로 오빠라고 불러라. 평생.”
“······고작 그게 소원이야?”
수지의 미간에 깊은 골이 생겼다.
뭐지? 내 소원이 마음에 안 드나? 그래도 어쩌겠어? 네가 나한테 한 약속인 것을!
“당연하지. 너한테 받을 소원은 그것뿐인걸?”
갑자기 수지의 눈에서 눈물이 콸콸 쏟아졌다.
“사이영, 이 나쁜새끼야!”
갑자기? 여기서 저렇게 서럽게 운다고?
정수지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이영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급하게 샤워를 하고 달려나온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왜, 왜 우는거야.”
정수지는 이 분한 마음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말 없이 사이영을 노려봤다.
‘잠깐, 저 나쁜 놈이 당황을 했는지 몸이 굳어있잖아.’
평소에 뺀질거리던 사이영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완벽하게 당황한 듯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래, 누가 먼저 고백하는게 무슨 상관이야.’
정수지는 당황해서 얼어있는 사이영에게 다가갔다.
정수지가 코 앞까지 다가와도 사이영은 뒤로 조금씩 물러났다.
하지만 얼마 못가서 담벼락이 사이영을 막았다.
사이영이 다시 도망치려하자 정수지는 있는 힘껏 사이영을 밀쳤다.
당황한 사이영은 벽에 찰싹 붙었다.
‘쓸데없이 키만 커서!’
같은 학년중에서도 사이영은 유독 큰 키와 비율좋은 신체로 유명했다.
“야, 사이영!”
“어, 어?”
“도장찍자.”
“무, 무슨 도장?”
정수지는 까치발을 들고 사이영의 입술을 훔쳤다.
쪽!
내가 지금 뭘 당한거지? 정수지 이 녀석 발랑 까져가지고!
하지만 화를 내기엔 나를 노려보는 녀석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이제 넌 내 꺼야. 알겠어?”
내 두뇌가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녀석은 선언하듯이 말했다.
“······.”
“대답!”
“응.”
로바, 당신이 말한 새로운 인연이라는게 설마 이 꼬맹이?
아무래도 나는 이번 생에도 소꿉친구와 맺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