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84화 (84/183)

46. 메시아 (2)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 전의 일이었다.

목요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회백색의 세상.

지평선 너머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초대형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저 너머의 세계였다.

그 구석진 곳에서 팔다리가 부러진 채 처박혀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들려오던 무전을 똑똑히 기억한다.

“프로페서의 생명 반응은?”

“확인되지 않아. 균열 안이라서 노이즈가 너무 심해.”

“수색을 계속할까?”

“한 번 더 뒤져보자.”

“아니. 나는 반대야. 프로페서는 죽었어. 살아 있다면 교신을 해오겠지.”

“프로페서는 죽지 않아.”

“설령 살아 있다고 해도 우리가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구할 가치는 없다고 생각해. 이제 풀(fool). 네가 대장이야. 철수 명령을.”

“미네르바. 아니, 혜인아······. 너 어떻게 그런 말을? 박규가 너 구해준 거 잊었어?”

“그 사람이 말했잖아? 우리 전쟁에 무능력한 자는 필요 없다고. 이제 그가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 거지. 왜?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어? 우리의 가치를 생각해. 우리는 이제 그 사람 수천 명을 합친 가치가 있어.”

“풀. 어떻게 할까? 곧 전자기 폭풍이 몰려온다. 아주 큰놈이야.”

“······철수한다.”

나는 버려졌다.

사유는 무가치.

1년 전만 해도 누가 그 말을 믿을 수나 있었을까?

한때 세계 최고의 헌터 후보에 물망이 오르던 인물이 무가치하다니.

물론 거기에서 죽는 것도 박규라는 사내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기에 딱 좋은 교훈성을 가지고 있긴 했다.

하나의 씁쓸한 완결이라고 할까.

그러나 나는 살아서 돌아왔다.

부러진 뼈를 스스로 맞추고 진통제를 치사량 직전까지 투여해가며 아득바득 기어서 탐사대의 순찰로에 당도했고 한달 가까이 비상식을 쪼개 먹고 굶주림을 참아가며 다음 탐사대를 기다렸다.

내가 다음 탐사대에게 발견됐을 때 내 몸무게는 81kg에서 45kg으로 줄어 있었다.

하지만 내 의지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여전히 당시의 나에겐 프로페서라 불리던 엘리트의 자부심과 긍지가 살아 남아 있었으니까.

내가 무가치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인공 어웨이큰 개안 시험에 자원했다.

현재 정신 감응 테스트라고도 불리는, 어린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극한의 시련이다.

세 번을 시도했고 모두 실패했다.

한 번은 뇌사 판정까지 받아 한 달 동안이나 내가 모르는 시간을 병상 위에서 지내기도 했다.

앙상하게 말라버린 팔을 보면서 나는 두 눈을 감고 인정했다.

이 박규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저 균열 너머에 자리 잡은 무한에 대처할 자격이 없는 인간이라고.

“······.”

내 방 한구석에 붙어 있는 시트지를 무심코 응시했다.

스우의 것과 나란히 붙은 시트지는 검은색을 띠고 있다.

무능력자의 색이다.

그리고 동시에 내 미련을 드러낸다.

무가치한 걸로 이미 판명이 난 내가 여전히 그 힘에 목말라 있다는 걸 나타내는.

iamjesus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맴맴

내가 뇌사 판정을 받아 누워 있는 동안 우민희를 비롯한 후배들이 어웨이큰으로 각성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확한 정황은 모르지만 그럴싸한 소문을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들이 말했다.

어웨이큰은 어웨이큰을 끌어들인다고.

마치 모범적인 스승이 주변의 사람을 감화하듯, 강력한 어웨이큰은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개안의 길로 향하는 가르침을 줄 수 있다고.

우민희는 또 다른 구원자 나혜인의 부사수였다.

일전에 우민희가 내게 물었다.

왜 부탁을 하지 않았냐고.

부탁할 수도 있었다.

구원자라 불리는 당대 최강자 옆에서 깨달음의 편린이라도 주울 수 있게끔 구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기회가 있음에도 붙잡진 않았고 은퇴를 선택했다.

그렇게 5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갔다.

이제는 나도 조금은 달라졌다.

나이도 서른을 섬겼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내는 법도 조금씩 익혀가고 있다.

SKELTON : 맴맴! 맴맴!

iamjesus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맴맴?

SKELTON : 맴맴!

아이엠지저스와 뒤늦은 친목을 시도했다.

지금도 우리의 친목의 유대는 굳건하다.

물론 타인의 눈앞이 아닌 우리끼리의 친목이지만 말이다.

*

“선배. 잘 지냈어?”

우민희에게 연락이 왔다.

어웨이큰 중엔 사람의 마음을 파악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도 있다고 한다.

마음 자체를 읽는다기보다는 그 사람의 뇌파를 음미하며 그 사람이 어떤 의도로 어떤 방향의 생각을 가진 지 파악하는 모양.

그런 능력을 가지진 못했지만 우민희가 무슨 의도로 연락을 한 지는 잘 알고 있다.

“인터넷 잘 돼?”

“인터넷?”

“응. 전에 줬잖아. 스타필드 시스템과 노트북. 혹시 못 받았어?”

이 녀석, 아이엠지저스에게 차단당하니 급하게 날 찾는다.

어지간히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내 빈곤한 사회성을 알고도 날 찾는 걸 보면.

하긴 아이엠지저스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몸이 달만 하겠지.

망해가는 인천에 저런 연구소 세워놓고 막대한 돈을 들여가며 운영하는 이유가 아이엠지저스 같은 알파 각성자 같은 고레벨 어웨이큰을 찾으려고 하는 거니.

그런데 우민희에게 내가 인터넷을 한다는 건 비밀로 하고 싶다.

그건 내 프라이버시이며 목숨과도 연결된 일이니.

행여라도 내가 엄창이라는 걸 들킨다면 이 여자는 한반도 전체를 뒤져서라도 날 찾아낼 것이다.

“나, 인터넷 안 해. 예전에도 안 했잖아? 나 인터넷 싫어. 마음에 안 들더라고.”

“장비 어떻게 했어?”

우민희가 다그치듯 묻는다.

선배로서의 존중 같은 건 없다.

마치 어린이집 선생님이 말 안 듣는 어린이를 꾸중하는 목소리다.

소년 엄창이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괜히 죄스러운 감정을 담아 대꾸했다.

“백승현 줬어.”

“뭐어어어어?!”

우민히 녀석 소리를 질러댄다.

그뿐만 아니라 의수로 쇠를 긁는 소리까지 내며 내 고막을 아주 찢어발기려 든다.

“아. 시끄러. 뭐. 뭐냐? 갑자기?”

“아니, 그걸 왜 그런 사람한테 줘. 정말!”

“그러게. 내가 왜 줬을까. 네가 도로 뺏어주면 안 될까?”

“준 걸 어떻게 뺏어? 아. 진짜! 어?”

갑자기 무전기 너머에서 무거운 침묵이 느껴졌다.

잠시 후.

“동탄맘!!!!!!!!!!!”

외마디 비명과 함께 무전이 끊겼다.

드디어 동탄맘의 정체를 깨달은 모양이다.

“······.”

이걸로 동탄맘이 영원히 사라지길 바란다.

아무튼 우민희의 다급한 태도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 시점으로 아이엠지저스는 잊혀져가는 과거의 유물에서 이제 비바! 아포칼립스!를 대표하는 괴인으로 거듭났다.

때마침 페일넷이 복구되면서 페일넷 종자들이 우리 게시판에 해일처럼 밀려왔다.

그들은 아이엠지저스의 알파 각성 인증 장면을 그들의 사이트로 퍼갔는데 한때 내가 활동하기도 한 수험생 게시판 베스트 란에 아이엠지저스의 눈이 번쩍거리는 사진이 당당하게 수위를 차지한 걸 볼 수 있었다.

그 글엔 무려 4천 개에 달하는 댓글이 달렸다.

ㅇㅇ : 시발 시트지 걍 병신이네

ㅇㅇ : 이게 ㄹㅇ이네

ㅇㅇ : 시트지 인증 때려쳐라 이제는 눈알 번쩍 인증 시대다!

ㅇㅇ : 와, 대체 뭘 처먹으면 저런 게 가능하냐?

ㅇㅇ : 구원자급 각성 아니냐?

ㅇㅇ : 구원자급은 걍 주변 자체가 밝아진다던데?

ㅇㅇ : 강한민급은 아닌데 그 아랫급 정도는 될 거 같은데?

ㅇㅇ : 제주도 프리패스네

ㅇㅇ : 제주도가 아니라 그 새끼 글에 존나 힘 있어 보이는 새끼들 달라붙어 후빨하고 있더라

...

...

볼 것도 없다.

이제 아이엠지저스는 명실상부한 비바! 아포칼립스! 최고의 네임드 그 자체다.

그야말로 신이 우리 게시판에 강림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엠지저스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늘 그랬던 것처럼 아무도 보지 않았던 성경 구절 비스무리한 걸 떠들어댔다.

하지만 세상의 변화란 간사한 것이다.

iamjesus : 너는 이제 너의 젊은 날에 곧 재앙의 날이 이르지 않고 “나에게는 즐거움이 없다.”고 말할 해가 가까워져 오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그가 한마디를 하면,

ㅇㅇ : 아이엠멘~

ㅇㅇ : 아이엠멘~

ㅇㅇ : 아이엠멘

ㅇㅇ : 지멘

ㅇㅇ : 아이엠멘~

dongtanmom :냠멘~

...

...

수많은 추종자가 그에게 응답한다.

여전히 아이엠지저스를 노리는 암중세력은 구애를 멈추지 않고 있다.

CrunchRoll : 다 까고 말할게. 나 남쪽 지방 깡패 두목이야~ 조직원만 천이백 명에 여자도 개 많지. 마약 술 게임도 넘쳐흘러. 너 게임 좋아하지? 니가 좋아하는 말이오도 시리즈별로 다 있어.

Dies_Irae69 : 우리가 줄건 솔직히 별로 없어. 하지만 가족을 원한다면 우리에게 와라. 가족이 되어줄게.

armeegruppe_B : 군단파 알지? 들어 와. 바로 별 달아줄게.

dongtanmom : 냠...

하지만 아이엠지저스는 불굴의 정신력을 가진 친구다.

제아무리 강하고 우월한 놈이 유혹을 해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젊은 시절 광야를 걸으며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닮은 구석마저 있었다.

그걸 본 디펜더 남매가 내게 연락을 해왔다.

“와, 나 저 새끼. 그냥 미친 놈인줄 알았는데. 장난 아니네? 저걸 참아? 스켈톤? 보고 있지?”

다정이가 흥분하고 있다.

디펜더도 아이엠지저스에게 푹 빠진 모양.

“지서방. 보면 볼수록 멋진 놈이네······.”

그런데 디펜더는 곧 그다운 걱정을 내비쳤다.

“그나저나 우리 지서방. 위험하지 않을까?”

요즘은 뜸하지만 디펜더는 누군가를 찾아서 죽이는 걸로 네임드가 된 인간이다.

그러니 당연히 관심사도 찾고 죽이는 것과 연관되었을 수밖에.

“지금 이 순간에도 실시간으로 군단파를 비롯해서 힘 있는 놈들 찾아다니고 있을 텐데.”

그렇다.

아이엠지저스를 데려가려는 무리가 인터넷에서만 저 지랄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아마 아이엠지저스가 지금까지 올린 모든 글을 검색해서 그의 위치를 특정, 천금처럼 귀한 알파 각성자를 확보하려 들 것이다.

이 분야 전문가인 디펜더에게 물어보았다.

“네가 볼 때 어때? 아이엠지저스 찾아낼 거 같아? 인증사진만으로.”

“몇 개 봤는데 오나홀 말고는 눈에 들어오는 게 없네. 용의주도하다기보다는 아예 바깥에 안 나가는 타입같아.”

“그렇구만. 그나저나 그 저스티스 민이라는 새끼 아직도 집적거리냐?”

“아니, 요즘은 뜸해. 그 새끼는 아예 게시판에 글을 안 올려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길이 없는 놈이긴 한데, 내가 볼 땐 그 새끼도 아이엠지저스를 찾아다니지 않을까?”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팬들이 있다는 소리네?”

“안 그렇겠어? 알파 각성자의 가치는 너도 잘 알 거 아니야. 네 비슷한 기수에 강한민하고 나혜인 있지 않았냐?”

“아. 있었지.”

“어땠어?”

디펜더의 물음에 나는 그날, 내가 보았던 “변화”를 떠올렸다.

적어도 아이엠지저스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들은 눈에서 빛을 발하지도 않았고 후광을 드리우지도 않았다.

하지만 세상 전체가, 그리고 거기에 속한 우리 모두의 마음이 알 수 없는 야릇한 광휘에 잠긴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손안엔 자그마한 촛불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마치 인류의 생명 그 자체와 같은 무게감이 느껴지던.

뭐, 내 동기들이 아이엠지저스보다 급이 높다는 소리겠지.

“······아이엠지저스보다는 한 수 위였던 거 같아.”

“그렇군.”

“그나저나 아이엠지저스. 다른 놈들이 찾을 거 같아?”

“그건 어렵지 않을까?”

디펜더가 의문을 드러냈다.

“폭스게임이 그러더라고. 우리 게시판이야 해킹해도 그 근간인 위성 통신 기반 네트워크망 자체는 멜론 마스크급 권한이 없는 이상 접속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그래?”

“애당초 게시판은 위성 네트워킹에 딸린 부속품 같은 거라고 하더라고.”

디펜더 말에 의하면 위성 통신 해킹을 이용한 장소 특정은 거의 불가능한 모양이다.

하긴 우리의 세계를 만든 멜론 마스크가 보통 놈은 아니니.

문제는 역시 아이엠지저스의 처신이려나.

지금도 그는 자신이 모르는 유저에게 갖가지 유혹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름 힘 있는 세력이라면 비바! 아포칼립스! 계정 여러 개 정도는 들고 있을 테니.

우민희도 어쩌면 부계정으로 알랑방귀 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아이엠지저스의 인증 사진을 보면 그의 눈에서 발하는 광휘와 매트리스 위에 널린 오나홀의 압도적인 모습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아이엠지저스의 몸은 위태로울 정도로 말라보였다.

1년 반 전 쯤에 본 그가 공개한 식사도 벽돌 밥이라 불리는 건조형 보존음식이었다.

전쟁이 시작 된 이래 어두운 방 안에서 아무런 낙도 없이 아무도 봐주지 않는 글이나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처럼 써대며 빈곤한 식사를 거듭한 그의 건강이 좋지 않으리라는 건 어렵지 않게 추측 가능한 일.

그런 그가 과연 현재 자신에게 뻗쳐오는 유혹의 손길을 언제까지 마다할 수 있을까.

나라면 어려울 것 같다.

며칠 노가다 좀 했다고 맴맴 거리는 인간이 1년 넘게 굶으면 무슨 짓을 할 지 나조차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가 무슨 선택을 하건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순 없을 것이다.

그가 제주도를 멸하려던 군단파에 붙건, 아니면 인류 자체를 배신한 만류귀종교에 붙건.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iamjesus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맴.. ㅠ

아이엠지저스에게 연락이 왔다.

메시지 내용만 놓고 보면 그냥 내가 만들어 낸 충동적인 광기의 또 다른 변형이다.

그런데 약간의 변화가 의미심장하다.

“ㅠ”라는 초성을 썼다.

ㅠ의 의미는 눈물.

그것도 쩜쩜까지 뒤에 적은 것을 보니 틀림없다.

아이엠지저스.

우리 게시판의 광인이 힘들어하고 있는 것이다!

“?!”

즉시 답장했다.

SKELTON : (스켈톤 걱정) 매에에에엠?!

찰나의 광기와 가장 스켈톤적인 특징을 버무린 모범 답안.

평범한 유저에겐 쌍욕만 처먹을 뿐이겠지만 아이엠지저스는 다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생각하고 마침내 남들과 다른 각성을 한 그는 나의 답장을 보고 누구에게도 열지 않았던 마음의 빗장을 풀었다.

iamjesus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아프고 배고파······ ㅠㅠ

아이엠지저스가 내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그 수많은 막강한 세력과 화려한 유혹을 뒤로 하고.

SKELTON : 어디냐?

내가 할 일은 명확하다.

물론 선의로만 이루어진 일은 아니다.

나도 그를 필요로 한다.

“······.”

내 마음은 여전히 전장에 있다.

그가 나에게 전장으로 돌아갈 힘을 줄 수 있다면, 내 기꺼이 그의 사도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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