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당분간 찾지 말아 주세요
나뭇잎을 깔고 나뭇가지를 나무처럼 세워 놓았다.
게다가 작은 돌멩이까지.
그러자 구체안에 작은 정원이 만들어졌다.
에밀리야의 손재주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면 아이도 괜찮겠죠.”
에밀리야 역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멋진 집이야.”
란돌프가 탄성을 내뱉었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었다. 강현이 보기에도 훌륭했다.
못마땅한 듯 바라보는 이는 한 명뿐이었다.
“…마법진이….”
로멘의 중얼거림에 란돌프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가 자릴 비운 사이에 외우셨을 것 아닙니까?”
“…그렇지만 혹시 모르지 않나.”
로멘이 작게 항변했지만, 란돌프는 고개를 저었다.
로멘 정도 되는 마법사가 그런 실수를 할 리가 없었다.
그저 마법진이 더 보고 싶을 뿐이었다.
로멘에게 시선을 뗀 란돌프가 구체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근데 이러면 들기 불편하겠군.”
“…그렇네요.”
란돌프의 말에 에밀리야도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동그랬다.
그렇게 바라보던 에밀리야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탄성을 뱉었다.
“잠시만요.”
소나에게 무언가를 속닥거리는 에밀리야.
곧 고개를 끄덕인 소나가 날아올랐다.
일행들은 의아해하면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잠시 후 돌아오는 소나의 발에는 무언가가 걸려 있었다.
“저건.”
소나의 발을 확인한 란돌프의 눈이 커졌다.
강현 역시 물건의 정체를 알아챘다.
나무줄기.
소나에게서 나무줄기를 건네받은 에밀리야가 구체를 묶기 시작했다.
섬세한 손길.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건….
‘흔들림이 없네.’
안에 놓은 나뭇잎이나 나뭇가지가 미동도 없었다.
그렇게 에밀리야의 솜씨에 감탄하고 있자 어느새 에밀리야가 손을 뗐다.
“이제 되었네요.”
싱긋 웃는 에밀리야.
완성된 구체는 전과 많이 달라졌다.
가방처럼 등에 멜 수 있게 나무줄기가 연결되었을뿐더러 위에는 손잡이까지 생겨났다.
‘…이동장이나 다름이 없네.’
누가 저걸 보고 가두는 용도라고 생각하겠는가.
강현은 에밀리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해요”
이렇게 그럴듯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강현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자 에밀리야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강현 씨가 해 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그런가?
받기만 한 기억밖에 없었다. 강현은 에밀리야의 시선이 낯간지러워서 볼을 긁적였다.
에밀리야는 그런 강현을 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무엇보다 저도 루리를 빨리 만나 보고 싶어요.”
기대감에 볼이 상기된 에밀리야.
그 모습에 강현도 웃음을 흘렸다.
“아마 금방 볼 수 있을 거예요.”
강현의 말에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가 기대되는군.”
“나도 미리 업무를 끝내 놓지.”
란돌프와 로멘도 한마디씩 했다. 루리를 기다리는 건 에밀리야뿐만이 아니었다.
“아, 충전기는 내가 연락해 보지.”
로멘이었다.
그러나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직접 부탁 드릴게요.”
“직접?”
강현의 말에 일행들이 눈을 껌뻑였다.
의아해하는 일행들의 시선을 본 강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안 그래도 마을을 떠날 구실을 찾고 있었다.
강현은 다음 주까지 마을에 있을 생각이 없었다.
‘…방송하기 전에 넘어와야지.’
애써 잊고 있던 기억이 다시 떠올렸다.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강현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런 강현의 사정을 모르는 일행들은 고개만 갸웃할 뿐이었다.
* * *
집으로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이 반갑게 맞이해 줬다.
다가와서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숫자가 많았다.
다들 강현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심지어 악수를 청하는 이도 있었다.
‘…유세 중인 정치인도 아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피로가 상당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자 루리가 강현을 반겼다.
통통통.
두 발로 깡충깡충 뛰어오는 루리.
자신이 새가 아니라 토끼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루리를 보자 토리가 주머니에서 나왔다.
주머니 밖으로 나오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토리.
“잠깐만 꺼낸 줄….”
그 순간 토리가 땅으로 뛰어내렸다.
“…!”
깜짝 놀란 강현이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었다.
땅바닥에 떨어진 토리는 그대로 땅속으로 들어갔다.
마치 물속에 다이빙이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고개를 내미는 토리.
그 모습에 강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토리야, 놀랐잖아.”
심장에 안 좋았다.
그러자 고개를 갸웃하는 토리.
토리의 머리를 두드렸다.
친구는 닮는다고 했던가. 설기와 있다 보니 점점 과감해지는 토리였다.
그렇게 땅 위로 올라온 토리는 루리와 뒹굴었다.
서로 몸을 비비는 루리와 토리.
애틋한 모습에 강현이 미소 지었다.
‘누가 보면 몇 년은 못 만난 것 같네.’
고작 하루 못 봤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이제는 이동장이 있으니.’
같이 다닐 수 있었다.
그때, 강현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잔뜩 몸을 낮추고 있는 설기.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안 돼.”
“끼잉?”
눈을 반짝이던 설기가 강현을 돌아보았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
강현은 단호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 사이로 설기가 뛰어들었다간 재앙이나 다름이 없었다.
더 이상 놀이가 아니었다.
설기의 꼬리가 내려갔다. 강현은 그런 설기의 볼을 주물럭거렸다.
“루리는 새끼잖아. 조심해야 해. 알겠지?”
강현의 말에 힐끗 루리를 본 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은 웃으며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 가 봐.”
강현이 설기의 엉덩이를 툭툭 치자 그제야 걸음을 옮겼다.
아까와 달리 조심스러운 모습.
루리에게 다가가자 루리가 반가운지 통통 뛰었다.
그러자 눈을 반짝인 설기가 루리를 핥았다.
발라당 뒤집히는 루리.
설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 루리를 핥았다.
말리려던 강현은 곧 고개를 저었다.
루리가 입을 벌리고 즐거워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셋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던 강현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짐을 정리하고 좀 쉬어야겠네.’
아침부터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게다가 아직 해야 할 일도 많았다. 강현은 옆에 놓인 이동장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저녁은 간단히 파스타로 해결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불평했지만, 강현은 가볍게 무시했다.
그렇게 날이 완전히 저물기 전에 강현은 다시 마당으로 나왔다.
“어때?”
강현의 물음에 이동장 안에 들어간 루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더니 곧 땅바닥에 몸을 비볐다.
데구루루 구르는 루리.
그리고 나뭇가지에도 몸을 비볐다.
‘설기랑 행동이 똑같네.’
또 언제 배운 걸까.
강현이 설기를 보자 설기는 신기한 듯 이동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은 강현은 다시 루리를 보았다.
진지한 눈빛.
“루리야 이상 있으면 바로 알려 줘.”
하지만 루리는 이동장 안을 두리번거리느라 바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시 걱정이 올라왔다.
그때.
누군가가 강현의 옷자락을 당겼다.
고개를 숙이자 토리가 보였다.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 토리. 그러고는 이동장을 가리켰다.
강현은 바로 뜻을 이해했다.
“토리가 같이 있겠다고?”
강현의 물음에 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강현이 미소 지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나 다름이 없었는데, 언제 이렇게 의젓해졌을까.
아이는 순식간에 자란단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럼 부탁할게.”
강현이 말하자 토리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은 토리의 등을 토닥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설기가 번쩍 일어났다.
“컹! 컹!”
“…너도 들어간다고?”
“아우우우우!”
늠름하게 짖는 설기.
각오를 다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설기야, 넌 못 들어가.”
“끼잉?”
“네 몸을 생각해야지.”
입구만 해도 설기 머리보다 작았다.
어찌어찌 들어가도, 애써 꾸며 놓은 게 엉망이 될 거다.
“끼이잉.”
금세 시무룩해지는 설기.
강현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설기는 나랑 여기서 응원해 주자.”
고개를 끄덕이는 설기를 뒤로하고 강현은 토리를 이동장 안으로 넣었다.
그리고 입구를 닫았다.
“토리야, 어때?”
강현의 물음에 토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이상 없다는 뜻.
‘알기 쉽네.’
강현이 미소 지었다.
“그럼, 이제 움직인다.”
강현의 말에 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옆에 있던 루리는 여전히 이동장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강현은 이동장을 들고 조금씩 걸음을 이동했다.
한걸음, 또 한걸음.
그러다 보니 어느새 매장 입구에 가까워졌다.
‘…아까 확인했을 때는 여기까지였지.’
루리의 행동반경.
강현은 짧게 심호흡하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이동장 안을 살폈다.
강현처럼 잔뜩 긴장했는지 몸을 웅크리고 있는 토리.
루리는 여전히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강현이 아니었다.
옆을 보니 설기도 뚫어져라 이동장을 보고 있었다.
그런 설기와 토리를 보고 있으니 강현의 긴장이 풀려 버렸다.
“괜찮을 거야.”
강현의 말에 설기와 토리가 강현을 올려다봤다.
강현은 둘에게 웃음을 던지고는 또 한 발짝 걸어갔다.
그때, 루리가 고개를 숙였다.
부르르 떠는 루리.
“루리야, 괜찮아?”
놀란 강현이 이동장을 열려고 했다.
그 순간.
루리가 두둥실 떠올랐다.
편안한 표정으로 떠있는 루리.
그 모습을 본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괜찮나 보네. 토리야, 너는 어때?”
강현의 물음에 토리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토리 역시 괜찮다는 뜻이었다.
‘좋아.’
강현이 다시 움직였다.
아까보다 과감한 걸음. 매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도 루리와 토리는 변함이 없었다.
강현이 설기를 돌아보았다.
언제 걱정했냐는 듯이 해맑게 웃고 있는 설기.
강현 역시 입꼬리를 열었다.
“성공이야.”
“컹!”
이제 루리도 같이 여행 다닐 수 있었다.
* * *
다음날 강현은 바로 짐을 쌌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곧 방송이기도 하고.’
2부가 방영할 때까지 3일밖에 남지 않았다.
짐을 챙긴 강현이 옆을 돌아보았다.
보자기를 두르고 있는 설기와 그 위에 올라가 있는 토리.
동화 속에 나올 법한 모습이었다.
강현은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이동장 안에 든 토리의 모습이 보였다.
과일과 씨앗을 넣어 줬더니 먹지 않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렇게 발걸음을 내디디려던 강현이 멈춰 섰다.
“…가장 중요한 걸 잊었네.”
강현은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주소록에 있는 이들은 선택했다.
있는 이들이 얼마 없기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분간 찾지 말아 주세요.]
거기까지 쓴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음.”
너무 삭막했다.
이렇게 보내면 누군가가 실종 신고할지도 몰랐다.
강현은 한 문장을 더 추가했다.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당분간 찾지 말아 주세요.]
“이 정도면 되겠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강현은 송신을 눌렀다.
반응은 바로 왔다.
보내자마자 문자와 전화가 날아왔다.
역시나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은 윤섭이었다.
강현은 받지 않고 전화기를 껐다.
그러고 핸드폰을 신발장 위에 올려놨다.
세 어르신과 민호에겐 어젯밤에 미리 알렸다.
사정을 아는 넷은 강현의 말에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이로써 모든 준비가 끝났다.
강현은 신발을 신고 설기, 토리, 루리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이제 이세계를 여행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