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220화 (220/227)

220화 설기겠지

재료들을 전부 손질하자 주변이 환하게 변해 있었다.

강가에 무리를 지어서 잠을 자는 늑대들.

기껏해야 나무의 그림자들이 햇빛을 가려 줄 뿐이었다.

눈 부신 햇살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래서 잘 수 있나?’

지구의 늑대들은 어떻게 잤지?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저렇게 대놓고 강가 옆에서 자진 않을 거다.

동굴이나 나무 밑에서 자겠지.

하지만 저 덩치의 인원이 들어갈 수 있는 동굴도 없을 거다.

그런 강현의 걱정이 무색하게 늑대들은 잘 자고 있었다.

이미 적응이 된 것이었다.

강현은 늑대들이 깨지 않게 조심하면서 자리를 이동했다.

강에서 멀어질수록 물소리도 점차 줄어들고, 나뭇잎과 풀잎이 흩날리는 소리가 커졌다.

그렇게 적당한 장소가 나오자 강현은 배낭을 풀었다.

다시 장비를 설치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텐트와 침낭은 굳이 필요 없기 때문이었다.

요리할 것만 딱 꺼내면 되었다.

“장작 좀 구해 줄래?”

“컹!”

강현의 부탁에 설기가 힘차게 짖었다.

그러고는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사라진 설기.

강현은 그 모습에 눈을 껌뻑였다.

‘…어디까지 가려고.’

근처에 널린 게 나뭇가지인데.

한숨을 내쉰 강현은 토리를 돌아보았다.

강현의 시선을 알아챈 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땅속으로 쏙 사라지는 토리.

얼마 지나지 않아서 땅속에서 나뭇가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놀라운 광경.

젖지 않은 것을 보니 땅속에 있던 게 아니었다.

땅 위에 있는 나뭇가지들을 땅속으로 운반한 것이었다.

흙도 묻어 있지 않은 깨끗한 나뭇가지들을 본 강현이 미소 지었다.

“잘했어.”

강현의 칭찬에 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북하게 쌓이는 나뭇가지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강현의 말에 다시 가려던 토리가 멈춰 섰다.

고개를 갸웃하는 토리.

더 필요 없어?

그렇게 묻고 있었다.

강현이 웃고는 토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충분해. 고마워.”

기분 좋은지 몸을 비비는 토리.

그렇게 토리와 놀아주던 강현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설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볼을 긁적인 강현은 곧 고개를 저었다.

‘밥 먹을 때가 되면 알아서 오겠지.’

부르지 않아도 올 거다.

강현은 바로 식사 준비를 했다.

커다란 냄비에 열매와 채소를 넣어 준다.

그리고 그 위에 고기를 하나씩 올렸다.

후추와 소금, 허브까지.

층을 쌓듯이 올리고 물을 자작하게 넣어 준다.

이제 뚜껑을 닫고 불 위에 올려 주면 끝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김치라도 가지고 오는 건데.’

아니면 카레나 와인이라도.

일단 있는 재료를 넣긴 했지만, 강현도 확신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감을 믿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렇게 냄비가 끓어오르자 향이 조금씩 올라왔다.

강현은 변해가는 향을 맡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향 자체는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제대로 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곧 고개를 돌린 강현이 토리의 볼을 긁어 주고는 열매 하나를 건넸다.

토리가 좋아하는 열매.

한입 베어 물더니 신맛에 토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또 한입.

몸을 떠는 토리를 보고 있자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러던 토리가 고개를 들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토리.

자연스레 강현의 시선도 토리를 따라 옮겨 갔다.

그리고 저 멀리 수풀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누군가 오고 있는 것이었다.

‘설기인가?’

슬슬 돌아올 때가 되었다.

‘아니, 이미 지났지.’

곧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설기와 다른 무거운 발걸음. 수풀을 헤치고 그림자가 나타났다.

하나의 발검을 소리와 달리 나타난 이는 둘이었다.

바로 란돌프와 로멘.

당연한 말이지만, 로멘은 란돌프의 옆구리에 끼인 상태였다.

기괴한 광경이었지만, 이제는 강현에게도 익숙했다.

“안녕하세요.”

“오, 오랜만이군.”

바닥에 내려온 로멘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로브를 정리했다.

“그래서 그 물건은 어디 있나?”

눈을 반짝이는 로멘을 보며 강현은 쓴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런 강현을 대신해서 입을 연 건 란돌프였다.

“에밀리야 님이 아직 안 왔잖습니까.”

“아….”

로멘이 탄식을 뱉었다.

“이래서 천천히 가도 된다고 했는데.”

그렇게 말한 란돌프가 하품했다.

보아하니 새벽부터 깨워서 온 것처럼 보였다.

“금방 오실 거예요.”

강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둘이 자리에 앉았다.

“커피라도 드릴까요?”

“부탁하네.”

“난 물이면 충분하네.”

커피란 말에 반색하는 로멘과 달리 란돌프는 고개를 저었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란돌프는 차보다는 술을 선호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곧 모카 포트에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다.

금세 올라오는 커피.

강현은 컵에 옮겨 담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음, 좋군.”

천천히 커피를 마시는 로멘.

하지만 그의 눈은 연신 허공을 훑고 있었다.

뭘 찾고 있는 걸까.

강현이 고개를 갸웃하자 란돌프가 로멘의 지팡이를 눈짓했다.

그제야 강현은 로멘의 지팡이가 빛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마법.

‘…통역 마법은 아니겠지.’

란돌프의 손에는 통역 반지가 껴 있었다.

그리고 반지가 아니어도 어설프게나마 요정어와 수인어를 말할 수 있게 된 란돌프였다.

그건 노아나 하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기까지 생각한 강현은 무슨 마법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정령을 보는 마법.’

에밀리야가 언제 오는지 차는 것이었다.

강현과 란돌프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로멘이 헛기침하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설기는 또 어디 간 건가?”

그러나 로멘의 지팡이는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강현은 지팡이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러게요. 나뭇가지 주워 오라고 했는데.”

그 뒤로 소식이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숲이 설기의 앞마당이나 다름이 없다지만, 아직 어리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강현의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오!”

로멘이 탄성을 내뱉었기 때문이었다.

강현은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 멀리 새 한 마리가 날아오고 있었다.

바로 소나였다.

* * *

“모두 모여 계셨군요. 제가 너무 늦었나 보네요.”

환하게 웃은 에밀리야를 보며 일행들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 막 해가 올라오고 있었다.

겨우 새벽이 지나갔을 뿐이었다.

“저희가 일찍 나온 겁니다. 아침잠이 없는 분이 한 분 계셔서….”

누군지 말할 것도 없었다.

에밀리야가 왔을 때부터 에밀리야의 짐을 힐끗거리고 있었다.

너무 노골적이라 모를 수가 없었다.

웃음을 터트린 에밀리야가 짐을 꺼냈다.

천으로 꽁꽁 싸여 있는 물건.

천을 풀자 안에 투명한 구체가 나왔다.

“이게….”

강현의 물음에 에밀리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정령을 보관할 수 있는 물건이에요.”

보관이라고 순화해서 말했지만, 가두는 물건이었다.

‘철장 같은 걸 생각했는데.’

안이 훤히 다 보일 정도로 투명한 막. 아래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흉흉하지는 않았다.

“오오. 종족 전쟁, 아니…. 그 이전의 물건이야.”

물건을 받아 든 로멘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마치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이리저리 살피는 로멘을 놔두고 강현이 에밀리야를 돌아보았다.

“에밀리야 씨. 혹시 설기 못 봤나요?”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설기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에밀리야가 곤란한 웃음을 지었다.

“설기…. 보긴 했어요.”

그러한 에밀리야의 반응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에밀리야는 그런 강현을 보며 말을 이었다.

“곧 올 거예요.”

그리고 에밀리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멀리서 새들이 날아오르는 게 보였다.

이어서 들리는 진동.

쿵.

그리고 소리는 점차 커졌다.

쿵, 쿵!

마치 거인이 걸어오는 것 같았다.

놀라 에밀리야를 돌아보자 여전히 곤란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저 소리의 정체를 아는 듯했다.

강현은 구체에 정신이 팔린 로멘을 놔두고 란돌프에게도 시선을 던졌다.

그러나 란돌프의 표정 역시 태연했다.

소리의 정체를 아는 듯했다.

그러한 둘의 반응을 보고 강현도 소리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설기겠지.’

그 이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한숨을 내쉰 강현이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쿵!

주변의 숲이 흔들렸다.

그리고 흙먼지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커다란 나무였다.

아까부터 들렸던 소리는 나무가 다른 나무들에게 부딪히면서 나는 소리였다.

강현은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얼굴을 닦았다.

나무가 다리가 달린 것도 아니고 혼자서 다닐 리가 없었다.

역시나 나무 아래에 작은 털 뭉치가 보였다.

나무에 가려져서 찾기가 쉽지 않았다.

‘…장작을 해 오라고 했더니 나무를 뽑아 왔어?’

설기 역시 이쪽을 봤는지 물고 온 나무를 내려놓고 해맑게 웃었다.

“컹! 컹!”

반가움에 꼬리가 흔들렸다.

칭찬을 바라는 눈빛.

‘…죽은 나무는 아니겠지?’

그렇다고 하기에는 뿌리에 아직도 흙 자국이 남아 있었다.

줄기는 물론이고 나뭇가지까지 튼튼했다.

한숨을 내쉰 강현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에밀리야의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요정은 식물을 사랑한다.

그런 에밀리야 앞에서 멀쩡한 나무를 뽑아 오다니 실례가 아닐 수 없었다.

‘저것만이 아니겠지.’

여기까지 끌고 오면서 얼마나 많은 나무를 부셨겠는가.

“…죄송합니다. 에밀리야 씨.”

“아니에요.”

강현의 사과에 에밀리야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몸을 상하긴 했지만, 다시 심으면 괜찮을 거예요.”

역시나 다시 심으라는 뜻이었다.

강현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설기가 강현의 앞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컹! 컹! 컹!”

방방 뛰는 설기.

하지만 강현은 말없이 설기를 보았다.

자신이 생각한 반응이 아니었는지 슬그머니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에밀리야와 란돌프는 어색한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끼잉?”

나무 가져왔는데?

이렇게 큰데?

눈치를 보는 설기.

그러자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걸 어떻게 패라고.”

도끼도 없었다. 아니, 있다고 해도 한참이 걸릴 거다.

“그리고 살아 있는 앨 데려오면 어떻게 해.”

강현의 물에 설기의 꼬리가 처졌다.

시무룩해진 설기.

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며칠 가족들과 있다 보니 욕구가 쌓였나 보네.’

사냥이라고 갔어야 했나.

뒤늦게 후회가 올라왔다.

집에만 있다 보니 답답했던 것이었다.

한숨을 내쉰 강현이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음만 받을게. 하지만 다음부터는 이러면 안 돼. 알겠지?”

“컹!”

고개를 끄덕이는 설기. 그제야 강현도 미소 지었다.

하지만 문제는 남아 있었다.

강현은 뒤에 누워 있는 나무를 보았다.

“그보다 대체 어디서 가져온 거야?”

나무의 색이 이 근방과는 달랐다. 심지어 끌려왔음에도 나뭇잎이 풍성했다.

“얘는 북쪽에 자라는 나무네요.”

“북쪽.”

강현의 시선이 북쪽으로 향했다.

높게 솟은 산.

바로 설기네 가족이 있는 곳이었다.

‘저기부터 가지고 온 건가?’

돌려놓는 것도 일이었다.

그러던 강현의 머릿속에 아까 보았던 광경이 떠올랐다.

“혹시 이 아이, 여기서는 못 자라나요?”

강현의 물음에 에밀리야가 눈을 껌뻑였다.

하지만 곧 이어지는 설명에 눈이 커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