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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86화 (186/227)

186화 축제잖아요

“자, 자. 끝났으면 다들 준비해. 경기 아직 안 끝났어.”

카샨의 말에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다.

설기 덕분에 충분히 쉬었다. 따로 쉴 필요는 없었다.

강현도 설기의 엉덩이를 토닥이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에밀리야를 보자 잊고 있던 게 떠올랐다.

“에밀리야 씨. 저분은…. 어?”

아까 보았던 요정.

그러나 다시 봤을 때는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강현 씨?”

“…아무것도 아닙니다.”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착각이었나. 그럴 리가 없었다.

분명 눈이 마주쳤다.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

하지만 강현의 상념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긴 이들이 우르르 반대쪽으로 몰려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현도 자리에 섰다.

시끌벅적한 건너편과 달리 한쪽에 서 있는 이들은 달랑 넷뿐이었다.

‘…설기가 있었는데도 이겼단 말이지.’

인간과 요정, 수인들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무려 두 배가 차이 났다.

이리 마주 보고 있으니 압박감이 엄청났다.

하지만 걱정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저들이 더 긴장하고 있었다.

란돌프와 노아, 에밀리야까지.

셋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쳤다.

“봐주지 않아도 되니깐 맘껏 해 봐.”

란돌프가 반대쪽을 바라보며 사납게 웃었다.

그런 란돌프를 본 기사 몇몇이 마른침을 삼켰다.

노아는 차분한 눈길로 전사들을 바라보고 있었고, 에밀리야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흘러나오는 투기는 란돌프 못지않았다.

긴장한 이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아우라와 마슈.

‘둘 다 저쪽이었구나.’

게다가 의기양양하게 이쪽을 쳐다보는 모나까지.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자리에 섰다.

가장 마지막 자리.

“심판은 내가 보지.”

카샨이 중간에 서서 씩 웃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자리에 앉았다.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강현은 그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당길 때, 합을 맞춰서 당겨야 해요.”

혼잣말처럼 들리는 작은 속삭임.

하지만 셋이 그 소리를 못 들을 리가 없었다.

셋이 힐끗 강현을 돌아보았다.

힘이라면 셋만이 아니라 저들 누구에게도 밀릴 거다.

모나 정도가 좋은 상대겠지.

하지만 강현에겐 경험이 있었다.

강현의 말에 란돌프가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강현, 네가 구령을 넣어라.”

다른 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영차로 할게요. ‘영’ 할 때마다 당겨 주세요.”

“영차라. 듣는 것만으로 힘이 나는 구호군.”

란돌프의 말에 강현이 멋쩍게 웃었다.

마땅한 구령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만큼 적당한 구령은 없었다.

“그럼 준비.”

카샨의 말에 사람들이 밧줄을 움켜잡았다.

동시에 밧줄 가운데 묶어 놓은 깃이 흔들렸다.

밧줄을 통해서 느껴지는 힘에 강현이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그래, 해보는 거야.’

먼저 겁을 먹을 필요는 없었다. 지금은 이기는 것만 생각해야 했다.

“시작!”

“흡!”

카샨의 외침과 함께 사람들이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앞에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란돌프와 노아였다.

순간적으로 그들의 몸이 부풀었다.

온몸에 올라온 핏줄.

마치 거대한 산이 짓누르는 듯했다.

하지만 곧 강현은 정신을 차렸다.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조금씩 앞으로 쏠리는 밧줄.

“여엉차! 여엉차! 영차!”

“여엉차! 영차!”

“여엉차! 영차!”

강현이 외치자 셋이 따라서 밧줄을 당겼다.

‘…맙소사. 당겨지고 있어.’

지시한 강현도 놀라울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

앞쪽으로 기울었던 깃이 돌아오고 있었다.

호흡이 점점 빨라졌다.

“영차!”

“영차!”

“영차!”

강현의 귓가로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마을에서 같이 외치던 구령 소리와 달랐다.

셋이 내뱉는 구령 소리는 마치 전장의 북소리처럼 느껴졌다.

구령에 맞춰서 일제히 발을 굴렀다.

이제는 깃이 강현네 쪽으로 넘어왔다.

그러자 반대쪽에 있는 이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구령을! 구령을 맞춰야 해!”

이제야 밀리는 이유를 깨달은 것이었다.

하지만 누가?

우왕좌왕하는 이들.

곧 누군가가 외쳤다.

“하나에 당겨 주세요!”

마슈였다.

“하나, 둘! 하나! 둘!”

마슈의 구령 소리에 맞추려고 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한 번 무너진 균형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너, 넘어진다.”

“으악.”

무너지는 이들.

사방에서 비명이 울렸다.

갑자기 쏠린 밧줄이 강현이 뒤로 넘어가려고 했으나 에밀리야가 잡아 줬다.

“아,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싱긋 웃는 에밀리야. 덕분에 강현은 자세를 고쳐 잡을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카샨이 란돌프의 손을 들어 올렸다.

“승자는 이 넷이다.”

“와아아!”

구경하고 있던 이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해맑게 웃으며 박수 치는 헤나가 보였다. 곧 란돌프와 눈이 마주치자 수줍게 손을 내렸다.

볼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부끄러운 것이었다.

껄껄 웃음을 터트리는 란돌프.

그러더니 앞에 넘어진 이에게 손을 뻗었다.

수인족 전사.

“힘 자체는 자네들이 우세했어.”

란돌프의 말에 수인족 전사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힘만 좋아서 되는 게 아니군요.”

마슈였다. 그는 턱에 손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노아와 에밀리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개개인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따로따로 놀면 그 집단은 약해지는 법이지.”

“대장의 역할이 중요하군요.”

아우라였다. 마슈와 달리 초롱초롱한 눈빛.

곧 다른 이들의 시선이 맨 뒤에 있는 강현에게 향했다.

“그렇지.”

그때, 두툼한 팔이 강현의 어깨를 감쌌다.

카샨이었다.

“힘이 강하다고 해서 우두머리가 되는 게 아니야. 밑에 있는 이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해.”

카샨은 그리 말하면서 강현을 향해 윙크했다.

강현은 쑥스러움에 머리를 긁적였다.

강현을 보는 이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저럴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고작 줄다리기 아닌가.

그러나 다른 이들에겐 달리 느껴진 것 같았다.

“…많이 배웠습니다.”

“배웠습니다.”

사람들이 일행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또 한 경기가 끝났다.

멀리서 뒷정리하는 이들을 바라보던 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다들 멀쩡하군.’

넘어지면서 서로 부딪치는 걸 봤다.

전사들이라 멍조차 들지 않았다.

다들 운이 좋았나 보군,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으나 앤은 아니었다.

그녀는 운을 믿지 않았다.

앤이 눈을 가늘게 떴다.

* * *

그러는 사이 강현은 다음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뻐근한지 어깨를 주무르는 란돌프와 노아.

에밀리야는 차분하게 앉아 있었지만, 그녀 역시 힘을 많이 쓴 게 분명했다.

원래는 저 셋에게 부탁하려고 했으나, 셋도 휴식이 필요했다.

그런 강현의 눈에 술잔을 들이키는 카샨이 보였다.

강현은 셋에게서 시선을 떼고 카샨을 돌아보았다.

“저 족장님?”

“으응?”

“혹시 하나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강현의 말에 카샨의 눈이 휘었다.

“말해.”

강현은 가방에서 꺼내 온 깃발을 건넸다.

모두 세 개.

그중에서 수인족 문양이 그려진 깃발을 건넸다.

그러자 카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하.”

강현의 부탁이 무엇인지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맡겨 줘.”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시선을 돌린 건 요정족의 장로였다.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부탁드립니다.”

“염려 말게.”

흔쾌히 깃발을 받은 장로.

강현은 마지막 남은 깃발을 들고 고개를 돌렸다.

“헛, 험.”

헛기침하는 바하람.

‘있으셨구나.’

자연스레 강현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바하람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나온 이가 있었다.

“잘 숨기면 되지?”

“예.”

로멘이였다. 강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망한 표정이 역력한 바하람.

강현은 그런 바하람에 입을 열었다.

“주교님께서는 심판을 봐 주시지 않겠어요?”

생각지도 못한 권유에 바하람의 눈이 커졌다.

곧 점잖은 표정으로 수염을 쓸어내리는 바하람.

“신의 사제로서 곤란한 이를 돕는 건 당연하지.”

“예. 부탁드려요.”

“그리 말하니 어쩔 수 없군.”

담담하게 말하고 있으나 코가 씰룩거리고 있었다.

공터로 휘적휘적 걸어가는 바하람.

“다음 경기에 나설 선수들은 앞으로 나서라!”

그런 바하람을 본 로멘이 혀를 찼다.

“그냥 무시해도 될 것을.”

“축제잖아요.”

모두가 즐거운 날이었다. 강현의 말에 로멘이 웃음을 흘렸다.

“그게 자네답지.”

로멘뿐만 아니라 카샨과 장로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이런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덕분에 힘들어진 이들도 있지만.”

로멘의 말에 강현이 시선을 돌렸다.

공터.

앞에 나온 선수들을 향해서 축복이란 이름의 연설을 하고 있는 바하람이었다.

당연히 셋의 표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신난 건 바하람뿐이었다.

쓴웃음을 흘린 강현이 셋을 돌아보았다.

강현의 뜻을 이해한 셋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빨리 숨기고 오지.”

“전사들을 위해서라도.”

가장 먼저 몸을 날린 건 요정의 장로였다.

외견과 다른 날렵한 몸짓으로 숲속으로 사라졌다.

역시나 요정이었다.

그리고 로멘은 깃발을 향해 무언가 중얼거리더니 하늘로 던져 버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깃발이 숲속을 향해 날아갔다.

강현이 그 모습을 보며 눈을 껌뻑였다.

“잡으려면 고생할 거야.”

끌끌 웃음을 흘리는 로멘.

그 모습은 동화 속에 나오는 나쁜 마법사. 그 자체였다.

하지만 둘과 달리 카샨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족장님?”

“난 이미 보냈어.”

카샨의 말에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카샨의 말대로 손에 아무것도 없었다.

대체 언제.

순간,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였다.

‘설마.’

고개를 돌리는 강현.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찾는 이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족장님께서는 나보다 더하시군.”

로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말이 결정적이었다.

카샨은 설기에게 깃발을 들려서 보낸 것이었다.

‘…이건 보물찾기가 아니잖아.’

제대로 숨기는 건 요정족 장로뿐이었다.

‘아니, 제대로 숨기셨겠지?’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홀가분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장로가 보였다.

이제까지와 다르게 장난기가 묻어난 웃음.

강현은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아직도 연설 중인 바하람에게 다가갔다.

“주교님 준비가 끝났어요.”

“…벌써?”

벌써라니. 짧다고 느낀 건 바하람뿐이었다. 바하람 앞에 있던 셋의 표정이 밝아졌다.

“…어쩔 수 없군. 아무튼 신의 이름 아래 모두 공정하게 겨루게. 신께서는 모든 걸 보고 계시니. 그리고 말했지만 깃발은….”

“다른 종족의 깃만 인정된다는 말씀이죠?”

인간 기사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공평성을 위해서였다.

“…그렇지. 시간은….”

“한 시간. 호각 소리가 들리면 돌아오겠습니다.”

이번엔 요정족 전사였다.

할 말이 궁색해진 바하람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대들의 무운을 빌겠네.”

말이 끝나자마자 호각을 불었다.

그와 함께 셋의 신형이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렇게 사라진 셋을 보던 강현이 기지개를 켰다.

이제 남은 경기는 하나.

여흥이나 다름이 없었다.

사실상 중요한 경기는 다 끝난 것이었다.

하지만 강현에게 있어서는 이제부터가 일의 시작이었다.

강현이 주방으로 향하자 하만과 제니퍼가 다가왔다.

“도와드릴게요.”

둘의 모습에 강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방에 도착한 강현은 식자재를 꺼냈다.

그리고 다듬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공터 주변에 빙 둘러 있던 나무와 돌을 꺼내서 공터로 옮겼다.

금세 테이블과 의자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처음과 다르게 세 종족들이 뒤섞여서 일을 돕고 있었다.

당연히 진도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중앙에 놓인 큰 테이블.

바로 마지막 경기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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