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68화 (168/227)

168화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옷이 흘러내려 어깨가 드러났다.

강현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저 모습으로 여기까지 온 걸까?’

마을에서 문제가 생길 게 분명했다.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반은 요정이었다.

굳이 마을을 지나칠 필요는 없었다.

숲 자체가 그녀의 길일 테니.

그렇게 자리에 앉은 앤이 침을 뚝뚝 흘리고 있는 설기와 스토브 앞에 녹아 있는 토리를 번갈아 보다가 강현을 보았다.

“왜, 왜 그러시죠?”

앤의 시선에 강현이 되묻자 그녀는 짧게 혀를 차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려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인기가 많네.”

무슨 뜻인가 싶었는데, 뒤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손님이 있었나?”

수풀 사이로 나타난 이는 노아였다.

그리고 노아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이는 모나.

강현을 본 모나의 꼬리가 흔들렸다.

“바압!”

강현을 반가워하는 건지, 냄비를 반가워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노아는 앤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무언가 망설이는 듯한 모습에 강현이 나섰다.

“무슨 일이세요?”

지금은 늦은 시간.

용무가 있어서 찾아온 게 분명했다.

강현이 묻자 노아가 입을 열었다.

“하룻밤만 모나를 부탁하려고 한다.”

“예?”

강현이 눈을 껌뻑이자 짧게 한숨을 내쉰 노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족장님은 족장들끼리 집회가 있어서 며칠 자리를 비웠다. 그동안 내가 데리고 있었지만, 오늘은 일이 있어서 맡기려고 했다.”

그리 말한 노아가 힐끗, 앤을 보더니 말을 이었다.

“바쁘면 거절해도 된다.”

“아뇨. 괜찮아요.”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사정은 알았다.

카샨과 노아를 제외하면 모나를 감당할 만한 이가 없는 것이었다.

강현은 손가락을 쭉쭉 빠는 모나를 보며 웃음을 흘렸다.

얌전할 때는 천사같이 귀엽지만, 사고를 치기 시작하면 감당하기 힘들었다.

다시 보니 노아의 얼굴에 피곤함이 가득했다.

그동안 모나를 보느라 피로가 쌓인 것이었다.

아마 일도 제대로 못 했겠지.

“고맙군. 이 은혜는 갚지.”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노아의 성격을 알기에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노아는 그리 말하고는 모나를 바닥에 내려놨다.

냄비를 향해 후다닥 달려가는 모나.

‘위험…!’

그런 모나를 붙잡은 강현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노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 바쁜가 보네.’

강현이 모나를 들어 올렸다.

의외로 얌전한 모나.

쪽쪽 손가락을 빠는 소리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애써 외면했다.

‘…그러고 보니 모나도 많이 컸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손바닥 한 뼘은 자라 있었다.

자란 만큼 자제력도 늘어난 것 같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하은이도 쑥쑥 자라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 모습인 설기가 이상한 것이었다.

“그 아이는 수인족인가?”

“아, 예. 모나예요.”

그러나 앤의 시선은 모나가 아닌 강현에게 향했다.

무슨 기괴한 물건이라도 관찰하는 듯한 시선.

곧 앤이 고개를 저었다.

“이상한 정도가 아니군.”

수인족이 자신의 아이를 맡기다니.

놀랄 일이었다.

‘같은 수인보다 이 녀석을 더 믿는다는 건가?’

물론, 모나에 대해서 모르기에 생길 수 있는 오해였다.

그러나 카샨이나 노아가 그만큼 강현을 믿는다는 건 사실이기도 했다.

“그보다, 저건 계속 끓이는 거야?”

앤이 강현의 옆을 턱짓했다.

냄비.

“아차.”

화들짝 놀란 강현이 모나를 내려놓고 냄비를 열었다.

뚜껑을 열자마자 짠 내와 함께 새하얀 김이 올라왔다.

동시에 설기와 모나의 꼬리가 움직였다.

강현은 안의 상태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타진 않았다.

하지만 전골이 아니라 찜에 가까웠다.

강현은 물을 더 붇고 뚜껑을 닫았다.

그러자 설기와 모나의 꼬리가 동시에 내려갔다.

실망한 것이었다.

그것도 잠시.

모나가 설기에게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평소와 행동이 달랐다.

다가가려다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이어서 킁킁, 냄새를 맡는 모나.

강현은 그런 모나를 보고 의아해했다.

‘왜 그러지?’

그리고 곧 모나의 표정이 환해졌다.

“갸아!”

위협적으로 두 손을 들더니 설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모나를 보며 강현은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설마, 살쪄서 확인해 본 건가?’

설기가 맞는지.

우당탕 뒹구는 둘.

그러나 강현은 모나가 덮치기 전에 충격받은 설기의 눈을 보았다.

‘하긴.’

지금의 설기를 보고 누가 늑대라고 생각하겠는가.

볼살이 쪄서 동글동글한 얼굴. 날카로움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영락없는 강아지의 얼굴.

모나를 상대하는 설기가 전보다 힘이 없어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닐 거다.

고개를 돌리자 설기와 모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앤이 보였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노는 거예요.”

“…걱정하는 건 아니지만…. 뭐, 상관없나.”

앤이 설기와 모나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와 함께 둘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강현은 슬쩍 앤을 살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담배를 내뱉는 앤.

다른 이들과 달리 앤은 아직 어색했다. 고작 하루만 봤을 뿐이었다.

‘음식이라도 됐으면 나았을 텐데.’

맛있는 음식은 그 자리를 부드럽게 해 준다.

그러던 강현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자리를 부드럽게 해 주는 건 음식만이 아니었다.

배낭을 열자 원하던 것 찾을 수 있었다.

“한잔하실래요?”

맥주캔.

그러자 앤이 흥미로운 듯이 맥주캔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현은 맥주캔을 따서 건넸다.

그리고는 캔 하나를 더 따서 먼저 입으로 가져갔다.

그 모습을 본 앤도 맥주를 마셨다.

“음.”

눈살을 찌푸린 그녀의 모습에 강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입맛에 안 맞으시나요?”

그러자 앤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따끔함,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라서 그래. 맥주는….”

다시 한 모금을 홀짝이는 앤.

“제법 괜찮군. 이 정도면 난쟁이들이 만들었다고 해도 믿겠어.”

난쟁이. 또 나왔다.

‘술로 유명한가 보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냄비가 다시 끓기 시작했다.

뚜껑을 열자 입을 벌리고 있는 조개들이 보였다.

보글보글.

새우들도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강현은 간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딱 좋네.’

하지만 아직 완성이 아니었다.

강현은 가방에서 남은 재료를 꺼냈다.

어묵.

크리스마스 때 쓰고 남았던 어묵이었다. 다들 먹을 것을 가져온 덕분에 예상보다 많이 남았다.

어묵을 넣어 주고 청양고추와 파를 썰어서 올려 줬다.

그리고 버섯을 올려 주고 다시 한번 뚜껑을 닫았다.

그러자 어느새 모나가 옆에 와 있었다.

흙먼지로 엉망이 된 모나. 하지만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강현은 물티슈로 모나의 얼굴을 정리해 줬다.

그러다가 고개를 갸웃하는 강현.

설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털레털레 걸어오고 있는 설기가 보였다.

하지만 냄비 곁이 아니라 멀찌감치 자리 잡고 앉아 버렸다.

평소와 다른 모습에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놔뒀다.

어차피 음식이 완성되면 알아서 올 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안에 넣었던 어묵이 익었다.

옆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버섯들도 흐물흐물해졌다.

조개 전골의 완성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끓이긴 했는데.’

어쩔 수 없었다.

강현은 조개와 어묵을 대접에 담아서 앤에게 건넸다.

“이제 드시면 돼요. 얘는….”

조갯살을 바르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했으나 앤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해산물. 조개인가? 오랜만에 보는군.”

놀란 강현이 눈을 껌뻑이자 앤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난 네가 상상도 못 한 세월을 살았다. 옛날에는 바다와 교류도 빈번하게 일어났지. 이런 것도 모를 것 같아?”

능숙하게 조갯살을 떼어 내고 껍데기를 버렸다.

그 모습에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앤의 말에서 무언가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바다와 교류도 빈번했다는 건, 앤도 직접 바다를 본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직접 봤으면 봤다고 말했겠지.’

이제 점점 앤의 성격에 익숙해져 가는 강현이었다.

조갯살을 씹어 삼킨 앤.

“하지만, 확실히 그때 먹었던 것보다는 낫군. 제법이야. 이 지방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이지.”

강현은 부정하지 않았다.

지금 부정해봤자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옷차림부터 도구까지 이곳 사람들과 달랐다.

그리고 앤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때, 앤이 버린 껍데기를 향해 슬금슬금 기어가는 그림자를 발견했다.

“그건 먹는 거 아니야.”

움찔.

조개껍데기를 노리던 모나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한숨을 내쉰 강현이 그런 모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갯살 발라 줄 테니 기다려.”

강현의 말에 조개껍데기와 강현을 번갈아 보던 모나.

곧 고개를 끄덕이더니 강현의 옆에 앉았다.

하지만 꼬리는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강현은 모나의 인내심이 끊어지기 전에 어묵을 입에 넣어 줬다.

‘안 그러면 껍질까지 씹어 먹겠지.’

그렇게 어묵이 입에 들어가자 얌전해지는 모나.

하지만 곧 아차 싶었다.

이 자리에 주의해야 하는 건 모나만이 아니었다.

급히 설기를 찾은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펑퍼짐한 엉덩이.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시무룩해 보이는 설기가 눈에 들어왔다.

강현은 깐 조갯살을 그릇에 담아서 모나에게 건네고 설기에게 향했다.

“설기야, 안 먹어?”

“끼이잉.”

고개를 돌리는 설기.

‘왜 그러지?’

고기가 아니라서 그런가.

하지만 그런 이유는 아닐 거다.

설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코와 꼬리는 솔직했다.

연신 킁킁거리는 코. 게다가 흔들거리는 꼬리까지.

강현은 곧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설마 모나가 못 알아본 것 때문에 그래?”

움찔.

설기의 몸이 떨려 왔다.

그런 설기를 본 강현의 눈이 커졌다.

‘설기가 스스로 다이어트를 하다니.’

놀라우면서 한편으로 기특했다. 그러나 그만큼 충격이 컸다는 소리였다.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강현은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얘는 살이 안 찌니깐 먹어도 돼. 나중에 운동하면 괜찮아.”

안 찌는 건 아니다. 고기보다 덜 찌는 것뿐이지.

하지만 설기의 기준에서는 다이어트식에 가까웠다.

어차피 식단은 강현이 알아서 조절해 주고 있었다.

굶어서 빼는 건 건강에 안 좋았다.

그리고 설기처럼 어리면 인내심도 짧았다.

나중에 충동적으로 폭식할 가능성도 컸다.

“끼잉?”

강현의 말에 설기가 돌아보았다.

진짜? 라고 묻는 눈빛.

강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먹고 또 산책하자.”

그제야 설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쫄래쫄래 쫓아오는 설기를 보며 강현은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자리로 돌아오자 그릇을 비운 모나가 앤을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앤.

강제로 덮치지 않는 이유는 모나도 알기 때문이었다.

앤은 아이라고 해서 봐줄 인물이 아니었다.

싸워 봤자 자신이 진다.

“잠깐만 기다려 봐. 설기 먼저 준 다음에 줄게.”

강현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설기와 모나의 그릇을 채워준 후에나 강현도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먼저 국물을 입으로 가져갔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뜨끈한 국물.

조개와 어묵의 맛이 깊이 우러나 있었다.

이어서 조갯살을 한 입.

쫄깃쫄깃한 감촉과 함께 육즙이 흘러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