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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67화 (167/227)

167화 눈빛이 불순해

그러나 설기는 포기하지 않았다.

힐끗힐끗 주변을 돌아보았다. 줄만 한 이를 탐색하는 것이었다.

그런 설기의 모습을 보며 강현은 실소를 흘렸다.

‘혹시나 해서 마을 사람들께 말하길 잘했네.’

오늘 설기가 너무 먹었으니 먹을 것을 달라고 해도 주지 말라고 말해 놨다.

저 상태를 보면 줄 사람이 없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어른들의 눈에는 귀엽게만 보일 테니.’

강현은 힐끗 불판을 보았다.

고기가 제법 남아 있었다.

다들 배가 불러 와서 술만 홀짝이고 있었다. 더 굽지 않아도 되었다.

강현이 집게를 내려놓자 설기가 슬그머니 발을 뺐다.

총총걸음.

하지만 그보다 먼저 강현의 손이 설기를 붙잡았다. 몸이 무거운 탓에 도망치지 못한 것이었다.

묵직한 무게에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얌전히 있어.”

“끼이잉.”

설기가 몸을 비틀었지만, 강현의 손을 빠져나올 순 없었다.

강현은 배에 묻은 흙을 닦아 냈다.

작은 발로 아등바등하던 설기는 강현의 손길이 기분 좋았는지 얌전해졌다.

강현은 깨끗해진 설기의 배를 두드렸다.

그러자 작게 트림하는 설기.

강현이 올라오는 냄새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주변에 있던 이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너는 진짜….”

강현의 말에 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귀여운 표정.

하지만 평소보다 볼이 빵빵했다.

결국, 한숨을 내쉰 강현이 설기의 배를 한 번 때렸다.

찰싹.

그러자 다시 한번 터져 나오는 트림.

일행들의 웃음소리도 더욱 커졌다.

“어?”

그때, 수진이 하늘을 보고 탄성을 뱉었다.

자연스레 일행의 시선도 하늘로 향했다.

어두운 밤하늘에 떠 있는 건 별과 달만이 아니었다.

뺨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

“눈이네요.”

누군가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를 축복하듯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축제의 밤이 지나갔다.

* * *

다음날.

아침에 일어난 강현은 비어 있는 거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윤섭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이부자리.

‘대단하네.’

어제 제법 많이 마신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새벽에 세나와 함께 돌아간 것이었다.

‘아침부터 스케줄이 있다고 했었나?’

윤섭이나 세나. 둘 다 바쁜 와중에 정말로 잠깐 들린 것이었다.

‘고맙긴 한데.’

너무 무리한 일정 아닌가.

둘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둘은 어린애가 아니었다. 자신들이 알아서 조정할 거다.

강현은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설기와 토리는 사이좋게 자고 있었다.

설기의 배도 어제보다 많이 작아졌다.

대신 볼에 살이 올라와 있었다.

소화도 빠른 만큼 살찌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한숨을 내쉰 강현은 둘이 깨지 않게 조심하면서 겉옷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오자 새하얀 입김이 올라왔다.

하지만 날씨는 그리 춥지 않았다.

‘다행이네.’

빈집과 텐트를 정비했다지만, 난로와 전기장판만으로는 추울 수도 있었다.

그리고 눈도 생각보다 덜 왔다.

군데군데 눈의 흔적이 남아 있긴 하지만 대부분 녹은 상태였다.

마을 곳곳에는 어제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굴러다니는 병들이 어제의 격렬함을 알게 해 주었다.

강현이 들어갈 때도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웃음을 흘린 강현은 빈 병을 주웠다.

이걸 다 정리하려면 시간이 걸릴 거다.

“쉬엄쉬엄해야지.”

이제 급한 일도 없지 않은가.

그러던 강현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마을 사람 중에서도 교회에 간다고 했던 사람들이 있지 않았나?

교회 행사에 참여하려면 슬슬 준비해야 했다.

강현은 슬쩍 마을을 돌아보았다.

해가 떠오르고 있음에도 고요한 마을.

마을 전체가 잠이 들었다.

어제의 상태를 떠올리면 다들 오후나 되어야 일어날 거다.

‘다들 고생하겠네.’

이번 크리스마스는 숙취와 함께 보낼 게 분명했다.

‘가끔 이러는 것도 나쁘지 않지.’

전에는 자주 봤던 광경. 하지만 겨울이 되고 나서 드물어졌다.

피식 웃음을 흘린 강현은 쓰레기 몇 개를 더 줍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 * *

후다닥.

이세계에 도착하자마자 설기가 숲을 달렸다.

이제는 제법 날렵해진 모습.

그러나 여전히 볼살이 가득했다.

‘일주일 동안 산책시켰는데도 저 정도니.’

동네 근처를 산책시키는 걸로 설기의 살을 뺄 순 없었다.

“컹! 컹!”

흔들리는 꼬리.

빨리 오라고 닦달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고작 한 번 쉬었을 뿐인데 저리 신이 나 있었다.

강현은 웃으며 걸어갔다.

조금씩 얼어붙은 몸이 풀리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한결같은 것도 나쁘지 않네.’

기지개를 켠 강현은 앞서가고 있는 설기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좀 멀리 나가자.”

설기 운동도 시켜야 하니.

강현의 말에 설기가 멈췄다.

쫑긋 올라온 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은 짧은 다리로 후다닥 걸어가는 설기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강현도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 * *

숲을 거닐다가 하늘이 어두워져 갈 때쯤 자리를 잡았다.

장비를 세팅하던 강현은 힐끗 설기를 보았다.

배를 땅에 대고 강현의 요리를 기다리는 설기.

하지만 가끔 귀를 쫑긋하며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강현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집요하네.’

아까부터 시선이 느껴졌다.

물론, 시선의 정체도 알고 있었다.

중간중간에 하늘을 나는 정령새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소나가 아니었다.

‘소피, 였나?’

이번에 성인식을 치른 요정. 아우라의 정령이었다.

계속 감시하는 게 거슬렸는지 설기가 이를 드러냈다.

“그르르르.”

강현조차 신경이 쓰이는데 감각이 예민한 설기는 어떨까.

조금 지켜보다가 사라질 줄 알았는데 아직도 남아 있었다.

강현은 그런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바짝 올라왔던 털이 차분해졌다.

그리고는 시선이 느껴지는 방향을 힐끗거렸다.

‘…내가 신경 쓰이면 그냥 같이 있어도 되는데.’

아우라도 자신이 들켰다는 걸 알고 있을 거다.

강현은 아우라가 저러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어렴풋이 짐작했던 것이지만, 이제 확신을 얻었다.

‘처음에는 인간이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요정의 마을에 다녀오고 생각이 달라졌다.

인간이기에 적대하는 이들과는 눈빛부터가 달랐다.

‘어쩔 수 없나.’

볼을 긁적였다.

아무리 오랜 삶을 살았다지만, 육체와 정신의 나이가 비슷하다고 했으니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을 뿐이다.

하물며 겉모습은 한국의 고등학생 정도였다.

그리 생각하니 이해가 되었다.

강현은 스토브 위에 냄비를 올렸다.

냄비 안에는 집에서 손질해 온 재료가 들어 있었다.

조개와 새우.

오늘의 메뉴는 조개 전골이었다.

물론, 설기의 몸을 생각해서 준비한 것이었다.

‘당분간 고기는 되도록 피해야지.’

냄비에 가지고 온 육수와 채소를 넣고 뚜껑을 덮었다.

늦게까지 걷다가 먹을 생각으로 양념도 매장에서 다 준비했다.

스토브에 불이 붙자 토리가 엉금엉금 기어 왔다.

그리고는 불 앞에 자리 잡았다.

토리뿐만이 아니었다. 뚜껑을 덮자 어느새 설기도 옆에 다가와 있었다.

반짝이는 눈동자.

역시나 먹을 게 나오자 아우라에 대해서는 신경조차 안 쓰는 설기였다.

곧 육수가 끓기 시작하면서 해산물의 냄새가 솔솔 풍겨 왔다.

동시에 설기의 꼬리도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돌연 설기가 고개를 돌렸다.

또 아우라인가 싶었지만, 방향이 달랐다.

의아해하던 강현의 귀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나? 아니야.’

곧 수풀 사이로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림자의 정체를 확인한 강현의 눈이 커졌다.

“앤, 님?”

입에 물려 있는 파이프 담배.

당장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겉옷.

이런 숲이 아니라 자다가 나온 것 같은 모습의 여인.

나이는 서른 중후반으로 보이지만, 눈동자는 세상 다 산 노인처럼 공허했다.

강현이 지난 여행 중에 만났던 이였다.

숲의 현자.

“여긴 어쩐 일이세요?”

놀란 강현이 되묻자 앤이 눈살을 찌푸렸다.

앤은 담배 연기를 깊게 내뿜은 다음에 입을 열었다.

“네가 놀러 오라고 했잖아. 아니면 그건 말뿐이었나?”

차갑고 퉁명스러운 말투.

그러나 마을 어르신들에게 익숙한 강현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니에요. 잘 오셨어요.”

오라고 했지만, 앤의 성격상 진짜로 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반가움은 진짜였다.

강현은 그리 말하고는 배낭에서 의자를 꺼내 설치했다.

의자를 물끄러미 보는 앤.

의자만이 아니었다.

강현이 꺼내놓은 텐트와 스토브, 냄비를 차례대로 훑었다.

그런 그녀의 반응은 당연했다.

전에 만났을 때, 강현은 투구에다 요리했다.

그러나 지금의 강현은 옷차림부터 도구까지, 평범하지 않은 게 없었다.

강현은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강현이 슬쩍 눈치를 보자 앤은 헛웃음을 흘렸다.

“역시 이상한 놈이군.”

그리 말하고는 강현에게 걸어왔다.

그러나 의자에 앉지는 않았다.

담배를 들이마시는 앤.

그리고 입을 뗐다.

“하지만 그 전에 방해꾼은 치워야겠어.”

그리 말하고는 바닥을 가볍게 찼다.

동시에 떠오르는 돌멩이 하나.

앤은 엄지와 중지로 돌멩이를 쳐 냈다.

일명 딱밤.

순식간에 숲속으로 사라진 돌멩이.

강현이 돌멩이를 따라서 눈을 돌린 순간.

딱!

“꺅!”

무언가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숲을 울렸다.

강현은 비명이 들린 방향을 보고 쓴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한번 수풀이 흔들었다.

바람을 가르고 날아오는 빛줄기.

빛줄기의 정체가 화살이란 걸 뒤늦게 깨달은 강현이 앤을 돌아보았다.

“앤 씨, 위험…!”

하지만 강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앤은 날아오는 화살을 낚아챘다.

그와 함께 하늘에서 그림자가 하나 떨어졌다.

아우라.

이마가 붉게 물든 아우라는 앤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 이게 무슨 짓이죠?”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앤은 심드렁한 눈빛으로 아우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왜 이 녀석을 감시하는 거지?”

“그건…!”

아우라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던 아우라는 무언가를 깨닫고 눈을 크게 떴다.

“…당신, 인간이 아니네요?”

공격받아서 반격하긴 했지만, 제제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아우라의 말에 앤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지금 이 순간에 그게 중요한가?”

앤의 조소에 아우라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앤은 강현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봤지? 네놈의 말은 틀렸다. 종족을 불문하고, 살아 있는 것들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배척하지. 이 숲이라고 다를 건 없어.”

냉소적인 말투.

그러자 듣고 있던 아우라가 발끈했다.

“누가 그런….”

“아니라면 대답해 봐라.”

앤이 아우라의 말을 잘랐다.

아까의 물음.

왜 강현을 감시하고 있는지.

아우라가 입을 다물었다.

입을 오물거리는 아우라.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쉽사리 나오지 않고 있었다.

진실을 말하기에는 자신이 너무 못나 보였다.

그렇다고 핑계를 대자니 앤의 말을 인정하는 꼴이었다.

요정의 얼굴에 먹칠하는 꼴.

결국, 아우라가 선택한 건 제 삼의 선택지였다.

얼굴을 붉힌 아우라가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앤은 아우라가 떠난 걸 확인한 후에나 의자에 앉았다.

강현은 그런 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우라 씨는 앤 님께서 말씀하신 이유로 감…. 지켜보는 게 아니에요.”

‘감시’라고 말하려다가 말을 바꿨다.

아우라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진실은 바로 잡아야 했다.

그러자 앤이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

“예?”

강현이 눈을 껌뻑이자 앤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 녀석, 머리 옆을 노리고 쐈더군. 경고의 의미겠지. 건방지게 말이야.”

가만히 있었으면 허공을 갈랐을 거다.

처음부터 맞출 생각이 없었단 소리였다. 만일 강현을 적대하고 있었다면 진짜로 노렸을 거다.

머리가 아니어도 팔다리쯤.

그런 앤의 말에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그럼 왜….”

그렇게 몰아세운 거지?

강현의 물음에 앤이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말했잖아. 건방지다고. 나이도 어린놈이 눈빛이 불순해.”

“아….”

그제야 강현은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사람, 성격 나빴지.’

앤의 표정은 아까와 다르게 홀가분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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