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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65화 (165/227)

165화 공연이 시작되었다

문이 열리면서 들어온 찬바람에 설기가 눈을 떴다.

화들짝 놀란 설기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허우적거리는 작은 앞발.

“끼잉.”

배가 저렇게 나왔으니 발이 땅에 닿을 리도 없었다.

옆으로 굴러서 일어나려다가 다시 드러누워 버렸다.

뒤따라 들어온 황대길이 그 모습을 보더니 탄식을 뱉었다.

“저런.”

새하얀 공이 되어 버린 설기.

강현이 매장에 주방에 있는 이들을 돌아보자 아주머니들이 헛기침했다.

“얘가 배가 고프다길래….”

“너, 너무 말라서 안쓰러워서.”

자신들이 봐도 너무했다고 느꼈는지 눈을 피했다.

마르다니 안쓰럽긴 뭐가 안쓰럽단 말인가.

전에도 야생의 늑대 기준으로는 비만이나 다름이 없었다.

설기처럼 잘 먹고 다니는 늑대는 드물 거다.

하지만 아주머니들 눈에는 다르게 보인 모양이었다.

강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게 손주를 보는 할머니들 마음인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강현의 잘못이었다.

‘어떻게든 데리고 갔어야 하는데.’

상황이 눈에 그려졌다.

애교로 먹을 것을 얻어 내는 설기. 잘 먹어서 기특하다고 주는 아주머니들.

강현이 뚫어져라 쳐다보자 설기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그런 강현의 모습에 아주머니들도 앞치마를 벗었다.

“그, 그럼 우리는 밖에 일을 도와줄게.”

“그, 그래.”

도망치듯 나가는 아주머니들.

설기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이미 나간 뒤였다.

따라 나가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다시 눈을 감았다.

자는 척을 하려는 것이었다.

강현은 그런 설기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상태라면 저녁은 못 먹겠네.”

움찔.

강현의 말에 설기의 몸이 떨려 왔다.

오늘은 저녁 바비큐가 메인이었다. 강현과 황대길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특제 소스.

고기 몇 개는 이미 훈제 그릴 안에 들어가 있었다.

“끼이잉.”

설기가 다급한 눈으로 강현을 보았다.

눈앞에 음식들 때문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튀어나온 배 때문에 강현의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자업자득이지.’

강현은 그런 설기를 놔두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강현을 따라 주방에 들어온 황대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거 괜찮은 건가?”

몸이 풍선도 아니고 저렇게 부풀 수 있는 건가.

황대길의 의문은 타당했다.

그러나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있으면 돌아올 거예요.”

강현은 설기의 소화력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며칠은 고통스럽겠지만.’

찐 살을 빼려면 당분간 다이어트 식단을 먹어야 했다.

그때, 토리가 설기의 배 위로 올라가는 게 보였다.

흔들리는 배.

“꾸엑.”

설기가 괴로운 듯이 숨을 내뱉었지만, 강현은 무시했다.

* * *

오후부터는 그리 바쁘지 않았다.

하지만 강현에게는 그 어떤 시간보다 유익했다.

그 이유는 황대길 덕분이었다.

딸랑딸랑.

“다들 여기 있었구먼.”

종소리와 함께 노인 하나가 들어왔다.

노인은 매장을 둘러보고 실소를 흘렸다.

허리가 꼿꼿한 노부인.

매장에 죽치고 앉아 있는 노인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네 명의 노인들을 보자 노부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축제에 왔으면 놀아야지. 이런 날까지 주방에 틀어박혀 있으면 뭐 하나.”

“주방이 아니라 홀에 앉아 있잖아. 이게 쉬는 거지.”

당숙진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그러나 홀에만 앉아 있지, 사람들의 시선은 주방을 향한 채였다.

노부인은 빈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주방을 보았다.

강현과 함께 주방에 있는 이는 황대길이 아니었다.

“저 인간은 여기 와서도 저러고 있네. 왜 남의 집에서 짬뽕을 만들어?”

매장을 둘러봤을 때, 중식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짬뽕을 만들고 있는 건 노인이 아니라 강현이었다.

노인은 옆에서 말만 건넬 뿐이었다.

“그렇지. 육수를 살짝 부어 주고 다시 한번 볶으면 불맛이 강해진다네. 그래, 그래.”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

눈에서 꿀이 떨어지고 있었다. 노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도 노인과 시선이 다르지 않았다.

‘단체로 노망이 들었나.’

노부인은 주방에 있는 강현을 보았다.

잘생긴 얼굴.

그러나 그 눈빛은 불꽃만큼이나 뜨거웠다.

‘어디서 봤는데.’

노부인은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떠올릴 수 있었다.

“쟤 양식하는 애 아니야?”

“맞지. 중식을 해야 했는데.”

“무슨 소리를. 섬세한 게 딱 한식이구먼.”

옆에 있던 노인들의 말에 노부인은 기가 차서 헛웃음을 흘렸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중식과 한식 요리사들이었다.

깐깐하기로는 소문 난 이들.

그러나 지금 보이는 모습은 영락없이 손주를 귀여워하는 할아버지들이었다.

‘늙더니 감성적으로 변했나?’

그사이 요리를 완성한 강현이 그릇을 들고나왔다.

짬뽕 두 그릇.

다섯이 먹기에는 적은 양이었지만, 맛을 보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이미 테이블에는 빈 그릇들이 쌓여 있었다.

노부인은 테이블에 올라간 음식을 보았다.

붉은빛의 짬뽕.

겉보기에도 그럴듯했다.

짬뽕의 냄새에 누워 있던 설기가 앓는 소리를 냈다.

냄새에 반응해서 흔들리는 꼬리.

“끼이잉.”

먹고 싶지만, 이미 배가 한계였다.

결국, 꼬리가 축 처졌다.

다른 이들은 몇 번이나 경험했던 일이기에 개의치 않았다.

그들에게는 눈앞의 짬뽕이 더 중요했다.

“아까와 또 다르군.”

“아까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것도 괜찮아.”

짬뽕을 음미하며 품평하는 이들.

노부인 역시 짬뽕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그리고.

“음.”

미간을 구긴 노부인이 강현을 보았다.

부리부리한 눈빛.

“…자네 전에 중식을 배웠나?”

“예? 어깨너머로 본 적만 있고 제대로 배운 적은 없습니다.”

제대로 배운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러자 노부인이 침음성을 흘렸다.

이들이 이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만류귀종이라고 했던가.

하나에 능통하면 다른 것들 역시 잘하게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이건 그걸로 끝낼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아니, 기술적으로는 아직 미숙한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그걸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었다.

노부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강현을 보았다.

이제 이십 대, 높게 쳐도 삼십 대 초반.

인재였다.

그때 노인이 강현에게 다가왔다.

“이제 마파두부를 만들어 보자. 재료를 보니 하나 정도는 나오겠네.”

어딘가 들떠 있는 노인의 목소리.

노부인은 그러한 노인에게 손을 뻗었다.

“음, 자네 언제 왔나?”

노인이 고개를 갸웃하고 묻자 노부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인사는 됐으니 넘기게.”

“뭘?”

“앞치마.”

“아직 할 게 남았는데?”

노인이 우물쭈물하자 노부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한숨을 내쉬며 앞치마를 건네는 노인.

노부인은 앞치마를 두르며 강현을 보았다.

“자네, 이름이 뭔가.”

“아, 이강현입니다.”

“그래, 강현. 자네 국수비빔 할 줄 아는가?”

뜬금없는 말에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비빔국수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강현은 뒤늦게 노부인에 대해서 떠올릴 수 있었다.

궁중요리 연구가.

방송에는 잘 나오지 않지만, 요리 잡지에서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었다.

“어떤 음식인지만 알고 있습니다.”

“좋네. 내가 가르쳐 주지. 들어가세.”

국수. 간단해 보이지만 국수만큼 그 사람의 실력과 성향을 알 수 있는 요리는 없었다.

그리 말하고 주방으로 들어가는 노부인.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노부인을 뒤따랐다.

갑작스러운 상황임에도 강현의 표정은 담담했다.

이미 몇 번이나 경험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 * *

대가들의 요리 강습.

한둘이 아니었다.

돈을 주고서도 배우기 힘든 일. 강현에게도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건 오래가지 못했다.

“죄송하지만, 저녁 준비 때문에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강현의 말에 노인들은 아쉬운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바비큐를 한다고 했지? 내가 돕겠나.”

“나도 손을 보태지.”

노인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강현을 돕겠다고 나섰다.

강현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가르치는 대로 쏙쏙 알아들으니 가르치는 맛이 났다.

그렇게 강현과 노인들은 매장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매장 밖은 아까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어두워진 하늘.

그와 함께 마을 곳곳에 놓인 전구들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알록달록. 마치 한 폭의 화폭 같았다.

강현은 물론이고 노인들마저 멈춰 서서 감탄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마을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 아름다웠다.

어둠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밝은 모습.

“…살기 좋은 곳이군.”

“예.”

노부인의 말에 강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살기 좋았다.

그리고 강현은 노인들과 함께 마을 회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마당에 놓인 화로대와 가스버너. 그 위에 고기들이 올라갔다.

치이이익.

기름 타는 냄새와 함께 자욱하게 올라가는 연기.

한쪽에는 수육과 훈제된 고기를 썰고 있었다.

사람들은 돌아다니면서 취향껏 고기를 접시에 옮겼다.

처음에는 강현과 노인들이 구웠으나 나중에는 여러 사람이 뒤섞여서 고기를 구웠다.

그리고 마을 회관 마당에는 이미 얼큰하게 취한 노인들이 서로를 붙잡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즐거운 광경.

그때, 이장이 회관 앞에 있는 마이크 앞에 섰다.

순간 조용해지는 마을 회관.

“아, 아. 잘 들리나?”

“예에!”

이장의 말에 사방에서 대답이 쏟아졌다.

고개를 끄덕이는 이장.

추위 탓인지, 취기 때문인지, 그 코가 붉었다.

헛기침하더니 이장이 점잖게 입을 열었다.

“아…. 먼저 오늘 이렇게 마을의 잔치에 와 줘서 감사합니다.”

어설픈 표준어.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편하게 하쇼! 편하게!”

누군가의 외침에 이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난 이게 편해! 뭘 알면서 말혀.”

그러나 말과 달리 평소의 말투로 돌아온 이장이었다.

“암튼, 잔치 준비하느라 다들 고생했어.”

그렇게 이장의 말을 듣고 있는 사이 누군가가 강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뭐야? 못 온다며?”

놀란 강현이 되묻자 뒤에 있던 사내가 씩 웃었다.

바로 윤섭이었다.

“스케줄 째고 왔지. 우리 강현이가 부른다는데 스케줄이 문제야?”

강현이 눈살을 찌푸리자 윤섭이 고개를 흔들었다.

“농담이야. 농담이니 그렇게 노려보지 않아도 돼. 스케줄 펑크 나서 온 거야. 일본 출장이었는데, 기상 악화로 취소됐어. 정말 하느님의 축복이지.”

그제야 강현의 눈에 힘이 빠졌다.

‘하긴.’

행동은 가벼워 보여도 그렇게 책임감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 말한 윤섭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강현은 그런 윤섭의 미소에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뭐가?”

윤섭의 태도에 강현은 확신을 얻었다.

강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뭘 숨기는 건데?”

“선물을 하나 준비했거든.”

윤섭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선물이라고 물으려는 찰나 이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이번 잔치를 위해 조기 앞에 이 씨랑 강현네가 작은 공연을 준비했다고 하니 즐겨 봅시다.”

이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을 회관에서 노인들이 나왔다.

각자의 악기를 들고나오는 노인들.

그중에는 이정환도 있었다.

마을 사람 둘이 피아노를 옮기고 있었다.

전에 이정환이 공연에서 쓰던 피아노와 달리 가벼운 디지털 피아노였다.

마을 회관 앞마당에 자리를 잡는 이들.

멀끔한 양복을 입은 이도 있었지만, 등산복을 입고 온 이들도 있었다.

모습도 제각각.

난로가 있음에도 숨을 내쉴 때마다 새하얀 김이 올라왔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이정환의 손이 피아노 건반에 닿았다. 그와 함께 공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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