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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52화 (152/227)

152화 성인식을 거행하겠소이다

나무로 만든 작은 그릇.

그러나 중요한 건 그릇이 아니었다.

그릇 안에 있는 존재.

꿈틀꿈틀.

“…벌, 레?”

“벌레군.”

애벌레. 한 마리, 한 마리가 강현의 손가락보다 굵었다.

강현의 말에 이어서 로멘이 대답했다.

로멘도 생소한 것인지 눈을 껌뻑였다.

‘밧줄에 이어서 벌레라니.’

강현은 슬쩍 하만의 가방을 바라보았다. 저기 안에 또 무엇이 있는 걸까.

그리고 어째서 벌레인 걸까.

수많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러나 정작 요정들은 벌레의 정체를 아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앞에 있던 대장로가 포근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귀한 아이들을 데리고 와 주셨구려. 찾기 힘드셨을 텐데.”

대장로의 칭찬에 하만이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저, 저희가 사냥이나 채집은 익숙해서.”

“잘 알고 있소. 족장에게도 고맙다고 전해 주시오.”

“예!”

하만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하만을 바라보는 요정들의 눈빛이 전보다 부드러워졌다.

‘하만을 보낸 게 정답이네.’

다른 수인들이 왔다면 이렇게까지 호의를 얻지 못했을 거다.

‘…하나 이상한 게 껴있지만.’

강현은 손가락을 쭉쭉 빨고 있는 모나를 외면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요정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현은 요정들이 저 벌레를 가지고 무엇에 쓰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상황이 아니었다.

‘…먹지는 않겠지?’

하만은 가지고 온 벌레들을 옆에 요정에게 건넸다.

“그럼 편히….”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는 대장로를 향해 조심스레 손을 올렸다.

“음, 무슨 일이지?”

“저도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자 요정들의 시선이 로멘에게 머물렀다가 떨어졌다.

분위기를 보면 로멘이 인간족 대표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장로와 장로들은 사정을 아는지 흥미로운 시선을 보냈다.

강현은 자신을 향해 모이는 시선을 느끼고는 볼을 긁적였다.

‘괜히 말했나.’

에밀리야를 통해서 전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로멘이나 하만이 가지고 온 것처럼 대단한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때, 옆에 온기가 느껴졌다.

어느새 다가온 설기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아이들은 설기를 쫓으려다가 어른들이 모인 걸 보고 슬쩍 발을 뺐다.

‘도망쳤구나.’

강현은 무심코 머리로 손을 뻗었다가 아차 싶었다.

지금 그런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빼꼼.

가슴팍에 있던 토리까지 나와서 설기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본 요정들의 눈이 커졌다.

“진짜로 인간이 정령을….”

“듣긴 했지만.”

좀 전보다 더 많은 관심이 쏠렸다.

그리고 몇몇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강현의 마음은 차분해졌다.

설기와 토리 덕분이었다.

강현은 배낭을 열어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그건?”

“꽃씨입니다.”

꽃의 종자. 시장에서 여러 종을 사 왔다.

포장지에 담겨 있던 걸 가죽 주머니에 옮긴 것이었다.

강현의 말에 여기저기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일행들을 아니꼽게 보던 몇몇은 노골적으로 비웃기까지 했다.

그러나 대장로의 시선이 향하자 급히 고개를 돌렸다.

“선물은 고맙게 받겠소.”

대장로가 눈짓하자 옆에 있던 요정이 씨앗 주머니를 받아서 대장로에게 건넸다.

씨앗을 받은 대장로가 강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이들의 무례를 사과하리다.”

“…!”

놀란 요정들이 숨을 삼켰다. 하지만 옆에 있던 장로들마저 엄한 눈초리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물을 가지고 온 손님에게 보낼 시선이 아니었다.

곧 대장로가 부드러운 미소로 입을 열었다.

“우리 요정이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오. 하지만 대륙 내에 있는 꽃과 나무라면 대부분 이 숲에….”

대장로의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말하다 말고 눈을 껌뻑이는 대장로. 그녀의 시선이 주머니 안으로 향해 있었다.

“대장로?”

무언가 잘못된 건가.

옆에 있던 장로들이 대장로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 또한 대장로와 다르지 않았다.

“이건…. 아주 특별한 씨앗들이구려.”

입을 여는 대장로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나조차도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오.”

“…!”

대장로의 말에 요정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장로들 역시 애써 점잖은 표정을 유지했지만, 눈을 쉴새 없이 주머니를 힐끗거리고 있었다.

에밀리야는 이리될 줄 알았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그러나 그녀조차 시선이 주머니로 향하고 있었다.

‘정말 좋아하나 보네.’

강현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았다.

그만큼 이들이 순수하다는 뜻도 되었다.

“생력이 적은 것을 보니 신의 손길이 닿지 않는 먼 곳에서 온 아이들이구려.”

“…예, 고향에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러자 대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중하게 키우겠소.”

대장로가 주머니를 닫아서 품에 넣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귀한 선물을 받았으니 대접에 소홀해서는 안 되겠지. 있는 동안 편히 쉬시오.”

그리 말하고는 대장로가 몸을 돌렸다.

장로들 역시 그런 대장로의 뒤를 따랐다.

왠지 모르게 다급한 발걸음이었다.

덩그러니 남겨진 일행들은 눈을 껌뻑였다.

“씨앗을 확인하러 가는 거예요.”

일행들에게 다가온 에밀리야가 입을 열었다.

강현은 그녀의 말에 설마. 하고 돌아보았다.

중요한 행사 아닌가. 고작 선물을 확인하고자 자리를 비운다고?

그러나 로멘은 그럴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요정의 사명인가!”

“사명요?”

강현의 물음에 에밀리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정들은 숲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어요. 당연히 그 속에는 꽃과 나무들도 포함되어 있죠.”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씨앗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때, 로멘이 열었다.

“식물의 종이 끝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지.”

“요정들이 다른 종족보다 긴 생을 이어 가는 이유이기도 하죠.”

에밀리야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 말에 강현이 탄성을 내뱉었다.

강현이 가져온 씨앗 모두가 이 대륙에는 없는 것이었다.

“강현 씨가 가지고 온 씨앗들은 장로원에서 특별 관리할 거예요. 그리고 씨앗들이 자력으로 번식이 가능할 때, 다른 곳으로 퍼트리겠죠.”

“그러면….”

강현의 시선이 에밀리야에게 향했다.

전에 줬던 선물을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커피의 생두.

강현의 시선에 에밀리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절반은 장로원에서 관리하고 있어요.”

다행히 다 가져간 건 아니었다.

“요정들조차 장로원의 허락 없이는 들어갈 수 없죠.”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에밀리야의 시선이 장로들이 떠난 방향으로 향했다.

“그래도 아쉽네요. 저도 보고 싶었는데.”

“아, 잠시만요.”

에밀리야의 말을 들은 강현이 서둘러 배낭을 뒤졌다.

그리고 대장로에게 건네줬던 주머니의 절반 정도 되는 주머니를 꺼냈다.

“따로 조금씩 빼놨어요.”

강현의 말에 에밀리야가 숨을 삼켰다.

그것도 잠시 강현을 껴안았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미처 피할 새도 없었다.

“고마워요! 역시 강현 씨밖에 없네요!”

그리고는 씨앗을 들고 방방 뛰었다.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반응에 강현이 웃음을 흘렸다.

그제야 자신이 한 행동을 깨달았는지 얼굴을 붉히는 에밀리야.

“실례했네요.”

“괜찮습니다.”

강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헛기침한 에밀리야가 표정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이제 편한 곳에 앉아서 구경하시면 돼요.”

주머니도 확실하게 챙겼다.

주변을 돌아보자 나무나 돌에 걸터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요정들이 보였다.

자유분방한 모습.

어딜 봐도 미남미녀뿐이었다.

웃으며 떠드는 이들. 그러나 그중 대부분이 일행들을 힐끗거리고 있었다.

일행들도 적당한 곳에 자리했다.

그러자 요정이 다가와서 과일과 마실 것을 건넸다.

노란 액체.

“과일주군.”

로멘이 단번에 그 정체를 알아맞혔다.

강현은 한 모금 마셨다. 톡 쏘는 맛.

청량감이 올라왔다.

‘…이거.’

탄산음료. 그것과 비슷했다. 그렇다고 알코올이 없는 게 아니었다.

가볍게 마시기 좋은 술이었다.

“차도 있어요.”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술뿐만 아니라 차를 마시는 이들도 많았다.

‘확실히 다르네.’

자유롭게 노는 건 수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강현의 시선이 나뭇잎에 놓인 과일과 열매로 향했다.

맛있는 과일과 열매들.

지구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 생식이네.’

주변 어디를 봐도 요리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아쉬워하는 건 강현만이 아니었다.

모나와 설기도 시무룩한 표정으로 앞에 놓인 과일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일행들의 기색을 알아챈 에밀리야가 입을 열었다.

“이런, 제가 미처 생각 못 했네요. 고기라도 준비해 드릴까요?”

에밀리야의 말에 모나와 설기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나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요정들을 경험해 보려고 왔으니 같이 어울려야죠.”

“음, 맞는 말이지.”

로멘조차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고기를 구워 먹을 거면 온 의미도 없었다.

그러자 에밀리야가 멋쩍게 웃었다.

“저희도 고기를 먹지 않는 건 아닌데….”

알고 있다. 취향의 문제였다.

요리하는 것보다 열매를 키워서 수확하는 것에 더 흥미를 느낀다.

“충분히 즐기고 있으니 괜찮네.”

강현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자 에밀리야의 표정도 밝아졌다.

그리고 설기와 모나는 나라라도 잃은 표정으로 강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시작하나 보네요.”

에밀리야의 말에 일행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장로들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장로 뒤로 두 요정이 따라오는 게 보였다.

장로와 같은 예복을 입은 둘.

아직 앳된 얼굴들이었다.

무언가를 치렁치렁 매달고 있는 모습이었다.

기본적으로 요정의 옷차림은 몸의 형태가 잘 드러난다.

‘민망할 정도로 말이지.’

그러나 둘은 예복을 입은 탓에 소년인지, 소녀인지 구분이 힘들었다.

강현은 그중 한 명을 보고 탄성을 뱉었다.

‘그 아이구나.’

전에 만났던 요정.

저 소녀가 바로 이번 성인식의 주인공 중 하나였다.

그렇게 장로들과 성인식을 치를 요정이 나오자 주변이 조용해졌다.

대장로는 조용해진 주변을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먼저 이 둘을 축복해 주기 위해 와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오. 지금부터 에우리아의 아들 세흐와….”

옆에 있던 요정이 앞으로 나와서 고개를 숙였다.

“…브륜힐의 딸 아우라의 성인식을 거행하겠소이다.”

이번에는 강현도 알고 있는 요정의 소녀가 나와서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대장로의 선언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이어지는 순서는 강현에게도 낯선 게 아니었다.

‘…졸업식 같네.’

신관으로 보이는 이가 축사를 읊고 일족의 어르신들이 축복을 내린다.

말이 축사지, 훈화 말씀이나 다름이 없었다.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하만. 모나는 이미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오직 로멘만이 감탄을 내뱉고 있었다.

“…그렇군! 호오라.”

축복이 이어질 때마다 알 수 없는 감탄을 토했다.

로멘의 눈에는 무언가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았다.

강현은 과일 하나를 들어서 설기에게 건넸다.

설기는 심드렁한 눈빛으로 과일을 보다가 입으로 가져갔다.

강현은 그런 설기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때, 에밀리야가 슬쩍 상체를 기울였다.

“조금만 참으세요. 이제 곧 볼만한 게 나올 거예요.”

마치 강현의 마음을 읽은 것 같았다.

강현은 어색한 미소와 함께 볼을 긁적였다.

그리고 하만 역시 에밀리야가 한 말을 들었는지 졸린 눈을 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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