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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37화 (137/227)

137화 다음에 하나 사야겠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설기의 귀가 쫑긋 올라왔다.

유유히 날아와서 안착하는 소나.

그와 함께 수풀이 흔들렸다.

수풀 사이로 나타난 그림자 하나.

그리고.

“우웨에에엑.”

멈추자마자 그림자 하나가 바닥에 쓰러졌다.

“…안녕하세요.”

강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반갑게 손을 흔드는 란돌프. 그와 달리 바닥에 쓰러진 로멘은 대꾸조차 못 하고 있었다.

‘저 기분 잘 알지.’

강현은 연민의 표정으로 로멘을 바라보았다.

에밀리야가 로멘에게 다가가서 풀을 하나 건넸다.

“향을 맡으면 진정될 거예요.”

“…고맙네.”

힘겹게 풀을 받은 로멘이 향을 들이켰다.

그러자 안색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신기한 광경에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이제 살겠군.”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로멘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란돌프를 노려보았다.

멋쩍게 웃으며 시선을 피하는 란돌프.

“빨리 오라고 해서….”

“그런 말은 적혀 있지 않았네.”

로멘의 말에 란돌프가 헛기침했다. 로멘도 서신을 읽었다. 그런 란돌프를 보며 한숨을 내쉰 로멘이 에밀리야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로브 자락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통은 미안하네. 공격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야.”

로멘이 꺼낸 건 반쪽으로 쪼개진 통과 나뭇잎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반듯하게 잘린 통.

통뿐만이 아니었다. 나뭇잎 역시 깔끔하게 잘려서, 안에 써진 글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누가 잘랐는지는 뻔했다.

란돌프가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나중에 새로 구해 주겠네.”

“아뇨, 괜찮아요. 또 만들면 됩니다.”

에밀리야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그러면 우리가 너무 미안해.”

로멘은 우리라고 말하면서 란돌프를 보았다. 거기에 담긴 뜻을 이해 못 할 란돌프가 아니었다.

란돌프마저 고개를 끄덕이자 에밀리야도 더 거부하지 않았다.

“일단 자리를 먼저 옮겨야겠군.”

로멘이 자신이 만든 흔적을 힐끗거리며 입을 열었다.

다른 이들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던 강현이 무언가를 떠올리고 에밀리야에게 다가갔다.

“저, 에밀리야 씨.”

“예?”

의아해하는 에밀리야를 보며 강현이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저도 아까 그 풀 좀 얻을 수 있을까요?”

효과는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강현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강현의 부탁에 에밀리야가 눈을 껌뻑였다.

* * *

일행들이 옮긴 곳은 멀지 않은 곳이었다.

설기는 껑충껑충 뛰면서 토리와 두더지 잡기를 하고 있었다.

땅 위라면 설기가 빨랐지만, 땅속에서는 달랐다.

강현은 그런 둘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래, 무슨 일로 부른 건가?”

로멘이었다.

서신에 이유는 적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 선물을 드리려고요. 저번 여행 때 신세를 져서.”

강현의 말에 란돌프와 로멘의 눈이 커졌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말과 달리 둘의 표정은 환했다. 선물을 싫어하는 이는 없을 거다.

강현은 가져온 선물을 둘에게 건넸다.

네모난 상자.

그리고 자신도 하나를 꺼냈다. 그러자 셋의 시선이 자연스레 강현에게 모였다.

어차피 하나는 강현이 쓰려고 산 것이었다.

상자를 열자 모카 포트가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맨 물로만 끓일 겁니다.”

끓이면서 씻는 것이었다. 강현은 한정우에게 배운 대로 시범을 보였다.

그렇게 세 번 정도 반복한 후에 커피 가루를 넣었다.

보글보글 올라오는 커피.

셋이 신기하다는 듯이 커피를 바라보았다.

“향이 좋네요.”

살포시 미소 짓는 에밀리야.

“호오, 끓일 때 생기는 수증기를 이용하는 방식인가.”

로멘은 커피보다 포트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였다.

열정적으로 눈을 빛내는 둘과 달리, 란돌프는 그저 신기한 물건을 구경하듯 쳐다보고 있었다.

곧 시범을 끝낸 강현이 셋을 바라보았다.

“직접 해 보시겠어요?”

강현은 그리 말하면서 가져온 커피 가루를 건넸다.

이 역시 일행의 수에 맞춰서 가져왔다.

강현의 물음에 셋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은 말 잘 듣는 학생들을 보는 것 같아서 미소 지었다.

커피를 내리는 방식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제각각이었다.

“생각보다 어렵네요.”

에밀리야가 자신이 내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강현이 내린 것과 다르기 때문이었다.

당연했다. 강현은 한정우에게 직접 코칭을 받았다.

아무리 에밀리야라도 처음 보는 도구마저 능숙하게 사용하긴 힘들었다.

“…쓴맛이 매력적이야. 연구할 때 마시면 좋겠어.”

의외로 로멘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커피보다는 포트가 더 마음에 든 모양이지만.’

커피를 마시면서도 포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와 달리, 란돌프의 반응은 미묘했다.

선물 받아서 기쁜 모습.

딱 그 정도였다. 강현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뜨거운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예상대로네.’

강현은 쓴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일행들에게 주의할 것을 알려 줬다.

“아, 너무 많이 마시면 잠이 안 올 수도 있어요.”

“음?”

일행들은 의아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강현은 그들이 이해되었다.

이곳에서 나는 차의 효과는 지구의 것을 넘어섰다.

당연히 이 정도로 영향이 미치진 않을 거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강현은 상자 하나를 더 꺼냈다.

“이건 영주님 겁니다. 직접 전해 주면 좋겠지만.”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그러자 란돌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네. 성까지는 너무 멀지. 이건 내가 대신 전해 주지.”

상자를 받은 란돌프가 입꼬리를 올렸다.

“사용법이라면 로멘 님이 잘 전해 주시겠지.”

“으음?”

포트를 관찰하던 로멘이 갑작스럽게 나온 자신의 이름에 눈을 크게 떴다.

란돌프가 말을 이었다.

“저는 외우지 못해서. 저보다는 로멘 님이 설명하는 게 나을 겁니다.”

그리 말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당당한 모습. 일행들도 실소를 흘렸고, 로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쩔 수 없구먼.”

“덤으로 제 아내에게도 부탁드립니다.”

란돌프의 말에 로멘이 눈을 흘겼다. 그러나 거절하진 않았다.

란돌프가 전투에 관해서는 천재적이었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못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때, 무언가를 떠올린 강현이 배낭을 뒤졌다.

자연스레 일행들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이건 전에 부탁한 겁니다.”

강현이 유리병을 꺼내서 에밀리야에게 건넸다.

“커피 열매입니다. 안에 있는 생두를 볶아서 만드는 겁니다.”

에밀리야가 놀란 눈으로 유리병을 받았다.

직접 원두를 받는 곳이 있다길래 한정우에게 부탁해서 구한 것이었다.

“조금 오래되었다고 하는데.”

“아뇨, 괜찮아요.”

에밀리야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고운 손가락이 병을 툭툭 두드렸다. 흔들리는 열매들.

마치 그녀에게 화답하는 것처럼 보였다.

“잘 키워서 여러분께 선물해 드릴게요.”

“호…. 기대되는군.”

에밀리야의 말에 로멘의 눈이 반짝였다. 강현도 기대 섞인 눈으로 에밀리야를 바라보았다.

오래된 열매.

이미 말랐지만, 에밀리야는 요정이었다.

식물에 관해서는 요정이 전문가였다.

아무도 그녀를 의심하지 않았다.

‘…에밀리야가 키운 커피라.’

기대가 안 될 수가 없었다.

그때, 땅속에서 토리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힘겹게 발등 위로 올라오려고 하는 토리.

강현은 그런 토리를 들어서 가슴의 주머니에 넣었다.

“잘 놀았어?”

지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토리.

그리고 이어서 설기가 돌아왔다.

설기의 기분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아직도 귀와 꼬리가 움찔거리고 있었다. 신나게 놀고 온 것이었다.

“컹!”

강현을 향해 짖는 설기.

강현은 바로 그 뜻을 이해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하늘을 보자 조금 어두워진 느낌이었다. 금방이라도 붉은빛으로 물들 것 같았다.

하늘을 확인한 강현이 셋을 돌아봤다.

“나머지 이야기는 식사라도 하면서 할까요?”

강현의 물음에 셋의 표정이 밝아졌다.

물론, 가장 기뻐하는 건 다름 아닌 설기였다.

“컹!”

설기의 대답에 강현이 슬쩍 미소 지었다.

* * *

강현이 텐트를 꺼내자, 란돌프가 다가왔다.

“전에 것과 다르군.”

“예. 이번에 새로 구했어요.”

강현은 웃으며 말했다. 요리 장비만큼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물건을 꺼낼 때는 기쁜 법이었다.

둘의 대화에 일행들도 새로운 텐트에 관심을 보였다.

‘텐트가 아니라 쉘터이긴 한데.’

텐트라고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경계가 애매모호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강현은 텐트로 쓰기 위해 산 것이었다.

사각형 모양의 쉘터를 피자 곳곳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가벼운데 튼튼하군.”

란돌프가 쉘터의 폴대를 두드렸다.

마법과 같은 이능이 존재하는 세상과 달리 지구에는 과학만이 있을 뿐이었다.

소재 자체를 다루는 기술은 지구가 더 뛰어났다.

“막사로 쓰기도 좋겠어.”

넷이 앉아도 넉넉한 크기. 로멘도 신기한지 쉘터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있었다.

강현은 그런 그들을 놔두고 설치를 이어 갔다.

자리를 잡고 펙으로 고정했다.

이어서 바닥 공사.

그라운드시트를 깔고 발포 매트를 올린 후 침낭을 놓으면 끝.

반은 잘 수 있는 공간이었고, 다른 반은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쉘터의 가장 큰 장점은.

‘허리를 펼 수 있다는 거지.’

완전히는 아니었지만, 살짝 고개를 숙이는 정도였다.

당연히 앉아 있을 땐, 천장에 닿을 일도 없었다.

‘야전 침대도 사긴 했지만….’

쉘터를 사면서 야전 침대를 쓰면 바닥 공사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강현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깔아 놓은 침낭 속으로 쏙 들어간 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설기 뿐만 아니라 침낭 끝부분이 볼록 튀어나온 걸 보니 토리 역시 들어가 있었다.

강현 혼자 머문다면 야전 침대가 편하지만, 설기와 토리가 함께 있을 때는 너무 좁을 거다.

‘쓸 일은 없겠지.’

충동구매나 다름이 없었다. 자는 용도가 아니라 쉴 때나 써야 했다.

강현은 쉘터를 돌아보았다.

‘역시 잘 어울려.’

예상했던 그림이 나왔다.

숲에 잘 어울리는 모습. 이 때문에 일부러 카키색으로 산 것이었다.

“혹시 더 큰 녀석도 있나?”

란돌프의 물음이었다. 커피 때와 달리 이번에는 텐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강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얘의 두 배 정도 되는 것도 있어요. 이런 재질이 아니라 천 형태도 있고요.”

그만큼 무게가 많이 나가지만, 란돌프에겐 상관없는 일일 거다.

눈을 반짝이는 란돌프를 보며 강현이 입을 열었다.

“혹시 하나 구해 드릴까요?”

“음, 아니야, 아닐세.”

고개를 젓는 란돌프. 그러나 강현은 그의 눈이 흔들리던 걸 알아챘다.

‘그래, 사냥을 좋아한다고 했었지.’

사냥 나갈 때 이게 있으면 편할 거다.

‘다음에 하나 더 사야겠네.’

란돌프라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다.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시선을 돌렸다.

이제 숙소는 마련했다.

남은 건 식사뿐이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강현은 곤란한 표정이었다.

‘원래라면 화로에 고기를 굽고 팬으로 소스를 만들 예정이었는데.’

화로도 팬도 구멍이 뚫렸다.

작은 이빨 자국.

강현은 볼을 긁적였다. 그러던 강현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냄비.

떨어지면서 조금 찌그러지긴 했지만, 다행히 구멍이 나진 않았다.

‘…그게 좋겠네.’

강현이 배낭을 뒤졌다. 그러자 나온 와인 한 병.

요리에 쓰기에는 아까운 와인.

그러나.

‘어차피 같이 마시려고 가져온 거니.’

와인이 찰랑거리며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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