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34화 (134/227)

그냥 돌아갈까?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몇 번이고 도망치려고 했었다.

어제는 이상한 것도 설치하지 않았던가.

설기의 집 옆에 조그마한 집이 생겼다.

이게 뭐냐고 물었을 때, 강현은 이리 대답했다.

‘혼자만 집이 없으면 불쌍하니깐.’

혼자라니. 무언가 또 있단 말인가.

그러나 한정우는 이와 같은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물론, 실제로 본 게 아니었다.

‘...일본 영화에서 본 것 같아.’

공포 영화다.

귀신이 나오는 곳에 저렇게 자그마한 사당을 짓고 기도를 올리는 걸 보았다.

고개를 돌리자 강현이 흐뭇하게 웃는 게 보였다.

‘마음에 드나 보네.’

작은 중얼거림이 한정우의 귓가에 선명하게 울렸다.

‘비명 안 지른 게 다행이지.’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은 광경.

지금도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떠날 수 없었다.

이것이 기회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황대길과 강현. 둘에게 가르침을 받는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이제 강현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처음 올 때만 해도 일주일이면 끝날 것 같았는데.’

지금은 한 달 안에 둘의 기준을 통과하면 다행이었다.

새로운 매장의 레시피뿐만 아니었다.

강현이 양식도 봐주고 있었다.

무뚝뚝한 성격이긴 하지만, 가르침에 인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격도 이해가 되었다.

‘...분명, 보이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한정우도 직접 겪지 않았던가.

‘그래, 어릴 적부터 그런 걸 봤으면 인간관계가 서툴지.’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을 거다.

‘그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잘난 체를 한다고 생각했다. 강현도 사실을 말하기 힘들었을 거다.

다 오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정기훈 작가와 이정환 피아니스트.

둘을 봤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둘 역시 강현과 스스럼없이 지내고 있었다.

“그래, 남기로 했으니 제대로 해보자.”

한정우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매장을 보았다.

불이 꺼진 매장.

그래도 햇빛이 매장을 밝히고 있었다. 마른침을 삼킨 한정우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불이 꺼졌음에도 훤한 매장 안.

그러나 한정우에게는 어쩐지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시, 실례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발을 내디뎠다.

딸랑.

“...!”

바람 때문에 닫히려는 문을 황급히 붙잡았다.

곧 실소를 흘렸다.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강현씨가 없으면 안 나오는 건가?’

만일 나온다면 경고해줬을 거다. 한정우는 핸드폰을 꺼내서 노래를 틀었다.

그러고 나니 좀 진정이 되었다.

옷을 갈아입고 주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전에 배웠던 요리들은 하나하나 해보았다.

그때.

딸랑딸랑.

갑작스러운 방울 소리에 한정우의 몸이 굳었다.

힐끗, 조심스레 홀을 보니 한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한정우.

노인도 한정우를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웬일로 일요일에 열었나 싶더니 그 짝이구먼.”

한정우도 안면이 있는 이였다.

‘이장님이었나?’

지금 한정우가 머무는 숙소도 이장이 구해줬다.

“주인도 없으니 뭘 해달라고 하기도 뭐하네. 그냥 이거 한 병만 마시고 갈겨. 괜찮지? 밖에서 마시려니 춥더라고.”

이장이 들고 온 막걸리를 흔들었다.

한정우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서 이상한 걸 깨달았다.

‘...막걸리?’

매장에 막걸리를 들고 온다고?

하물며 이곳은 양식당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주인은 강현이기에 상관할 부분은 아니었다.

“잔만 줘. 고 위에 있을 거여.”

한정우는 선반을 확인했다.

‘...진짜 막걸리잔이네?’

왜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는지 이상할 정도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그렇게 잔을 들고 가려던 한정우의 걸음이 멈췄다.

그리고는 주방 테이블 위로 시선을 던졌다.

“...음.”

잠시 고민하던 한정우는 연습용으로 만들었던 요리 몇 점을 그릇에 담았다.

곧 테이블에 올라온 접시를 본 이장이 눈을 껌뻑였다.

“아니, 이런 건 안 줘도 되는데. 나중에 혼나는 거 아녀?”

“...괜찮습니다.”

재료를 써도 된다는 허락도 받았을뿐더러, 이런 걸 가지고 혼낼 강현도 아니었다.

“그럼 고맙게 먹을게.”

환하게 웃으며 음식을 젓가락으로 집었다.

먹고 바로 막걸리를 들이키는 이장.

“크으! 역시 추울 때는 막걸리여.”

한정우가 이장을 본 건 이번이 세 번째였지만, 더울 때도 저런 말을 했을 거라는 걸 장담할 수 있었다.

다시 음식을 향해 젓가락을 움직이는 이장.

그 모습에 한정우는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런 한정우를 본 이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한 잔 줘?”

“아, 아뇨. 음식은 입맛에 맞으세요?”

“아하, 그런 거구먼.”

한정우의 물음에 이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기특하다는 듯이 한정우를 보았다.

“잘했어, 잘했어. 솜씨가 좋네. 이 정도면 금방 배우겠어.”

그러한 이장의 말에 한정우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칭찬이지만, 칭찬 같지 않았다.

자신이 어디서 이런 취급을 받았겠는가.

그러나 이곳에 있는 이들을 떠올리면 이해가 되었다.

‘...둘 있는 요리사가 황대길 선생님이랑 강현씨니.’

이 마을 사람들의 기준은 그들일 거다.

터무니없이 상향 평준화가 되었다.

“...예, 맛있게 드세요.”

한숨을 내쉰 한정우가 주방으로 돌아왔다.

‘갈 길이 머네.’

이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랐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오니 자신감이 무너지고 있었다.

다시 연습을 시작한 한정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의자 소리가 들렸다.

이장이 일어난 것이었다.

‘벌써?’

놀란 한정우가 막걸리를 보았다. 깨끗하게 비어진 막걸리.

한정우가 홀에 나오자 이장이 입을 열었다.

“덕분에 잘 먹었어. 그리고 이거.”

한정우에게 무언가를 건네는 이장. 바로 돈이었다.

황급히 고개를 내젓는 한정우.

“괘, 괜찮습니다.”

어차피 제대로 된 음식도 아니었다. 값을 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장도 물러나지 않았다.

“받어. 내 기특해서 주는 거여.”

“예?”

한정우가 어리둥절할 때, 이장이 억지로 손에 넣어줬다.

“다 알어. 요리 배우려고 서울에서 여까지 온 거 아녀? 우리 강현이가 참 대단하지. 암, 대단혀.”

흐뭇하게 웃는 이장.

“강현이가 알아서 챙겨주겠지만, 그래도 눈치 보일 거 아녀. 배우는 처지에 많이 받지도 못할 테고. 이걸로 맛난 거라도 사 먹어.”

이장이 한정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먹어보니 그 짝도 재능이 있어. 열심히 노력하면 우리 강현이처럼 될 거여.”

그리 말한 이장이 멋들어진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매장을 나갔다.

딸랑딸랑.

흔들리는 종과 함께 한정우의 눈도 흔들렸다.

손바닥을 펴보니 꼬깃꼬깃하게 접힌 천 원짜리가 몇 장.

이걸로 뭘 사 먹으란 말인가.

게다가 근처에 식당은 여기뿐이었다.

‘...무언가 오해한 것 같네.’

최근 취직이 힘들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나가는 요리사였다.

실소를 흘린 한정우가 돈을 주머니에 넣었다.

다시 혼자가 된 한정우.

한정우는 이장이 먹은 접시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 문이 다시 열렸다.

무언가 놓고 간 걸까?

그러나 들어온 이는 이장이 아니었다.

“삼초, 온?”

그보다 훨씬 작은 그림자.

‘...어린아이?’

무려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사내아이 하나와 여자아이 하나.

둘은 한정우를 발견하고 굳었다.

잠시간의 대치.

침묵을 깬 건 사내아이의 뒤에 있던 여자아이였다.

“...도둑?”

작은 중얼거림. 두 눈에는 경계가 가득했다.

당황한 한정우가 손을 내저었다.

“아, 아냐.”

그러자 놀란 여자아이가 뒷걸음쳤다.

울먹이는 여자아이. 한정우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는 걸까.

그런 한정우를 구해준 건, 앞에 있던 사내아이였다.

“미영아. 도둑 아니야.”

“...아니야?”

미영이가 상후를 보며 훌쩍였다. 상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정우를 보았다.

“이번에 서울에서 왔다는 아저씨죠?”

“아저씨….”

단어 선정이 마음에 걸렸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사람이야?”

“응! 요리사 삼촌 부하야.”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상후. 그러자 미영이도 놀란 눈으로 한정우를 보았다.

“삼촌 부하?”

“...부하 아닌데.”

정확히 말하자면 보조나 조수에 가까웠다.

그러자 미영이가 다시 한정우를 보았다.

“부하 아니래. 그럼….”

도둑.

뒷말을 삼켰다.

미영이뿐만 아니라 상후도 눈에도 경계심이 올라왔다.

“...다시 생각하니 맞는 것 같아. 부하. 그보다 여기 어쩐 일이니?”

한정우의 물음에 상후가 매장을 두리번거리며 입을 열었다.

“요리사 삼촌 없죠?”

“응, 저녁에 올 거야.”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강현이 삼촌이고 자신은 아저씨인 게 마음에 걸렸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상후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희 여기서 숙제 좀 해도 돼요?”

“숙제?”

한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매장에서 숙제라니. 그러나 막걸리도 마시지 않았던가.

혹시 싶어서 입을 열었다.

“전에도 했었니?”

“예! 자주 와요.”

“...요리사 삼촌이 숙제도 도와줘요.”

상후에 이어서 미영이까지 말했다.

한정우는 둘의 대답에 귓불을 쓰다듬었다.

‘강현씨 보기와는 다르네.’

아이들과도 어울려주는 건가. 어쩌면 생각보다 따뜻한 사람인가?

그렇다면 한정우도 말릴 이유는 없었다.

“그래.”

“예! 방해하지 않을게요!”

한정우의 허락이 떨어지자 아이들이 쪼르르 한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텔레비전 선반을 열더니 크레파스를 꺼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모습.

덕분에 한정우는 선반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둘은 곧 한정우를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의 할 일을 했다.

한정우도 그런 둘을 보다가 주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문뜩 무언가를 떠올렸다.

“...여기 사람들은 날 어찌 생각하고 있는 거야?”

이장과 상후의 반응을 보면 정상적이진 않았다.

한정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아이들도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강현과 설기가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한정우는 인사를 건네는 강현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 한정우의 시선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아, 아뇨.”

황급히 고개를 저은 한정우가 말을 보탰다.

“...낮에 이장님과 아이 둘이 왔다 갔습니다.”

“상후랑 미영이네요.”

역시나 둘의 정체를 쉽게 알아챘다.

“식사는 하셨어요?”

“연습하면서 조금씩 주워 먹어서 괜찮습니다.”

한정우의 대답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올라갈 테니 일이 끝나면 문단속만 부탁드립니다.”

“예. 내일 뵙겠습니다.”

인사를 나눈 강현이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강현을 배웅하고 고개를 돌린 한정우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엄…!”

방금 강현보다 먼저 올라갔던 설기가 바로 뒤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정우는 이층 복도와 설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내려오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대체 언제 내려온 거야?’

창문으로 뛰어내리기라도 한 걸까?

그러나 말이 안 된다는 걸 너무나 잘 알았다.

‘피곤했나 보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한정우가 다시 설기를 보았다.

어느샌가 그릇을 물고 있는 설기.

그릇을 한정우의 앞에 내려놓았다.

“밥, 달라고?”

끄덕끄덕.

한정우가 곤란하다는 듯이 귓불을 쓸었다.

그러자 설기가 그릇을 한정우에게 밀었다.

그리고 주방 쪽을 턱짓했다.

‘...연습으로 만든 음식들을 달라는 건가?’

설마 하는 심정으로 설기를 보았다.

그런 그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설기가 작게 짖었다.

“컹.”

“음.”

한정우의 시선이 강현이 있는 위로 향했다.

“강현씨한테 허락….”

“그르릉.”

“...생각해보니 괜찮을 것 같네.”

설기가 이를 보이자마자 한정우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들은 설기를 보며 귀엽다고 하지만 한정우는 아니었다.

‘저거, 평범한 개가 아니야.’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했다.

본능이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다운타운의 흑인들이 한정우를 불렀을 때처럼.

그렇게 주방으로 들어가던 한정우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새롭게 들여놓은 작은 집.

아까까지만 해도 볼록하게 솟아올랐던 쿠션이 푹 눌려 있었다.

마치 무언가가 위에 있는 것처럼.

‘안 보인다. 안 보인다. 그래, 난 아무것도 못 본 거야.’

그렇게 주방에 들어온 한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돌아갈까?’

아침에 했던 고민을 다시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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