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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107화 (107/227)

#107화 어떻게 되었나?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

잔잔한 물결 위로 찻잎 하나가 떠 있었다.

차를 배우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졌다.

‘마을 사람들에게만 타 줄까?’

에밀리야가 준 찻잎은 그냥 찻잎이 아니었다. 마시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지고 원기를 북돋아 줬다.

선물로 받은 걸 팔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혼자만 마시기에는 아까웠다.

강현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가을을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하늘이 높으니 말이 살찌는 계절.

말은 없었지만, 늑대 하나는 살이 찌고 있었다.

엎드려서 길게 하품하는 설기.

옆에서는 토리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설기도 요즘 산책하러 나가는 횟수가 줄고 있었다.

‘하긴, 나른할 때지.’

강현은 굳이 설기를 제지하지 않았다.

가끔은 이렇게 늘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세계 마을의 문제도 해결했으니 당분간 여유를 가질 생각이었다.

강현은 차를 한 모금 삼키고는 창문 너머를 보았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그때, 창문 너머로 그림자가 비치는 게 보였다.

익숙한 얼굴에 강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매장의 문이 열렸다.

딸랑딸랑.

그와 함께 들어온 이는 황대길이었다.

“선생님. 어서 오세요.”

강현은 인사를 하면서 시간을 확인했다. 2시가 넘어간 시간.

식사하기에는 늦은 시각이었다.

특히나 황대길은 평소 식사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황대길이 잠시 머뭇거렸다.

그 모습에 강현은 황대길이 식사하러 온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매장에 찾아와서 이런 말을 하기 미안하네만, 시식 좀 해 줄 수 있겠는가?”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그제야 황대길이 작은 보자기를 들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달리 부탁할 사람이 없어서 말이야.”

“저야 영광이죠. 들어오세요.”

시식을 부탁할 정도라면 평범한 요리는 아닐 거다.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황대길의 표정이 밝아졌다.

황대길이 안으로 들어오자 설기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평소라면 본체만체하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귀찮아도 먹을 건 챙기는 거지.’

설기가 움직이자 옆에 있던 토리가 잠이 덜 깼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더니 쪼르르 강현에게 달려왔다.

그러는 사이 황대길이 보자기를 펼쳤다.

안에 있는 도시락통을 열자 정갈하게 놓인 무언가가 보였다.

‘만두?’

그러나 강현이 알던 만두와는 달랐다.

강현은 희미하게 올라오는 냄새로 그 정체를 깨달았다.

“어만두입니까?”

“오, 먹어 본 적이 있는가?”

“아뇨.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만두피라고 생각했던 것은 바로 생선 살이었다.

가지런히 놓인 어만두 옆으로는 나뭇잎과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지극한 정성이었다.

그러나 강현의 시선은 어만두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생선 살이 이렇게 매끄럽다니.’

강현은 짧게 감탄했다. 익힌 생선 살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 아는 강현으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의아함도 들었다.

어만두가 흔한 음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황대길이 시식을 부탁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먹어 보면 알게 될 거다.

강현은 어만두 하나를 집어서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눈을 크게 떴다.

입안에 새콤한 맛이 퍼져 나갔다.

이는 강현이 알고 있는 어만두와는 다른 것이었다.

먹어 본 적이 없을 뿐이지 어떤 식으로 만드는지는 알고 있었다.

버섯과 쇠고기, 각종 야채로 소를 만든다.

간은 간장과 소금, 후추.

그리고 찍어 먹는 소스 역시 간장이나 겨자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황대길이 만든 음식은 달랐다.

‘…동남아와 섞었나?’

동남아 요리와 같다고 하기에는 한식의 맛도 짙었다.

그제야 강현은 황대길이 시식을 부탁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떤가?”

조심스러운 황대길의 물음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진 않은데, 맛이 튀는 느낌입니다.”

“역시 자네도 그리 느꼈는가.”

황대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역시 강현과 같은 걸 느낀 것이었다.

조화롭지 못하다.

하지만 다른 이의 입에서 확답을 듣고 싶었던 것이었다.

둘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상념은 오래가지 못했다.

“컹!”

설기였다.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현은 아차 싶었다.

먹을 게 있는데 자신 빼놓아서 삐진 것이었다.

설기 뿐만 아니라 도시락통으로 기어오르는 토리의 모습도 보였다.

강현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도시락통을 보았다.

어만두는 열 개도 되지 않았다.

“저….”

“아, 괜찮네. 설기도 입인데 우리끼리만 먹을 순 없지. 그리고 부족하면 또 만들면 되네.”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어만두 하나를 설기에게 건넸다.

순식간에 받아먹는 설기.

설기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나쁘지 않음, 인가?’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평가와 일치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삼키고 입맛을 다시는 설기.

강현은 또 하나를 주는 척하면서 반을 잘라서 토리와 설기에게 나눠 줬다.

그리고 황대길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음, 소스는 일부러 빼신 건가요?”

“몇몇 소스를 써 봤는데 어울리지 않더군.”

설기를 보던 황대길의 시선이 자연스레 강현에게 옮겨 갔다.

그런 황대길의 말에 강현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였다.

“잠시만요.”

벌떡 일어난 강현이 주방으로 달려갔다.

자연스레 설기와 황대길의 시선도 뒤따랐다.

잠시 후 강현이 쟁반에 작은 접시들을 잔뜩 들고 왔다.

접시들을 확인한 황대길의 입에서 탄성을 흘러나왔다.

강현이 들고 온 것은 소스들이었다.

한식과 동양에서 찾을 수 없다면 서양에서 찾아보면 된다.

둘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어만두를 소스에 찍었다.

“확실히 이건 너무 튀는군.”

“이쪽은 어떤가요?”

“괜찮긴 한데 무언가 부족해. 차라리 이쪽은 어떤가?”

둘은 문답이라도 하듯 서로 이야기를 건넸다.

“끼잉.”

설기는 둘을 두리번거리다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제자리로 옮겨 갔다.

그러나 이야기에 집중한 둘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금세 사라지는 어만두.

“이럴 게 아니라 더 만들어 오겠네.”

“재료를 가지고 오셔서 여기서 만드는 건 어떠신가요?”

강현의 말에 황대길의 눈이 커졌다.

“그래도 되겠는가?”

“예. 아직 저녁 장사까지는 시간이 남습니다.”

“그럼 금방 가져오겠네.”

황대길이 들뜬 얼굴로 매장 밖으로 나갔다.

강현의 입꼬리도 올라갔다. 즐거웠다.

처음 요리를 배울 때와 같은 설레임. 그러던 강현의 눈에 하얀 털 뭉치가 보였다.

‘아차.’

고개를 돌리고 있는 설기.

“설기야?”

강현이 불렀지만, 미동도 없었다.

토실토실한 엉덩이만 자기주장을 할 뿐이었다.

‘단단히 삐졌네.’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토리가 설기에게 다가가서 엉덩이를 쿡쿡 찔렀다.

그러나 마찬가지였다.

설기도 밥 먹은 지 얼마 안 지났다.

배고파서 그런 게 아니었다.

‘아직 새끼였지.’

평소 영리하다 보니 자꾸 까먹는다.

설기 옆에 쭈그려 앉은 강현이 설기를 쓰다듬었다.

“미안해.”

“끼잉.”

강현을 힐끗거린 설기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는 사이 토리는 설기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가 미끄럼틀을 타듯 굴러 내려오고 있었다.

강현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고는 입을 뗐다.

“파스타 해 줄까?”

“….”

“피자?”

고개를 돌려 버리는 설기. 역시 아닌가. 강현은 최후의 보류를 꺼냈다.

“그럼, 스테이크?”

대꾸 없는 설기. 그러나 꼬리가 움찔하고 떨리는 게 보였다.

“바로 준비해 줄게.”

강현은 설기의 머리를 두드리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강현이 스테이크를 들고나왔다.

설기는 관심 없는 척 몸을 돌리고 있었으나 귀가 움찔거리고 있었다.

“설기야.”

강현이 부르자 그제야 도도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굳이 먹고 싶진 않지만, 강현을 봐서 먹어 주겠다는 태도였다.

스테이크를 먹는 설기의 꼬리가 하늘하늘 흔들렸다.

기분이 풀어진 것이었다.

그때 마침 매장문이 열렸다.

황대길이었다. 그는 안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 있었나?”

“아뇨.”

강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설기는 스테이크 먹느라 황대길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 뒤로 다시 실험이 시작되었다.

열띤 토론이 끝난 건 저녁 무렵이었다.

제법 그럴싸한 요리가 나왔다.

‘문제라면, 한식도 양식도 아니란 거지.’

이 요리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중용하지 않았다.

황대길 역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덕분에 즐거웠어.”

“저야말로 많이 배웠습니다.”

이번 일로 부쩍 친해진 느낌이었다.

강현의 말에 황대길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다음에도 종종 와도 되겠는가?”

“물론이죠.”

이런 일이라면 환영이었다. 강현의 대답에 황대길도 미소 지었다.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어찌하다니?”

강현이 먹고 남은 빈 그릇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황대길의 미간에 골이 생겼다.

무언가를 위해서 만든 게 아니었다. 그저 한순간 떠올랐던 반짝임을 현실로 끌어낸 것이었다.

그러니 반짝임이 완성되었을 때, 이 요리의 목적도 달성된 것이었다.

심지어 황대길의 예상보다 더 잘 나왔다.

그렇기에 아쉬움이 드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서울의 매장이나 자네 가게에서 팔기에는 맞지 않으니.”

서울의 매장은 황대길이 운영했던 한식당이었다. 일선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여전히 영향력이 남아 있었다.

레시피를 파는 방안도 있었지만 내키지 않았다.

강현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다른 이들의 평을 들어 보고 싶지만, 여기로 만족해야지.”

그때, 한 가지가 강현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 혹시….”

강현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황대길의 눈이 커졌다.

“…그렇게 하면 나야 고맙지. 하지만 괜찮겠나?”

“한번 물어볼게요.”

되면 좋은 것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었다.

강현은 핸드폰을 꺼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이게 누구야! 이 셰프 아니야?]

“예,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그래, 오랜만이지. 영상만 메일로 보내 놓고 연락도 없어서 얼마나 섭섭했는지 알아?]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강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안 그래도 이번에 정산금 들어갔는데 확인해 봤어?]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런 강현의 반응에 대표가 웃음을 흘렸다.

[여전하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안부 인사하려고 전화하진 않았을 거 아니야? 미리 말하지만, 계약 파기는 안 돼.]

대표의 엄한 말투에 강현이 실소를 흘렸다.

“그런 게 아니라 이번에 새롭게 요리를 만들어서 연락을 드렸어요.”

[새로운 요리? 그거라면 메일로 보내면 되지 않아?]

“음, 전에 했던 것들과 달라서요.”

[다르다니? 뭔데 그래?]

대표의 물음에 강현의 시선이 황대길에게 향했다. 강현의 시선이 닿자 황대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양식이 아니에요. 황대길 선생님께서 만드시고 저는 거들기만 한 거라.”

강현의 말이 끝나자 핸드폰 너머가 조용해졌다.

한참이 지난 후에나 대표가 입을 열었다.

[…누구?]

“황대길 선생님이요. 한식으로 유명하신.”

[아니, 황대길 선생님을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 그분이 왜?]

“왜냐고 물으셔도….”

강현은 곤란하다는 듯이 볼을 긁적였다.

[잠깐만, 그러니깐 황대길 선생님이랑 이 셰프가 같이 요리를 만들었다는 거지? 그걸 우리 매장에서 팔고 싶고?]

“예.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거들기만….”

[이럴 게 아니라 당장 내려갈게.]

“예?”

[아니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내려갈게. 그때 이야기해.]

“굳이 그러실 필요는….”

[아니야.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전화로 할 순 없지. 이 셰프, 내일 봐.]

대표는 그 말을 건네고 전화를 끊었다.

옆에 있던 황대길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되었나?”

“…으음, 잘된 것 같은데요?”

강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직접 온다고 했으니 긍정적인 반응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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