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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96화 (96/227)

#96화 허, 진짜 잘 달리네

그 뒤로도 여러 경기를 진행하고 이제 마지막 순서만 남겨 놓고 있었다.

바로 운동회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계주였다.

막걸리를 홀짝이던 강현은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장과 시비가 붙었던 노인이 급하게 단상 위로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교장으로 보이는 이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 후에 선생님들이 모습이 분주해졌다.

[어린이 계주를 시작하기 전에 학부모님 계주를 먼저 진행하겠습니다. 참여하실 분들은 단상 아래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갑작스러운 방송에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했다.

“계주?”

“원래 했었나?”

“아니, 작년에는 없었어.”

강현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대갚음해 주겠다는 건가?’

선생님들이 줄다리기에 썼던 팻말을 들고 섰다.

머뭇거리는 사람들. 다들 이미 만취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외는 있었다.

노인의 마을에서 가장 빨리 사람들이 나왔다.

다른 이들과 달리 멀쩡한 사내들.

미리 알고 술을 마시지 않았던 것이었다.

게다가 그중 하나는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그걸 본 이장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이것들이 치사하게. 내 당장….”

“가만있어.”

운동장으로 나가려는 이장을 박 씨 할머니가 붙잡았다. 그러자 이장이 박 씨 할머니를 돌아보았다.

“왜 말려? 저것들이 수작질 부린 거 아니여?”

“그래서 어쩌게? 뒤엎게? 분위기 망치려고 작정했어?”

박 씨 할머니의 말에 이장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박 씨 할머니가 눈을 흘겼다.

“참 잘하는 짓이다.”

하지만 이장은 못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그때, 민호가 나섰다.

“제가 나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민호는 운전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았다. 옆에 있던 강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많이 마시진 않아서 달릴 수 있어요.”

강현까지 거들자 이장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려?”

민호와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한 팀당 네 명씩이었다.

다른 마을과 같이하니 둘로 충분했다.

“그려. 둘이면 믿을 수 있지. 아주 밟아 버리고 와.”

이장이 웃으며 민호와 강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지만 두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지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강현과 민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렇게 둘이 운동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단상에 도착하니 강현의 마을은 사정이 나은 편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줄다리기 때 같은 팀이었던 마을에서는 여인 둘이 나왔다.

아주머니들.

눈이 마주치자 아주머니 한 분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내놈들은 다 취해서 못 써.”

“그렇다고 노친네들을 보낼 수도 없지. 잘은 못하지만, 열심히 뛰어 볼게.”

아주머니의 말씀에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으니 다치지 않게만 해 주세요.”

둘 다 사십은 넘어 보였다. 힐끗, 고개를 돌리자 다른 마을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미 술에 취해서 얼굴이 붉어진 중년인도 서 있었다.

제대로 달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

그리고 그중에 익숙한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셨습니까?”

환하게 웃는 응언.

강현은 의아해했다. 다른 마을들과 달리 봉산 마을은 인원이 많았다.

강현의 반응에 응언이 웃으며 말했다.

“마을에서 제가 가장 빠릅니다.”

“아.”

나올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실력이 좋기 때문에 나온 것이었다.

“대단한데요?”

강현의 칭찬에 응언이 멋쩍게 웃었다.

“어릴 때 산을 많이 타서 그렇습니다.”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마을 사람 중에 산을 안 타 본 이가 몇이나 있겠는가.

하지만 모두가 빠르진 않았다.

둘의 대화는 선생님이 오면서 끊어졌다.

“달리는 순서를 정하시고 저기 선생님들이 서 있는 곳으로 한 분씩 가시면 됩니다.”

선생님의 말에 일행들이 시선을 돌렸다. 운동장 끝에 서 있는 선생님들.

아주머니 두 분이 머뭇거리면서 강현과 민호를 돌아보았다.

“제가 먼저 뛰겠습니다.”

민호가 그리 말하고 강현을 보았다.

민호의 시선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마지막 주자로 달릴게요.”

처음과 마지막. 가장 중요한 자리였다. 그제야 두 아주머니도 부담이 적어졌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려는 강현을 향해 민호가 입을 열었다.

“강현 씨 잘 부탁드립니다.”

“맡겨 주세요.”

강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아침마다 달리고 있었다. 달리는 것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마지막 주자가 대기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강현의 곁으로 응언이 다가왔다.

“선생님, 같이 갑시다.”

응언 역시 마지막 주자였다. 마을에서 가장 잘 달린다고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선생님이세요?”

뒤에서 들려온 말에 강현이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있었다.

노인 마을의 대표였다.

강현이 입을 열려는 찰나, 응언이 먼저 대답했다.

“요리사 선생님입니다.”

“아.”

응언의 대답에 소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언은 재빨리 한 마디를 더 붙였다.

“유명하신 요리삽니다.”

응언의 말에 강현이 멋쩍게 웃었다. 그런 강현을 본 소년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딘가 낯이 익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어두운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내놈이 왜 이리 표정이 어두워.”

뒤따라오던 중년인이 불쑥 내뱉었다. 마지막 한 팀이었다.

그의 얼굴도 취기 때문에 붉었다.

그러자 소년이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내키지 않아서요.”

“응?”

중년인뿐만 아니라 강현과 응언도 고개를 돌렸다.

억지로 끌려 나온 건가?

소년은 입술을 깨물더니 입을 열었다.

“계주, 저 때문에 하자고 했을 거예요.”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일행들의 시선이 닿자 소년이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육상을 하고 있어서….”

셋의 눈이 커졌다. 취미가 아니라 전공이 그쪽이란 뜻이었다.

“난 또 뭐라고. 그게 뭔 상관인데.”

중년인이 웃음을 흘렸다.

“대단합니다.”

이건 응언의 반응. 강현 역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자신의 예상과 달랐던 걸까?

소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러한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중년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 선수는 나오면 안 되는 규정 있어?”

“그건 아닌데…. 공평하지 않아서.”

소년의 말에 중년인이 실소를 흘렸다.

“똑같은 사람인데, 뭐가 공평하지 않아. 저쪽은 개도 참가했구먼.”

중년인이 강현을 턱짓했다. 강현은 어색하게 웃었다.

줄다리기 때 나왔던 설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어느새 대기하는 자리까지 도착한 넷의 걸음이 멈췄다.

“막말로 이거 한다고 돈이라도 줘? 아니잖아. 다 같이 즐기려고 하는 거니깐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래도….”

“그렇게 싫으면 나오지 말았어야지.”

“….”

“그리 담이 작아서 대회에서 제대로 뛸 수 있겠어? 그때도 사정 다 봐주면서 뛸래?”

“…아뇨.”

“고등학생?”

“중학교 3학년이요.”

소년의 말에 일행들의 눈이 커졌다.

키가 커서 고등학생인 줄 알았다. 그렇다면 소년의 반응도 이해가 되었다.

중년인도 예상 못 했는지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어른들을 무시하지 마. 아저씨도 왕년에 도 대표로 뛰었어.”

“맞습니다. 저도 이 마을뿐만 아니라 고향에서도 가장 잘 달렸습니다.”

중년인의 말에 이어서 응언까지 말을 보탰다.

자연스레 소년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했다.

강현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 음. 잘 달릴걸? 아마도.”

강현이 같이 달리는 상대라고 해 봤자 설기나 란돌프, 노아가 전부였다.

당연히 셋보다는 못 달렸다.

달리는 건 자신이 있지만, 빠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강현의 맥 빠지는 대답에 소년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니 맘껏 달려. 아저씨도 안 질 테니.”

“예.”

중년인의 말에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보다 표정이 밝아져 있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선생님이 다가왔다.

“곧 경기가 시작됩니다. 준비해 주세요.”

준비라고 해도 그려 놓은 선 위에 서 있을 뿐이었다.

일행들이 서자 소년이 입을 열었다.

“저기….”

“음?”

“바통을 받을 때는 이렇게 받는 게 편해요.”

일행들에게 자세를 보여 주는 소년. 그뿐만이 아니라 일행들의 자세도 하나하나 봐줬다.

고작 초등학교 운동회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소년의 진지한 표정에 셋도 따랐다.

“고마워.”

“고맙습니다.”

일행들의 감사 인사에 소년이 부끄러운 표정으로 코 밑을 쓸었다.

그 모습은 중학생으로 보였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탕!

총소리와 함께 출발선에 있던 이들이 일제히 달려 나갔다.

놀랍게도 선두로 나온 건 민호였다.

‘잘 달리네.’

덩치는 가장 컸지만, 민첩했다. 그 뒤를 두 팀이 열심히 따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한 팀은….

“맙소사.”

중년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오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달리다가 멈춰 서더니 안에 있는 걸 게워 내고 있었다.

잔뜩 먹고 갑자기 달리니 탈이 난 것이었다.

“저래서 나오지 말라고 했는데.”

중년인의 한탄이 들려왔다. 그러는 사이 다른 이들은 두 번째 주자에게 바통을 건넸다.

민호가 벌려 놓은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예상은 했었는데.’

강현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선두는 노인네 마을.

그리고 봉산 마을이 이등이었다.

어느새 바통은 두 번째 주자에게서 세 번째 주자에게 넘어갔다.

아주머니 두 분이 분투하셨지만, 거리는 점점 벌어질 뿐이었다.

그리고 중년인네 마을은 아직 첫 번째 주자에게 바통이 있었다.

더 달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사실상 기권이나 다름이 없었다. 선생님 한 분이 등을 두드려 주고 있었다.

그때, 선두에 있던 주자가 일행들이 있는 곳까지 당도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소년.

소년의 몸이 순식간에 앞으로 쏘아졌다.

그렇게 달려 나가던 소년이 갑자기 멈칫하더니 자리에 앉았다.

보니깐 신발 끈이 풀려 있었다.

멈춰서 신발 끈을 묶는 소년.

“쓸데없는 짓을 하기는.”

중년인이 실소를 뱉었다. 소년이 일부러 풀은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강현도 웃음을 흘렸다. 나름대로 페널티를 준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주자가 들어왔다.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응언이 일행들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바통을 받았다. 그 사이 끈을 다 묶은 소년이 다시 일어섰다.

강현은 눈을 크게 떴다.

응언의 속도가 예상보다 더 빨랐기 때문이었다.

소년의 얼굴에도 놀라움이 떠올랐다. 그러나 곧 진지한 표정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허, 진짜 잘 달리네.”

옆에서 중년인의 감탄이 들려왔다.

소년을 향한 것인지, 응언을 향한 것인지.

둘이 중간 지점에 도달했을 때, 아주머니가 도착했다.

“너무 늦었지?”

미안한 표정으로 바통을 건네는 아주머니. 강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그리고는 바로 발을 내디뎠다.

이미 따라잡기에는 너무 늦었다. 설렁설렁 뛰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그럴 순 없지.’

소년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여기서 대충하는 건 소년에게 실례되는 행동이었다.

강현의 발이 점점 빨라졌다.

그와 함께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 * *

앞서 달리던 둘은 갑작스러운 환호성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빠르게 거리를 좁혀오는 강현을 볼 수 있었다.

곧 소년의 시선이 응언에게 향했다.

거리가 좁혀지지 않고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소년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중년인의 말대로 봐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제 골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골까지 최선을 다해야 했다.

타닥, 타다닥.

숨을 내뱉으면서 발을 내디뎠다. 골까지의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따라왔을까?’

뒤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그렇게 결승선이 가까워졌다.

결승선 끈을 붙잡고 있는 선생님들. 그들의 눈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소년은 선생님들의 시선이 뒤에 있다는 걸 알아챘다.

벌써 따라잡은 것인가?

결국,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소년의 옆을 지나가는 새하얀 털 뭉치를.

“응?”

너무 놀라 숨을 내뱉었다.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서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뛰어서 결승선 끈을 낚아채는 새하얀 개를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입에 바통도 물고 있었다.

그것이 쓰러졌던 중년인의 바통이란 걸 소년은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소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끈이 사라진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되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환호성은 강현을 향한 게 아니라 바통을 물고 뛰기 시작한 설기를 향한 것이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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