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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91화 (91/227)

#91화 선물요!

“그럼, 그럼. 떠나선 안 되지.”

옆에서 맞장구를 치는 정기훈 작가. 강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작가님, 이런 성격 아니시지 않았어요?”

“환경이 바뀌면 성격도 바뀌는 법이라네. 여기 생활이 내게 맞나 보군.”

정기훈 작가가 웃으며 대꾸했다. 확실히 전보다 표정이 밝았다. 정말로 마을에 적응한 모습이었다.

“잘된 일이네요. 두 분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강현의 물음에 이장도 자리에 앉았다.

“밥도 밥이지만 다른 것을 상의하려고 왔어.”

“예?”

강현이 의아해하자 이장이 주변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곧 이 양반 친구가 오잖아. 피아노 치는 양반.”

“아, 예.”

이정환 피아니스트를 말했다.

“환영회를 해 줘야지. 그 양반이 그짝 요리를 좋아하더라고.”

이장의 말을 들은 강현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이라면 맡겨 주세요.”

“고기도 구울 거니깐 많이 할 필요는 없어.”

혹시나 강현이 부담을 느낄까 봐 이장이 말을 보탰다. 강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강현의 웃음에 머쓱해진 이장이 헛기침했다.

“그, 그럼 난 토마토 국수 하나 말아 줘.”

그리고는 어서 주문하라는 듯이 정기훈 작가를 바라보았다.

“난 봉골레로 부탁하네.”

“예.”

주문받은 강현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음식이 나왔고 이야기를 나누던 이장과 정기훈 작가는 포크를 들어 올렸다.

그때, 주방으로 돌아가려던 강현의 눈에 토리가 들어왔다.

뽀모도로에 올라간 방울토마토 하나를 집어 먹고 있었다.

이장이 그걸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엉? 이게 왜 떨어졌지?”

졸지에 방울토마토를 빼앗긴 토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장을 바라보았다.

“벌써 그러면 어찌하는가?”

“…진짜 치맨가?”

정기훈 작가의 나무라는 소리에 이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강현은 토리에게 눈짓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 에밀리야에게 들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정령의 손길에 닿은 건 오히려 몸에 좋으면 좋았지, 해롭진 않을 거예요.’

손길이 아니라 이빨이지만, 큰 차이는 없을 거다.

‘그리고 밭일도 마찬가지예요. 땅의 정령이 지나간 길에는 식물이 잘 자라죠.’

생물처럼 보였지만, 생물이 아니었다. 정령은 자연의 축복 같은 존재였다.

혹여나 토리가 파 놓은 굴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다행히 그럴 일은 없었다.

강현의 시선이 이장의 머리로 향했다.

강현의 머릿속에는 마지막에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혹시 머리카락도 자라나요?’

‘예? 머리카락요?’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질문이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강현은 주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이장과 정기훈 작가가 떠나가자마자 새로운 이들이 들이닥쳤다.

“사암초온!”

작은 손님들.

벌컥 열리는 문에 놀란 토리가 눈을 껌뻑였다. 설기 역시 고개를 들어서 새롭게 나타난 손님들을 보더니 다시 머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온 건 둘이었다.

싱글벙글 웃는 상후와 수줍게 고개를 숙이는 미영이.

강현의 시선이 힐끗 밖을 향했다.

“오늘은 일찍 끝났네?”

“예! 오늘 소풍이었어요!”

상후의 말에 강현의 눈이 커졌다.

“소풍?”

“예. 산에서 그림도 그리고 물놀이도 했어요.”

미영이 수줍게 말했다. 그 말에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근처에 소풍 갈만한 곳이 어디가 있겠는가.

동네 뒷산으로 다녀온 것이었다.

‘벌써 그런 계절이구나.’

가을 소풍.

상후와 미영이는 강현에게 다가오더니 무언가를 건넸다.

“이거 선물요!”

네모난 상자. 강현이 눈을 껌뻑였다.

그리고 뒤늦게 상자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파르르.

안에서 수많은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커다란 눈.

바로 잠자리였다.

“…음, 고마워.”

강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채집통을 내려놓았다.

채집통 한가득 잠자리가 들어 있었다.

강현으로서는 채집통을 놓치지 않은 것만 해도 칭찬할 만했다.

그러자 상후가 자기 콧등을 쓸어내렸다.

“우리 학교에서 내가 가장 많이 잡았어요!”

“…대단하네.”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히힛, 하고 자랑스럽게 웃었다.

그런 상후 뒤에서 미영이가 머뭇거렸다.

그러자 상후가 미영이의 등을 떠밀었다.

“저, 전 얼마 못 잡았어요.”

미영이가 건넨 채집통에도 잠자리가 있었다.

“…아니야. 미영이도 대단해.”

영혼이 담기지 않은 강현의 칭찬에 미영이가 해맑게 웃었다.

그렇게 채집통을 건넨 상후가 몸을 돌렸다.

“그럼 또 놀러 올게요!”

“아, 안녕히 계세요!”

후다닥 뛰어가는 상후를 미영이가 다급히 뒤쫓았다. 정말로 이것만 전해 주러 온 것이었다.

강현은 둘이 떠나간 자리는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선물을 받은 건 기쁜데….’

강현의 시선이 두 개의 채집통으로 향했다.

잠자리의 날갯소리가 유난히 시끄러웠다.

그때, 채집통이 궁금했는지 설기가 다가왔다.

순식간에 고요해지는 채집통.

잠자리들이 날갯짓을 멈췄다. 날갯짓뿐만 아니라 움직임마저 멈췄다.

조용히 눈만 굴리고 있었다. 심지어 죽은 척을 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놀라운 설기의 능력.

강현은 살짝 감탄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눈앞에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풀어 줘야겠지?”

기껏 잡아 준 둘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계속 이대로 놔둘 수도 없었다.

“컹!”

강현의 물음에 설기가 짖었다.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채집통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먼저 미영이의 것.

채집통을 열자 안에 있던 잠자리가 날아올랐다.

“정말 가을이네.”

잠자리가 나는 모습을 보니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이렇게 잠자리를 본 것도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졌다.

서울에 있었을 때는 차와 건물뿐이었다.

‘아니, 있어도 그냥 지나쳤겠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채집통이 비자 옆에 있는 채집통을 집었다.

“…대체 얼마나 잡은 거야?”

빽빽하게 차 있는 잠자리. 어떻게 넣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한숨을 내쉰 강현이 채집통을 열었다.

그와 함께 쏟아지는 잠자리들.

파르르르르.

날갯짓 소리가 시끄러웠다. 미영이의 채집통처럼 아름다운 광경은 아니었다.

심지어 몇 마리는 강현의 얼굴로 날아와서 식겁했다.

작은 곤충이지만, 얼굴로 날아오는 광경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설기와 토리는 뭐가 좋은지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보며 방방 뛰고 있었다.

그러던 설기가 뒤를 돌아보더니 강현을 향해 짖었다.

“컹!”

“왜?”

의아해하던 강현은 곧 설기의 시선이 자신을 향한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설기는 강현의 뒤를 보고 있었다.

“…!”

아뿔싸.

놀란 강현이 뒤를 돌았다. 활짝 열려있는 매장 문 너머로 잠자리들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맙소사.”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강현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 * *

“삼촌 다 잡은 거 같아요.”

“…응, 고마워.”

강현이 잠자리채를 든 상후에게 인사를 건넸다. 혼자 잡으려고 했지만, 잠자리는 생각 외로 재빨랐다.

‘설기에게 부탁할 수도 있지만.’

설기에게 부탁했다가는 매장의 상태는 보장할 수 없었다.

‘매장뿐만 아니라 잠자리의 생명도 마찬가지지.’

매주 숲에 가서 사냥한 고기를 먹는 강현이었지만, 불필요한 희생을 원하진 않았다.

결국, 잠자리 잡기의 전문가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바로 상후였다.

다행히 멀리 있지 않아서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강현의 인사에 잠자리를 매장 밖으로 놔주던 상후가 배시시 웃었다.

“아니에요!”

강현은 상후의 미소를 똑바로 마주하기 힘들었다.

한숨을 내쉰 강현이 입을 열었다.

“기껏 선물로 줬는데 풀어 줘서 미안해.”

“아니에요. 선생님도 잡은 다음 풀어 주라고 했어요!”

“맞아요. 계속 갇혀 있는 건 불쌍해요.”

옆에 따라온 미영이마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둘에게는 아쉬워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 왜 선물로 준 거지.’

강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의 마음이었다.

그래도 강현을 좋아한다는 것만은 충분히 전해졌다.

강현은 둘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모처럼이니 먹고 싶은 거 있어?”

강현의 물음에 둘의 눈이 커졌다.

“저, 저 돈가스요!”

“…전 햄버거.”

상후와 미영이의 대답에 강현이 미소 지었다.

“알았어. 금방 준비해 줄 테니 기다리고 있어.”

“진짜요? 와!”

상후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미영이 역시 뺨을 붉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햄버거와 돈가스가 든 접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감사합니다! 삼촌!”

“가, 감사합니다.”

“그래, 맛있게 먹어.”

강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둘은 정신없이 음식을 먹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니 미소가 저절로 피어났다.

그렇게 둘을 바라보고 있자 상후에 강현을 돌아보았다.

“삼톤, 삼톤! 다음 두 바바여?”

“다 먹고 말해.”

강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상후가 입안에 든 걸 꿀꺽 삼켰다.

“삼촌, 다음 주 바빠요?”

“다음 주? 왜?”

바쁘진 않았다. 강현의 대답에 미영이가 슬쩍 상후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기대하는 눈빛.

역시 뭔가 있는 것이었다.

“운동회 하는데, 오실 수 있어요?”

운동회. 그 말에 강현이 볼을 긁적였다.

강현은 학창 시절에도 운동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운동회는 가족만 가는 거 아닌가?’

말을 꺼낸 상후가 조심스레 강현의 눈치를 봤다. 옆에 있던 미영이도 마찬가지였다.

‘…바쁘진 않으니.’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갈게. 언젠데?”

“수요일요!”

환하게 웃는 상후. 그리고 미영이도 기쁜지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 다시 음식을 먹는 둘.

“미영아, 돈가스 좀 줄까?”

상후가 자른 돈가스 한 덩어리를 미영이의 접시에 올렸다.

그러자 미영이도 먹던 햄버거를 건넸다.

“오빠도 한 입 먹어.”

“그래!”

화기애애한 분위기.

순식간에 그릇이 비워졌다. 역시나 성장기의 아이들답게 잘 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자, 잘 먹었습니다!”

둘이 일어나서 강현을 향해 꾸벅 배꼽 인사를 했다.

강현은 둘을 향해 입을 열었다.

“도시락 싸 갈 테니깐 부모님이랑 할머니한테는 조금만 싸시라고 말해.”

강현의 말에 둘의 눈이 커졌다.

“진짜요?”

“그래.”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빈손으로 가기도 애매했다.

“아싸!”

상후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옆에 있는 미영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삼촌, 저희 가 볼게요!”

상후가 손을 붕붕 흔들며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런 상후를 다급히 쫓는 미영이.

“앞 잘 보고 걸어.”

“예!”

힘차게 대답하는 상후. 그러나 시선은 여전히 강현을 향하고 있었다.

강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신없네. 그렇지?”

“컹!”

강현의 물음에 설기가 짖었다. 피식 웃은 강현은 테이블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운동회라….”

강현에게 있어서는 낯선 단어였다. 그러나 그리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할 일이 늘었어.”

운동회뿐만 아니라 대표의 제안도 대답해야만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카샨을 만나야지.”

저쪽 세상의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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