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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캠핑으로 힐링 라이프-80화 (80/227)

#80화 그래도 다행이잖아?

“전 솔직히 그리 좋게 생각할 수는 없네요. 하지만 참신했다는 점에서는 동의합니다.”

“단순히 기발하다고만 말하기에는 기술이 뛰어나네요. 이 돈가스 고기 두 장이 아니죠? 네 장 같은데, 맞나요?”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심사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예인 시식단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치즈 돈가스도 이런 식으로 만든다. 고기와 고기 사이에 치즈를 넣고 튀기는 것이었다.

“이 정도의 얇기. 게다가 이렇게 일정하게 펴는 건 기계나 가능할 거예요. 그걸 이 짧은 시간에 해내다니 솔직히 저도 자신이 없네요. 그 장면을 직접 보지 못한 게 아쉽네요.”

고기를 두드리는 장면은 지루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카메라도 강현보다는 화려한 김종석 위주로 나왔다.

심사위원들의 관심도 마찬가지였고.

그렇기에 심사위원들 역시 본방송 때나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씹을 때마다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죠. 소스의 달콤함이 고기의 육즙에 섞이면서 맛이 바뀌고 마지막에는….”

“청양고추.”

다른 심사위원이 말을 받았다.

가운데 고기 사이에 청양고추로 즙을 내서 얇게 발랐다.

“방심했다가 놀랐습니다. 조금만 더 익혔어도 청양고추의 맛과 고기의 맛이 섞였을 테고, 덜 익히면 반대로 이렇게까지 폭발적인 맛을 내긴 힘들었겠죠. 대단한 솜씨입니다.”

처음에는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가 입안에 육즙이 쌓일수록 청양고추의 맛이 진해진다.

씹을수록 맛이 바뀐다는 말을 그러한 뜻이었다.

“놀이라? 전 놀리는 것 같았습니다. 음식을 가지고 기술을 뽐내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물론, 기술 자체는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이런 장소이기에 할 수 있는 요리죠.”

심사위원의 반론에 말을 꺼냈던 심사위원이 눈살을 찌푸렸다.

“참신함을 겨루는 자리가 아니에요.”

“맛도 있었습니다. 먹으면서 즐거운 요리. 그거면 된 거 아닌가요?”

“그렇다고 해도 선이 있어야죠.”

심사위원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방송이란 걸 잊었는지 서로의 할 말만 하고 있었다.

MC의 눈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심사위원들끼리 이렇게 의견이 충돌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만들 하게.”

그때, 양식 요리사 출신인 심사위원이 자리를 수습했다.

곧 조용해진 주변을 깨닫고 헛기침하는 심사위원들.

한숨을 내쉰 심사위원이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 큰 질문을 던졌어. 마치 코스 요리를 한 접시에 담은 것 같다네.”

입을 연 심사위원 역시 방송이라는 걸 잊었는지 평소의 말투로 돌아와 있었다.

“애피타이저인 소스로 입맛을 돋우고 점점 고조시키다가 청양고추로 정점을 찍었어. 그래서 일부러 양배추를 초에 절였군. 디저트 역할을 양배추가 할 수 있게.”

입가심이었다. 초밥과 같은 원리.

“덕분에 청양고추의 매운맛을 날리고 새로운 코스를 먹을 수 있어. 단순히 식자재뿐만 아니라 씹을 때마다 나오는 육즙과 타액까지 요리의 재료로 썼어.”

그렇기에 육즙을 가장 잘 보관할 수 있는 튀김을 택했다.

기발하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입안이 하나의 냄비였다.

강현은 심사위원의 말에 볼을 긁적였다.

‘코스 요리…. 역시 음악으로는 느껴지지 않나 보네.’

예상했던 것이라 실망하지 않았다.

이정현의 공연에서 느낀 감정을 요리로 옮긴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많다는 건 강현도 잘 알았다.

사람마다 씹는 속도가 다르다. 급하게 먹는 이는 청양고추의 맛이 제대로 퍼지기도 전에 삼킬 거다.

그리고 양배추를 먹는다고 해서 모든 맛이 깔끔하게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곡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짧았다.

하지만 심사위원에게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코스 요리라면 가능하겠구나.’

그렇다고 해서 다시 해볼 생각은 없었다. 이런 요리는 한 번으로 족했다.

애당초 요리 자체가 핑계나 다름이 없었다.

확신을 얻고 싶었던 것이었다.

진짜로 과거를 떨쳐 버렸는지, 아니면 그러한 척을 하고 있을 뿐인지.

덕분에 알게 되었다.

심사위원의 날카로운 비판에도 강현은 웃을 수 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과거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그렇군요. 심사위원분들의 평가 잘 들었습니다. 그럼 연예인 심사단의 평을 들을 차례군요. 음? 소현 씨가 이제 일어났나 보네요.”

“아, 안 잤어요!”

관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까 요리 도중에 졸던 장면이 잡혔기 때문이었다.

소현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럼, 깨어난 김에 소현 씨 감상부터 들어 볼까요?”

“정말 안 잤는데….”

MC가 짓궂게 웃었다. 다른 연예인들도 마찬가지.

모두가 귀엽게 바라보고 있었다.

소현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으음, 먹기 편했던 것 같아요.”

생각지도 못한 대답.

그러나 몇몇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다른 음식들은 맛이 있었지만 불편했어요. 격식을 차려야 할 것 같았고요. 하지만 강현 셰프님 음식은 편하게 먹을 수 있었어요.”

이어서 다른 연예인들도 하나둘 입을 열었다.

그렇게 감상평이 끝나고 심사의 시간이 다가왔다.

결과는.

화면의 파란 배경과 함께 강현의 얼굴이 나타났다.

“축하드립니다. 이강현 셰프님! 이번 승리는 청팀에서 가져갑니다!”

사방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강현은 머쓱하게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김종석은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그를 보며 김윤하 피디가 다급히 손짓했다.

그러자 스태프가 외쳤다.

“잠깐 쉬고 가겠습니다!”

몇 분인지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셰프들 사이에 앉아 있던 김종석의 후배가 달려왔다.

무언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오기도 전에 김종석의 입이 열렸다.

“인정할 수 없습니다!”

자리로 돌아가던 강현이 멈춰 섰다.

강현뿐만이 아니었다. 쉬는 시간이란 말에 서로 웃고 떠들던 관객들까지 조용해졌다.

“형님.”

“이거 놔.”

김종석이 후배의 손길을 뿌리쳤다. 그리고는 강현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저딴 시장에서나 팔 것 같은 돈가스가 제 요리를 이길 리가 없습니다!”

김종석의 외침에 촬영장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결국, 김윤하 피디가 한숨을 내쉬고는 걸어갔다.

김종석은 그런 김윤하 피디를 보며 입을 열었다.

“분명 수작질을 부린 것입니다. 심사단 중에는 강현이와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공평하지 않았어요!”

김종석의 시선이 소현에게 향했다.

그러자 소현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턱을 세웠다.

당당하다는 표시였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표정이 굳은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자신들을 무시하는 처사이기 때문이었다.

“김종석 씨.”

김윤하 피디였다. 평소와 다르게 셰프라는 호칭도 붙이지 않았다.

“방금 발언 책임질 수 있습니까?”

싸늘한 목소리.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김윤하 피디의 몸집이 평소보다 더 커 보였다.

김종석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당당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라면 돈가스 따위에게 질 리가 없잖습니까?”

한숨을 내쉰 김윤하 피디가 입을 열려는 순간,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그럼 우리가 수작질을 부렸단 소린가!”

황대길이었다. 이글거리는 눈이 김종석을 향했다.

김종석이 입을 다물었다. 불쾌한 표정을 짓는 심사위원들을 보자 정신이 돌아온 것이었다.

흥분한 탓에 주변이 보이지 않았다. 심사를 의심한다는 건 심사위원들까지 의심한다는 뜻이었다.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방청객들과 스태프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가 없었다.

“아니라면….”

김종석은 한층 풀이 꺾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황대길이 그의 말을 잘랐다.

“접시를 보게. 접시는 거짓말을 안 하지.”

황대길의 말에 김종석이 시선을 돌렸다. 서버들이 치운 접시.

김종석의 요리는 절반이나 남아 있었지만, 강현의 요리는 대부분이 비어 있었다.

그를 본 김종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김종석의 요리가 맛이 없던 게 아니었다.

처음과 두 번째를 제외하면 음식 대부분을 남겼다.

배가 부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만큼 강현의 요리가 특별했다는 뜻도 되었다.

“이래도 인정 못 하겠는가?”

못한다. 연예인 심사단의 입맛이 싸구려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요리의 가치를 몰라봤다.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김종석이 조용해지자 한숨을 내쉰 김윤하 피디가 다가갔다.

“원래는 이번 촬영이 끝나고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이리되었네요.”

김윤하 피디의 말에 김종석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감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었다.

김윤하 피디는 김종석과 후배를 번갈아 보더니 입을 열었다.

“두 분은 다음 촬영부터 나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게 무슨!”

옆에 있던 후배의 눈이 커졌다.

눈살을 찌푸린 김종석이 입을 열었다.

“이번 일 때문입니까? 그거라면….”

“아닙니다. 이번 일과는 무관합니다.”

차가운 김윤하 피디의 말에 김종석의 얼굴이 구겨졌다.

“허, 방송국이 이래서 무섭군요. 자신들 멋대로 계약도 파기하고…. 예. 이딴 방송 제가 나가죠. 하지만 저도 인맥이 있습니다. 이번 일은 그냥 넘기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잘 되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더 일하기는 어려웠다.

그러한 김종석의 말에 김윤하 피디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 말귀를 못 알아듣네. 여기서 모두에게 사과하고 조용히 나갈래요? 아니면 법정에서 볼까요?”

법정이란 말에 김종석의 눈썹이 휘었다. 반대로 뭔가를 깨달은 후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윤미진 기자, 정기철 기자.”

김윤하 피디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둘의 몸이 굳었다.

둘을 바라보는 김윤하 피디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두 분 다 계약서에 적힌 비밀 조항은 읽으셨죠? 제 방송에 똥물 튀기기 싫어서 조용히 넘어가는 거예요. 아니면 제대로 붙어서 위약금이랑 손해 배상금까지 다 뱉어 볼래요?”

“….”

“그리고 인맥이라면 내가 더 많아. 이십 년 경력의 피디를 물로 보지 마. 그쪽이 칼을 들기 전부터 난 메가폰을 잡았어.”

“….”

김윤하 피디의 싸늘한 눈빛에 둘이 숨을 삼켰다.

방송국에서 이십 년을 넘게 버텼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해하셨으면 이 이상 제 방송 망치지 말고 조용히 사과하고 떠나세요. 알겠죠?”

김윤하 피디가 생긋 웃으며 둘의 어깨를 두드렸다.

먼저 움직인 건 후배였다.

“…폐를 끼쳤습니다.”

고개를 숙인 후배는 김종석 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은 김종석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렇게 김종석까지 떠나가자 김윤하 피디가 손뼉을 쳤다.

“자, 오 분만 더 쉬고 다시 진행합니다!”

그리 말하더니 작가들과 서브 피디에게 눈짓했다.

스태프하고 방청객들 입단속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퍼져 나갈 거다.

뒷머리를 긁적이는 김윤하 피디에게 강현이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아니, 왜 강현 씨가 사과해. 이쪽이 출연진 관리를 못 한 건데.”

김윤하 피디의 말에 강현이 씁쓸히 웃었다.

맞는 말이긴 했지만, 상관이 없다고 보긴 어려웠다.

강현과 관계된 일이었기에.

강현은 김종석이 떠난 곳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큰 감정은 없었다. 한때는 배신감마저 들었지만, 이제는 옅어졌다.

그러나 오늘 일을 겪고 보니 안쓰럽게 느껴졌다.

‘…뿌린 대로 거두는 건가.’

강현이 보기에도 김종석의 실력은 뛰어났다.

하지만 이제 방송에서도 요리계에서도 얼굴을 내밀 수 없게 되었다.

“아, 그보다 시간 없다고 하지 않았어?”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사건이 터졌다.

사실 예상보다 더 지체되었다. 생각보다 촬영이 길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강현의 말에 김윤하 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괜찮아. 어서 가봐.”

“예. 다음에 뵙겠습니다.”

강현은 고개를 숙이고는 심사위원들과 연예인 심사단, 셰프들에게 차례대로 인사를 건네고 떠났다.

누구도 강현이 떠나는 걸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강현이 남아 있었다면 눈치가 보였을 거다.

차라리 떠나 주는 게 속 편했다.

그때, 서브 피디가 김윤하 피디에게 다가왔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출연진이 셋이나 떠났다. 게다가 분위기도 엉망인 상태.

이 상태에서 촬영을 이어 갈 수 있겠냐는 물음이었다.

“안 괜찮으면 어떻게 해. 열심히 잘 만져 봐야지.”

편집으로 어떻게든 해 보겠다는 뜻이었다.

서브 피디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김윤하 피디가 보조 피디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다행이잖아? 이게 앞에서 터졌다고 생각해 봐.”

서브 피디의 몸이 굳었다. 그랬다면 정말 끔찍했을 거다.

피식 웃은 김윤하 피디가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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